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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사설]균형과 긍정의 대한민국史 복원을 에 대해서

조선 [사설]균형과 긍정의 대한민국史 복원을 에 대해서







(홍재희) ====== 친일 반민족 반민주 반 통일의 냉전 수구적인 방상훈 세습족벌사주체제인 조선일보 사설은





“ 정치학·경제학·사회학·서양사 등을 전공한 40~50대 중견 학자들이 대한민국사를 다시 쓰겠다고 나섰다. 고교 현대사 교육의 좌파 편향성을 점검하고 대안을 제시하기 위한 ‘교과서 포럼’도 추진되고 있다. ”





(홍재희) ====== 라고 주장하고 있다. 정치학·경제학·사회학·서양사 등을 전공한 40~50대 중견 학자들에게 요구한다. 현재 중 .고등학교 교과서에는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일제 식민지 시대에 민족문화운동에 기여한 것으로 왜곡돼 있는데 그점 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부연 한다면 일제가 한국사회에 뿌리깊이 심어놓은 일제식민사관의 학문적 풍토를 먼저 극복해 나가야 한다. 아래 내용은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매국매국적인 친일 반민족 범죄행위가 중 . 고등 학교 교과서에 민족 문화운동에 기여한 것으로 왜곡된 채 잘못 기재된 내용이다.





(1) 한편, 국권침탈과 함께 한국인의 언론·집회·결사의 자유가 박탈되고, 일제의 식민 통치에 항거하는 신문은 모두 폐간되었으나, 3·1운동 이후에는 이른 바 문화 통치에 의해 조선 일보, 동아 일보의 발행이 허가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들 민족지들은 일제의 검열에 의해 기사가 삭제되거나 정간, 폐간, 언론인들이 구속되는 등 온갖 박해를 받았다. (고등학교 국사 하권 172쪽 중간 - '우민화 정책과 언론정책' 중에서)



(2)민족 신문인 조선 일보와 동아 일보는 민족 실력 양성 운동에 앞장섰다. 물산 장려 운동을 홍보하고 모금 운동에 앞장 섰으며, 여러 가지 행사를 주관하여 사회·문화 발전에 큰 공헌을 하였다. 이들 언론의 활동에 대해서 일제는 기사의 검열과 삭제, 휴간 및 정간 등의 갖은 탄압을 가하였다.

(중학교 국사 하권 145쪽 아랫쪽 - '민족실력 양성운동' 중에서)



(자료출처 = 안티조선 우리모두 홈페이지)









(홍재희) ====== 위에 나와 있는 내용만 보면 중 . 고등학교 학생들이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민족실력 운동에 앞장선 것으로 잘못 이해 할수 있도록 왜곡돼 있으나 조선일보는 우리민족의 소중한 얼과 정신이 담긴 한글로 일본왕과 일제 식민지 통치에 충성을 다바치는 반민족적인 논조를 통해 한민족에게 조국과 민족의 독립의지를 심어주기 보다 식민지통치에 대한 항거불능의 패배주의를 심어 주고 일제 식민지 체제에 한민족의 정신과 육체를 동화시키는 범죄적 행위를 오랜기간동안 자행했다.





(홍재희) ====== 일제당시 조선일보 방응모 사장은 일본군과 맞서 싸우는 미군과 한민족의 아들 딸들인 독립군을 무찌르라고 고사포를 직접 구입해 헌납하기도 했다. 방씨족벌이야말로 한국사회 반미세력의 원조이다. 그런 조선일보가 민족실력양성운동에 앞장섰다고 대한민국의 중 . 고등학교 국가교과서에 기술돼 있는 것은 조선일보가 일제시대의 반민족 범죄행위에 이어서 민족을 두 번 욕보이는 것이다. 아래내용은 조선일보의 친일 반민족 보도내용이다.







조선일보는 창간 81돌을 맞아 지난 2~7일 5회에 걸쳐 쓴 `조선일보 사장 열전', 8~19일 8회에 걸쳐 쓴 `명기사 명사설'을 통해 조선일보의 일제하 행적을 `반일'에 맞춰 보도했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이 특집에서 그들의 다른 면, `항일'의 역사와는 비교할 수 없이 길고 진한 친일의 어두운 그림자는 가리고 보여주지 않았다. 역사를 외눈이 아닌 두눈으로 바로 보기 위해서는 의도적으로 지워 없앤 친일역사를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진실은 조선일보가 일제강점기에 썼던 기사와 논설에 그대로 남아 활자로 보관돼 있다.



