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년 8월 29일, 경술국치를 맞이하여 매천 황현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죽음에 이르러서도 그는 제자들에게 스스로 평생 하늘이 준 바른 마음씨를 지키고 책에서 읽은 좋은 말들을 실천하기 위해 애썼기 때문에 통쾌한 마음으로 시원하게 죽노라 일갈했다. 진정 죽음에 이르러 한 점의 후회도 없이, 매 순간 글을 아는 인간으로서 바르게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던가?
우리들 삶이라는 것은 결국 바르게 살고자 하는 마음과 편하게 살고자 하는 마음 사이에서 끊임없이 번뇌하며, 자아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양심의 목소리를 따를지 사지의 편안함을 추구하기 위해 주변의 눈치를 살펴야 할지 선택하는 것이리라. 진정 인간으로서 인간답게 살아가는 것이, 옳은 일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그대로 따르며 살아가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음을 알면 알수록 더욱 뼈저리게 느끼지 않던가? 평범한 상식만 지키려고 해도 태산을 무너뜨리고 바다를 뒤엎을 용기가 필요하게 된 것이 오늘날 현실이 아니던가!
2003년 10월 9일, 이 땅의 교육은 죽었다! 모두가 숨죽이고 불의에 복종하는 이 시대에 다음 세대에게 자신의 삶으로서 다가가고 함께 살아가야 할 교사들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이었나? 그것은 결코 교육의 주체들이 혼자서도 찾아낼 수 있는 어줍잖은 지식의 전달 따위는 아닐 것이다.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이며, 정의와 진리가 무엇이며, 자아실현이라고 하는 지고한 행복의 경지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고 온 몸으로 실천해야 할 것이다.
눈치보지 않고, 아첨하지 않으며, 교사로서 자긍심도 없이 지식 전달자에 머무르지 않기 위해 우리는 얼마나 많은 날을 가슴아파하며 힘겨워해야 했던가! 진정 이 땅에서 아이들에게 사랑 받는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단 하나의 꿈을 꾸며 살아가기 위해 우리는 얼마나 많은 고난의 시간들을 보내야 했던가. 약자의 편에 서서 정의와 진리를 지키기 위해 살아가는 삶은 진정 얼마나 고단하고 힘든 일이던가? 재단이 온갖 부정부패를 저질러도, 학생과 교사들을 집에서 기르는 가축이나 노예취급을 하더라도, 아이들의 인권을 부당하게 유린하더라도, 그래서 결국 올바른 아이들을 학교에서 내치더라도 그저 침묵했다면 삶이 얼마나 평안했을 것인가?
그러나 다시 한 번 외치노니, 우리는 우리의 사랑하는 아이들과 함께 정말로 인간답게 살고 싶다. 교사와 학생 서로가 하나의 인격체로서 아끼고 존중하며 함께 자아실현을 이루는 인간다운 교육을 만들고 싶다. 바른 것을 바르다 말하고 그른 것을 그르다 말하는 것을, 상식으로서 교육현장에서 꽃 피우게 하고 싶다. 정말로 아이들을 사랑하고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했으며, 무엇보다도 그저 배운 바대로 실천하며 살아가려 한 참 스승의 모습에 큰 감동을 받았으며 반드시 그를 지켜 냄으로써 죽어버린 우리 교육을 살리고 싶다.
세상 모두가 미쳐 돌아가더라도 끝까지 바른 말 해야 하는 것, 그것이 우리 교사들에게 주어진 의무이자 권리이다. 학교라는 공동체에서 정의와 상식이 흐르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교육자인 우리들의 몫이다. 민주주의의 기본 가치들을 학습하는 학교에서 더 이상 바른 길을 걸어갔기 때문에 상처받은 이들이 생겨서는 안 된다. 이를 방치하는 이는 교사로서 가장 기본적인 의무를 방기하는 것이므로, 단지 월급쟁이 기계일 뿐 온전한 교사가 될 수 없다. 우리는 참교육을 실현하기 위해 교사가 되었으며, 노조에 가입하였으며, 수많은 갈등 속에서도 양심의 소리에 귀기울여 왔기 때문에 결코 이번 사태를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용화여고의 교사파면 사퇴가 철회되고, 관계자들 모두가 학생 퇴학과 교사파면에 대해 무릎꿇고 사죄하며, 진정 교사와 학생·학부모가 용화여고의 주인이 되는 그날까지 모든 노력을 경주할 것이다.
이제껏 너무나도 많은 아이들과 선생님들이 피눈물을 흘리며 가슴아파해 왔다. 이제 눈물을 거두고 깃발을 곧추 세우고자 한다. 그동안 흘러내린 피눈물들을 그들에게 수 천배로 되돌려 주어야 할 때다. 나라가 무너졌을 때 시원하고 통쾌하게 죽어간 매천처럼, 죽어버린 우리 교육을 살리기 위해 그리하여 우리 또한 당당하고 시원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 목숨을 걸고 일어서려 한다.
김재열, 성경숙, 김용석, 임근석, 박순덕, 최미혜, 이인영, 홍석천,
최정민, 장찬일, 허인영, 문찬석, 이정환, 윤창순, 원상연, 김동연
전교조 서라벌 중학교 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