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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사설]`노동당원 宋斗律` 용납할 수 없다 에 대해서

조선 [사설]`노동당원 宋斗律` 용납할 수 없다 에 대해서











(홍재희) ===== 재독 사회학자 송두율교수가 북한의 노동당 당원 이었다는 사실은 새롭게 밝혀진 내용이다. 조선사설은 이러한 사실에 대해서 충격적이라고 받아들이고 있다. 재독 사회학자 송두율 교수가 그동안 북한 노동당 당원 신분 이었었다는 사실을 지금까지 밝히지 않았다는 점은 의외일 수밖에 없다. 그동안 한국 정보기관이 주장한대로 송두율 교수가 북한의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은 아닌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송두율교수가 자신이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 이라는 한국공안당국의 주장에 맞서 법적인 대응을 하면서도 이번에 한국을 방문해 국정원 조사를 받기 이전까지 자신이 노동당 당원신분 이었다는 사실을 밝히지 않은 점에 대해서 송두율 교수는 일단 해명을 해야한다고 본다.











조선일보 사설은 송두율 교수가 북한의 노동당 당원으로서` 지식인과 한국민주화 운동에 대한 돌이킬 수 없는 배신이었다.` 라고 비판하고 있다. 조선일보가 노동당원의 신분으로 있었던 송두율 교수에 대해서 한국민주화 운동에 대한 돌이킬 수 없는 배신이라고 비판하는 것은 전혀 설득력이 없다. 냉전 수구적인 방씨 세습족벌사주체제의 조선일보 사설은 한국 민주화 운동의 이름을 팔아서 송두율교수의 노동당 당원 신분을 비판할 자격이 없다. 송두율 교수가 북한 노동당에 가입했다는 시기는 1973년이다 . 그 시기는 박정희와 김일성이 1972년 7 . 4 남북공동성명을 발표하고 난 뒤에 박정희와 김일성은 각기 권력의 공고화를 위해 유신과 주석직 신설을 통해 정권의 안보에 치중했다.








방씨 족벌세습사주체제의 조선일보는 박정희의 부도덕한 장기독재를 정당화하는데 나팔수 역할을 했다. 방씨 족벌의 조선일보는 헌법을 유린하고 민주화를 요구하며 박정희 독재극복에 나선 민주화 인사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했던 박정희 유신 독재정권과 전두환 신군부 군사독재정권과 권언유착을 통해 한국의 민주화와 언론자유를 위해서 맨몸으로 맞서 싸운 이땅의 지식인들과 한국민주화 운동에 헌신해온 사람들을 탄압하는 독재정권의 앞잡이 노릇을 하면서 한국의 민주화와 언론자유의 목을 비틀며 방씨 족벌의 수구적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한국사회가 지향하는 민주화라는 가치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폐륜적 행위를 수십년 동안 저질러 놓고 이제와서 송두율교수의 북한 노동당 당원신분을 빌미로 송두율 교수에게 한국민주화 운동에 대한 배신행위라고 뻔뻔스러운 주장을 할수 있는 정당성이 조선일보에는 없다.














특히 박정희 전두환 정권을 거쳐오면서 한국의 민주화와 언론자유을 짓밟고 부도덕한 권언유착을 통해 방씨 세습족벌세습사주체제인 ` 밤의 대통령` 이라는 언론권력의 정점에 있는 방씨 족벌의 조선일보가 송두율교수를 비판하는 것은 전혀 설득력이 없다. 방씨 족벌의 조선일보야 말로 민족을 배반하고 친일 반민족적인 범죄행위를 저질렀고 민주화와 언론자유를 파괴하는 독재정권과 권언유착을 통해 한국의 민주화 운동에 대한 배신행의를 했음은 물론이고 언론자유를 외치는 사람들을 탄압하는 독재정권의 나팔수 역할을 하면서 언론자유에 몸바친 인사들에 대한 배신행위 또한 조선일보가 서슴없이 저질렀다. 그러한 방씨 족벌의 조선사설이 송두율교수를 비판하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추태이다.

