“춘풍이 태탕하고 만화가 방창한 이 시절에 다시 한 번 천장가절(天長佳節)을 맞이함은 억조신서(億兆臣庶)가 경축에 불감(不堪)할 바이다. 성상 폐하께옵서는 육체가 유강하옵시다고 배승하옵는바, 실로 성황성공(誠惶誠恐) 동경동하(同慶同賀)할 바이다. 일년일도 이 반가운 날을 맞이할 때마다 우리는 홍원한 은(恩)과 광대한 인(仁)에 새로운 감격과 경행이 깊어짐을 깨달을 수가 있다.”



봉건시대에 신하가 임금에게 올린 글이 아니다. 조선일보가 1939년 4월 29일치 사설(^6g전문 3면^bm)에 당시 일왕 히로히토의 생일(천장절)을 맞아 쓴 생일축하문이다. 스스로를 낮추는 어미 `옵'자를 남발하며 비굴하게 몸을 굽힌 이 글은 신문의 사설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극심한 `일왕 찬가'다. `황공'도 모자라 `성황성공'이라 하고, `경하'도 부족해 `동경동하'라 하며, `충성'도 양에 차지 않은 듯 `극충극성'(克忠克誠)이라 하고 일왕을 `지존'(至尊)이라고까지 부르는 이 사설이 `민족지' 조선일보에 버젓이 게재된 것이다.



조선일보의 친일 기사·사설은 일제 말기에 한정되지 않는다. 1920년대 4차례 정간조처를 당하고, 민족주의·사회주의 계열의 항일언론인이 축출된 뒤 조선일보의 필봉은 무디어지고 꺾여나갔다.



1932년 1월 8일 발생한 `폭탄 테러'를 조선일보는 호외로 보도한 데 이어 10일치 1면 머리로 이 사실을 자세히 알렸다.



“천황 폐하께옵서 육군관병식행행으로부터 환행하시는 어료차(천황의 마차)에, 노부(천황의 행렬)가 앵전 문앞에 이르렀을 때에 어경위 사고가 발생하였다. 어료차에 이상이 없어 오전 11시 50분 무사히 궁성에 환행하시었다.”



이 기사는 “천황 폐하 환행도중/노부에 돌연 폭탄을 투척/8일 오전 동경 경시청 앞에서/어료차 별무이상'이란 제목으로 보도됐으며, 기사 말미에 “범인은 …조선 경성생 이봉창(32)”이라고 썼다. 국내외 조선인의 독립의지를 드높인 이봉창 의사 폭탄 투척 사건을 조선일보는 이렇게 보도했다. 일제의 편에 서서 이 의사를 `범인'이라고 딱지붙인 것이다. 1932년께에 이미 조선일보는 친일 노릇을 마다지 않은 것이다. 이 사건을 항일투쟁사건으로 규정해 특종 보도한 것은 우리의 `민족지'들이 아니라 중국의 <국민신보>였다.



1933년 계초 방응모가 조선일보를 인수한 뒤, 그리고 1937년 중일전쟁 발발을 앞두고 조선일보의 친일보도는 그 도를 한층 더해간다. 이런 사실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37년 1월1일치 1면이다. 이날 조선일보는 일왕 부부의 사진을 1면에 크게 실었으며 1면에 총독의 새해기념사와 휘호를 실어 지면 변화의 획을 그었다. 조선일보는 이후 해마다 1월1일치 1면에 일왕 부부의 사진을 커다랗게 실었다.



이에 앞서 조선일보는 1936년 12월 13일치 사설(`조선사상범 보호관찰령')에 이런 내용을 담았다.



“조선사상범 보호관찰령은 사회개조를 목적으로 한 사상범을 대상으로 하는 법령인 만큼 사회적 의의가 크다고 할 것이다. …운용을 잘못하면 점차 몰락의 길을 걸어가는 사상운동에 도발적 반동기운을 조장할 수도 있다는 점을 충분히 인식할 필요가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항일 독립투쟁을 말살하기 위해 일제가 만들어낸 이 악법에 대해 조선일보는 법령의 본질을 덮어둔 채 그 사회적 의의를 강조하면서 그 운용의 묘만을 거론한 것이다.



1937년 7월 `중일전쟁'이 나자 조선일보는 마침내 일본군을 `아군' 혹은 `황군'으로 표기하기 시작했다(1937년 7월 19일).



8월 2일에는 사설(`총후(후방)의 임무―조선군사후원연맹이 목적')에서 “제국 신민으로서 응분의 의무와 성의를 다하고자 시국대책을 강구 실시하고 있는 중 조선군사후원연맹은 그 가장 중요한 것의 하나”라고 주장하면서 “황군의 사기를 고무 격려하는 것”이 후원연맹의 중요 임무라고 강조하면서 이렇게 썼다.



“요는 국민 각 개인은 각각 힘자라는 데까지를 목표로 하고 응분의 성의를 다하는 데 있을 것이다. 있는 이는 있는 이대로 기만원을 내는 것도 총후의 임무요, 출정장병을 향하여 위로 고무 격려의 편지 한장 보내는 것도 총후의 임무일 것이다.”



