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사설] 송두율 한국에 있게 할 필요있나 에 대해서
(홍재희) ======= 독일국적으로 지니고 있는 송두율교수에 대한 수사당국의 조사가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냉전 수구적인 조선일보의 송 교수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 조선일보가 아주 교묘하게 상징조작을 하고 있다. 먼저 조선일보 측에서는 송두율교수의 `교수신분` 에도 의문을 제기했었다. 한나라당의 정형근 의원의 주장을 그대로 원용하다시 피해서 문제를 제기했는데 조선일보의 주장과는 달리 송두율의 `교수` 신분은 부인 할수 없는 사실로 밝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일보에서는 송교수 관련 사설에어디에도 송두율에 대해서 교수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고 있다.
조선일보 "[사설] KBS와 송두율" 제하의 2003년 10월1일자 에서는 송두율교수에 대해서 교수가 아닌 " 민주화운동가와 통일운동가로 자처하면서 학문적 지명도를 쌓아온 송두율씨" 라고 송교수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주는 표현을 하고 있고 조선일보 "[사설]`노동당원 宋斗律` 용납할 수 없다" 제하의 2003년 10월1일자 에서는 " ...재독 사회학자 송두율씨..." 라고 표현하고 있다. 조선일보 "[사설] 송두율의 거짓과 드러난 `얼굴`" 제하의 2003년10월2일자에서는 " ...송씨는 북한 공작원에 포섭돼 북한에서 교육을 받고 노동당에 정식 입당했으며, 거액의 자금을 정기적으로 받으면서 구체적인 대남 활동을 벌여온 것으로 드러났다. ..." 라고 표현하고 있다. 교수라는 호칭은 찾을수가 없다.
조선일보 " [사설] 송두율 사건에 대해 정부에 궁금한 것" 제하의 2003년 10월3일자 에서는 " ...북한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 송두율씨..." 로 둔갑해서 표현하고 있다. 조선일보 오늘자 "[사설] 송두율 한국에 있게 할 필요있나" 제하의 내용중에는 교수나 노동당원 .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이라는 표현이 아닌 자연인 송두율씨로 표현하고 있다. 조선일보가 왜 송두율씨에 대해서 교수라는 호칭을 의도적으로 사용하지 않고 있을까? 한마디로 표현해서 한국사회에서 교수라는 선망의 대상에 있는 `자리` 가 주는 명예와 대중들이 긍정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교수라는 위치에 대한 호감도 때문이다.
아직 송 교수에 대한 실체적 진실이 규명되지 않은 상황에서 냉전 수구적인 조선일보의 여론재판을 통한 이념과 색깔논쟁을 점화시켜 범 개혁세력에 대한 정치적 공세를 통해 현재의 바람직한 지형이 돼야할 정치적 지형인 개혁 대 수구의 구도를 송교수 사건을 계기로 해서 혁신과 보수의 좌우이념 대립구도를 구축해 내년총선 정국에 임하려는 방씨 족벌세습사주체제의 조선일보와 정형근으로 상징되고 있는 냉전 수구적인 한나라당의 의도를 송두율에 대한 교수라는 표현이 대중들에게 일정정도 회석 시킬수 있는 여지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일보와 한나라당의 정형근의원이 의혹을 제기했던 송두율이 교수인가 의심스럽다고 공개적으로 주장해 교수 송두율에 대한 `인격살인` 행위를 결과적으로 자행한 조선일보와 한나라당의 정형근 의원은 송두율이 교수라는 것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는 점이 밝혀진 이상 송두율교수의 실정법 적 위반여부와 관계없이 송두율교수에 대한 명예를 실추시킨 문제에 대해서 송교수의 인권을 유린한 경솔함에 대해서 공개사과 해야한다. 이러한 어처구니없는 사태를 독일국민들이 알면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송두율교수는 독일 국적도 가지고 있지 않은가? 조선일보는 당장 자연인 송두율씨가 아닌 송두율 교수라는 있는 그대로 신분상의 표현을 해주어야 한다. 조선일보의 아주 교묘한 술책에 다시 한번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다.