조선사설은 조선노동당의 당면목적을 예로 들며 송두율교수에 대해 헌신적으로 투쟁하는 자각적인 혁명투사” 로 상징조작하고 있다. 물론 악법인 국가 보안법상으로 접근하면 송두율교수가 노동당에 가입한 것은 명백한 불법이다. 하지만 송두율교수가 노동당에 가입한 1973년의 암울한 시대적 상황과 2003년 오늘의 현실을 비교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송교수의 노동당 입당은 1973년의 시각으로 접근하면 분명히 국가보안법상의 `이적행위` 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시대는 변했다. 국가보안법을 당연한 국법으로 정당화 하던 1973년과 전세계적으로 반인륜적이고 야만적인 악법으로 정평이 나 있는 오늘날에 국가보안법을 적용해 송두율 교수에 대한 법적인 접근을 한다는 것은 문명국가를 지향하는 한국사회의 수치가 될 것이다.














송두율교수가 1973년 노동당에 가입하고 난 뒤에 어떠한 일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송두율교수와 북한 당국자들 밖에 모른다. 하지만 1973년부터 오늘에 이르기 까지 북한체제와 한국의 성장과정을 살펴보면 2003년 이 시점에서 북한체제는 스스로의 의식주문제조차 해결하지 못하고 외부의 도움에 의지해서 체제생존과 동포들의 굶주림 해소에 급급해 하고 있다. 반면에 한국은 송두율교수가 비토 했던 군사독재를 극복하고 정치적 민주화의 도상단계를 거쳐 아직 문제점은 많지만 세계경제 12위의 경제력을 지닌 국가체제로 미래지향적인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부연한다면 송두율교수가 노동당원으로 있었던 시기에 북한 체제는 남한체제와의 체제경쟁에서 밀려나고 이미 그 우열이 가려진지 오래됐다. 그것은 곧 조선사설이 인용하고 있는 " 조선로동당의 당면목적은 전국적 범위에서 민족해방과 인민민주주의 혁명과업을 완수하는 데 있으며 최종목적은 온 사회의 주체사상화와 공산주의사회를 건설하는 데 있다”라는 북한체제의 시도가 현실적으로 이미 실패했음을 증명해 주고 있다고 본다. 이러한 북한체제의 실패는 아이러니 하게도 노동당 당원이면서 한국의 민주화운동에 기여해 북한의 조선노동당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강력한 경쟁력을 갖춘 다원화 된 시민사회의 도래와 정치결사 그리고 인권 신장 등을 통해 한국이 체제경쟁측면에서 북한체제를 앞서 리드해 나가고 있다는 점을 우리는 간과해서는 안 된다.














조선일보 사설은 송두율교수를 우상화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조선사설에 동의 하지 않는다. 신문이나 방송이 송두율교수에 대해서 의미있는 평가를 한 것은 세계적인 학자로서의 공헌에 대한 것이었고 또 한국의 민주화와 민족 모순인 분단체제의 문제를 안고 고민해온 학자로서의 고뇌와 노력 그리고 한국의 민주화 운동에 대한 실사구시적인 평가였다. 조선사설은 그점을 우상화로 매도하고 있다. 한국의 신문이나 방송 그리고 지식인들이 송두율교수의 역할에 대해서 긍정했던 것은 노동당 당원 송두율이 아닌 지성인 송두율에 대한 평가였었다. 그것은 우상화가 아니었다. 조선사설은 그점에 대해서 왜곡하지 말아야 한다.











송두율교수는 분단의 비극적인 시대적 상황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학자였다는 것이 이번 한국 방문을 통해서 나타났다. 한국정부에 의해서 수십년 동안 한국방문이 금지돼 왔던 송두율교수가 1973년 이후에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었던 한국사회의 실상에 대해서 그동안 독일에서 관념적으로만 생각하고 있다가 비록 짧은 기간동안 이었지만 한국땅을 밟으면서 심경의 변화를 일르켜 그동안 지니고 있었던 한국사회에 대한 인식의 전향을 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송교수 도 이미 한국의 실정법에 따르며 살겠다는 의견을 피력한 것을 보면 심경의 변화가 나타난 것은 분명한 것으로 보인다.