조선일보는 일본의 중국 침략으로 전선이 확대돼 전쟁자금이 부족하게 되자 8월 12일 아예 조선동포들에게 국방헌금을 내도록 독려하는 `사고'를 낸다. 이 사고는 신문사와 사원들의 헌금 솔선을 밝히면서 “북지사변(중일전쟁) 발발 이래 민간의 국방헌금과 군대위문금은 날로 답지하는 형편인데 본사에서는 일반 유지의 편의를 위하여 이를 접수 전달하려 하오니 강호 유지는 많이 분발하심을 바랍니다”라고 돼 있으며 이후 고정란으로 실린다. 헌금이란 이름의 재산수탈이 시작된 것이다.



조선일보 37년 12월 12일치는 “황군의 신속한 행동으로 단번에 지나 수도 남경을 무찌르게 됐다는 전선뉴스가 보도된 지 불과 수일에 이제 최후의 공성으로 단말마적 저항을 계속하던 남경성도 10일 밤으로 완전 함락을 보게 됐다”며 30만명을 학살한 일본군의 난징 공략을 우리의 승리인 양 축하하고 있다.



38년 1월 1일 조선일보는 1면에 일왕 부부의 사진과 함께 미나미 지로 총독이 제창한 내선일체를 미화하는 특집기사를 싣는다.



“그 다음에 미나미 총독의 새 표어로 제창된 것이 내선일체이다. 일선동화도 내선융화도 옛말로 돌린 내선일여에서 내선일체로 재전환한 것이다”



신문 제호를 가려 놓으면 어느것이 `민족지'이고 어느것이 총독부 기관지인지 구분키 어려울 정도로 논조가 친일로 치달은 것이다.



이해 4월 일제는 38년 4월 육군특별지원병제도를 만들어 조선의 젊은이들을 침략전쟁의 총알받이로 내몰기 시작했다. 38년 6월 15일 조선일보는 육군지원병훈련소의 개소를 맞아 사설과 1면 머릿기사로 “조선통치사의 한 신기원을 이룩한 것”이라 묘사하며 황국신민된 감격에 넘쳐 “황국에 대하여 갈충진성(竭忠盡誠)을 다할 것”을 촉구한다.



다시 중국침략 1돌을 맞은 38년 7월 7일 조선일보는 이를 기념하여 사설·머릿기사 등 전 지면을 동원해 “열철일타의 일본혼이 총후국민의 의력과 같이 동아의 신질서 건설의 발단을 만든 국민감격의 기념일인 7월 7일을 맞이하여 전 조선의 도시 농산 어촌에 들끓는 총후 황국신민의 …물적 심적 총동원의 체제는 귀한 호국의 영령에 바치는 조의와 출정 장병의 신고를 생각케 하는 뜻깊은 여러가지 행사”라고 보도했다.



그리고 폐간 4개월 전인 40년 4월 조선일보는 일왕 생일을 맞아 이제껏 신민(臣民)이라고 하던 조선 백성을 신자(臣子)로 불렀다.



“황공하옵게도 천황 폐하께옵서는 이날에 제 39회의 어탄신을 맞이하옵시사 …억 신자(臣子)의 충심으로 흥아성업도 황위하에 일단은 진척을 보아 선린의 새 지나 국민정부가 환도의 경축을 하는 이때에 이 아름다운 탄신을 맞이한 것은 더욱 광휘있고 경축에 불감할 바이다.”



그리하여 조선 백성은 일거에 일왕의 자식이 돼 버렸다.



이처럼 극한 친일행각에도 불구하고 40년 8월 11일 조선일보는 폐간된다. 폐간과 관련해 <조선일보 80년사> 발간사에서 방상훈 사장은 “민족지들이 친일을 했다면 일제가 왜 폐간을 했겠느냐”고 따지듯 물었다.



그러나 일제가 조선일보를 폐간한 주된 이유는 1938년 공포된 국가총동원법에 따른 물자절약 및 조선어 말살 차원에 있었다. 이는 폐간사에서 “동아 신질서 건설의 성업을 성취하는 데 만의 일이라도 협력하고자 숙야분려한 것은 사회 일반이 주지하는 사실”이라고 밝힌 데서도 조선일보가 무슨 항일을 해서 폐간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조선일보는 폐간 보상금으로 매일신보와 총독부로부터 각각 20만원과 80만원을 받았다. 당시 가미가제 전투기 한대가 10만원이었음을 보면 작지 않은 돈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조선일보의 친일행위는 폐간으로 끊어진 것이 아니었다. 방응모는 1935년 창간한 조선일보의 자매지 <조광>(<월간조선>의 전신)을 본격적인 친일 잡지로 개편해 총독부의 요구에 부응했다. 그것은 40년 11월 창간 5돌을 맞아 “이 역사적 대변혁기에 그때 그때 본지에 허여된 직책을 다하기에 미력을 다해왔다”고 자평하면서 “자유주의 개인주의를 지양하고 일로 전체주의적인 방향으로 향하여 이 국책과 신문화정책에 따라 시국을 일신시키는 데 일단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밝힌 데서도 확인된다.