냉전 수구적인 방씨 세습족벌 사주체제의 조선일보 사설은 오늘 자 사설에서 송두율씨로 표현하면서 송두율교수가 노동당원 이 사실이라든가 정치국 후보위원 이라든가 김철수 라든가 하는 표현을 전혀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조선일보는 " [사설] KBS와 송두율" 제하의 2003년 10월1일자에서 " 민주화운동가와 통일운동가로 자처하면서 학문적 지명도를 쌓아온 송두율씨가 지난 30여년간 북한 노동당원으로 활동해 온 사실이 드러난 것은 결코 과거의 문제로만 넘길 일이 아니다. " 라고 아직 수사당국의 수사종결과 사법당국의 심판이 내려지지않은 사안에 대해서 사실로 확정된 양 표현하고 있는데 무죄추정의 원칙에 입각해서 접근해 보면 조선일보의 송두율교수에 대한 명백한 인권유린행위이다.
조선일보는 "[사설]`노동당원 宋斗律` 용납할 수 없다" 제하의 10월1일자 에서도 " ...재독 사회학자 송두율씨가 국정원 조사 끝에 1973년 북한 노동당에 가입한 사실을 뒤늦게 시인한 것은 충격적이다. 그는 분단민족의 지식인으로서 남북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경계인’이 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해 왔지만 사실은 노동당 비밀당원으로서 북한체제를 선택한 삶을 살아온 것이다. ..." 라고 송교수의 시인이 곧 조선일보의 " 사실은 노동당 비밀당원으로서 북한체제를 선택한 삶을 살아온 것이다. " 라는 단정적 표현으로 굳어져 이대목도 후에 송교수의 시인이 사실로 밝혀진다 해도 수사 중에 있기 때문에 일단 무죄추정의 원칙에 입각해서 접근해 봤을 때 조선사설의 단정적 주장은 송교수에 대한 인권유린행위나 다름없다.
조선일보는 " [사설] 송두율의 거짓과 드러난 `얼굴`" 제하의 2003년 10월2일자에서 " ... 그가 김일성을 면담하고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에까지 오른 것도 이런 활동과 충성심을 인정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 " 라고 단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조선일보의 주장도 수사가 종결되지 않고 아직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에 후에 사실로 밝혀진다 해도 일단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바람직하지 않은 표현이다.
조선사설 " [사설] 송두율 사건에 대해 정부에 궁금한 것" 제하의 2003년 10월3일자에서는 " 북한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 송두율씨의 기자회견에서 국민들은 그 어떤 진실도, 반성도, 진정한 사죄도 발견할 수 없었다. " 라고 주장하며 송두율씨가 북한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이라는 것을 확신하며 단정하고 있다. 이러한 수사내용이 후에 사실로 밝혀진다 해도 조선일보가 아직 수사도 끝나지 않는 사건내용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는 것은 무죄추정의 원칙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조선일보의 송두율교수에 대한 명백한 인권유린행위이다.
그것도 2003년 10월1일 2일 4일 에 걸쳐 지속적이고 계획적으로 아직 사법적 판단이 내려지지 않은 송두율 교수에 대한 조사내용을 기정사실화 해서 공표한 내용은 명백한 인권유린행위이고 이 문제는 송교수가 독일국적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조선일보 때문에 자칫잘못하면 국제적인 인권후진국가라는 비판을 면치 못 할 상황이 찾아올 수도 있다고 본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조선일보의 오늘자 사설은 송두율교수에 대해서 노동당원 . 정치국 후보위원. 김철수 등의 단정적인 표현이 모두 사라지고 자연인 송두율씨로 표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조선일보의 보도가 중대한 인권유린행위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모양이다. 조선일보는 한발 더 나아가 자연인 송두율씨가 아닌 송두율교수로 호칭해야한다.
조선일보 오늘자 사설은 송두율교수의 사죄에 대한 진정성을 문제삼고 있다. 송두율교수의 사죄는 허심탄회하게 받아들여야한다. 대한민국의 국내법에 따라 사법처리가능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들어와 수사당국의 조사에 순순히 응하고 있는 송두율교수의 사죄에 대한 진정성은 충분히 인정해줄 수 있다고 본다. 다만 수사당국의 주장과 송두율교수의 주장이 상충되는 문제 때문에 사과의 본질을 폄하하면 안 된다고 본다. 구체적인 내용에 있어서 시시비비를 가리는 문제는 별개이기 때문이다. 조선사설이 그 문제를 빌미로 삼아서는 안된다.
