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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리 아줌마 나 좀 봅시다(펌글)

누나가 취직을 했다. 예전에 다녔던 문구류를 취급하는 회사에 재취업을 한 형식이라는데 자세한 내막은 모르겠다. 대학 갓 졸업한 빠릿빠릿한 젊은이들도 취업이 안되는 판에 마흔 고개를 넘은 초로의 아줌마가 직장을 잡았으니 일단은 축하할 일이다.





누나의 재취업에 대해 어머니는 못내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조카를 돌봐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2001년 연초에 태어난 아이는 완전히 말문이 트여서 주변 돌아가는 상황을 대충 파악하는 것 같다. 낮에는 엄마 대신 할머니와 놀아야 한다는 것도 눈치챈 듯 하다. 처음 며칠은 엄마 어디 갔느냐고 칭얼대더니 이제는 적응이 되어 할머니 할아버지 손잡고 놀이터에서 그네 타기에 여념이 없다.





가장 혼자 벌어서는 먹고살기 힘든 세상이다. 온 가족이 총력전에 나서야 중간 정도의 생활수준이나마 유지할 수 있다. 맞벌이 부부가 직면하는 최대의 애로는 육아문제라고 한다. 공보육 체계가 절대적으로 미비한 우리나라 현실에서 그 하중의 대부분은 애꿎은 친정어머니들에게 돌아간다. 친손주와 외손주 바꿔 사는 사회적 풍속도가 우리집에도 고스란히 전이된 것이다.





50대 후반을 아기 기저귀 갈며 보냈던 어머니는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이르러 10년 터울로 태어난 누나의 둘째 아들을 하루종일 봐주게 되었다. 나도 이따금씩 거들곤 하는데 아이에게 꿀꿀돼지맘마라며 100원 짜리 동전을 매일매일 쥐어주는 게 고작이다.





작은조카가 첫돌을 넘기자 간간이 재취업 기회를 모색하던 누나가 본격적으로 팔을 걷어붙이고 돈벌이에 나서겠다고 작정한 시점은 큰조카가 초등학교 6학년이 된 금년 봄이지 않았을까 조심스레 짐작해본다. 그놈의 8학군병이 전염된 것이다. 누나는 강남으로 이사를 가야겠다고 결심하고 착착 준비를 진행했다고 한다. 우선은 살집을 마련해야 했다. 현재 살고 있는 아파트를 전세 주고 그보다 절반 정도의 평수에 지나지 않는 강남 아파트에서 전세를 살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집만 구하면 뭐하나, 아이를 학원에도 보내야지. 그쪽 동네 학원비가 장난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이것이 결정적인 재취업의 계기로 작용하였다.





10년 가까이 거의 붙어살다시피 했던 누나가 이사를 가겠다고 선언하자 어머니는 무척이나 심란해했다. 어머니가 키운 것과 진배없는 큰조카도 서운한 탓인지 토요일이면 어김없이 제 집 놔두고 할머니 옆에서 잔다. 내가 강구한 대책이라고는 생소한 환경으로 옮겨진 아이가 전학생이라는 까닭으로 강남 토박이 아이들에게 왕따나 당하지 않기를 기도하는 것뿐이다. 명색이 삼촌임에도 답답하기만 하다.





낯모르는 이들이 동일한 결정을 내렸다면 나는 거리낌없이 성토하고 규탄했을 게다. 막상 직접 당사자 아닌 당사자가 되다 보니 머뭇거려진다. 누나나 매형이나 고졸학력으로 사회생활을 하면서 많은 설움을 겪었다고 한다. 누나의 경우에는 사무실에서 거의 유일한 고졸이었다고 한다. 회사의 창업멤버였고, 정치로 치자면 사내에서 권노갑이나 한화갑과 유사한 무관의 실세였으므로 노골적으로 무시는 당하지 않았겠지만, 영업을 다니고 거래처를 만나면서 캠퍼스의 낭만과 추억을 늘어놓는 이들 앞에서 알게 모르게 주눅이 들지 않았을까. 내 아이에게만은 학력차별의 열패감과 좌절감을 겪지 않도록 하겠다는 열의와 결의가 점점 강해졌으리라.





북핵 문제에 이라크 파병에 송두율 사건 등이 연이어 밀려오는 엄중한 시국에 웬 시시껄렁한 신변잡기냐고 핀잔을 하시는 분이 있을 줄로 안다. 나는 올바른 정치의 근본은 백성의 살림살이가 편안해지도록 정성껏 보살피는 위정자의 도(道)에 있다고 믿는다. 이라크든, 북한이든, 송두율이든, 분당사태든 결국은 그것이 국민의 실생활에 얼마나 영향을 주느냐에 따라, 그리고 그 영향이 긍정적이냐 부정적이냐에 의해 해결의 방향과 윤곽이 잡히게 되어 있는 것이다.