조광이 말하는 `미력'과 `일단의 노력'이 무엇을 뜻하는지 보자. 조광 40년 3월호는 “일본제국과 천황에게―성은 속에 만복적 희열을 느끼며”라는 제하의 권두언을 내보내고 이어 7월호에서는 “만세 일계의 황통을 이으옵신 세계 무비의 깨끗하옵신 역사를 가진 우리 일본 황실의 번영이 이처럼 날로 점앙하는 것은 위로 성명(聖明)하옵신 천황폐하를 모시옵고 아래로 국민이 일치단결 국운의 번영을 꾀한 때문일 것”이라고 했다.



이해 10월호에서는 일제의 조선통치 30년을 기념하면서 “지금부터 만 30년 전 일한 양국은 드디어 양국의 행복과 동양 영원의 병화를 위해 양국 병합의 조약을 체결”했다고 경술국치를 왜곡했다. 또 “데라우치 총독은 조선통치의 대본을 정하여 창업의 토대를 쌓은 위대한 공적을 남겼다”고 무단통치의 장본인을 찬양하였다. 뿐만 아니라 7명의 총독이 “오늘날과 같은 문화조선건설을 결실시켰다”고 떠받들고, 나아가 “중대 시기인 이때를 당하여 2300만 반도 민중은 한결같이 내선일체의 실(實)을 거하여 황국신민된 책임을 다하지 않으며 안 될 것”이라고 친일매국을 독려했다.



41년 신년호에서는 다음과 같은 헌사로 황실에 대한 충성을 표시한다. “서기 넘치는 신년을 맞이하여 천황 폐하, 황후 폐하의 성수무강하옵시기를 충심으로 비옵는 동시에 황태자 전하, 의궁 전하, 희궁 효궁 순궁 천궁 사내친왕 전하께옵서도 어건강하옵시기 삼가 비는 바입니다.”



이어 2월호 사설에서는 `쌀을 갖다 바칠 것'을 독려하고 나섰다.



“내 손으로 지은 쌀을 내 마음대로 소비하고 처분할 수 있는 것이 구체제라면 내 손으로 지은 쌀, 내 자본으로 만든 물건을 모두 들어 나라에 바치고, 그 처분을 바라는 것이 신체제요, 총력 운동이요, 또 신절을 다하는 소이이기도 하다.”



이 사설이 나갈 즈음 일제의 조선 곡물 수탈은 한층 도를 더한다. 1941년 쌀 수확량의 43.1%였던 일제의 수탈률은 1944년에 이르면 63.8%까지 올라간다. 먹을 것이 없는 조선의 민중은 말 그대로 초근목피로 연명했다.



<조광> 친일 기사·논설은 끝이 없다. `해군특별병 지원제도의 광영'(43년 6월호)에 감격하고 징병제 실시에 감사드리다가(43년 8월호), 44년 8월호에서는 조선인의 일본어 해독률(36%)이 “대만의 일본어 해독자 6할에 비하면 훨씬 뒤떨어진 것”이라고 개탄하면서 `일본 정신 체득을 위해서 국어(일본어)가 각 가정에까지 침투되도록 전사회적으로 일대 운동을 전개해야 한다'라고 외치고 나섰다.



그런데도 <월간조선>은 창간호 편집후기에서 월간조선이 “일제치하 조선의 광명으로서 겨레의 어둠을 밝혔던 조광”의 후신이라고 자랑스럽게 강조했다.



조선일보는 지난해 7월11일치 사설에서 조선일보를 반통일신문이라고 비판하는 국내외의 주장을 반박하며 “조선일보는 어떤 협박에도 길들여지지 않는다”라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일제 강점기 그들의 친일은 길들여진 결과가 아니라 `자발적 선택'이었단 말일 것이다.



특별취재팀



[언론권력] 어린영혼까지 물들인 '소년조선'

일왕 히로히토의 생일(천장절)을 하루 앞둔 1939년(소화 15년) 4월28일치 <소년조선일보> 2면의 일왕비 찬양 기사(◀사진). <조선일보>는 어른들이 보는 신문으로도 모자라 어린이들의 신문에까지 일제를 찬양하는 기사를 실어 조선의 어린 정신들을 더럽혔다. 다음은 이 기사의 전문이다.