조선사설은 송교수가 " 실정법에 따른 처벌은 받을지언정 추방은 상상하기도 싫다고 말했다." 라고 주장한 내용에 대해서도 송교수를 국외로 추방해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아직 재판이 끝나지도 않은 사건을 가지고 조선일보가 그토록 저주하고 비판해온 이른바 `인민재판` 식의 여론재판을 통해 송 교수에 대한 국외 추방판결을 내리고 있다. 한마디로 얘기해서 조선일보의 자가당착이다. 조선일보가 송두율이라는 개인의 거주이전에 대한 자유를 임의로 박탈할 수 있는 법적 제도적 도덕적 사회적 권한이 있는가? 민족을 배반한 살아있는 역사 그 자체인 조선일보가 그런 소리할 자격이 있는가?
조선사설의 이러한 주장은 명백한 인권침해 행위라고 본다. 만에 하나 사법부가 전향의사를 밝히고 스스로 고국을 찾아온 송두율교수를 전 세계의 문명국가들이 야만적이고 반인륜적인 시대착오적 악법으로 규정하고 있는 국가보안법을 무리하게 적용해 국외추방 한다면 그것은 송두율 교수을 추방하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사회에서 지향해 나가야할 문명성 그 자체를 대한민국사회에서 추방하는 것이 될 것이다. 사법부가 판결을 통해 송두율교수를 추방한다면 그것은 송교수를 추방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사회가 냉전 수구적인 이데올로기를 온존시키며 보편적인 민주주의 가치를 추방해 버리는 것이나 다름없다.
조선일보는 송교수가 실정법에 의해서 처벌을 받고난 뒤에도 한국에 살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해 국외추방 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송두율교수는 실정법적 처벌을하면 안된다. 송교수와 그 가족들은 37년동안 대한민국사회와 격리되는 무거운 형벌의 값비싼 대가를 스스로 치뤘다. 대한민국이 문명국가를 지향한다면 전향의사를 밝힌 송교수에게 더이상의 실정법적 멍에를 씌워서는 안 된다. 그것은 곧 국가 공권력 이라는 법적 제도적 폭력을 동원한 야만적인 정치적 보복행위나 다름없다. 대한민국도 이제 이성이 살아 숨쉬는 세상을 지향해 나가야 한다. 조선일보도 조선일보와 다른 사고와 신념을 지닌 사람을 배척하지 않고 같이 살아가는 포용력을 보여야 한다.
그렇지 못한다면 조선일보는 야만적인 신문의 대명사가 될 것이다. 조선일보는 송교수에 대해서 " 남북을 동시에 사랑하고 동시에 비판하려는 것’이었다고 했다. 그러나 한국에 대해서는 수십년간 일방적 비판을 쏟아내온 그가 북한의 처참한 인권과 민생(民生)에 관해서는 단 한마디 남긴 말을 찾기 어렵다. 그러고도 이에 대한 철저한 반성도 없이 이제는 아예 한국 땅에서 ‘남북 모두를 끌어안는 화해자’로 살아가겠다는 그의 말을 어떻게 믿겠는가. " 라고 주장하고 있다. 조선일보에게 묻겠다. 황장엽은 괜찮고 송두율은 안되는 이유가 무엇인가?
황장엽도 수십년동안 한국으로 들어오기 전에 북한의 처참한 인권과 민생(民生)에 관해서는 단 한마디 남긴 말을 찾을수 가 없다. 아니 황장엽은 송두율보다 더 적극적으로 북한체제의 이데올로그 역할을 통해 북한주민들의 피폐한 생활상을 비참하게 악화 시키는데 적극적인 기여를 했다. 그리고 황장엽은 아직도 주체사상이 김일성 부자에 의해서 변질됐을 뿐 그 학문적 체계에 대한 문제점에 대해서는 옹호하고 있고 어떤의미에서는 자신의 사상체계에서 적극적인 전향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대한민국정부는 그러한 황장엽의 주체사상에 대한 학문연구와 서술활동에 전념하도록 몇 년동안 특별안가까지 제공했고 또 물적 인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런 황장엽은 되고 송두율은 안 된다면 조선일보는 말이 된다고 보는가? 궤변일 뿐이다. 조선일보는 송교수가 " 북한의 처참한 인권과 민생(民生)에 관해서는 단 한마디 남긴 말을 찾기 어렵다. " 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친일 반민족 반민주 반 통일의 냉전 수구적인 방씨 세습족벌사주체제의 조선일보에게 감히 묻겠다.
