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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노무현을 믿는다 (펌)

내가 고등학생일 때 나는 철저한 신한국당 지지자였다.





하지만, 수능 후 읽은 몇 권의 근현대사 책과, 대학교 저학년 시절 접한 몇 권의 책, 몇 편의 글을 통해 나는 정치의식에 있어 큰 변화를 겪었다.





상기의 경험은 근현대사에 있어 지독하리만치 무식했던 나를 발견하게 해주었다. 언제나 나의 지지색이었던 푸른색의 정당이 펼쳐온 위선과, 음모, 기만의 정치를 알게 해주었고, 경멸하게 만들었다.





푸른색의 정치는, 초교 2년의 내 반장직 수행보다 더 형편없는 것이었다고 자부하며, 그 결과로, 나를 DJ에게 주목하게 만들었다. 그는 기존의 그 위선적 여권에 대응해 온 유일한 용기의 지도자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DJ가 정권을 잡게 되었고, 얼마 후, 난 DJ를 따르는 사람들중에 기본적으로 그들이 그토록 경멸하고, 성토해마지 않던 한나라당 사람들과 본질적으로 동일한 인들이 많음을 알게되었다.





그들은 여권이였던 한나라당이 싫어 정치적, 윤리적, 도덕적 비판을 가하였지만, 그것은 오로지 정권을 획득하지 못해 손해를 보고 있다는 지역주의 망상과 정권획득을 위한 정치적 야심 아래서 이루어진 비판과 저항이다.





그들은 정권을 잡은 후, 그들이 그토록 비판해왔던 한나라당의 비민주적, 권위주의적, 특권적 정치행태를 그대로 쫓았다. 그들의 과거 비판은 정권을 잡기 위한 전술에 불과했고, 정권 획득후 그들의 정치 패러다임은 여전히 전근대적 수준에 머물렀다.





그렇게, 더 이상 상식적인, 교과서적인 정치를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정치에 대해 완전한 무관심을 결심하려던 차에 노무현이라는 사람이 나타났다. 정치적 야욕을 위해 당과 동료를 모두 버리는 한국의 매정한 정치판에서, 바보 같이 양심과 원칙과 소신에 따라 모든 불이익을 감수하며 걸어온 그를 소개한 유시민의 글을 통해서였다.





나는 그의 팬이 되기로했다. 대한민국의 이념 스펙트럼이 너무나 편향되어 있기에 말 같지 않은 이야기가 흘러나오지만, 노무현은 중도우파정도나 될 사람이다. 블레어나 슈뢰더, 라파랭 같은 사람보다 오히려 더 우파적이다. 부끄럽지만 나의 정치적 성향이란 것을 표현해보라면 바로 노무현의 그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가 처해있는 지나친 이념적 편향에 의해 노무현은 좌파로 규정된다. 나는 그가 중도우파로 평가받는 꼭 그 시간까지만 정치에 관심을 가질 생각이다.





그리고, 통합신당을 통해 그 꿈이 조금은 가까워짐을 느낀다. 신당분리를 통해 민주당이라는 이름 아래 있던, 반한나라풍의 정치소인배들이 내가 지지하는 개혁파와 구분된 것이다. 지금 민주당에 남은 자들은 이 나라, 이 사회의 정치에 자유와 평등, 인권과 민주를 가져다줄 수 있는 자들이 아니다. 어제의 적이던 한나라당과 금새 한 패거리가 되는 것에서 볼 수 있듯이 그들의 본질은 한나라와 동일한 곳에 있다. 그네들은 마치 국가보안법과 한총련의 관계처럼 서로 비난하고, 비판하지만, 본질적으로 한쪽이 없이는 존재할 수 없으며, 서로에 대한 견제를 통해서 공존할 수 있는 독특한 유대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기존의 이 두 당 모두, 권력획득이 최대관심사일 뿐, 민주주의 이상 실현과 중산층 이하 대다수 국민의 행복구현에는 관심이 없다.





노무현은 자신의 정치인생이 걸린 재신임을 스스로 결정했다. 8개월 남짓한 임기 동안 그가 겪은 시련과, 맘 고생을 짐작케한다.


기득권으로 똘똘뭉친 채, 기존의 헤게모니를 내놓지 않으려는 그들의 저항 앞에 참 많이도 무기력해지고 힘들어 했었다.





