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사설] 李장관, 宋씨가 왜 논란인지도 모르나 에 대해서
(홍재희) ======== 냉전 수구적인 방씨 세습족벌사주체제의 조선일보 사설은 송두율교수와 관련된 한국사회의 냉전적 마녀사냥 놀음에 대해서 이창동 문화관광부장관이 “왜 이렇게 논란이 되는지 모르겠다”라고 언급한 것에 대해 송두율 교수를 두둔하려는 뜻이 담겨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대한민국이 명실상부한 자유민주주의 국가 체제 라고 한다면 방상훈 족벌세습사주체제의 냉전 수구적인 조선일보와 같이 아직 수사가 진행중인 송두율교수를 단정적으로 대역죄인 취급하는 파렴치한 여론재판에 대해서는 성숙한 시민사회의 이름으로 비판하고 견제하면서 송두율교수와 관련된 조선일보의 냉전 수구적인 시대착오적 접근방법과 다른 전향적인 관점으로 바라보고 있는 이창동 문화관광부장관과 강금실 법무장관의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접근방법에 대한 한국사회의 이성적 호응은 당연한 것이라고 본다.
조선사설은 냉전 수구적인 여론재판을 통한 마녀사냥 식의 조선일보와 같은 시대착오적인 바람몰이를 통해 색깔론에 순치된 여론 즉 남북이 적대적 공존의 20세기식 사고에 찌든 여론을 `한국의 건전한 상식인 ` 운운하며 당연하게 정당화 하고 있다. 반면에 남북정상회담 이후에 대립과 갈등의 첨예한 대립구도에서 공존공영의 화해기류로 변화하고 있는 남북관계에 맞추어 한반도 문제 남북관계 그리고 오랜 `경계인`의 생활 끝에 한국에 들어온 송두율교수에 대한 문제 등에 대해서 지극히 현실적으로 접근해 합리적으로 해결하려는 이창동 문화관광부장관과 강금실 법무장관을 냉전 수구적인 조선일보의 색깔론에 입각한 반공 반북 반민족 이라는 1970년대 식의 냉전적 감상주의에 젖은 상식을 기준으로 해서 마치 한국 사회의 이방인 취급하는 넌센스를 연출하고 있다. 조선일보의 현실시계는 지금 냉전의 과거를 향해 돌아가고 있다.
송두율교수는 그동안 한반도 분단체제의 현실을 실사 구시적으로 접근하기 위해 북한쪽에 편향됐던 현실적인 문제에 대해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었던 한국인들과 한국사회에 대해서 공개사죄 했다. 한국사회는 그러한 송두율교수를 받아들여야한다. 우리는 이 시점에서 송두율교수가 북한쪽에 가까웠던 그간의 정황만을 주장할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정부와 한국사회가 송두율교수에게 어떻게 대해 줬는지에 대해서도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아야한다. 그동안 국제적인 냉전과 한반도 냉전이 중첩된 가운데 자유민주주의체제를 파괴했던 대한민국의 박정희 .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은 송두율교수를 철저하게 배척했다. 그리고 한국사회도 마찬가지로 송두율교수를 37년 동안이나 금기의 인물로 낙인찍어놓고 대한민국 땅으로부터 엄혹하고 철저하게 격리시켰다.
송두율교수 부부와 두아들 등 네명의 송두율교수가족이 대한민국 사회로부터 배척 당하고 모국에 들어갈수 없는 강제적 격리를 당한 세월을 합친 다면 아마도 100년이 넘을 것이다. 아무리 흉악범이라도 죄의 책임은 본인에게만 묻게 돼 있는 것이 상식이다. 그 가족들에게는 자유가 주어진다. 하지만 송두율교수 가족들은 지난 37 년동안 송교수와 마찬가지로 한국으로부터 철저하게 격리됐다. 이것은 한마디로 대한민국정부와 국민들 그리고 한국사회가 송두율교수가족들에게 내린 일종의 `천형` 이었다. 송두율교수가 수사결과 북한을 위해 한국을 해롭게 하는 중대한 간첩행위를 했다고 치자. 그렇다해도 송두율교수 가족이 한국으로부터 100년 동안 격리수용" 된 그 자체로 지나온 고통의 세월 그 자체로 이미 송교수가 한 행동에 대한 책임은 이미 충분하게 그 대가를 치뤘 다고 본다.
조선사설은 이창동장관의 발언에 대해서 " 이 장관이 말하는 ‘거리’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송두율 사건을 분단시대의 비극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뜻인 모양이다. 그렇다면 이 장관은 분단의 시대를 살며 그 비극과 고통을 함께 나누고 견뎌온 4400만 국민들에게 송두율 식으로 살아보라고 권고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 라고 주장하고 있다. 지금은 분단의 시대에서 민족의 화해와 교류협력을 통한 공존공영으로 민족통합을 지향하는 전환기라고 본다. 이러한 전환기에 송두율교수가 대한민국 사법당국의 사법처리방침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한국에 들어와 수사당국의 수사에 적극협조하고 자신의 과거에 대해서 한국인들이 지니고 있는 정서적 거리감등을 이해하고 공개 사과하는 이른바` 전향` 의사를 밝히고 있는 현실을 조선일보 사설은 직시할 필요가 있다.