`황후 폐하께옵서 상병에게 화초를 어하사'



황후 폐하께옵서는 출전해서 다치고 온 부상병을 염려하옵시고 그들에게 황송하옵게도 신숙어원(新宿御苑)에서 기르옵신 화초씨를 내리셨습니다. 씨앗은 나팔꽃 공작꽃 같은 것 외에 마흔몇 가지이고 또 `달리아' 같은 구근(球根)도 십여종이라 합니다. 어(御·단어의 뜻을 높이기 위한 접두어) 인자하심에 감격해서 삼도군사보호원 부총재(三島軍事保護院 副總裁)는 지난 십구일에 참내 씨앗과 구근을 배수하고 각 요양소에 광영을 분배하였다 합니다.

[언론권력] 1939년 4월29일 1면 사설 전문

<조선일보>가 1939년 4월29일 1면 머리로 실은(사진) 대표적 친일사설 `봉축 천장절' 전문을 소개한다. 한자와 옛 문체로 된 것을 요즘 말로 옮겼다.

편집자



봄바람이 화창하고 온갖 꽃이 흐드러진 이때에 다시 `천장절'을 맞아 억만 신하와 서민은 경축하는 마음 감히 감당하지 못할 바이다. 성상폐하께옵서 옥체 강녕하시다는 말씀 우러러 받드옵는 바 실로 다같이 황공하옵고 축하할 바이다. 해마다 이 반가운 날을 맞이할 때마다 우리는 크나큰 은혜와 어짊에 새로운 감격과 기쁨이 깊어짐을 깨달을 수가 있다. 뿐만아니라 정성을 다하여 나랏일을 하고, 충성과 의리를 다하여 한마음으로 나라를 받들고자 하는 굳은 결심을 금할 수가 없는 것이다.



때마침 중국사변(중일전쟁) 제3년의 오랜 파괴와 건설이 병행하는 중에 있어 지극히 높은 임(지존·천황)의 하루 일을 우러러 받들면, 만가지 정무를 다스리옵심은 물론, 중대한 군무에까지도 마음을 쓰시옵는다는데, 이는 바로 제1전선의 빛나는 무훈에다 나라 위세가 높이 드날림으로 나타나도다. 이것이 임(천황)의 위세로부터 나온 것임을 되새기면 실로 황공무지하여 감격을 이기지 못할 바이다. 신민 두루 성스러운 뜻을 받들어 오래오래 사실 것을 축하하옵는 동시에 만백성이 한마음으로 지극한 충성으로 위로 성스러운 마음에 보답하고, 아래로 어려운 시국에 대처하여 새로운 동아시아 건설의 성업을 수행하여야 할 것이다. 이것이 `천황'의 나라 일본의 위광을 한층 더 온 세상에 빛나게 하는 길이요, 또 신민의 당연한 의무일 것이다. 이날을 맞아 `천황'의 무강과 황실의 광영을 봉축하면서 끝으로 우리가 행복스러워하는 까닭임을 강조하여 둔다.





(자료출처 = 안티조선 우리모두 홈페이지)





(홍재희) ====== 위에서 살펴본바와 같이 민족반역의 반인륜적인 범죄행위를 저지른 방씨족벌 조선일보가 일제 시대에 마치 민족문화발전에 기여한 것 처럼 묘사돼 있는 중 . 고등학교 국가교과서에 대해서 정치학·경제학·사회학·서양사 등을 전공한 40~50대 중견 학자들은 학자적 양심을 걸고 바로잡아 놓아야 한다. 이러한 현대사바로쓰기 문제는 진보인가 보수인가 전통주의인가 수정주의인가의 각기 다양한 성향을 떠나 진실을 있는 그대로 알리고 교훈적으로 가르친다는 순수한 교육적 차원에서 바로 잡아 놓아야 한다.







(홍재희) ======방씨족벌 조선일보의 반민족 범죄 행위가 한민족의 독립의지를 오히려 꺾고 일제 식민지에 대한 민족정통성 회복차원의 정당한 저항조차 불가능한 상태의 패배주의를 심어주는 데 기여한 방씨 족벌 조선일보의 반민족 범죄 행위를 이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이 바로알고 다시는 그런 비극적인 반민족 행위가 재현되지 않도록 하는 교육적 접근이 가능한 역사바로 잡기를 해놓아야 한다.







조선사설은





“ 이 일을 주도하고 있는 학자들은 대학시절 좌파 수정주의 사관의 영향을 직·간접으로 받았고, 한때 이에 심취하기도 했던 이들이다. 그들이 강단과 사회 현장에서의 체험을 통해 수정주의사관의 오류를 몸소 확인하고 이를 바로잡으려 나섰다는 점에서 이번 ‘역사 다시쓰기’는 그 의의가 크다.”