많은 국민의 지지를 받고 당선된 대통령에게,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야당총수를 데리고 정치를 해야했으며, 언론통제와 언론탄압이 심하다는 기사로 대통령을 음해하는 언론과 싸워왔다.


언론탄압이 심한 사회의 신문에, 언론탄압이 심하다고 표현될 수 있다는 건 중학생이면 아는 형식모순이다.





오늘도 한나라당은 그들을 향한 국민의 소리로부터 완전히 귀를 막은 채, 역사속의 유물이 된 매카시즘과 음모론으로 시골의 정치의식 없는 국민을 공포에 떨게하며 자신의 지지층으로 포섭하고, 변화에 저항한다. 이런 그들을 데리고 개혁을 추진해야 하는 노무현은 안타깝게도 그의 정치적 신념 때문에 도덕성과 절차적 정당성까지 획득해야만 한다. 그러나 그의 이런 힘겨운 노력은 한나라당에 의해 왜곡된 이 정치판 속에서, 늘 현실적 패배로 결론난다.





노무현이 대통령이 된 후 세상이 참 혼란스럽다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민주주의를 원하냐고? 지속가능한 성장을 원하냐고?


민주화가 무엇인가? 내가 아는 민주화는 다원주의를 포함한다. 사회의 다양한 구성원들이 자신의 이익을 주장하고, 타인들과 합리적으로 조정하며 타협하는 과정을 포함한다. 이 과정에는 필연적으로 집단간 개인간의 작은 마찰과 혼란이 야기된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구호만으로 함께했을 뿐, 실재적으로 전혀 구현된적이 없었기에, 우리 국민들에게 보다 민주화된 사회로 나가기 위해 필수불가결한 오늘의 작은 혼란이 불안과 염려로 다가올 수 있다.


하지만, 다시 한 번 곰곰히 생각해보아야 한다.





전교조의 데모, 운송사업자들의 분규...


노무현이 이전의 정권이 그러했던 것처럼 전,의경을 투입해 폭력으로 진압시켰다면, 이들과 이해관계 없는 일반국민들에겐 사회적 안정감을 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우리의 민주주의는 다시금 역사적 퇴보를 하게된다.





현재의 우리에게 운송사업자들의 분규가 어떻게 인식되었는가? 그들의 파업은 과정상의 정당성을 확보하지 못한 채 국민들에게 우려를 낳게 했고, 결국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해 스스로 복귀라는 길로 끝났다.





바로 이것이 민주주의다. 각 집단과 개인의 자유로운 이익추구는 보장되지만, 그 과정의 적법성, 합법성은 반드시 지켜져야하고, 그렇지 못할 경우 여론의 지지를 얻지 못해 결국 자발적인 조정과정을 따르게 되는 것... 그러나, 전술했듯 이러한 결론에 이르기까지, 반드시 혼란이 수반된다.





지금의 왜곡된 경제구조를 바로잡지 않고는, 유럽식의 선진경제 체제로 나갈 수 없다는 것을 다들 인식하면서, 기존 경제체제의 변화에 따른 혼란과 불안을 왜 감수하려 들지 않는가?





나는 우리가 이라크에 공병부대를 파견한 것 때문에 미국으로부터 얻어낸 실제적 이익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런데도, TV에서는 어떤 아줌마가 미국에 알아서 복종 않으면 큰 재앙이 있고, 알아서 복종하면 큰 떡이 있을거란다. 참 비굴하기 짝이 없다.


내 짧은 인생경험에 겁 많이 주는 놈 치고 주먹 센 놈 없다. 이제는 제발 우리 스스로 미리 결과를, 결과에 따른 피해를 상상하며 염려하지 말았으면 한다. 우리 좀 당당해지고, 자주적이야한다.





한나라당은 기본적으로 권위주의 정당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국민위에 있다고 생각하고, 인간들 사이에 존.비가 존재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그들은 강한 미국에는 빌붙으려 하면서, 약한 이라크의 눈물은 외면하려 한다.


