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은 '유엔' 허울에 속고 있다(펌글)
한국국민들은 이라크 파병과 관련, '유엔'이라는 허울에 속고 있다.
유엔 안보리 결의로 유엔 통제하에 운영되는 '유엔 평화유지군(PKO)'과 미국이 지휘권을 갖는 '유엔의 위임을 받은 미국 주도의 다국적군'을 구분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한겨레>가 지난 19~20일 1000명을 상대로 전화여론조사를 해 22일 발표한 결과를 보면, '이라크에 우리나라 전투병력을 파병하는 것에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57.5%가 반대했고 찬성은 38.2%였다. 그러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 후 다국적군 형태로 전투병을 파병하는 것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찬성 51.0%, 반대 44.4%로 찬성 의견이 다소 높았다.
그런데 <한겨레>가 유엔 평화유지군과 다국적군의 차이를 설명한 뒤 같은 질문을 했더니, 반대 61.4%, 찬성 32.4%로 반대의견이 더 많았다. <한겨레>의 설명 내용은 '다국적군은 유엔이 직접관리하고 질서유지역할을 하는 유엔평화유지군과는 달리 유엔의 관리 감독을 받지 않으며 무력사용도 허용된다. 귀하께서는 다국적군 형태의 파병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것이었다.
이렇게 질문하자 앞의 '이라크에 전투병력을 파병하는 것에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는 단순 찬반 질문을 할 때의 반대 57.5%보다 더 많은 61.4%가 반대한 것이다.
<한겨레> 이화주 여론조사전문기자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언론에서 '유엔안보리 결의 뒤 다국적…'이라는 식으로 보도하고 여론조사 때 이렇게 질문하니까 국민들은 미국이 요청한 파병병력을 단순히 유엔평화유지군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서 유엔평화유지군과 미국이 요구하는 다국적군의 차이를 설명하고 질문을 했다. 그랬더니 반대가 더 많아 당혹스러울 정도였다. 아마 국민들이 단순한 '전투병'이라고 생각했다가 '무력사용'이라는 말이 질문에 들어가자 더 심각하게 생각한 것 같다."
KBS가 21일 발표한 여론조사결과를 보면 파병반대 60.5%, 찬성 39.3%였다. 그러나 유엔 결의를 통한 전투병 파병에는 찬반이 비슷한 가운데 보낼 수 있다는 의견이 높았다.
22일치 <조선일보>의 여론조사결과의 경우 '파병하지 말아야 한다'(54.7%)가 '파병해야 한다'(36.9%)에 비해 높았지만, 유엔의 승인 하에 다국적군의 파병이 이뤄질 경우 '파병해야 한다'(58.9%)가 '파병하지 말아야 한다'(31.1%)보다 높았다.
지난 16일 <중앙일보>의 여론조사도 파병에 56.1%가 반대, 35.5%가 찬성했다. 그러나 유엔의 결의에 의해 유엔군의 하나로 파병하는 것에 대해서는 찬성(58.6%)이 반대(40%)보다 많았다.
만일 이 회사들이 미국이 요청한 병력이 유엔평화유지군과 성격이 다른 부대라는 것을 설명했다면, 설사 '유엔'이라는 말이 들어갔다고 하더라도 반대가 더 많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다국적군은 게릴라 소탕병력
미국이 유엔 결의를 통해 추진하는 것은 '유엔의 위임을 받은 미국 주도의 다국적군'이다. 이는 유엔평화유지군과 다르다.
유엔평화유지군은 유엔사무총장이 사령관을 임명하고 목적도 평화유지활동에 국한된다. 파병 비용도 유엔에서 부담한다. 부대의 활동에 대해 사령관은 정기적으로 유엔사무총장에게 보고한다. 즉 유엔이 이 부대의 활동에 대해 전적으로 주도권을 쥐고 통제한다.
그러나 미국이 말하는 부대는 유엔으로부터 위임을 받았지만, 미군 지휘하에 운용된다. 유엔평화유지군은 말 그대로 정전 감시 등 평화가 일단 이뤄진 뒤 이를 유지하는 구실을 하지만, 다국적군은 불안정한 치안 확보 등 게릴라 소탕전을 벌여야 한다.
