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의 편집권 독립을 위한 성명서>
부제 : 경향신문의 편집권 독립은 어떠한 경우에도 훼손돼서는 안 된다
최근 경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경향신문이 언론에 대한 전문적인 식견이 없는 민간기업의 전문경영인 출신 사장을 외부에서 영입한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는 경향신문이 경영난을 극복하기 위해 외부의 전문경영인에게 경향신문의 운영을 맡긴 것에 대해서 공감한다. 소유와 경영의 분리라는 측면에서도 긍정한다. 하지만 경향신문은 영리를 추구하는 일반 기업의 성격 과 함께 언론매체라는 사회적 공기로서의 공공성을 추구하는 중요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런 측면에서 접근해 봤을 때 새로 경향신문 사장에 임명된 전문경영인 출신 사장의 요구에 따라 편집국장 직선제라는 편집권의 독립을 담보할 수 있는 제도를 경향신문 편집국 기자들 스스로 포기한 점은 대단히 유감스럽고 개탄스러운 일이다. 편집국장의 직선제가 경향신문의 경영난을 가중시킨 직접적인 요인이 아니라고 보기 때문에 우리 e-옴부지만 일동은 경향신문 사장과 편집국 기자들의 선택에 대해서 더욱더 강한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
더욱이 새로 임명된 사장은 언론에 대한 전문성이 없는 일반기업의 전문 경영인 출신으로 알고 있다. 그러한 사장이 단순히 일반기업의 경영권자로서 기업내의 조직 장악력과 업무의 효율성을 기하기 위해 일반기업과는 또 다른 사회 공익적 특성을 지닌 언론사의 편집국장에 대한 임명권을 요구하고 있다면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언론에 대한 전문성이 결여된 사장이 경영의 핵심주체가 됐기 때문에 경영과 편집의 분리 독립은 더욱더 현실적인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사장이 인사권이라는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서 편집국장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해 경영의 효율성을 담보할 수 있다면 일반기업으로서 경향신문의 경영상태는 호전될 수 있는 긍정적인 측면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경향신문의 또 다른 측면인 언론매체로써 신문의 편집국장이 지향해 나가는 편집권의 독립이 사장의 경영방침에 의해서 훼손될 우려가 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전문경영인 출신 사장이 경향신문의 경영난을 해소 시키고 흑자기업으로 바로잡아 놓는 것은 바람직한 것이다. 하지만 언론이라는 매체의 특성을 지닌 경향신문이 직선제로 선출된 편집국장 체제를 통해서 그 동안 독자들에게 보여줬던 정치권력과 자본과 광고주의 압력에 굴하지 않고 정론의 불편부당한 필봉을 휘두르며 비판적 대안제시를 통해 독자들에게 세상을 바르게 바라보는 안목을 넓혀주는 논조가 편집국장 직선제 폐지를 통해서 훼손된다면 비록 경향신문이 경영상의 흑자를 남기는 기업으로 거듭 태어난다 해도 결코 동의 할 수 없다.
한국의 재벌언론 들을 예로 보면 흑자언론기업이 독자들에게 정론의 논조를 전달해 주지 못하고 있는 것을 우리들은 잘 알고 있다. 흑자언론기업인 우리 한국의 재벌언론 들은 편집권의 독립을 담보할 수 있는 편집국장의 직선제가 아닌 편집국장의 인사권이 소유주에게 있다. 물론 편집국장의 직선제가 꼭 편집권의 독립을 보장해 줄 수 있는 목적 그 자체가 될 수는 없지만 지금까지 한국의 민간 재벌언론사 들의 행태를 보면 소유와 경영과 편집이 언론사 사주 일인에 독점적으로 집중돼 사실상 편집권의 독립을 불가능하게 됐었다는 경험을 경향신문의 과거를 통해 관치신문과 재벌사주체제의 경험을 했기 때문에 경영주의 입김으로부터 자유로운 편집권의 독립을 위해 경향신문 편집국 기자들이 지금까지 직선으로 편집국장을 선출해 왔던 것으로 알고 있다.
독자로서 경향신문이 흑자기업으로 경영상의 건강성을 회복한다면 반대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경향신문이 젊고 강한 신문으로 거듭나기 위해 혁신적으로 도입한 편집국장에 대한 직선제를 외부에서 영입한 전문경영인 사장의 요구에 의해 너무 쉽게 포기하는 것을 보고 경향신문 편집국 기자들에게 독자로서 커다란 자괴 감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경향신문 사장과 편집국 기자들은 편집국장 직선제를 왜 폐지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정당성을 독자들에게 공개적으로 밝혀야 한다.
