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공중파 방송 프로그램의 단골 소재 가운데
하나가 '건강/의료' 부문입니다. 오락과 정보를 적절
하게 가미해 의료 정보를 일반인들에게 제공하는
이런 프로그램들이야말로 현대인들의 건강에 대한
관심을 적절하게 반영한 결과라고 할 수 있겠죠.
덕분에 의대 근처에도 안가본 보통 사람들도 왠만
한 동네 의사 못지 않은 의료 상식으로 무장한
경우를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강에 대한 관심 덕분인지, 아니면 의사를 못믿어서인지
하루종일 병원을 쇼핑하는 사람들도 요즘 적지 않습니다.
작년 의료보험 심사 평가를 하고 있는 어떤 기관 발표
에 따르면 같은 병으로 하루에 8번이나 진료를 받은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하루종일 자기 건강에 대한 염려
로 병원을 오가는 이런 사람들의 한가한 일상이
부럽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의료 제도가
어떠길래 이처럼 8번이나 병원을 가게 하는지 그 구조
적 원인이 의문스럽기까지 합니다.
이렇게 병원 쇼핑에 열을 올리는 사람들은 년간 6백만
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매일 돈벌이에 시달리느라 병원
한번 가고 싶어도 시간내기 어려운 이들도 적지 않은 상황
에서 이런 조사 결과는 정말 어이가 없을 정도입니다.
이렇게 병원 쇼핑이 횡행하는 이유는 간단하겠죠. 병원에
갔어도 의사가 진단을 내리지 못한 경우가 가장 기본적인
이유라면, 의사의 진단과 함께 처방을 받았어도 의사 말을
믿지 못한 채 다른 병원을 찾는 경우, 또는 암이나 불치병을
선고받았을 때 한 곳의 진단만으로는 믿지 못해 다른 곳을
찾아가는 경우 등등이 그런 현상을 가능케하는 원인일 수
있겠죠.
그러나, 문제의 본질은 의사와 의료 체계에 대한 불신감에
있습니다. 몇년 전 의료 파업의 여파 뿐 아니라 일반인들이
잘못 알거나 표피적으로 전해들은 어설픈 의료 지식도 이런
불산감을 부추기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병원 쇼핑은 다른 나라에서는 있을 수 없는 현상이라고
들 합니다. 주치의를 정하도록 되어 있는 영국 같은 나라에서는
또 다른 의료기관을 가고 싶어도 주치의가 보내 주어야만
갈 수 있으니 애시당초 병원쇼핑은 불가능합니다.
그보다 훨씬 자유롭게 의료를 사용할 것 같은 미국에서도
같은 질병으로 또 다른 의료기관에서 치료를 받으려면
보험회사에서 정한 규정을 따라야만 합니다.
의사에 대한 불신, 의료 정보의 무분별한 남발,
비정상적인 의료 보험제도 속에서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는 병원 쇼핑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병원 다니는 일로 매일 소일하는 가까운 친척 어르신이
마음을 붙이고 치료를 제대로 받을 수 있는 병원 한 곳을
찾는 일 조차 참 어려운 곳이 바로 우리나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