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도 덜도 말고 한 해 내내 한가위만큼만 풍요롭길 바라는 극진함이 담긴 우리 조상님네들의 덕담 한 구절을 되새겨 보기에도 무색해질 만큼의 막강한 위력의 태풍 매미 앞에 올 추석은 허무하게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이제는 연례행사로 치르고 있는 태풍과 폭우피해 그리고 힘겨운 복구의 메아리.......
그 끝을 본다는 게 아예 불가능한 상태에서 되풀이되는 수난으로 이젠 누구를 원망하는 것조차 포기한 듯한 망연한 한 수재민의 주름진 얼굴이 커다랗게 다가온다.
풍요와 수확의 상징인 추석 즈음에 몰려온 불행의 두 그림자.......
거두어들일 기쁨의 희망은 고사하고 사랑하는 가족과 터전마저 일순간에 빼앗아 가버린 너무도 얄궂고 흉포한 태풍 매미.
때를 맞추기라도 한 듯이 막대한 우리 돈을 써가며 언제, 누가 죽을 지도 모르는 이라크에 무장을 한 우리의 소중한 젊은이들을 보내달라는 무섭고 염치 모르는 미국의 파병요청.
이쯤 되면 그저 무심한 하늘이나 바라보면서 하릴없는 신세한탄이나 해야 하는 것인가?
무자비한 자연의 힘만큼이나 무서운 것이 힘을 가진 인간과 집단의 무지와 횡포임을 새삼스레 배운다.
하지만 아무리 모질고 황량한 살바람과도 같은 역경이 두 배로 닥쳤다고 해서 그대로 좌절하거나 굴종해버릴 일은 아니다.
부족한 사람끼리는 서로서로 합하고, 현명한 지도자가 나서서 올바른 대비시스템을 구성하고, 사후 점검을 게을리 하지 아니한다면, 그래도 다시 올 가까운 추석쯤엔 모두가 얼싸안고 목놓아 풍년가를 불러 볼 수도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