이시점에서 아쉬운 것은 송교수가 한국사회에서 단 몇 개월 동안 만이라도 활동하고 직접 체험하고 토론하는 가운데 한국사회에 대한 이해를 하고 난 뒤에 국정원이 조사를 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어차피 송두율교수가 자신에 대한 구속 방침이 결정된 이후에 법적인 처벌을 각오하고 한국에 들어온 이상 한국의 실상에 대한 송 교수 나름대로의 한국사회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난 뒤에 국정원이 수사를 했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우리는 송두율교수가 지니고 있는 학자로서 세계적으로 쌓아올린 명성과 남북한을 넘나들며 객관적으로 체험한 한반도 분단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쌓아온 학자로서의 경륜과 업적을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의 한반도 냉전해체와 공존공영시대로 접어드는 이시기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또 송두율교수의 공과를 객관적으로 포용하는 융통성을 보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번에 해외에서 민주화 운동을 벌인 인사들과 송두율 교수가 한국정부에 의해서 금기의 땅으로 규정됐던 한국에 수십년만에 들어와 한시적으로 나마 그들이 해외에서 기여했던 한국의 민주화된 현실의 장을 체험하게 한 것은 노무현 정권의 전향적인 조치로서 긍정적으로 평가할만 하다고 본다.














노무현 정권의 이러한 긍정적인 면은 분단과 군사독재체제의 과거와 싸우다 비토와 금기의 대상으로 전락해버린 `경계인` 인 송두율교수를 포함한 해외 민주화 인사들과 한국사회가 불행했던 과거와의 화해를 시도했고 그러한 시도는 대단히 유익 했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접근해 볼 때 이번 송두율교수의 문제는 냉전적 잣대인 국가보안법의 교조적인 적용이 아닌 불행했던 과거와의 화해라는 민족화해 시대의 열린 정치적 접근을 통한 접근방법이 필요하다고 본다.














[사설]`노동당원 宋斗律` 용납할 수 없다 (조선일보 2003년 9월30일자)














재독 사회학자 송두율씨가 국정원 조사 끝에 1973년 북한 노동당에 가입한 사실을 뒤늦게 시인한 것은 충격적이다. 그는 분단민족의 지식인으로서 남북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경계인’이 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해 왔지만 사실은 노동당 비밀당원으로서 북한체제를 선택한 삶을 살아온 것이다.








그가 당시 한국의 유신체제 등장에 대해 가졌을 좌절감이 아무리 심했다 하더라도 그의 대안(代案)이 1인 우상화와 강제수용소로 여실히 입증되는 가장 비인간적인 북한체제였다는 사실은 지식인과 한국민주화 운동에 대한 돌이킬 수 없는 배신이었다. 더구나 그는 30년 동안이나 노동당 가입 사실을 철저히 숨긴 채 민주인사로 자처함으로써 학자로서의 양심마저 저버렸다.





북한 노동당 규약은 그때나 지금이나 “조선로동당의 당면목적은 전국적 범위에서 민족해방과 인민민주주의 혁명과업을 완수하는 데 있으며 최종목적은 온 사회의 주체사상화와 공산주의사회를 건설하는 데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당원은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최종적 승리를 위하여 헌신적으로 투쟁하는 자각적인 혁명투사”라고 밝히고 있다.





송씨측은 그가 입당원서만 썼을 뿐 사실상 당원이 아니라고 강변하고 있지만 국제적인 북한전문가가 무슨 의미인 줄도 모르고 노동당 입당원서를 냈다는 변명밖에 되지 않아 구차하기 이를 데 없다. 입당 원서를 낸 뒤 김일성을 장시간 면담하고 그후 자유자재로 북한을 드나들며 핵심고위층들과 수시로 만난 것이 노동당원 신분과 어찌 무관할 수 있겠는가.





북한체제와 민족문제 등에 관한 그의 학문적 담론도 노동당 당원으로서의 신분과 무관하게 순수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것이 학생과 지식인들에게 알게 모르게 끼쳤을 영향은 북한의 그 어떤 구체적 대남 활동보다 심대할지도 모른다. 그를 우상화하다시피 해온 일부 방송과 신문, 그리고 지식인 사회의 일각이 그간의 태도를 어떻게 정리할 것인지 지켜볼 일이다.





‘송두율 문제’는 결코 ‘분단이 빚은 비극’이라는 식으로 일반화돼서는 안 된다. 송씨는 지금이라도 솔직하게 그리고 한 점 의혹 없이 자신의 잘못된 선택과 활동에 대해 고백하고 반성해야 한다. 그것이 그나마 그가 지켜야 할 우리 사회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다. 그에 대한 실정법 차원의 조치는 그 다음의 문제가 될 것이다. 입력 : 2003.09.30 05:30 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