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위병이라는 것...문용린 서울대 교수
문용린의 이런생각 저런생각
홍위병이라는 것
중국인들조차 떠올리길 꺼려하는 ‘홍위병’이라는 미개하고 수치스런 단어가 다시금 괴기하게 우리 나라에서 떠돌아다니고 있다. 중국은 이미 홍위병에 대하여, “당, 국가, 인민에게 가장 심한 좌절과 손실을 가져다준 모택동의 극좌적 오류이며, 그의 책임‘이라고 규정하여 역사적 판단을 종결한 바 있다.(1981.6. 중국공산당대회).
문화대혁명이라는 기치 아래 진행된 홍위병 활동은 진시황시대의 분서갱유의 미개성을 훨씬 뛰어넘는 야만의 행진이었다. 분서갱유는 책을 태운 것이지만, 홍위병은 지식과 문화를 담고 있는 사람들의 머리와 가슴을 도륙해낸 미개인의 식인 카니발의 광기가 서린 집단행동이었기 때문이다. 이들의 야만성이 오죽이나 지나쳤으면 이 책임을 물어 모택동의 처인 강청을 사형까지 시켰겠는가?
우리 나라의 어느 문화계 인사가 “나는 홍위병이고…, 악랄하게 전진하자”라고 어느 공개석상에서 외쳤다고 한다. 그는 아마 수사적인 표현을 썼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 말이 너무 섬뜩한 말이라서 중국인들조차도 쓰기를 꺼려하는 말이고, 이미 공개적인 석상에서는 사라져버린 기피용어임을 알았다면 그도 이 말을 사용하지 않았으리라고 믿고 싶다. 아마 ‘붉은 악마’에 붙여졌던 정도의 열정적이고 응집력 강한 집단 이미지의 별칭으로 사용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러나 이런 오해는 지성의 깊이의 엷음에 대한 연민을 느끼게 한다. 즉 ‘문화대혁명’의 일환으로 진행된 홍위병활동이기 때문에 이들은 결국 중국문화 개혁의 선도자로서 순교자적 역할을 한 집단이라고 믿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1966년부터 가동되기 시작한 홍위병은 모택동이 유소기와 등소평을 숙청하고 자신의 정권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하여 동원된 광기어린 대학생과 고교생 집단이다. 이 홍위병들은 1976년까지 서사보위모주석(誓死保衛毛主席: 목숨바쳐서 모택동을 보위하자)와 선파후립(先破後立:모든 것을 파괴한 후에 새롭게 건설하자)라는 구호 아래 각각의 시골로부터 북경을 향해 행진하면서 보이는 모든 문화유산과 유품을 봉건잔재라고 낙인 찍으며 철저히 파괴한다.
특히 이 기간 중에 종교와 예술 문화 유산과 제품들이 수난을 당하는데 청동기 제품, 불상, 불화, 각종 목기와 도자기 등 생활 필수품이 아닌 것은 모두 불태워지고 부숴져 버린다. 생필품이 아닌 모든 문화, 예술, 종교 제품은 쓸데없고 혁명에 유해한 것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중국 공산당 스스로가 전국인민대표대회(1977.8.)를 열어 서둘러 홍위병 활동의 종결을 선포하게 된다. 결국 홍위병 사건은 독일 히틀러의 나치만행에 버금가는 중국의 문화에 대한 만행으로 비유될 수 있다. 이런 홍위병의 실상을 조금이라도 아는 지성이 있었다면, 과연 누가 감히 스스로를 홍위병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서울대 교수·전 교육부 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