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사설] 권력 감시 보도를 `저주’로 보는 청와대 에 대해서
(조선사설) 청와대 이병완 홍보수석이 대통령 부인 권양숙 여사의 아파트 미등기 전매 의혹을 보도한 동아일보를 막말로 비난하며 동아일보의 취재를 거부한 것은 지나치게 말초적인 대응이다. 이런 청와대에 ‘취재 거부는 국민의 알 권리에 대한 중대한 침해’라는 민주주의 원론을 말해봐야 소용이 있을 것 같지 않다. 이번 건은 권력 핵심부가 상대를 비판할 때와 자기가 비판당할 때의 잣대를 달리해 얼마나 편의적으로 ‘원칙’을 끌어대며 반응하는지 보여준다.
(홍재희) ======= 필자는 동아일보의 대통령 부인 권양숙 여사의 아파트 미등기 전매 의혹 보도에 대해서 절대로 동의하지 않는다. 하지만 청와대 이병완 홍보수석의 행태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최근 청와대의 언론에 대한 태도를 냉정하게 살펴보면 구체적으로 조 . 중 . 동의 과점적 여론지배형태의 문제점해소를 위한 개혁입법노력은 대단히 미흡하다.
(홍재희) ===== 또한 종이신문시장에서의 조 . 중 . 동 세습족벌사주체제의 독과점 적 지배력 집중에 대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공정한 게임의 룰을 만드는 보이는 손의 합법적인 시장실패보완정책에 대한 대안마련에 대한 실속 있는 노력은 전혀 없이 대통령 친인척들의 사적인 추문과 관련된 조 . 중 . 동과의 소모적이고 지엽 말단적인 아귀다툼에 집권초기의 귀중한 개혁의 시간과 정력을 낭비한 측면에 대해서는 청와대를 강하게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홍재희) ====== 이러한 청와대의 대 언론관은 언론개혁과 독자주권찾기 운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짐? 이 되고 있다. 청와대가 이번에 취재거부를 한 것은 조 . 중 . 동과 대척점에서 대안언론으로서의 자기역할에 충실하고 있는 언론소비자들에 가까이 다가오고 있는 대안매체들에게도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조 . 중 . 동에 대해서 실질적으로 압력을 가할 수 있는 과거와 같은 권위주의적인 정치권력을 현실적으로 보유하지도 못하고 있고 고 또 행사하지도 못하고 있는 노무현 정권으로부터 공연히 언론탄압을 받는다는 빌미만 제공하고 있는 청와대의 최근행보는 많은 국민들의 이해를 구하기 어렵다.
(조선사설) 이 수석은 “(동아일보 보도가) 기자들이 요구해서인지, 간부들의 편견인지, 경영층의 뿌리깊은 저주나 적개감의 발로인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이 말은 주어(主語)만 바꾸면 요즘 청와대가 언론을 대하는 태도를 그대로 지칭하는 얘기가 된다. 거기엔 기사 하나하나를 두고 악의니 저의니 따지는 병적 심리가 잘 나타난다.
(홍재희) ======= 이수석의 주장은 공인으로서 적절치 못한 것이다. 개인적으로 그런 생각을 할 수는 있으나 그러한 내용을 공론화 한 것은 비판을 비켜갈 수 없는 사안이라고 본다. 이수석의 위치가 아직도 한국인들에게는 정치권력의 최고정점인 청와대의 중요요직에 있는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는 사람의 주장으로서 실제와 다르게 확대해석돼 필요이상의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한국사회의 현실을 직시해 볼 때 이수석의 표현은 적절치 못했다.
(홍재희) ======= 동아일보의 주장이 문제가 있다면 청와대 나름대로 반론을 할수 있는 조치를 취할 수 있고 또 청와대가 운영하고 있는 매체를 통해서 반론을 제기하거나 법적 제도적 장치를 통해서 얼마든지 대응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돼 있는데도 격한 감성적 히스테리와 같은 속내를 감추지 않고 표출하며 무모한 결정을 내린 것은 공권력이 감정에 치우쳐 행사될 수 있다는 나쁜 인상을 국민들에게 심어줄 여지가 다분히 있다. 청와대는 좀더 내실있고 현 청와대의 민주적인 리더십에 의해 형성된 인적구성에 적합하면서도 세련된 언론플레이를 하라?
(조선사설) 다른 언론사들이 동아일보가 제기한 의혹을 크게 주목하지 않고 넘어간 것도 ‘이번 사안이 그렇게 크게 보도할 기사거리냐’는 청와대 시각에 동조해서가 아니다. 이 나라에서 도덕성과 청렴성을 독점한 듯이 행세하면서 남을 비판하고 심판해온 권력 실세들의 태도에 비춰보면 이번 사안은 기사가 되고도 남는다. 다만 언론사에 따라 우리 사회에서 그만한 문제가 없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느냐는 현실판단을 조금씩 달리했을 뿐이다. 그런데도 청와대가 되레 나서서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해서야 이 나라의 도덕성은 어디로 가겠는가.