(홍재희) ====== 라고 주장하고 있다. 학자들이 고교 현대사를 바로잡는 의미로 접근한다면 일제 식민지시대의 상황과 일제 패망이후 한반도를 미국과 구소련(러시아) 이 강제로 분할 점령하면서 민족비극의 분단고착화 정책을 통해 오늘에 이르기 까지 한반도에 대한 기득권을 배타적으로 행사하고 있는 미국의 국제정치적 역할과 한반도 분단 고착의 책임 부분에 대해서도 분명하게 시시비비를 가리는 학술적 노력이 절실하다. 그런 객관적 현대사 서술은 전통주의나 수정주의사관을 초월해서 접근할 문제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역사 다시쓰기가 아니라 역사 바로 쓰기이다.







조선사설은





“ 지금 대한민국의 역사는 말이 아닌 대접을 받고 있다.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한 역사”라는 국정 최고책임자의 대한민국 역사에 대한 해설이 대한민국사가 겪고 있는 오늘의 참상을 잘 설명해주고 있다. 자라나는 세대들을 가르치는 현대사 교과서는 대한민국을 태생적으로 잘못 태어난 국가처럼 기술하고 있다. 우리가 허리띠 졸라매고 땀 흘려가며 나라를 일으켜온 자랑스런 성취의 기록은 찾기 어렵다. 반면 50년 넘게 부자(父子) 세습 독재체제를 유지하며 인민을 헐벗고 굶주리게 만든 북한 정권에 대해선 이상할 정도로 관대하다. 한마디로 자학사관(自虐史觀), 오욕(汚辱)사관, 부정(否定)사관, 불균형(不均衡)사관만이 활개를 치고 있는 것이다. TV가 앞장서서 온 국민들을 향해 가르치려들고 있는 대한민국 역사가 바로 이런 역사다. 국민들로서는 “나는 누구이고, 지금 어디에 있는가, 내가 살아온 역사가 과연 옳은 역사인가” 하는 정체성의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





(홍재희) ======= 라고 주장하고 있다. 조선사설은 “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한 역사”라는“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한 역사”라는 국정 최고책임자의 대한민국 역사에 대한 해설이 대한민국사가 겪고 있는 오늘의 참상을 잘 설명해주고 있다. 국정 최고책임자의 대한민국 역사에 대한 해설이 대한민국사가 겪고 있는 오늘의 참상을 잘 설명해주고 있다. “ 라고 주장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을 조선사설이 비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한 역사”라는 대통령의 말은 옳고 또한 사실이다.





(홍재희) ===== 방씨 족벌 조선일보의 경우를 보라? 일본왕과 일제식민지 지배체제에 충성을 바다치기위해 민족의 얼과 정신이 담긴 소중한 한글로 일제를 칭송하는 신문을 발행해 우리민족의 나이어린 딸들과 아들들인 학생들을 일제의 성노리개인 종군위안부와 학도병으로 내몰며 반민족적인 패륜행위를 하고도 지금까지 반성하거나 속죄하기는 커녕 오히려 민족 정론지라고 큰소리 치고 있지 않은가? 어디 그뿐인가? 일제에 충성을 맹세하는 반민족 의 한글신문을 찍어냈던 일제시대의 조선일보를 인쇄했던 친일 윤전기를 천안에 있는 천안 독립기념관에 10 여년 이상동안 아무 거리낌없이 버젓이 전시하고 있다가 언론개혁시민단체인 조아세의 노력으로 지난해에 천안독립기념관에서 철거 됐다. 방씨족벌 조선일보가 이렇듯이 파렴치하다.







(홍재희) ====== 방씨족벌 조선일보를 비롯한 일제에 부역했던 반민족자들이 언론계 뿐 만 아니라 대한민국 건국과정에 깊숙이 개입해 독립운동에 기여한 애국애족지사들을 홀대하고 대한민국 사회의 주류를 이루며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한 역사”를 오늘에 이르기 까지 고착화 시켰지 않았는가? 그런사실을 있는 그대로 얘기한 것이 문제가 될 수 있을 까?







(홍재희) ====== 조선사설은“ 자라나는 세대들을 가르치는 현대사 교과서는 대한민국을 태생적으로 잘못 태어난 국가처럼 기술하고 있다.” 라고 주장하고 있다. 대한민국이 태생적으로 잘못 태어난 것처럼 기술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건국과정에 기회주의적이고 반민족적인 집단들이 상당한 역할을 했다는 사실적 기술로 봐야 한다. 그런 기술을 통해 건국과정의 부끄러운 치부는 대한민국 체제의 건강성을 위해서라도 오늘이라도 털고 가야 한다. 무엇이 문제인가?





