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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영역 17번 문제, 3번이 답인 이유입니다.

다음은 평가원에서 이번 수능에 참여하지 않은, 현대시 전공 교수 3인에게


의뢰한 17번 문항에 대한 자문 결과를 종합한 것입니다.


평가원에서 직접 문제해설은 이번이 처음이므로 단지 17번 문제뿐만 아니라


언어영역 문제풀이 전반에 대한 참고자료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1. 언어영역에서 문학 지문을 놓고 문제가 출제되는 경우, 모든 판단은 선행 배경 지식이 아니라 주어진 자료들(지문, 문제, 보기, 답지 등)에 근거해야 하며, '답안들 가운데 문제의 의도에 가장 근접한 것' 즉 최선답을 정답으로 해야 합니다.


또한 17번 문항은 다른 상황에 유추 적용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상황 조건의 완벽한 일치를 요구할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확대 해석은 곤란하며 과도한 배경 지식에 의거해서도 안 됩니다. 오로지 주어진 텍스트 내의 조건과 맥락 속에서만 다루어야 합니다.





2. 17번 문항은 백석의 시 '고향'에서 '의원'의 기능과 유사한 것을 <보기>의 신화에서 고르라는 것입니다. 문제가 요구하는 것은 '기능' 상의 비교이지, 그 내용이나 이미지의 비교가 아닙니다. 따라서 '의원'은 긍정적이고, '미궁'은 부정적이라는 지적은 기능과는 무관하므로 ③이 답이 아니라는 데 대한 반론이 될 수 없습니다.


이 문제 해결 과정에서 유의할 점 중의 하나는, <보기>가 다양한 방식으로 형성되고 존재해 온 개별 텍스트 중의 하나이기 때문에 다른 텍스트의 구성과 내용을 염두에 두고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즉 그리스 신화를 그대로 옮긴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보기>는 테세우스가 미궁에서 나와 아테네를 향하는지에 대해 전혀 언급하고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고향'과 '아테네'가 대응되므로 '실'이 매개 역할을 하고, 그래서 답이 된다.'는 논리는 타당하지 않습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보기>와 다른 텍스트(그리스 신화 원전)를 배경 지식으로 삼는 것은 앞에서 말한 언어 영역의 원칙과 관례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3. 그렇다면 17번과 같은 유추형 문항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나'의 '고향'에 해당하는 것이 <보기>의 무엇인지부터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테세우스가 '나'에 해당한다면, <보기>의 문맥에서는 '비밀의 방'이 '고향'에 대응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문제는 '나'가 '고향'에 이르는 데 매개 역할을 한 '의원'처럼, 테세우스가 비밀의 방을 가기 위해 필요로 했던 것이 무엇이냐로 압축됩니다.


기능상으로 본다면 <테세우스-미궁의 문-비밀의 방>은 <나-의원-고향>과 일치합니다. '미궁의 문(의원)'을 거쳐서 '비밀의 방(고향)'에 이르는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4. 시 '고향'에서의 '의원'은 '나'로 하여금 고향에 대해 생각하고 느끼게 해주는 매개자 역할도 하지만, 단순히 거기서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시의 결말 부분, '의원은 또다시 넌지시 웃고 / 말없이 팔을 잡아 맥을 보는데 / 손길은 따스하고 부드러워 / 고향도 아버지도 아버지의 친구도 다 있었다'에서 보듯이, 의원은 화자에게 고향 그 자체로도 인식되고(여겨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의원'은 화자로 하여금 고향에 이르게 해 주는 통로 혹은 매개자이자 고향 그 자체의 의미로 확장해 이해해야만 할 것입니다.


그러나 <보기>에서 '실'은 미궁 자체거나 그 부속물이 될 수 없습니다. 더구나 주어진 <보기> 어디에도 실을 따라 테세우스가 미궁에 들어갔다는 판단을 할 수 있는 부분이 없습니다. 자신의 예지와 본능으로 더듬어 미궁의 문을 찾았고 미궁에서 나올 때 그 실을 이용했다는 진술은 발견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미궁 자체이면서 주인공을 미궁으로 들어가게 해주는 통로를 다른 데서 찾아야 하는데, '미궁의 문'이 그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5. 한편 <보기>에서 '실'은 테세우스가 미궁을 빠져 나오는 수단에 불과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원=실'을 주장한다면, '의원'은 화자로 하여금 고향에 이르게 했다가 거기에서 빠져 나오게 하는 기능을 해야 하는데 이것은 넌센스에 가깝습니다. '의원'은 환자의 향수를 치유하는 존재로 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6. 요컨대 ⑤의 '실'은 매력적이긴 하지만 정답이라 할 수 없고, ③의 '미궁의 문'이 '의원'과 유사한 기능을 가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