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두율 교수의 이념적 아이덴티티를 상징하는
'경계인'이란 단어는, 단지 그만이 아닌,
남한과 북한, 그리고 좌와 우의 경계 속에서
이념적 번민과 방황을 겪어온 우리 시대 지
식인들의 초상을 가르키는 고유명사인지도
모르겠다.
공산주의 체제인 북한과 자본주의 체제인 남한
사이에서 방황했다는 송교수의 일관된 주장이
이번 국정원 조사를 통해 스스로의 철학과 신
념을 위장하는 수사인 것 처럼 비춰져 그를
존경해온 좌파 지식인들에겐 참으로 곤혹스런
일이 되었다.
사실 공산주의의 몰락 이후, 북한 체제의 변질이
지속된 이후, 우리 시대 지식인들의 지적 혼란
과 균열이 가속화되었고, 주체철학을 전파해온
주사파 대가들의 사상적 전향도 심심치 않게 목격되었
다. 시대가 지식인의 신념대로, 의지대로 변화
할 수 없으므로, 그러한 지식인들의 변화는
어쩌면 당연할 일일 것이다.
송교수의 뜻하지 않은 자백은, 시대적 변화에
비춰볼 때 충분히 예상 가능한 것이었다. 북한
체제에 대한 종교적 믿음이 더이상 유효할 수 없는
상황에서 평생 그가 견지해온 신념과 지적 자산에
회의가 느껴졌을 수 있고, 결국 남한의 체제적
우월성을 인정할 수밖에 없지 않았겠는가.
송교수의 행적에 대한 마녀사냥식 비판을 거듭한
다고 우리 체제의 우월성이 더 빛나 보이는 건
아닐 듯 싶다. 좌우 이념의 소모적이고 단선적인
대립에서 벗어나 너그럽게 그의 사상적 스펙트럼을
우리 안에서 포용하는 것이, '자유'를 지향하는
우리 체제의 진정한 힘을 발휘하고 키워가는 방식이
아닐까 생각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