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사설] `송두율 반성` 사정할 일 아니다 에 대해서
(홍재희) ======= 대한민국 검찰과 냉전 수구적인 방씨 세습족벌사주체제의 조선일보 그리고 재독 사회학자 송두율교수 이렇게 셋이서 요즘 한창 삼천리 금수강산을 형형색색으로 현란하게 물들이고 있는 한반도의 단풍을 한번 구경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각기 다른 색깔의 단풍들이 울긋불긋 수놓고 있는 이 강산 저 골짜기의 아름다움이 오직 하나의 색깔만으로 강제 됐다면 그것은 아마도 하나의 색깔이 주는 공포 이상의 의미를 부여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렇듯이 자연의 세계에서도 각기 다른 형형색색의 잎새로 치장한 나무들이 숲 속에서 조화를 이루며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우리인간들에게 색깔의 차이와 다름을 조화로 보듬으며 아름다움을 선사하고 있는데 명색이 만물의 영장인 우리인간이 자신과 자신이 속한 국가체제가 지향하고 있었던 정체성과 다른 성향을 지닌 과거의 전력 때문에 그 사람의 생각을 강제하면서 국가체제에 물리적으로 복속 시키려는 행위는 오색 찬연한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앞에 인간의 치부를 드러내는 부끄러운 행위가 아닐 수 없다.
명색이 문명국가를 지향하는 대한민국사회에서 과거의 사상적 외도에 대해서 스스로 문제점을 인정하고 고개 숙이며 한국에 들어온 송두율교수에 대해서 냉전적 실정법의 잣대인 국가보안법을 적용해 시대착오적인 사상검증을 통해 처벌을 할 수밖에 없는 대한민국 검찰의 한계속에 한국이라는 배가 지향하는 문명세계의 등대불 빛은 아직 보이지 않는 요원함 으로 캄캄한 상태라는 것을 뼈아프게 우리 한국인들에게 각인시키고 있다.
냉전 수구적인 방씨 세습족벌사주체제의 조선일보 사설은 검찰이 송두율교수에게 애걸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조선사설의 그러한 주장에 대해서 동의하지 않는다. 애걸하고 있는 것은 검찰이 아니라 실정법적 처벌을 각오하고 대한민국에 들어온 송두율교수이다. 송 교수는 벌써 몇 번째 자신의 과거행위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한국인들에게 사과를 했는지 모를 정도로 여러 번 대한민국의 국법절서를 준수하고 살아가겠다는 사실상의 `준법서약`을 했다. 더 이상 무엇을 바란단 말인가?
더 이상 송교수에게 이른바 사상적 `전향`을 요구하는 것은 대한민국 헌법정신을 정면으로 위배하는 중대한 인권침해의 소지가 다분히 있다. 국가정보원과 검찰은 벌써 수도 헤아릴수 없을 정도로 많은 소환조사를 통해서 송두율교수의 이른바 북한 노동당 후보위원 의혹에 대해서 아주 철저하게 수사를 펼쳤지만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으로서 구체적인 활동이나 소위 이야기 하는 `간첩활동`을 한것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밝혀낸 것이 있다면 김일성 주석사망 때 장례위원에 선임됐다는 것만을 제외하곤 밝혀낸 것이 없다.
더욱이 국가정보원은 이미 30여년 전인 1970년대부터 송두율교수가 독일에서 민주화 운동을 할 당시부터 최근에 까지 아주 철저하게 추적했을 것으로 보이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송두율교수의 노동당 후보위원이라는 정황조차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면 국가정보원과 검찰이 송두율교수의 노동당 후보위원이라는 혐의에 너무 집착해 이미 자신의 과거에 대해서 스스로 문제점을 지적하고 한국사회 공동체에 참여하기를 염원하고 있는 송두율교수에 대한 일종의 고문을 가하고 있는 행위나 다름없다고 본다. 꼭 몽둥이로 패고 전기고문을 가하고 잠을 안 재우고 물리적인 폭력을 혐의를 받고 있는 사람에게 가하는 것만을 고문이라고 볼 수 없다.
이제 국정원과 검찰이 수사할 만큼 수사했고 검찰은 또 송두율교수의 학문적 성과물들인 저서까지고 이른바 `이적성` 운운하며 조사하는 등 송두율교수가 자유민주주의 체제하에서 보장 받아야할 학문적 자유의 영역까지 도 침해 당하며 `이적성` 조사를 받는 등 대한민국 국정원과 검찰이 송두율교수에 대해서 냉전 수구세력들이 요구하는 엄혹한 대접을 해줄 만큼 해줬다고 본다. 또한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그리고 동아일보가 송두율교수에 대한 사상 검증의 마녀사냥 식 여론재판을 통해 송두율교수의 인격을 난도질 할 만큼 난도질하고 인격살인도 저질렀다고 본다. 국정원과 검찰 그리고 조 . 중 . 동은 더 이상 송두율교수에 대해서 파헤쳐야 할 그 무엇이 남았다고 보는가?
