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석사 가는 길 사과나무밭을 기억하는지.
경북 영주시 풍기읍 동부리 그곳에서 사과농사
를 짓는 화가 박형진의 개인전이 오늘까지
열리고 있어 가보았다. 원색의 경쾌함으로
물든 그녀의 그림엔, 자연과 동심을 닮은 순수한
붓질로 가득 매워져 있었다.
8천여평 과수원에서 사과농사를 지으며
그림을 그리는 그녀의 얼굴은 그리 밝아보이지
않았다. 태풍 매미로 사과가 절반이나 떨어져
나가 물감 살 돈도 걱정스럽다며 쓸쓸한 표정을
짓는다. 흔히 전원에서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의
낭만적 삶과는 한창 거리가 먼, 먹거리를 걱정하며
그림을 그리는 소박하고도 가난한 화가, 그리고
어린 아들을 기르는 생활인, 거친 손마디의 농부의
모습이 그의 얼굴에 중첩되어 있다.
화가 뿐이랴. 부산한 세상에 사는 우리들은
한번쯤 전원에 묻혀 소일하는 일을 꿈꾼다.
일본 총리였던 호소카와도 60세가 되면 맑은
날에는 밭을 갈고 비가 오면 책을 읽는
'청경우독'의 삶을 꿈꾸었고, 결국 정계를
떠난 뒤 외진 별장에서 밭을 갈고 책을 보고
뒤늦게 배운 도예에 열중한다고 한다.
먹고 사는 일이 걱정스럽지 않은 사람들이야
노년의 삶을 이처럼 유유자적할 수 있겠지만,
먹거리와 아이들 교육을 걱정해야할 젊은 화가의
전원 생활은, 우리가 흔히 상상하듯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님을 절감한다.
'사과'그림을 통해 현실과의 진실한 소통을
꿈꾸는 그의 작품은, 그래서 더욱 절절하게 다가
온다. 생존과 예술의 경계, 시대가 달라져도
결코 화해할 수 없는 그 간극 앞에서, 그는
너무도 해맑은 표정이어서 잠시 내 삶이
부끄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