조선일보는 며칠전 보도에서 아직 수사가 진행중인 송교수에 대해서 북한노동당 당원.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 이라고 단정적으로 표현했는데 조선사설의 주장이 사실로 밝혀진다해도 한국의 공안당국이 흔히 얘기하고 있는 이른바`전향` 의사를 밝히고 한국의 실정법에 따라 처벌받을 것 까지도 각오하고 있다는 송두율교수에 대해서 방씨 족벌의 조선일보가 계속해서 배척하고 색깔론을 확대 재생산시키고 있는 것은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함이 절대로 아니다.
조선일보의 의도는 한나라당과 함께 색깔론을 확산시켜 한나라당의 부정선거자금사용에 대한 천인이 공로할 부패행위를 은폐시키고 내년총선을 개혁과 수구의 구도가 아닌 좌우의 색깔론과 이념대립구도로 몰고 가기 위해 냉전수구적인 조선일보와 수기득권의 상징인 한나라당이 송두율교수 문제를 필요이상으로 확대 재생산시키고 있다고 보면 틀림없다. 대한민국은 이제 송두율교수 한명 받아 들였다고 해서 국기가 흔들릴 정도로 취약한 국가가 아니다. 자유민주주의의 본질은 폭력이 아닌 평화적인 방법으로 주장하고 있는 개인의 이념과 사상의 자유를 보장해 주는 곳이다.
그런 의미에서 자유민주주의체제를 교과서적으로 접근한다면 송두율교수가 비폭력적으로 자신의 이념과 사상을 유지한 채 대한민국사회에 스스로 들어왔다면 건강한 자유민주주의체제를 신봉하는 대한민국이라면 당연히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야 자유민주주주의 정신과 실체에 부합되는 것이라고 본다. 조선일보 안 그런가? 더욱이 송두율교수는 조선일보와 같은 냉전적 감상주의에 젖어 아직도 시대착오적 색깔론에 순치된 대한민국의 자칭 자유민주주의자들이 느끼는 거부감에 대해서 까지 세세하게 신경 쓰고 과거 북한에 일방적으로 편향돼 있었던 자신의 행위에 대해서 공개사죄까지 했음에도 거부하고 배척하고 있는 조선일보의 태도는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이름으로 비판받아 마땅하다. 조선일보가 그러한 송두율교수를 비판할 자격이나 정당성이 있는가?
일제 식민지 시대에 조선의 젊은 학생들과 숫처녀들을 일제의 총알받이와 성노리개로 내모는데 적극적인 역할을 해서 수많은 젊은이들의 목숨을 앗아가게 했고 조선의 숫처녀들의 소중한 정조를 유린한 방상훈 조선일보 족벌세습사주체제의 조선일보는 일제가 패망하자 친일반민족행위에 대해서 사과한마디 없었다. 부연한다면 친일 반민족행위에 대한 `전향`을 하지 않고 있다. 어디 그뿐인가? 일제가 패망하자 친미반공이면 군사독재도 용인해주던 미국에 유착해서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헌정질서를 총칼로 유린하고 민주주의와 언론자유의 목을 비튼 박정희 . 전두환 군사독재정권과 권언유착을 통해 자유민주주의 체제와 언론자유의 숨통을 조였던 조선일보가 아닌가?
그러한 조선일보의 친일 반민족 반민주 반 통일의 냉전 수구적인 자신의 범죄행위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공개사과는 커녕 자유민주주의를 파괴했던 반민주적인 조선일보의 부끄러운 과거로부터 공식적으로 아직도 이른바 `전향` 은 하지 않고 있다. 그러한 조선일보가 탈냉전시대에 한반도의 품에 안기기 위해 37년 만에 돌아온 송두율교수를 마녀사냥 하듯이 여론재판의 몽둥이로 난타하고 있는 것은 문명국가를 지향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비극이다. 조선일보는 유신독재와 전두환 신군부에 항거한 송두율교수에게 오히려 무릎꿇고 백배 사죄해야한다.