(홍재희) ===== 조선사설은 “ 우리가 허리띠 졸라매고 땀 흘려가며 나라를 일으켜온 자랑스런 성취의 기록은 찾기 어렵다. ” 라고 주장하고 있다. 우리가 허리띠 졸라매고 땀 흘려가며 나라를 일으켜온 자랑스런 성취감은 우리국민 개개인의 삶이 과거에 비해서 월등히 향상된 것에서 실사구시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조선일보의 눈에는 그것이 보이지 않는가? 이러한 자랑스로운 성취는 우리국민들 모두의 노력의 결과이지 이승만 독재체제나 박정희 군사독재체제의 힘으로 성취된 것이 절대 아니다. 조선일보가 기여한 것도 없다. 조선일보는 왜곡하지 마라?







(홍재희) ====== 뿐만 아니라 이땅의 민주주의가 이만큼이나마 뿌리내린것도 이승만 . 박정희 군사독재체제의 공이 아닌 우리 풀뿌리들의 노력에 의해서 이땅의 민주화가 이만큼 진전됐다. 조선일보가 기여한 것은 전혀 없다. 방씨 족벌세습사주체제의 조선일보는 한국의 민주화와 언론자유를 유린하는 가해자의 역할을 박정희 . 전두환 . 노태우 군사독재정권과 권언유착을 통해 적극적으로 해오다가 우리 풀뿌리들의 힘으로 성취한 한국의 민주화와 언론자유의 열차에 무임승차했다. 조선일보 할말 있는가?





(홍재희) ====== 조선사설은 “ 반면 50년 넘게 부자(父子) 세습 독재체제를 유지하며 인민을 헐벗고 굶주리게 만든 북한 정권에 대해선 이상할 정도로 관대하다. ” 라고 주장하고 있다. 누가 관대한가? 조선일보는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아라. 일제 식민지 체제도반대하고 군사독재체제도 반대하면서 공산주의 일당독재체제를 아무 거리낌없이 지지하는 사람은 현실적으로 없다. 다만 미국과 조선일보식으로 일방적으로 북한체제를 압박하는 방법으로 지난 반세기 이상동안 남북이 적대적 공존체제를 유지해온 결과가 민족의 공멸을부를수도 있는 핵의혹 문제로 까지 확산되고 북한동포들의 삶의 질을 더욱더 악화 시키는 역작용을 파생시켰다.







(홍재희) ===== 그런 방법이 결코 한반도 평화와 민족화해협력을 통한 민족 통일에 걸림돌이 된다는 현실을 직시하고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공존공영의 관계를 만들어 가며 단절과 분단을 극복하기위한 대화와 협력의 파트너로 북한체제를 상대하고 있는 시대적 변화까지 조선일보는 못마땅해 하면서 왜곡하고 있다.







(홍재희) ====== 우리가 북한체제를 대화파트너로 인정하고 화해협력의 파트너로 인정하는 것은 북한과 남한이 상호 이해의 폭을 넓히고 민족의 공존공영을 위해 이시대가 지향하고 있는 세계적인 보편적 차기에 한발 한발 다가서는 노력이 한민족을 위해 이 시점에서 가장 바람직한 방법이기 때문에 관계를 새롭게 정립해 나가는 것이다. 북한체제가 금강산을 개방하고 휴전선 부근의 개성에 대규모 공업단지를 조성하며 남북으로 끊어진 철길과 국도와 하늘길과 바닷길을 잇고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가시적 변화를 보이고 있는데 우리가 그런 북한체제의 평화적인 노력을 거부하고 북한체제와 전쟁을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조선일보 안 그런가?







(홍재희) ====== 말이야 바른말이지 한민족이 북한과 남한의 이질적인 두개의 정치체제로 분단된채 존재하게된 근원적 뿌리는 미국과 구 소련의 한반도 분단이다. 이 시점에서 조선일보가 북한체제의 모순을 비판하기 에 앞서 한반도 분단의 원인제공자인 미국에 대해서도 분명히 책임을 물어야 한다. 원인 없는 결과 없듯이 미국의 한반도 분단구도가 존재하지 않는데 남북한이 존재할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홍재희) ====== 할말을 한다는 조선일보, 비판신문이라고 자칭하고 있는 조선일보는 미국의 한반도 분단책임에 대한 비판의 논조를 독자들에게 전혀 보여주지 못하고 비판신문이요 . 할말은 하는 신문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전혀 설득력이 없다. 조선일보는 인식의 폭을 넓혀 긴안목으로 한반도 상황을 조명해 보아야한다.





