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에 하나 지난 대선 과정에서 기업들로부터 단 한푼이라도 불법대선자금을 받은 것이 사실로 드러난다면 모든 책임은 자신이 지겠다고 단호한 의지표명을 했던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단 하루만에 최돈웅 의원의 SK 비자금 100억 수수설이 사실로 밝혀지자 사뭇 당혹함을 감추지 못하며 한발 뒤로 물러서는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한 서슬 퍼런 기세로 최도술씨의 SK 비자금 수수사건에 대통령 연루의혹을 제기하며 탄핵까지 거론하던 한나라당 역시 대변인을 통한 사과성명을 발표하며 몹시 난감해 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한마디로 한나라당 내부사정이 초상집인 양 여간 흉흉한 게 아닌가 보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에서도 이 전 총재와 당 지도부간에 서로 책임을 떠넘기려는 듯한 묘한 기류마저 감지되고 있다는 얘기마저 흘러나오고 있는 모양이다.
참으로 보기에 딱하고 민망한 형국이다.
한국정치판에서 정치자금에 관한 한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평범한 진실 앞에서 어찌 그리 교만했을까?
어찌되었거나 이제 관심의 초점은 검찰의 다음 행보에 맞춰지게 되었다.
정치에 관련된 위법사실로 곤경에 처해지기만 하면 너나 할 것 없이 특별검사제를 요구하는 것이 일상화가 될 정도로 치욕적인 대접을 받아왔던 검찰이 비로소 그 불명예의 사슬을 끊고 당당해질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은 것이다.
게다가 집권자인 대통령마저도 무당적 정국운영을 선언을 한 마당에 과거와 같이 정권 눈치 살피기에 얽매일 필요 역시 없게 된 상황이다.
따라서 그 어느 때보다도 홀가분한 상태에 놓인 검찰에게 공정하고 엄중한 법의 잣대로 여야를 가릴 것 없이 SK 비자금뿐만이 아니라 이미 제기 되었다가 유야 무야 돼버린 다른 정치자금비리 의혹들도 속속들이 파헤쳐서 이번에야말로 우리 정치가 진정으로 올바르게 거듭나는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할 수 있도록 주문하고자 한다.
아마도 그 과정은 결코 순탄치만은 않을 것이다. 과거와 다름없이 비리대상자들과 그에 동조하는 수구언론들이 사정정국이니, 정치탄압이니, 사회혼란을 야기한다는 따위의 구구한 변명과 협박을 들이대며 완강하게 맞설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어떠한 경우라도 절대로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거나 굴복하는 일이 없길 바란다. 정경유착으로 인한 부패가 사회를 얼마만큼 고통의 도가니로 몰아넣는 일인가를 모두가 뼈저리게 경험해왔기 때문이다.
특정병원체에 대한 백신주사를 맞게 되면 항체가 만들어질 때까지 얼마간 우리 몸은 앓게 마련이다. 하지만 일단 항체가 형성되고 나면 해당 병원균에 대해서는 내성이 생겨서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게 된다. 사회의 병폐도 이와 마찬가지의 원리이다.
올바른 룰이 정착될 때까지 따를 수밖에 없는 혼란이 두려워서 수십 년간 독버섯처럼 우리사회의 발전을 저해하고 있는 정치부패에 대한 단죄를 망설이게 되면 그리 머지않아서 그로 인해 참담한 절망을 맛보게 될 것이다.
얼마 전 발표된 국제사회가 평가한 우리사회의 부패지수순위를 새삼 거론하지는 않겠다.
지금 이 순간부터라도 검찰이 제대로 서서 한동안 잊고 지내왔던 공공에 대한 정의감과 용기를 일깨워서 모든 부패의 악습으로부터 한국사회를 구출해주길 간절하게 촉구하고 기대해 볼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