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사설]한 해를 보내는 국민의 마음 에 대해서
(홍재희) ====== 여러분 올 한해 고생 많으셨습니다. 밝아오는 새해에는 희망찬 아침을 알리는 새벽 장닭의 우렁찬 목소리처럼 역동적인 한해의 주인이 되십시오. 여러분 가정 마다 두루두루 행운이 가득하시구요.
(홍재희) ===== 친일 반민족 반민주 반 통일의 냉전 수구적인 방상훈 세습족벌사주체제인 조선일보 사설은
“ 한국갤럽이 작년 이맘때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국민들은 으뜸가는 새해 소망으로 ‘건강’(29%)을 꼽았다. 2위는 ‘소득’(27%)이었다. 재작년 조사에서 ‘건강’과 ‘소득’이 35%, 22%였던 데 비해 차이가 많이 좁혀졌지만 ‘돈이 많은들 건강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냐’는 생각이 여전히 우세했었다. 얼마 전 조사된 ‘2005년의 소망’에서는 ‘소득’(38%)이 ‘건강’(26%)을 크게 앞서며 순위가 뒤집혔다. 서민들의 지난 1년은 건강마저 뒷전에 제쳐두게 할 만큼 혹독한 것이었다.”
(홍재희) ======= 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 국민들의 순진한 2004년 에 대한 희망을 무참하게 앗아가면서 대한민국 사회를 분열과 갈등의 소용돌이로 몰고 갔던 집단이 바로 방씨 족벌 조선일보였다. 조선일보는 2004년 새해가 시작되자마자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부추겨 급기야 한나라당이 대통령을 탄핵발의하기에 이르렀다. 조선일보의 주장대로 경제가 가뜩이나 어려운 상황속에서 국민들을 눈꼽 만큼 만이라도 생각했었다면 조선일보가 부추기고 한나라당이 강행처리한 대통령 탄핵을 통해 어려운 국민경제의 회생에 매진해야할 대통령의 정치적 인 손과 발을 조선일보와 한나라당이 3개월 가까이 동안 묶어 놓지는 않았을 것이다.
(홍재희) ====== 조선사설은
“ 거리로 나선 음식점 주인들은 솥단지를 내동댕이치며 “못살겠다”를 외쳤다. 시장 상인은 시찰 나온 여당 지도부의 등에 대고 “소금을 뿌려 버리고 싶다”고 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들에서 ‘올해의 인기검색어’는 ‘로또’였다. 실낱보다 훨씬 가느다란 로또의 희망에라도 기대려는 고달픈 삶들이 많았다. 정치판은 새해를 코앞에 두고서도 난장판과 막말을 쏟아내고 있다. 눈과 귀를 틀어막고 싶을 따름이다.“
(홍재희) ======= 라고 주장하고 있다. 조선일보는 한국경제가 IMF 경제 위기로 휘청거리자 신자유주의적인 경제정책을 주창하며 기업이 노동자들 해고를 자유롭게 하고 비정규직의 기하급수적인 증가를 부추기는 재벌기업들의 주장에 편승해서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주장하며 그렇게 해야 신규고용창출이 잘되고 노동자들이 재취업도 잘된다고 국민들에게 각인시켰다. 그런 조선일보의 주장은 지금 한국경제를 보면 거짓말로 드러나고 있다. 고용없는 성장을 통해 대학을 졸업한 청년실업이 일반 실업의 몇배에 달하고 있다.
(홍재희) ====== 그리고 기업에서 퇴출된 노동자들이 재취업이 불가능하니까 음식점이나 PC방등의 자업 영종으로 한꺼번에 몰려들어 음식점등의 자영업까지 극심한 침체상황으로 내몰리게 돼 솥단지를 들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2005년도에는 솥단지를 들고 조선일보 사옥으로 가서 외치면서 조선일보의 잘못된 여론호도로 인해 멍들고 있는 한국경제의 틀을 바로잡는 각성의 한해가 돼야 한다. 조선일보는 원칙과 상식의 회복을 위한 반칙없는 사회를 지향하기 위해 추진하고 있는 신행정 수도이전 사업을 무력화 시키고 4대 개혁입법등 각종 개혁작업에 대해서 사사건건 발목을 잡으며 공정경쟁이 발붙이지 못하고 반칙이 횡행하는 사회를 지향하며 종이 신문시장에서 조중동이 펼치는 끝 없은 불공정 불법탈법경쟁을 통해 한국사회의 가치관을 거꾸로 물구나무 세우는데 조선일보는 크게 기여했다.
