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대학로 어느 미술관에선 참 이색적인 전시회
하나가 열렸답니다. '너는 어디에 있는가'라는 자못
추상적이고 철학적인 제목의 이 전시는 정상인보다
시각장애인들이 작품들을 훨씬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던 행사였습니다.
전시장 안은 암흑 천지입니다. 암흑 속에 돌과 나무와
스폰지와 브론즈로 된 조각들이 군데군데 놓여있습니다.
관람객은 그저 손끝으로 냄새로 그 작품들을 만져볼 수
밖엔 없습니다. 손으로 체험한 그 작품들은 눈으로
봤을 때보다 훨씬 다양한 상상의 여지를 제공해줍니다.
볼 수 있다는 건 뭘까요. 흔히 "내 눈으로 똑똑이 확인
했다'라는 말이 마치 진실로 향하는 창처럼 우리는
감각 가운데 시각에 의존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더구나
요즘 사람들, 시각적으로 현란하고 눈부신 환경에서
살아가면서 '보는 행위'에 가장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물론, 눈으로 확인하는 것만큼 확실한 경험은
없겠지요. 하지만 보고 싶지 않은 것들을 너무 많이
보게 되면서 우리의 감각은 점점 그 예리함을 잃어
가고, 정신은 피로의 절정으로 치닫습니다.
잠시 눈을 감고, 아니 눈을 뜨더라도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암흑의 공간에서 관객은 시각이 아닌, 오롯이 촉각과
후각만으로 새로운 세계를 체험하게 됩니다.
그 세계 속에서 우리는 무슨 생각과 느낌을 가질 수
있을까요. 시각으로 확보된 대상의 동질한 체험을 넘어
각자 나름의 감각으로 포획된 또다른 나, 또다른 세상
과 마주하는 느낌, 이 전시는 바로 그 낯설고 새로운
체험을 가능하게 해준 보기 드문 기회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