우리나라 사람들이 즐겨 찾는 유럽엔 유명한 문호들이 살았던
집들이 기념관으로 꾸며 관광객들의 발길을 모으는 곳들이
적지 않다. 캐나다 같이 문화적 토양이 척박한 나라에서도
'빨강머리앤'의 저자 L.M.몽고메리가 살았던 세인스로렌스만의
프린스에드워드 섬을 관광지로 탈바꿈시켜 세계의 주목을
모으고 있다고 한다.
우리 문학의 역사적 체취를 간직한 작가의 생가나 기념관이
제대로 보존되고 있지 않은 우리네 현실과는 사뭇 동떨어진
풍경이 아닐 수 없다. 지난 14일 부암동에 위치한 사실주의의
대가 현진건의 고택도 포크레인에 의해 무참히 철거되었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역사와 문학에 등장하는 수많은 문학가들의
흔적이 이처럼 반성없이 유린되고 있는 현실이 가슴아팠다.
요즘 신사동 프로젝트 스페이스 집이란 공간에서는 젊은
사진가들의 바라본 서울풍경에 관한 작품들이 '애매한 한국적
풍경에 눈길주기'라는 제목으로 열리고 있다. 고층건물과
상업용 간판, 키치적 조합물로 가득한 서울 풍경은 삭막하고
잔인해보였다. 역사와 문화와 삶이 거세된 채 돈과 오락과
쾌락만이 존재하는 공간이 바로 서울이란 걸, 젊은 작가들이
이렇게 생생하게 고발하고 있는 듯 싶었다.
오래된 것..낡은 것은 항상 새 것으로 바꿔야한다는 근대적
강박관념으로 인해 서울은 매일 얼굴을 바꾸고 분칠을 해대
지만, 정작 삶과 문화적 체취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있다.
현진건의 고택이 그러했듯이, 앞으로도 몇개 남지 않은 작가
들의 생가나 고택도 철거의 운명을 겪는 아픔을 우린 그저
팔짱 낀채 무감각하게 방관해서는 안될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