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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복수정답시비에 대한 평가원의 본래 입장 (퍼옴)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수능관리부입니다.


17번 문항에 대해 11.12(수)에 이미 답변을 하였으나, 여러 수험생의 문의가 많이 들어와


출제위원의 답변을 다시 한번 올려드립니다.





백석과 이 문항에 대한 관심을 가져 주신 데 대해 감사 드립니다.


백석의 [고향]은 시인의 감정이 절제된 좋은 시입니다.


백석은 자기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출하는 것을 제한하고,


사물의 객관적인 외양이나 형태를 어쩌면 무미건조하게까지 제시, 나열하거나 보여주는 시


를 쓰곤 했습니다.


'고향' 하면 떠올리는 센티멘탈리즘, 향수병, 지나친 감읍벽 같은 것이 이 시에는 거의 없습


니다.


[고향]은 북관에서 혼자 앓아 누운 시적 화자의 외로움과 고독감이 깊은 울림을 주는 시입


니다. 시적 화자의 병은 깊고 깊어서 매우 위태로워 보이지만 이 시에는 절규나 비명이 없


습니다.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는 화자의 시선은 평상심인 듯 보일 정도입니다.


그러나 이면에 숨겨진 그의 향수병은 이미 측정치를 넘어서 있었을 것입니다.


시인은 고향 정주와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뼈에 사무치는 경험을 했을 것입니다.


시인은 오래 혼자 앓다가 의원을 찾습니다. 옛 한의들이 그러하듯 의원의 풍채는 신선처럼


그려져 있습니다.


약이 아니라 마음으로 병을 고친다는 동양 의법을 증명이라도 하듯 병자의 맥을 짚는 의원


의 손길은 섬세하고 따뜻합니다. '새끼손톱 길게 돋은 손'은 분명 신선의 손이지요.


그는 병의 원인과 치유법에 대해 말하는 대신 병자에게 고향을 묻습니다.


그리고는 한참의 대화가 이어집니다.


시인과 한의의 대화가 이어지는 시간은 시인이 고향을 떠올리고 그로 인해 마음의 안정을


얻기 위한 시간이기도 한 것입니다.





여기서 의원의 기능에 대해 우리는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보기> 지문에서 테세우스의 목표는 분명 비밀의 방에 이르는 것입니다.


이 시에서도 시적 화자가 이르고자 하는 것은 '고향'입니다.


고향으로 가기 위해서는 고향으로 가는 어떤 계기가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없어 화자는 앓아 누웠던 것이지요. 화자는 의원을 찾습니다.


의원과의 대화를 통해 화자는 고향으로 가는 길을 얻게 됩니다.


의원은 고향으로 가는 길을 열어주는 입구, 문과 같은 기능을 한 것이지요.


의원은 화자의 병이 향수병이며 그 병을 치유하는 것이 바로 대화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


입니다. 그래서 의원은 그 계기를 제공해 줍니다.


시에서도 '북관/고향'이 선명하게 장면 전환되는 것도 바로 '의원'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북관', '고향' 사이의 '막'(거울)과 같은 존재인 것입니다. 즉 '북관'에서 '고향'으로 가는 '


문'의 기능이지요. 의원을 만나지 않았다면 화자는 고향을 찾지 못했겠지요.


그리고 고향도, 아버지도, 친구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했을 것입니다.


'북관/고향'은 이원적으로 존재해 있지만 '의원'은 이 공간을 연결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해


준 것입니다.


계기만 주어지지 그 길을 통해 고향을 찾는 것은 전적으로 시적 화자의 몫입니다.





테세우스가 비밀의 방에 이르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것은 미궁입니다.


미궁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미궁의 입구인 문을 찾아야 합니다.


핵심이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비밀의 문은 들어가고자 하는 사람에게만 존재하고 열린다'고 했습니다.


그 문을 찾고 나면 테세우스 저 스스로 지혜와 본능으로 미궁을 더듬어 비밀의 방에 이르러


야 합니다. 의원의 기능도 마찬가지로 그 길을 발견하게 하는 데 있습니다.


의원이 질문하고 시인이 대답하는 시간은 바로 시적 화자가 그 길에 들어서기 위한 마음의


준비이며 의지의 확인인 셈이지요.





여기서 실이 문제가 됩니다. '실'은 '구명줄', '인도' 같은 이미지가 있습니다만, 그것은 우


리의 머리 속에 선지식으로 남아있는 어떤 잔상 때문인 것 같습니다.





테세우스의 신화에서도 '실'은 미궁으로 들어가 비밀의 방을 찾는 역할을 하는 데 강조가


주어지기보다는 나중에 미궁을 빠져나오는 데 필요한 것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혹은 아리아드네와의 사랑의 성사 여부나 테세우스에게 버림받은 아리아드네의 슬픔이라는


모티프를 활용하기 위해 쓰이고 있습니다.





문제의 <보기>에서 실은 분명 비밀의 방에 이르는 과정에서의 역할보다는 나중에 나오기


위해 필요한 것으로 제시되고 있습니다.


비밀의 방에 이르기 위해 테세우스는 '자신의 예지와 본능으로' 미궁을 더듬어 가고 나중에


실을 따라 밖으로 나온다고 되어 있습니다.





제시문에서 '실'은 목표를 성취하는 데 주기능이 있지 않고 목표를 성취한 이후의 또 다른


장면에서 부수적이면서 도구적인 기능을 하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어떤 과제를 해결하는 데 실마리가 되는 문(입구)의 중요성은 다음과 같은 우리의 설화에도


자주 등장합니다. '지하 대적 퇴치 설화'의 유형이 그것인데요. 지역마다 약간의 변용이 있


습니다만, 핵심은 그 과제를 해결하는 관건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동굴로 가는 문을 찾느냐 아니냐에 달려 있습니다. 들어갈 때 들고 가는 밧줄은 나


중에 동굴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필요한 도구이지요. 단지 수단일 뿐입니다. 과제를 해결하는


과정에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다시 한 번 백석의 시에 관심을 가져 주셔서 감사 드립니다.





이 답변이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