송두율교수는 방상훈 족벌세습사주체제의 조선일보와 같이 민족을 배신하고 친일 반민족적인 범죄행위를 저지른 것은 없지 않은가? 방씨 세습족벌사주체제의 조선일보가 30여 년전의 송두율교수의 노동당 가입의혹에 대해서 비판을 하면서 50여년 전의 조선일보가 친일 반민족적인 범죄행위를 저지른것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 이중성을 보여주고 있다. 조선일보의 50여년전의 과거는 면죄부를 주고 송두율교수의 30여년전의 과거는 단죄의 대상이 된다면 대한민국의 정체성은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이번 송두율교수사건을 계기로 해서 조선일보의 반민족적인 범죄행위에 대한 처벌을 대한민국사회는 적극 추진해 방상훈 족벌 사주체제에 대한 처벌을 한다. 조선일보의 50여년전 행위나 송두율교수의 37년전 행위는 비슷한 동시대라고 볼 수 있는데 조선일보는 면죄부를 주고 송교수는 엄벌에 처한다면 이러한 물구나무선 한국의 역사관을 보고있는 어린이들이게 좋은 교육이 절대로 될 수 없다.
대한민국 사회는 이제부터라도 늦었다고 체념하지 말고 송교수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철저함을 조선일보의 반민족적인 범죄행위에 대해서도 엄격하게 적용해 처벌해 나가면서 물구나무선 가치관을 바로 잡기위해 조선일보에 대한 범죄행위를 적극적으로 접근해 엄벌에 처해야한다. 조선일보와 송두율교수를 비교해서 접근해 보자 . 조선일보는 송두율교수와 한민족에게 무릎꿇고 백배사죄해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은 " 이 장관의 분단 역사와 현실에 대한 인식이 궁금한 것은 그가 현 정부의 ‘주류 코드’로 간주되는 데다 그가 이끌어 온 문화혁명식 문화계 재편 인사(人事)의 배경에도 그런 인식이 반영돼 있는 듯하기 때문이다. " 라고 주장하며 엉뚱하게 인사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말이야 바른말이지 방상훈 사장이 소유와 경영과 편집을 독점하고 있는 조선일보의 폐쇄적인 인사 스타일보다야 이창동장관의 인사스타일이 훨씬 개방적이라고 본다. 조선일보에서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이공계 출신 임직원들이 출세할수 있는 인사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는가? 방상훈 사장 자신있으면 한번 대답해 보라? 조선사설은 " 문화혁명식 문화계 재편 인사(人事)의 배경" 운운하고 있는데 문화혁명의 형태나 배경 등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나 하고서 `문화혁명` 운운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문화혁명은 중국식 사회주의 일당독재체제인 모택동 정권때의 일이다. 대한민국은 다당제와 열린 시민사회 그리고 3권 분립에 다가 기형적인 조선일보의 언론권력이 더해져서 제 4의 권부를 형성하며 소수파정권인 현정권을 견제하고 있는데 " 문화혁명식 문화계 재편 인사(人事)" 운운하는 것은 한마디로 넌센스이다. 방상훈 족벌세습사주체제의 조선일보 안 그런가?
[사설] 李장관, 宋씨가 왜 논란인지도 모르나 (조선일보 10월10일자)
이창동 문화관광부장관이 송두율 사건에 대해 “왜 이렇게 논란이 되는지 모르겠다”고 말한 데에는 송씨를 두둔하려는 뜻이 알게 모르게 담겨 있을 것이다. 강금실 법무장관의 “그의 입국은 결과적으로 우리 체제를 선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도 같은 뜻으로 읽힌다.
현 정부 핵심에서는 일찌감치 송두율 문제를 구렁이 담 넘어가듯 처리하려는 움직임이 있어 왔고, 두 장관의 발언은 그런 기류를 거듭 확인한 것이다.
이런 측면과는 별개로, 특히 이 장관의 발언 속에는 분단시대 역사와 현실에 대한 이 장관 자신의 인식이 배어 있는 것 아닌가 하는 느낌을 준다. 송두율 사건이 왜 충격적이고 논란이 되는지는 한국의 건전한 상식인에게는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그걸 코드만은 확실히 맞다는 이 장관만 모른다고 한다면 국민은 정말 이 정권의 코드는 무엇인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이 장관은 언론이 송두율 사건을 지나치게 크게 많이 보도하고 있다면서 “새로운 사실을 보도할수록 일반인들은 사건의 본질에서 멀어져 뭐가 뭔지 헷갈리게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런 문제는 오히려 거리를 두고 보면 분명한 것 아니냐”고 했다.
이 장관이 말하는 ‘거리’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송두율 사건을 분단시대의 비극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뜻인 모양이다. 그렇다면 이 장관은 분단의 시대를 살며 그 비극과 고통을 함께 나누고 견뎌온 4400만 국민들에게 송두율 식으로 살아보라고 권고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 장관의 분단 역사와 현실에 대한 인식이 궁금한 것은 그가 현 정부의 ‘주류 코드’로 간주되는 데다 그가 이끌어 온 문화혁명식 문화계 재편 인사(人事)의 배경에도 그런 인식이 반영돼 있는 듯하기 때문이다. 입력 : 2003.10.09 18:28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