(홍재희) ===== 조선사설은 “ 한마디로 자학사관(自虐史觀), 오욕(汚辱)사관, 부정(否定)사관, 불균형(不均衡)사관만이 활개를 치고 있는 것이다. TV가 앞장서서 온 국민들을 향해 가르치려들고 있는 대한민국 역사가 바로 이런 역사다.” 라고 주장하고 있다. 대한민국 건국과정에 찌든 반민족 반민주 반통일 반인권적인 요소들을 찾아내 극복하고 청산해 나가는 문제를 조선일보는 자학사관(自虐史觀), 오욕(汚辱)사관, 부정(否定)사관, 불균형(不均衡)사관으로 매도하며 왜곡하고 있다.







(홍재희) ===== 조선일보가 그런 시각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민주주의정치의 건강한 체제발전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악성종양이라고 볼수 있는 국가보안법을 유지하는데 찬성하고 있다고 본다. 대한민국 역사 속에 내재돼 있는 반민족적 흠집이나 반민주적 정체성이나 반인권적인 관행같은 흠결은 털고가는 것이 대한민국의 체제 건강성을 담보하는 힘이 된다. 반민족적인것 반민주적인 것 반인권적인 것 반통일적인 것을 청산해 나가는 것이야말로 무엇이 옳은 역사인가를 바로 인식시키는 데 기여하는 것이다.







조선사설은





“ 이제 양식있는 학자들이 나서서 과감하게 수정주의 사관의 폐기 선언을 해야 할 때가 됐다. 역사 서술이 이념의 노예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균형과 사실 인식이 생명이다. 대한민국을 만들고 대한민국을 지키고 대한민국의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들의 역사인식을 반영한 진정한 대한민국사가 나와야 한다.”





(홍재희) ======== 라고 주장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헌법전문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받는다고 명시돼 있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또한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돼 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 은 민족정통성과 민주주의 그리고 인권의 가치기준으로 접근해 봤을때 한점 부끄러움없는 정체성을 지녀야한다는 것은 명백 하다. 그렇기 때문에 정통주의나 수정주의냐의 사관의 차이를 초월해서 민족정통성과 민주주의 신장 그리고 인권의 가치를 바로 잡는 노력을 통해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 당당한 대한민국 . 문명을 지향하는 세계 시민으로서 부끄러움 없는 대한민국 국민들의 자존심을 살려 나갈수 있는 대한민국사가 나와야 한다.







[사설]균형과 긍정의 대한민국史 복원을(조선일보 2005년 1월7일자)





정치학·경제학·사회학·서양사 등을 전공한 40~50대 중견 학자들이 대한민국사를 다시 쓰겠다고 나섰다. 고교 현대사 교육의 좌파 편향성을 점검하고 대안을 제시하기 위한 ‘교과서 포럼’도 추진되고 있다.



이 일을 주도하고 있는 학자들은 대학시절 좌파 수정주의 사관의 영향을 직·간접으로 받았고, 한때 이에 심취하기도 했던 이들이다. 그들이 강단과 사회 현장에서의 체험을 통해 수정주의사관의 오류를 몸소 확인하고 이를 바로잡으려 나섰다는 점에서 이번 ‘역사 다시쓰기’는 그 의의가 크다.



지금 대한민국의 역사는 말이 아닌 대접을 받고 있다.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한 역사”라는 국정 최고책임자의 대한민국 역사에 대한 해설이 대한민국사가 겪고 있는 오늘의 참상을 잘 설명해주고 있다. 자라나는 세대들을 가르치는 현대사 교과서는 대한민국을 태생적으로 잘못 태어난 국가처럼 기술하고 있다. 우리가 허리띠 졸라매고 땀 흘려가며 나라를 일으켜온 자랑스런 성취의 기록은 찾기 어렵다. 반면 50년 넘게 부자(父子) 세습 독재체제를 유지하며 인민을 헐벗고 굶주리게 만든 북한 정권에 대해선 이상할 정도로 관대하다. 한마디로 자학사관(自虐史觀), 오욕(汚辱)사관, 부정(否定)사관, 불균형(不均衡)사관만이 활개를 치고 있는 것이다. TV가 앞장서서 온 국민들을 향해 가르치려들고 있는 대한민국 역사가 바로 이런 역사다. 국민들로서는 “나는 누구이고, 지금 어디에 있는가, 내가 살아온 역사가 과연 옳은 역사인가” 하는 정체성의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이제 양식있는 학자들이 나서서 과감하게 수정주의 사관의 폐기 선언을 해야 할 때가 됐다. 역사 서술이 이념의 노예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균형과 사실 인식이 생명이다. 대한민국을 만들고 대한민국을 지키고 대한민국의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들의 역사인식을 반영한 진정한 대한민국사가 나와야 한다. 입력 : 2005.01.06 18:00 49' / 수정 : 2005.01.06 18:51 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