송두율교수가 박정희 전두환 정권의 폭정에 저항하고 있을 때 조선일보는 그 당시 한국인들의 처참한 인권유린과 광주에서 무고한 국민들을 대량살상한 전두환 살인정권을 구국의 결단을 내린 것으로 신 용비어천가를 부르며 칭송했다. 조선일보는 한국군부정권의 인권파괴행위에 대해서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아니 적극적으로 한국의 민주주의와 언론자유를 말살하는데 앞잡이 노릇을 한 가해자인 조선일보가 송교수에 대해서 비판하는 것은 너무 어색하다.
송교수는 분단의 아픔을 온몸으로 끌어안고 고민해온 학자이다. 조선일보가 한국에서 활개치고 할동하며 살수 있는데 송두율교수가 한국에서 살수 없다면 그것은 송두율교수에 대한 한국사회의 고의적인 인간소외라는 집단 린치행위 이고 제도적 장치를 동원한 물리적 폭력성을 말해주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제 대한민국도 냉전 수구적인 시대착오적 감성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벗어나 이성적 합리성에 의한 자각이 지배하는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통과의례로서 송두율교수와 대한민국이 함께 가야 한다. 송두율교수와 함께 가지 못하는 대한민국이 북한동포를 끌어안고 같이 통합의 길로 나아간다는 얘기는 허구이고 기만일 뿐이다. 이제 우리사회도 이성의 눈을 뜨자 . 이번 송두율교수문제를 통해서 이제 한국사회도 냉전적 광기가 지배하는 감성의 시대와 과감하게 결별하자 .
[사설] 송두율 한국에 있게 할 필요있나 (조선일보 2003년 10월4일자)
송두율씨가 국정원의 조사 결과가 발표된 후 가진 기자회견 내용을 보면 그가 이 시점에서 왜 한국에 들어왔는지를 알 수 있다. 그는 “사죄할 것은 사죄하겠다”고 하면서도 구체적 혐의 내용은 철저하게 부인하면서 “무엇을 사죄해야 할지 나도 모르겠다”고 했다.
그는 또 실정법에 따른 처벌은 받을지언정 추방은 상상하기도 싫다고 말했다. 결국 그는 사법 처리를 받을지언정 지금까지 자신의 이미지와 역할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한국 내에 합법적인 활동 공간을 확보하겠다는 의도인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
송씨에 대한 사법 처리 방향은 3일부터 시작된 검찰 수사가 끝나봐야 알겠지만 그의 태도와 의도로 미루어 그를 재판에 넘겨 본들 무슨 큰 의미가 있을지 의문이 든다. 재판 과정과 그 이후에도 그를 둘러싼 논란이 그치지 않을 것이고 설사 그가 실형 판결을 받더라도 얼마 후면 풀려나 그때부터는 마음놓고 활동하면서 특정 이념세력의 정신적 중심 역할을 하게 될 게 뻔하다. 그럴 경우 ‘분단의 희생자’니 ‘남북의 경계인’이니 하는 그의 ‘상표’에 ‘소신을 굽히지 않은 양심적 투사’도 추가될 것이다.
이런 그에게는 사법 처리보다도 그가 국적을 갖고 있는 독일로 추방하는 것이 더 적절한 현실적 조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태도에서 인간적 환멸을 느끼고 있는 일반국민의 정서도 “내보내라”는 쪽인 듯하다. 어떤 이유로든 그에게 합법적 공간을 마련해줄 수는 없는 것이다.
송씨는 그 동안 자신의 삶이 ‘남북을 동시에 사랑하고 동시에 비판하려는 것’이었다고 했다. 그러나 한국에 대해서는 수십년간 일방적 비판을 쏟아내온 그가 북한의 처참한 인권과 민생(民生)에 관해서는 단 한마디 남긴 말을 찾기 어렵다. 그러고도 이에 대한 철저한 반성도 없이 이제는 아예 한국 땅에서 ‘남북 모두를 끌어안는 화해자’로 살아가겠다는 그의 말을 어떻게 믿겠는가.
송씨의 사법 처리는 그의 행적을 철저하게 파헤친 뒤 엄정한 법 원칙하에 결정돼야겠지만 그의 태도로 보아 추방도 유력한 선택 방안일 수 있다. 입력 : 2003.10.03 18:37 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