그러나, 불운하게 미국은 자기 신하의 밥그릇까지 챙겨주는 성군이 아니다. 그들의 역사가 그것을 증명한다. 또한, 저항하는 신하에게 공포 외에는 크게 제지할 수단도 가지지 못한 나라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은 사상의 자유가 있는 나라다. 송두율이 노동당 가입사실을 숨긴 것은 명백한 잘못이고 실정법상 위법사항이 있다면 처벌을 받아야한다. 본인 또한 그것을 각오하고 입국한 듯하다. 그러나, 그 이외에 그의 학자적 성과는 인정해야하며, 처벌 받게 될 그의 행적을 가지고, 또다시 구시대의 레드 컴플렉스를 꺼내가며 국민을 호도하고, 국론을 분열시키는 짓은 지나간 망령을 되살리는 역사의 반동이다. 송두율이 간첩이라고 하자. 지금 그가 무슨 저의로 한국에 들어왔는지 의심스럽다는 그들에게 단 한가지 대답은 할 수 있다. 그가 무엇을 의도하고 들어왔건 한나라당이 걱정하는 그런 종류의 활동은 할 수 없을 것이다. 저렇게 언론에서 경계하는 인물에게 어느 바보 같은 국민이 포섭되겠는가?





근래, 우리를 둘러싼 모든 논쟁에서 대통령의 책임이 부각되는 이유는 그가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우리사회의 선진화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버리고 가야할 모든 전근대적 악습과 폐단을 지닌 거대야당의 쪽수에 기댄 강력한 저항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노무현이 버림 받는다면, 대한민국은 정체하게 될 것이다.


경상도에서 태어난 덕분에, '정치하는 놈들, 정치하는 새끼'들 하다가도 기표소에만 들어가면, 혹시 빨갱이들 때문에 전쟁나지 않을까, 전라도 찍었다가 우리 굶어죽지 않을까 걱정하는 저 시골의 순박한 사람들을 안다.





그들을 이용해 먹는 비겁하기 짝이 없는, 정책 없이 여당에 대한 딴지만으로 존재이유를 찾는 한나라당의 데마고기와 작동기제를 안다. 그렇게 순박한 사람들을 이용해 정권을 잡고는 이내 기득권자들의 사익을 위해 정치하는 조직으로 탈바꿈시키는 자들을 안다. 자신이 속는 줄도 모르고, 선거철만 되며 또다른 거짓 이데올로기와 데마고기에 속아나는 저 답답하리만큼 순박한 이들을 안다. 근현대사에 대한 자신의 무지 자체를 자각하지 못할 만큼 순박한 바로 그들 말이다.





진보는 어렵다. 수구는 쉽다.


진보는 윤리적인, 이상적인, 비현실적인 가치를 현실에서 실현해야 하기에 늘 불안을 수반하며, 진보적이 설득은 언제나 뜬구름 같다.


수구는 쉽다. 작금의 문제는 적당히 진보에 대한 불안으로 대체시키고, 현실을 호도할 만한 몇 가지 불안과 공포만 조장하면 대중의 지지를 얻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사는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지, 결코 정체하거나 퇴보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인류 역사에 대한 직무유기며, 범죄다.





나는 적어도 내 아들에게 교과서에 있는 가치들이 실현되는 사회, 우리가 배운 대로 돌아가는 사회를 선물하고 싶다.





노무현은 진보가 아니다. 그는 중도보수다. 그가 중도보수로 인정 받는 꼭 그 정도의 사회가 될 때까지, 그의 노력이 우리 사회를 역사발전의 과정으로 이끌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나는 기본적으로 정치가 싫다. 몽테뉴의 말처럼 정치는 무릇 인간의 선함보다는 악함에서 기인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치가 꼭 필요한 것이라면 그리고, 하나의 선택을 해야한다면, 한나라, 민주, 자민련과 같은 최악보다는 노무현과 통합신당이라는 차악을 선택하고 싶다. 그것이 나에게는 가장 현실적이고,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기 때문이다.





반복되는 낙담은 사람을 지치게 한다. 지친 사람은 앞으로 나갈 의지를 상실한다. 대통령 재신임... 참 나를 지치게한다.





측근이 10억을 수수한 사건에 대해, 국민에게 재신임을 묻는 대통령 앞에서, 100억을 수수한 자기당 의원에 대해, 정치적 탄압이라며 검찰출두를 거부하는 그들의 후안무치와 인면수심이 존경스럽다.





그래도, 나는 믿는다. 반드시 오늘의 사회적 혼란을, 우리 사회 성숙을 위한 과도기적 현상으로 평가할 날이 멀지 않았음을...





이것이 내가 우리 사회에 대해 희망을 버리지 않는 이유이고, 노무현의 재신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 이유이고, 술자리의 체념과 욕설이 아닌 글로서 내 생각을 남기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