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사설] 이시하라 妄言 일본 국민의 소리인가 에 대해서
(홍재희) ======= 방상훈씨의 친일 반민족 반민주 반 통일의 세습족벌 사주체제인 조선일보 사설은 " 일본의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東京) 도지사가 “한일합방은 조선인들의 선택이었으며 식민주의라고 해도 인간적이었다”는 망언을 또 뱉어냈다. " 라고 전하고 있다. 이시하라의 발언은 이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일본인들의 사고방식을 압축해 놓은 것으로 해석이 가능 하다고 본다. 일본인들의 근현대사에 대한 인식은 2차 세계대전의 종전 이후에 형성된 국제적인 냉전구도 속에서 왜곡되기 시작했다.
일본인들은 미 . 소의 대립이 한반도를 사이에 두고 첨예화돼 미국이 한국과 일본을 소련에 대한 봉쇄정책의 전진기지화 하면서 일본제국주의자들에 대한 국제정치적 심판을 유보하면서 일본의 전쟁범죄자들을 맥아더 헌법하의 새로 출범하는 일본 정부고위관료에 임용 하는등의 사실상 전쟁범죄에 대해 면죄부를 줘 일본인들의 식민지 침략전쟁에 대한 식민지 지배에 대한 제국주의적 책임을 묻는 국제사회의 역사청산의 기회를 현실적으로 무력화 시켰다.
이러한 국제 정치적 상황의 전개는 일본인들의 근현대사에 대한 가치관의 전도현상과 도덕적 해이를 부채질했고 오늘날 이시하라 같은 정치인들이 그러한 일본인들의 의식을 반영하는 자극적 발언을 서슴치 않고 있는 것 이라고 본다. 이러한 현상은 일본과 함께 2차세계대전 전범국가인 독일의 철저한 역사청산과는 극히 대조적이다. 역사청산의 문제는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하는 과정에서도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군사 . 등 거의 모든 분야에 일제에 기대어 적극적인 친일 반민족적인 범죄행위를 한 집단과 개인들이 한국사회의 주류를 형성해 와 한국사회의 가치관을 전도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러한 집단 중에는 조선일보도 빼놓을 수 없다. 현 방씨족벌의 조선일보는 세습족벌 언론권력의 상징이다. 현조선일보의 세습경영은 1933년대에 현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의 조부인 방응모가 조선일보를 인수하면서부터 시작 됐는데 방응모의 조선일보는 일제 식민지 지배체제에 철저하게 복종하는 반민족적인 범죄행위를 마다하지 않았고 일제식민지 의 한민족 지배정치체제인 조선총독부의 기관지와도 흡사한 친일기사로 방씨 족벌의 조선일보 신문의 전 지면을 매일매일 도배하다 시피 했다.
현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의 할아버지인 방응모 의 조선일보는 조선의 젊은 학생들을 일제의 총알받이로 내모는데 나팔수 역할을 하면서 수많은 목숨을 앗아가게 했고 조선의 숫처녀들을 일제의 성노리개로 내모는데 적극적인 나팔수 역할을 통해 조선 숫처녀들의 소중한 정조를 일제침략군들에게 짓밟히게 하는 만행을 저질렀고 또 조국과 민족의 독립을 위해 이역만리 동토의 땅 시베리아 만주 벌판에서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목숨을 걸고 일제와 싸우는 독립군을 살상하도록 현 조선일보 의 방상훈 사장의 할아버지인 방응모는 직접 고사포를 구입해 일제에 헌납해 독립군 살상에 적극적으로 기여했다. 이러한 행위는 아주 적극적인 명백한 친일 반민족적 범죄행위인 것이다.
방씨 족벌체제인 조선일보는 야수와 같은 반민족 범죄행위에 대해 지금까지 진솔한 사과 한마디 없이 오늘에 까지 이르고 있다. 친일 반민족적 범죄행위를 했던 조선일보의 방응모사장은 일제가 패망하고 물러나자 다시 원칙과 정의에 반하는 상황논리를 구차하게 내세우기에 여념이 없는 비열함을 감추지 못했다. 방응모는 조선일보를 속간하면서 속간사에서 조선일보와 방응모사장의 반민족적인 친일 범죄행위에 어쩔수 없었다는 말로 범죄행위에 대한 정당성을 내세웠다. . 아래내용은 조선일보 방응모 사장의 변명내용이다.
『방응모는 일본이 패망한 후 다시 조선일보사의 사주로서 일제에 의해 폐간되었던 조선일보를 1945년 11월 23일자로 속간하였고 그의 속간사는 다음과 같다.
´우리는 더퍼노코 ´황국신민´이 되라는 강잉을 바덧스며 징병으로 징용으로 공출로 전쟁에 철저협력하라는 호령을 듯고 볼 뿐이엿다. 우리는 입을 가젓스나 생벙어리 행세를 하여야 하엿스며 할 말은 만헛스나 호소할 곳이 업섯다. 우리는 죽으라면 말업시 죽는 시늉을 하지 안흐면 안 될 환경에 노혀 잇섯다. 굴근 철쇄(鐵鎖)로 억매이고 날카로운 총검밋테 떨허 오직 노예적 굴종을 하지 않흐면 안 되엇섯다. 확실히 총독정치 36년간에 이 기간가치 언론이 구속된 때는 업다고 단언할 수 있다.´
방응모는 그는 이와 같은 말로 일제 치하에서 자신의 친일행위가 놓여진 환경에 의해 어쩔 수 없었던 것임을 피력하며 그러나 이는 모두 과거의 일이니 언론의 자유를 회복하고 붓을 다시 들어 건국 대업 완성에 기여해 우리의 나아갈 길을 밝히겠다고 다짐하기에 이른다. 』
(자료출처 = 미디어 오늘 2002년 3월7일자)
이렇듯이 적극적인 친일 반민족적 범죄행위를 적극적으로 해놓고 일제가 패망하자 그 당시의 상황론을 구차하게 내세우며 자기변명에 충실했던 것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할까? 친일 반민족 행위를 해놓고도 조선일보는 일제가 패망한 이후 1945년 8월15일부터 오늘날에 이르기 까지 방씨 족벌의 친일 반민족 행위에 대해서 스스로 인정하지 않았고 또 한번도 진솔하게 역사와 민족과 국민들과 독자들에게 건성? 으로 나마 사과 한마디하지 않았다.