우리는 재독 사회학자 송두율교수의 수사를 통해서 보여주고 있는 조선일보 . 중앙일보 . 동아일보의 비신사적인 보도태도도 문제를 삼지 않을 수 없다. 방상훈 사주의 조선일보와 홍석현사주의 중앙일보 그리고 김상만 사주의 동아일보는 재독 사회학자 송두율교수에게 의도적으로 교수 라는 호칭을 사용하지 않고 있다. 송두율교수가 독일에서 교수의 지위에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송두율씨로 조 . 중 . 동이 표현하고 있는 것은 조 . 중 . 동이 주장하고 있는 송두율교수의 이른바 과거 친북활동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독자들에게 효과적으로 상징조작하기 위한 것으로 분석이 된다.
조선일보의 경우는 월간조선의 취재2 팀장인 우종창부장 등은 공영방송에 나와서 송두율교수가 정식교수 인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 된다고 주장 하는 등 무책임한 발언을 했다. 그리고 한나라당의 정형근의 의원의 발언을 인용해 송두율교수가 정식 교수의 신분이 아니라는 내용을 대서특필 했었다. 중앙일보나 동아일보도 크게 다를 바 없는 보도태도를 견지했다. 그러나 재미사회학자 송두율씨가 교수신분 이라는 것은 같은 대학에 재직하고 있는 교수들이 송두율교수에 대한 한국사법당국의 인권침해우려가 있는 수사에 문제점을 제기하는 발표문이 소개되는 과정에서 송두율교수의 신분이 명확하게 교수로 밝혀졌다.
물론 교수라는 신분에 있어서 그 명성이 어느 정도 인가의 문제는 별개의 사안이라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 . 중 . 동이 송두율씨 라고 송두율교수의 신분을 의도적으로 폄하하고 왜곡호도하고 있는 것은 사회적 목탁으로서 언론이 지켜야할 가장 기본적인 규칙을 어기는 비신사적인 행위라고 본다. 조 . 중 . 동이 송두율교수를 칭할 때 송두율씨 라고 부르듯이 우리도 지나가는 조선일보 방상훈 사주를 보고 `어이 방상훈씨` 라고 부르면 방상훈 사주나 조선일보임직원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더욱이 조선일보가 어떤 신문인가?
일제시대때 라고 해봐야 지금부터 50여 년전의 일이다. 송교수가 노동당에 입당했던 1970년대와 비교해봐도 시간적으로 그리 크게 차이가 나는 것도 아니다. 그때 방씨 족벌의 조선일보는 조선의 젊은 학생들을 일제의 총알받이로 내몰고 조선의 숫처녀들을 일제의 성노리개로 내몰며 한민족의 독립을 위해 싸우는 독립군들을 살상하도록 조선일보 방응모 사장이 직접 고사포를 구입해 일제에 헌납했다. 그러한 조선일보의 친일 반민족적인 범죄행위로 조선의 젊은 학생들이 수많은 목숨을 잃었고 또 조선 숫처녀들의 소중한 정조를 무참하게 유린하는데 방씨 족벌의 조선일보가 적극 기여했고 조선의 독립을 위해 싸운 독립군들을 살상케했다.
그러한 조선일보는 8 . 15 이후에는 친미반공이면 군사독재도 용인하는 미국에 편승해 한국의 민주화와 언론자유를 유린하는 군사독재정권과 권언 유착을 통해서 한국사회의 가치관 전도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그러한 방씨 세습족벌사주체제의 조선일보는 민족의 정론지도 아니고 사회적 공기로서의 순기능도 하지 못했다. 그러한 조선일보사장 방상훈에 대해서 조선일보가 송두율교수에게 송두율씨 라고 부르듯이 한다면 방상훈 사장이나 방상훈 사주가 아닌 방상훈씨 라고 불러도 된다는 얘기가 되지 않을까? 조선일보가 송두율 교수에세 송두율씨라고 부르듯이 방상훈씨라고 부른 김에 방상훈씨에게 한가지 요구하겠다.
방상훈씨는 조선일보의 논설위원들과 월간조선의 우종창 기자 그리고 한나라당의 정형근 의원을 독일로 연수 보내는 프로그램을 마련해 독일의 대학 교수 제도가 어떻게 형성돼 운영되고 있는지 현지연수를 통해 깨닫고 바른 기사를 작성하고 바른 의정활동을 벌이도록 방상훈씨가 조선일보 논설위원들과 월간조선의 우종창 기자 그리고 한나라당의 정형근 의원을 공개적으로 방상훈 장학생으로 선발해 독일연수를 보내라?