(홍재희) ======= 말이야 바른말이지 동아일보는 노무현 대통령부인을 비판할 자격이 없다. 동아일보는 조선일보와 함께 일제시대 때부터 천인이 공로 할 아니 만인이 공로 할 친일 반민족적인 범죄행위를 저질렀고 또 8 . 15 이후의 분단체제 하에서는 조선일보와 중앙일보와 함께 자연스럽게 트리오를 구성해? 군사독재체제와 정확하게 `코드`를 맞추고 부도덕한 권언유착의 길을 걸어왔다.
(홍재희) ======= 동아일보는 한국의 민주주의를 초토화 시키고 언론의 자유를 말살하는 대가로 유지해온 정통성 없는 군사독재정권의 권위주의적인 정치체제의 나팔수 노릇을 하면서 한국사회의 민주화 시계의 방향으로 거꾸로 돌린 장본인이다. 이번 동아일보가 노무현 대통령부인 권양숙여사의 문제를 거론할 정도의 언론자유를 누리기까지 한국사회의 양심적인 시민단체와 인사들이 군사독재의 음지에서 핍박받으면서도 개인의 희생을 마다않고 싸워 얻은 언론자유에 무임승차한 것이 바로 조선일보요 동아일보이다.
(홍재희) ====== 그러한 동아일보가 그리고 조선일보가 지금 한국사회에 보장된 언론자유의 혜택을 누리고 있는 것은 한마디로 분에 넘치는 과분? 한 것이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민족의 정체성확립과 한국의 민주화 그리고 시장경제의 발전을 통한 이만큼의 시민사회의 정착을 위해 아무것도 한 것 없이 오히려 걸림돌역할에 충실하며 무임승차해 왔다.
(홍재희) ====== 그러한 동어일보에 대해서 청와대가 얼마든지 합법적이고 합리적인 대응 수순을 마다하고 감정적으로 화? 를 이기지 못하고 폭발시킨 것은 곤궁한 동아일보의 입지만 넓혀주는 꼴이 되고 말았다. 청와대 인사들은 좀 세련미를 갖추어라? 아무리 조 . 중 . 동이 문제가 많다고 해도 대통령의 친인척문제로 감정적인 대응을 하는 것은 여론의 호응을 얻지 못하고 오히려 시중여론의 반발을 촉발 시킬 수 있다. 청와대는 언론플레이를 좀더 성숙하게 하라? 어떻게 그런식으로 대응해 조 . 중 . 동의 조롱거리를 제공해 주고 있는가?
(조선사설) 이 수석은 이번 대응과 관련해 “대통령과 교감을 나누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는 이 정권의 핵심 의제인 언론에 관한 한 ‘코드’가 완벽히 맞아 떨어진다는 얘기나 한가지다. 나라를 짓누르는 경제위기, 하염없이 결단을 미뤄대는 국책사업들, 중구난방으로 견해가 터져나오는 이라크 파병…. 국가적 숙제들에 관해서는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코드’를 맞추지 못하는 이 정권이 언론에 관해서만큼은 일사불란한 모습을 과시하는 것이 어찌 보면 희극적이기까지 하다. 입력 : 2003.09.22 18:14 38`
(홍재희) ====== 나라를 짓누르는 경제위기, 하염없이 결단을 미뤄대는 국책사업들, 중구난방으로 견해가 터져나오는 이라크 파병…. 국가적 숙제들에 관해서는 어느 것 하나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 코드`를 맞추지 못하고 여론의 눈치보기에 여념이 없는 가운데 서로 자사의 독자확보에 치열한 경쟁을 하면서 냉전 수구적인 방씨 세습족벌사주체제의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맹목적인 집단 폭행성 비판적 여론조성용 기사작성에는 아주 절묘하면서도 정교하게 ` 코드` 를 일치시키고 있다.
(홍재희) ======== 이러한 친일 반민족 반민주 반 통일 의 냉전 수구적인 방씨 족벌의 조선일보와 김씨 족벌의 동아일보의 절묘한 ` 코드` 의 일치는 일제 시대 때 부터 친일 반민족적인 범죄행위에 대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일치된 ` 코드`를 통한 세습이 대대로 이어져 내려온 관성에 의해 조선 - 동아의 노무현 때리기를 위한 ` 코드` 맞추기의 정교성이 고착화 됐다고 볼 수 있다. 참으로 경이로운? ` 코드` 일치의 현란한 팀플레이다. 이러한 조 . 중 . 동에 맞서려면 대응도 절묘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