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축전 개런티 시비 北 평양귀환 지연소동
南 “파견 규모 축소…다 못준다”
北 “약속금액 달라” 공항서 버텨
중앙일보(中央日報) 2003년 10월28일 11:40
제주 민족평화축전에 참가했던 북한 대표단이 27일 남측에 행사 참가 대가를 요구하며 평양 귀환을 늦추는 소동을 빚었다. 남북간 민간 교류에서 행사 대가를 둘러싸고 공개적인 논란을 빚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행사조직위에 따르면 북측은 이날 오후 5시 숙소인 라마다프라자 제주호텔을 떠날 예정이었으나 참석 대가 2백20만달러(약 26억4천만원)를 즉각 내놓으라며 버텼다.
조직위 측은 김원웅(개혁국민정당 대표) 위원장을 내세워 호텔 로비에서 김영대 민화협 회장과 단독협의를 갖고 설득했으나 북측은 “이런 식으로 하려면 북측과 다시는 행사를 할 생각을 말라”고 완강하게 맞섰다. 북측 관계자는 “동포들이 사는 곳인데 설마 밥 한끼, 잠자리 하나 안 주겠느냐”며 압박했다.
남측은 양측이 합의한 2백20만달러 가운데 50만달러는 착수금조로 행사 개막 전 북측에 전달했다. 그러나 문화공연 대가 50만달러는 북측이 예술.취주악단의 파견을 일방적으로 취소하는 바람에 방송사(MBC)가 중계권을 반납하는 등 차질을 빚어 지불이 어렵다는 입장을 북측에 전달했다. 북측은 당초 4백명의 대표단 파견을 약속했으나 1백90명만 왔다.
남측은 또 TV.냉장고 등 현물로 지불하기로 한 나머지 1백20만달러도 절반 수준인 60만달러만 주겠다고 제안했다.
양측 입장이 팽팽히 맞서자 남북한은 결국 추후에 양측 조직위 채널을 통해 대가를 협의하기로 했다. 남측 金위원장은 “구체적인 대가를 밝히기 어렵지만 미국.유럽 등지에서처럼 관례적 수준”이라고 말했다.
북측 대표단은 대기 중이던 두 대의 고려항공 전세기에 오후 9시 탑승을 마쳤으나 평양 순안공항의 기상악화 때문에 자정을 전후해 각각 출발했다. 한편 제주 행사에 파견된 통일부와 국가정보원 직원들은 북측 대표단의 출발도 확인하지 않은 채 오후 9시10분 비행기로 서울로 철수해버려 정부 당국이 북측 대표단의 현지상황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등 큰 혼선을 빚었다.
제주=양성철.이영종 기자
http://news.joins.com/society/200310/28/200310280601174031300030103011.html
■ 2003년 10월28일자 조선일보(朝鮮日報) 사설 [인터넷판]
北은 민간축전에도 출연료 받나
‘제주 민족평화축전’에 온 북한 대표단이 참가 대가 220만달러를 약속대로 달라며 평양 귀환을 7시간 늦췄다는 소식에 국민들은 다시 한번 착잡해졌다. 북한 대표단은 남쪽 주최측이 북측의 예술단 파견 취소로 차질이 생겼다며 이 돈을 깎으려 하자 호텔 출발을 미룬 채 승강이를 벌였다고 한다.
국민들은 두 달 전 대구 유니버시아드대회 때 북한 응원단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플래카드를 울며 떼어가던 것과는 또 다른 남북교류의 이면을 보며 여러 생각을 떠올렸을 것이다. ‘민족화합’을 외치는 민간 축전의 뒤에 돈거래가 있었다는 사실에 실망하기도 하고, 북한 대표단의 딱한 모습에 연민을 느끼기도 했을 것이다.
사실 1990년대 초부터 거의 모든 남북교류에는 관행처럼 돈이 오갔다. 민간차원에서 방북하는 기업인이나 문화인들도 1인당 많게는 수천만원씩 되는 입북료(入北料)를 인두세(人頭稅)처럼 지불해왔다. 북한의 뒷돈 요구는 남쪽 사람들이 건수 올리듯 방북 경쟁을 벌이며 잘못 길들인 탓도 크다.
KBS만 해도 지난 8월 ‘평양 노래자랑’ 공연의 대가로 13억원을 낸 것을 비롯해 2년 동안 남북 방송교류와 관련해 63억원을 썼다고 한다. 하지만 평양 노래자랑이나 이번 제주 축전이나 북쪽엔 아무 반향도 없이 남쪽에만 대고 떠드는, 주최측 위주의 한 건 올리기 행사에 그치고 있다.
북한의 어려운 사정을 모르지 않지만 이번 대표단처럼 돈을 놓고 낯을 붉히는 모습은 순수하게 북을 도우려는 사람들 마음까지 상하게 한다. 남북이 이런 식으로 어울린들 뭐가 남겠느냐는 회의와 불신을 키워 남북교류를 좁히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북측은 스스로를 위해서라도 현 상황에서 남북교류의 의미를 훼손하는 일이 없도록 최소한 돈 문제에 관해서라도 절제의 훈련을 쌓아갈 필요가 있다. 이번 제주 소동은 남북간 교류의 양(量)이 많을수록 남북간의 이해의 질(質)이 깊어진다는 단순한 도식이 착각임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다.
http://www.chosun.com/w21data/html/news/200310/20031028031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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