경향신문이 편집국장 직선제를 포기했다고 해서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방향으로 전개될 것이란 단언은 지금으로서는 하기 어렵다. 하지만, 제도의 후퇴는 개혁의 후퇴로 이어진다고 보는 것이 우리 독자들의 생각이다. 편집국장의 직선제라는 제도가 경향신문의 경영난에 어떠한 부정적 영향을 끼쳤는지 공개해명 해야 한다. 경향신문 사장과 편집국 기자들은 편집국장 직선제 폐지가 경향신문의 경영난 해소를 위해 그렇게 화급을 요하는 것인지에 대해서 독자들에게 명쾌한 해명을 해야 한다. 경향신문 사장과 편집국 기자들이 경영난에 처한 신문사의 경영혁신을 위해 거추장스러운 하나의 규제장치로 편집국장 직선제를 인식하고 폐지했다면 우리는 경향신문 편집국 기자들의 기자정신에 대한 강한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경향신문 기자들이 지금 누리고 있는 언론자유가 어떻게 쟁취 됐는지 한번 심각하게 고민해 봤는지 묻고자 한다. 경향신문 편집국 기자들이 지금 누리고 있는 정치권력과 자본주 등 언론계외부의 물리적 압력으로부터의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암울한 군사독재정권의 어두운 언론탄압의 음지 속에서 일신의 영달을 희생해 가면서 스러져간 당신들 선배 언론인들의 피와 땀과 눈물의 결정체 라는 것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때 경향신문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군사독재정권과 부도덕한 권언유착을 통해 자본과 광고주와 한편이 돼서 독자들의 알권리 보다는 독재정권의 나팔수노릇을 하면서 당신들의 기득권 유지에 언론사라는 매체 영향력을 이용해 온 것 밖에 없었다. 그러한 경향신문의 역사를 보면 여러분들은 현재 경향신문이 누리고 있는 언론자유의 열차에 무임승차 한 것이나 다름없다.
경향신문 편집국 기자들이 지금 전문경영인 출신 사장의 경영상의 필요에 의한 요구에 심각한 고민 없이 쉽게 포기한 편집국장 직선제는 세습족벌 냉전수구언론의 반사회적인 소유와 경영과 편집권의 독점적 권한행사를 통해서 왜곡되고 있는 한국의 언론계 현실에 대한 대안 매체인 희망으로서 경향신문이 새롭게 태어나는 상징적 의미이자 정체성의 본질 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향신문을 사랑하는 독자로서, 또한 언론개혁을 바라는 국민으로서 경향신문이 이번의 사내 변화와 관계없이 대안언론으로서 위치를 계속 다져 나갈 수 있는지 심히 의심스럽다.
밖에는 잘 보이지는 않지만, 경향의 절대적 지지자와 잠재된 의식 있는 젊은 독자들이 함께 지켜보고 있다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경향이 구호답게 '독립언론사' '사원지주 언론사' 그리고 무엇보다도 '젊고 강한 신문'이라는 말이 정말 어울렸고 '작지만 야무지고 올바른 신문'이라는 경향신문에 대한 애정으로 경향신문에 대한 희망을 키워 왔다. 하지만, 현 정부 들어서 경향 기사나 사설이 예전 같지 않음에 실망했으며, 경향신문을 꼭 보아야 한다는 당위성 조차도 점차 줄어들고 있음이 현실 아닌 현실이다. 재벌 출신 사장 영입에 이어 이번 편집국장 직선제 폐지는 경향신문이 정말 어디로 가겠다는 것인지 오리무중하기만 하다.
편집국장 직선제를 너무 쉽게 포기한 경향신문 편집국 기자들에게 경향신문을 통해 바른 언론의 순기능적인 매체영향력을 기대해도 좋은지 감히 묻는다. 경향신문 기자들은 편집권의 독립을 담보할 수 있는 편집국장직선제를 통해서 경영과 편집권의 독립을 담보해야 한다. 그러나 경향 기자들은 스스로 독자들의 기대를 저 버렸다. 마치 타 언론사에 비해 좋은 대우를 받지 못한 경향 기자들이 편집권을 스스로의 포기함으로써 사측의 뜻에 순응하겠다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마치 타 재벌언론처럼 말이다. 편집권독립을 경향이, 경향 기자들 다수가 포기한 데에 대한 설득력 있는 답변을 들을 자격은 우리에게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
독자 없는 신문은 없다. 경향신문을 바라보는 독자들에게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든 경향의 기자들이, 편집국이 개혁을 지속하겠다는 약속을 하기 바란다. 이런 우리의 요구는 경향 기자들을 위한 것도 아니고 그 누구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것도 아니다. 우리는 경향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가지고 있다. 우리의 모든 생각들이 단순한 외부인의 기우에 불과하기를 바란다. 경향에 대한 애정과 희망을 쉽사리 포기하지는 않는다. 앞으로 지켜 보겠다. 경향이 독자를 버린다면 우리 독자들도 경향을 버릴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바란다.
2003. 9. 15
경향신문 독자 대표, e-옴부즈만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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