우리는 너무나 뒤틀린 것들에 너무나 익숙한 나머지 너무나 안이하게 대처해왔다. 가장 혼자서도 성실히 일하면 그럭저럭 안정된 생활이 보장되어야 한다. 우리네 실상이 과연 그러한가? 고아와 결손가정과 같은 불우한 처지에 빠지지 않은 이상, 아이는 친부모 손에서 자라야 마땅하다. 사회교과서에는 근대화와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대가족제도에서 핵가족제도로 가정형태가 변모되었다고 기술되어 있다. 그렇다면 환갑을 남긴 할머니들의 전적인 희생으로 유지되는 가족형태는 뭐라고 해야 하나. 인류학이나 가정학을 전공하신 분들의 고견을 바란다.





기혼여성의 재취업은 자기계발과 국가경제의 활성화, 그리고 가정경제의 안정을 위해 적극 장려되어야 한다. 하지만 천정부지로 치솟는 사교육비를 조달하고, 좋은 학교가 있는 동네에 거주지를 마련하는데 소요되는 비용을 마련하고자 재취업을 한다는 취업괴담이 대한민국 말고 세계 어디에 또 있을까.





강남지역 초등학교에서는 6학년 학생의 숫자가 1학년생의 보통 두 배를 상회한다는 통계를 접하고 씁쓸함을 금하지 못했다. 그 6학년 머릿수에 내 조카가 더해진다는 사실에 씁쓸함 또한 두 배가 된다.





힐러리 로댐 클린턴은 "아이 하나를 키우려면 마을 전체가 필요하다"는 책을 저술한 바 있다. 남의 나라 제 멋대로 침략해 작살내는 양키들과 비교하여 대한민국 국민이 가질 수 있는 긍지와 자부심은 무엇일까? 나는 주저 없이 세종대왕이 집현전 학사들과 더불어 창제한 한글과, 여전히 제 기능을 발휘하고 있는 전통적 가족제도를 꼽고 싶다. 영어공용화를 주장하는 파렴치하고 얼빠진 무리들의 망발에 한글은 크나큰 상처를 입었다. 그렇다면 가족은? 유감스럽지만 건강하고 화목한 가족의 유지를 돕는 국가적 지원체계는 미국이 우리보다 더 발달해 있는 것 같다. 대한민국의 자랑거리이자 미풍양속의 근간인 한국의 가족제도는 젊어 고생해 허리가 휘어진 노년 여성들-친할머니이든 외할머니이든-의 노동력과 생명에너지에 대한 무자비한 약탈과 무제한한 착취로 지탱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아이 하나를 키우려면 마을 전체가 필요하다는데 이 나라는 아이 하나를 키우는데 마을 전체는커녕 옆집조차도 코빼기를 내비치지 않는다. 마을 전체가 필요한 중대한 사명을 소수의 식구로 이루어진 일개 가정이 담당하려 하니 가족이 통째로 거덜이 나는 것이다.





가슴 아픈 사연을 소개하겠다. 손숙과 김승현이 '여성시대'를 진행하던 무렵이었다. 버스를 타고 가다 그 방송을 들었던 성싶다.





젊은 가장이 영농후계자로 선정된 농촌가정이 있었다. 아들 내외가 들일을 하러 가면 노부모가 손자를 봐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아이가 호기심에 구형탈곡기에 손을 집어넣었다가 손가락 두 개를 잘렸다고 한다. 그 이후 늙은 부모는 미안한 마음에 말을 잃었다고 한다. 그것이 마음에 걸렸던 아들은 손가락을 잃고도 의젓하게 자라는 아이의 모습을 대견해 하며 외려 노부모를 위로하는 내용의 편지를 방송국에 보냈다. 사연을 읽던 손숙씨의 목소리가 중간에 메였던 것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한 가족의 작지 않은 비극에도 수많은 사회적 현안이 연관되어 있다. 농촌경제의 피폐, 잘린 손가락을 급히 봉합하지 못한 취약한 보건시스템, 기력이 달리는 노부모에게 보육을 전적으로 의존하게 하는 공보육 체제의 부재 등 열거하기가 버거울 지경이다.





우리는 정치를 논할 때 지나치게 무거운 주제에 집착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니 정치가 국민들에게서 멀어지고 어려워질 수밖에 있겠는가. 민생으로부터 동떨어진 낯설고 소외된 정치는 조갑제 등속의 수구꼴통들과 황태연 따위의 지역주의 장사치들의 독무대로 전락하고 만다.





내가 오늘 힐러리 아줌마를 과도하게 띄워주는 것 같다. 그래도 이 아줌마가 남긴 명언을 인용해보겠다. 혹여 아나. 나중에 첼시와 소개팅이라도 한번 시켜줄지. 아니면 말고!





애들 키우며 먹고사느라 지친 국민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고 아픈 데를 보듬어주는 생활정치의 실현은 "정치의 여성화가 아니라 정치의 인간화"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