방상훈씨는 조선일보의 세습족벌 오너로서 경영상의 흑자를 보고 있는 것으로 알고있는데 돈은 그런데 쓰는 것이라고 본다. 방상훈씨 어떻게 생각하는가? 조선일보의 사설논조나 월간조선의 기사도 사실에 입각한 정확한 내용으로 돼 있어야 하는데 독일의 교수제도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정형근의원과 우종창 월간조선기자 그리고 조선일보 논설위원들의 무지를 깨우치는데 방상훈씨의 사제를 털어서 활용 해야한다.
방상훈씨의 조선일보와 국정원 검찰등은 송두율씨에게 이른바 `전향`을 촉구하고 있는데 그러한 반문명적이고 야만적인 국가보안법의 실정법적인 국가적 폭력의 유혹으로부터 대한민국의 검찰과 방상훈씨의 조선일보는 이제 벗어나야 한다. 오늘까지 9차례의 소환조사를 통해서 밝힐만큼 밝혔으니까 이제 송두율교수에 대한 모든 족쇄를 풀고 대한민국 사회에 자연스럽게 풀어 놓아야 한다.
송두율교수가 대한민국의 속성을 파악하고 체험한 내면의 양심의 소리와 대한민국사회 에 대한 송교수 나름대로의 통찰을 통해서 형성되는 학문적 접근등을 통해 송교수와 대한민국사회가 불행했던 37년간의 불화에 대한 과거와의 화해를 해야할 만큼 대한민국사회는 열린 시민사회를 지향해 나가고 있다고 본다. 그 정도의 성숙함 정도는 대한민국 사회가 지니고 있다고 본다. 대한민국 정부는 방상훈씨의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동아일보가 시대착오적인 억지주장을 통해 송두율씨 운운하며 벌이는 냉전 수구적인 여론재판에 이제 더 이상 좌고우면 하지 말고 이제 그만 송두율교수에게 처벌 없는 자유를 주어야한다.
송두율교수 가족들은 지난 37년간 대한민국사회로부터 강제격리 당하는 징벌?을 이미 받았다. 송두율교수에 대한 처벌은 이미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본다. 지금은 국제적인 탈냉전은 물론 한반도에서도 냉전해체의 뜨거운 열기가 철책을 제거하고 휴전선을 가로질러 육로가 열리고 하늘길이 열리고 바닷길이 열리는 시대에 더 이상 송두율교수를 엄격하게 냉전적 잣대로 처벌하는 것은 국제사회의 웃음거리 밖에는 안 된다고 본다.
[사설] `송두율 반성` 사정할 일 아니다(조선일보 2003년 10월21일자)
검찰이 송두율씨에게 전향을 애걸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은 스스로의 권위를 망가뜨릴 뿐 아니라 국민들의 마음을 매우 언짢게 만드는 행태다.
송씨가 자신의 친북활동에 대해 철저한 반성을 하고 새로운 성찰의 삶을 살든 아니면 여전히 모호한 경계인 논리로 자신의 기존영역을 고수하든 그건 어디까지나 그의 선택일 뿐이다. 검찰은 송씨의 선택을 참조해 그에 대한 사법처리의 방향을 결정하면 그만이다.
송씨가 과거를 진심으로 반성하고 그에 걸맞은 행동을 보인다면 관련 규정과 관례에 따라 기소유예 처분을 고려할 수도 있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그의 범죄혐의 등에 대해 사법부의 최종 심판을 구하는 것이 마땅하다.
지금까지 송씨가 보인 태도는 반성이나 전향과는 거리가 멀다. 송씨는 지난 2일 기자회견에서 “무엇을 사죄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고, 14일에는 여전히 “경계인으로서의 삶을 살겠다”고 밝혔다.
송씨는 또 자신이 북한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으로서 활동한 적이 없다고 주장해 국정원이나 검찰의 수사내용을 사실상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의 변호사는 검찰이 송씨의 전향을 요구하고 있는 데 대해 “국론분열을 가져오고 있다”는 당치 않은 주장까지 폈다.
그런데도 검찰의 자세는 지금까지 8차례의 소환조사에서 송씨에게 ‘선처를 하려면 이걸로는 부족하니 좀더 반성해 보라’는 식으로 계속 사정하고 있는 걸로 비칠 정도다.
노무현 대통령은 13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송두율 포용론’을 주장했다. 강금실 법무장관과 이창동 문화관광부 장관의 송두율 두둔 발언도 몇 차례 있었다. 검찰의 지금 자세가 정권 내부의 이런 흐름 때문이라면 국기(國基)를 수호해야 할 검찰의 직무를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검찰의 본분은 이 눈치 저 눈치 볼 것 없이 엄격한 법적용 원칙을 지키는 것이다. 입력 : 2003.10.20 17:39 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