현재 이라크 상황으로 볼 때 미국 입장에서는 미국 군인이 총 사령관을 맡는 것이 게릴라 소탕전의 효율성을 위해서도 좋다.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은 지난 3일 미국은 유엔의 위임을 받은 미국 주도의 다국적군을 구성한 뒤 미군 사령관이 때에 따라 유엔안보리에 활동을 보고하겠다고 밝혔다.
결론적으로 미국이 요청한 병력은 '유엔'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지만, 실제 내용은 지난 3월 미국이 이라크 전쟁을 시작하면서 우방국들에게 요청했던 파병 병력과 똑같다.
한국만 덤터기 쓸 가능성 높아
미국이 '유엔'의 위임을 받은 다국적군을 강조하는 것은 파병 요청 대상국 정부의 입장을 고려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국, 터키, 파키스판 정부는 단순히 미국 정부의 요청을 수용하는 식이라면 국내 반발때문에 파병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유엔'이라는 형식적인 '모자'를 쓰면 국내 반발을 무마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다른 한편 지난 1999년 동티모르에 파병된 부대가 처음에는 다국적군이었다가 나중에 유엔평화유지군으로 바뀌었던 사례를 미국이 염두에 둔 것일 수 있다.
그러나 보다 심각한 문제는 다른데 있다. 미국과 프랑스, 독일, 러시아 등이 이라크에서의 유엔의 역할 강화를 위한 구체적인 방식에 합의하면서 자신들이 전투병을 보내지 않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전투병은 한국, 터키, 파키스탄 등에게 떠넘겨지게 된다.
지난 3일 미국이 이라크에서의 유엔의 역할강화를 위해 제출한 유엔결의안 초안은 현재 프랑스, 독일, 러시아 등의 반대에 부닥친 상태다. 이들 나라들은 이라크 권력을 이라크인들에게 언제 이양할 것인가를 두고 대립하고 있다.
미국은 미국 주도로 만든 이라크 과도통치위원회를 유엔이 인정하고 이 위원회가 이라크 새 헌법 초안 및 선거 일정 등을 마련한다는 것이다. 미국이 자신의 주도권을 유지하면서 서서히 이라크인들에게 권력을 이양하려고 하는데 비해, 프랑스 등은 하루빨리 권력을 이라크인 들에게 넘기라고 요구하고 있다.
21일 프랑스의 자크 시라크 대통령은 <뉴욕타임스>와의 기자회견에서 즉각적인 이라크인에게로의 권력 이양을 말하면서 "첫단계로 권력을 현재 미국인의 손에서 25명으로 구성된 이라크 과도통치위원회로 넘기고 이후 6~9개월안에 실질적인 권력을 넘기라"고 요구했다. 프랑스는 내년 봄 총선을 실시해야 한다고 말했었다.
프랑스 등이 권력을 하루빨리 이라크인들에게 넘기라는 것은 결코 이라크인들을 생각해서가 아니다. 당연히 자신들이 이라크 권력에 조금이라도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기 위해서다.
현재 미국과 영국을 한편으로, 프랑스·독일·러시아 등을 한편으로 벌어지는 대립은 이라크 권력에 누가 더 영향력을 행사하는냐를 두고 벌어지는 싸움에 불과하다.
그런데 미국이 주도하는 다국적군 구성 자체에 대해서는 프랑스, 독일, 러시아 등이 반대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이들 나라는 병력을 파병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이는 나중에 권력이양 문제에 있어서는 미국과 프랑스·독일·러시아 등이 타협을 하면서, 다국적군 구성을 위한 병력은 한국·터키·파키스탄에게 떠넘길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다. 이렇게 되면 미국과 프랑스·독일·러시아 등은 이라크 권력에 있어 서로 이익을 주고받지만, 한국은 아무 이익없이 피만 흘려야 하는 처지에 빠질 수 있다.
강대국들이 이라크라는 '바둑판'에서 제 잇속을 차리기위해 두는 바둑에서 한국은 단지 '바둑알' 신세로 전락하는 상황이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