아니 방씨 족벌의 조선일보는 역사에 지울 수 없는 친일 반민족적인 범죄행위를 저질러 놓고도 조선일보를 소개할 때 `민족정론지` 라는 주장을 아무런 도덕적 부끄러움 없이 대내외적으로 강조해 왔다. 이러한 조선일보의 천인공로할 태도는 한국사회에 대한 기만이다. 한국사회가 지향해 나가할 가치를 거꾸로 물구나무세우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본다. 이러한 방씨 세습족벌사주체제의 친일 반민족적인 범죄행위를 감추고 있는 조선일보가 이시하라의 발언에 대해서 망언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전혀 설득력이 없다고 본다.
조선사설은 " 더구나 그의 인기는 일본 정치인 중 1~2위를 놓치지 않아 직선제로 일본 총리를 뽑는다면 벌써 그가 당선됐을 것이라는 게 여론조사 결과다. 일본판(版) 히틀러라고 불릴 만한 정치인이 최고 인기를 누리고 있는 나라가 세계에 일본 말고 또 어디 있겠는가. " 라고 주장하고 있다. 일본판 히틀러가 이시하라 라고 한다면 방씨 족벌의 친일 반민족적인 언론권력의 실체인 조선일보에 대해서는 한국판 무엇이라고 불러야 좋을까?
역사적 과오를 부정하고 오히려 민족정론지라는 주장으로 한국사회의 가치관을 짓밟고 있는 방씨 족벌언론권력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한국이 이시하라를 비판한다고 해서 일본인들이 결코 교훈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아니 방상훈씨의 세습족벌사주체제의 친일 반민족적인 신문 조선일보가 이시하라를 비판하는 논조의 사설을 실어 내보낸 사실을 알게된다면 한민족에 대한 식민지지배의 과거에 대해서 양심적으로 부끄러워 하지 않고 있는 일본인들과 이시하라가 방상훈씨의 조선일보를 어떻게 생각할까? 조선사설은 이시하라를 비판하기에 앞서 방상훈씨의 세습족벌사주체제인 조선일보의 반민족적인 친일 범죄행위에 대한 반성과 사죄가 먼저 선행돼야한다. 방상훈씨 어떻게 생각하나?
[사설] 이시하라 妄言 일본 국민의 소리인가 (2003년 10월30일자)
일본의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東京) 도지사가 “한일합방은 조선인들의 선택이었으며 식민주의라고 해도 인간적이었다”는 망언을 또 뱉어냈다.
그의 발언을, 입만 열면 일본의 침략 역사를 미화하고 한국을 비롯한 이웃 국가와 국민들을 모독하는 대중 선동술로 인기관리를 해온 극우정치인의 정신나간 소리로 치고, “또 미친 ×가 짖는구나”라고 여기면 그만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쯤 되면 우리는 일본 국민들에게 정색을 하고 묻지 않을 수 없다. “이시하라의 망언을 일본 국민의 소리로 받아들여도 되는가”라고 말이다. 그가 망언을 하면 할수록 인기가 올라가는 괴이한 현상을 한국 국민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시하라는 한국인을 비롯한 불법 외국인들이 도쿄를 무법천지로 만들고 있으며 유사시 폭동을 일으킬지도 모른다거나, 중국인의 흉악범죄는 민족적 DNA에 의한 것이며 중국을 쪼개야 한다는 등의 극언을 서슴없이 외쳐왔다. 그런데도 그의 정치 생명이 끝나기는커녕 이시하라는 지난 4월 임기 4년의 도쿄 도지사 선거에서 압도적 지지로 재선에 성공했다.
더구나 그의 인기는 일본 정치인 중 1~2위를 놓치지 않아 직선제로 일본 총리를 뽑는다면 벌써 그가 당선됐을 것이라는 게 여론조사 결과다. 일본판(版) 히틀러라고 불릴 만한 정치인이 최고 인기를 누리고 있는 나라가 세계에 일본 말고 또 어디 있겠는가.
일본 국민들은 이시하라를 통해 도대체 어떤 메시지를 아시아 이웃국가들에 전하려고 하는가. 과거의 침략 역사를 지워버림으로써 새로운 침략의 가능성을 열어보고 싶은 욕구를 이시하라로 하여금 대변하도록 하고 있다고 받아들여도 되는 것인가.
그게 아니라면 일본 국민은 이제 ‘이시하라 신드롬’을 정리해야 한다. 일본이 이시하라 같은 정치인이 활개를 치도록 내버려 두는 한 아시아 국가들과의 화합을 포기할 수밖에 없을 것이며, 세계 속의 지도국은 고사하고 ‘이질(異質)국가’로 겉돌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입력 : 2003.10.29 17:52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