(홍재희) ===== 그렇기 때문에 조선일보의 불공정 반칙경쟁을 보고 듣고 체험하고 있는 국민들이 공정경쟁을 통해 노력한 만큼 보장받는 대가에 기대를 걸지 못하고 한탕주의로 상징되고 있는 ‘로또’복권에 희망을 거는 사회현상을 파생시켰다. 정치 경제등 사회가 극심한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표류하고 있을때 중심을 잡아주어야 하는 집단이 바로 언론이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올 한해 수구정치의 편에 서서 한국사회의 갈등증폭의 소용돌이 한가운데서 한국사회의 변화와 개혁의 발목을 잡는 수구집단의 대표선수 역할에 충실했다. 부연한다면 조선일보는 우리사회의 공기로서 불편부당한 언론의 입장에서 공정한 게임의 규칙을 감시하는 호루라기 부는 역할을 전혀 하지 못했다.
조선사설은
“ 다툴 것은 다퉈야 한다.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놓고 다퉈야 한다. 우리가 보다 나은 미래로 가는 디딤돌을 놓고 미래의 살길을 열어주는 일이라면 이해득실이 다를지라도 공통과제로 삼아 목청껏 주장하고 토론해야 한다. 우리는 미래를 향해 시간을 쏟아야 할 절박한 순간에 과거를 놓고 다퉈왔다. 거기에 대한 찬반에 따라 국민은 우리 편과 남의 편으로 갈렸다. 서울과 지방, 강남과 강북, 수도이전 예정지와 다른 지방, 일류대와 나머지 대학, 386과 반(反)386, 정규직과 비정규직…. 서민들의 속타는 마음에는 아랑곳없이 나라가 갈가리 찢겼다. 무엇이 그리도 분한지 걸핏하면 눈물을 흘리는 정치인들을 보며 국민은 오히려 섬뜩했다.”
(홍재희) ====== 라고 주장하고 있다. 조선일보는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보고 털고 가야할 수도권집중의 불균형발전을 해소하기 위한 미래지향적인 국토의 균형발전 전략인 신행정 수도이전 사업을 서울과 지방, 수도이전 예정지와 다른 지방사이의 갈등을 증폭시키며 무력화 시켰다. 현재 충청남북도에서 조선일보에 대한 불매운동이 요원의 불길처럼 번지고 있는 것을 보면 조선일보가 미래지향적인 대형국책사업을 지역간 갈등과 반목을 부추기며 대한민국 사회를 얼마나 갈기갈기 찢어놓았나를 실사구시적으로 잘 알수 있게 하고 있다. 충청권에서는 현재 조선일보에 대한 구독을 중지하자는 주장이 자연스러운 지역의 여론으로 형성되고 있다고 한다.
(홍재희) ===== 대한민국의 건강한 민주주의를 위해 필요한 국가보안법 폐지문제도 이념갈등으로 색칠하며 반대하고 있는 것이 조선일보이다. 조선일보는 대한민국의 국가적 정체성을 건강하게 회복하기 위한 과거사 진상규명작업에 대해서도 반대하고 발목잡고 있다. 조선일보는 하나같이 시대착오적 시각으로 발목을 잡아왔다. 사회여론을 건강하게 형성하며 통합의 건강성을 견지해야할 조선일보가 올 한해 한국사회의 갈등과 반목을 심화시키는 촉매인자역할을 했다. 우리는 조선일보의 존재이유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하지 않을수 없다.
조선사설은
“ 오가는 말도 거칠고 상스럽고 험해졌다. ‘친미’ ‘수구꼴통’ ‘빨갱이’ 같은 낙인을 상대편 이마에 끊임없이 찍으며 1년을 보냈다. ‘깽판’ ‘양아치’ ‘까불지 마라’ ‘물어뜯어 버리겠다’ 같은 오물투성이 말들이 상할 대로 상한 국민 마음을 더 상하게 했다. 아래에서 위쪽을 향하는 인터넷 언어는 진작에 더럽혀졌지만 나라의 상층부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언어는 더 천박했다. 이렇게 품격 없고 상스럽게 살아서는 소득 2만달러, 3만달러가 된다 해도 세계로부터 제 대접을 받을 수 없다.”
(홍재희) ======= 라고 주장하고 있다. 조선일보 부터 바른언어와 정제된 칼럼과 격조높은 사설내용을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성의를 보여주지 못하고 막말과 육두문자에 가까운 언어의 유회를 통해 우리의 아름다운 모국어인 한글의 품격을 떨어뜨리는 저질사설과 수준이하의 칼럼과 사행성 짙은 황색저널리즘의 극치라고 할수 있는 기사로 올 일년을 거의 도배하다시피했다. 이런 조선일보 기사를 보고 독자들이 과연 무엇을 배웠을까?
(홍재희) ====== 조선일보가 아래에서 위쪽을 향하는 인터넷 언어는 진작에 더럽혀졌다고 하지만 그래도 인터넷 언어는 조선일보 . 중앙일보 . 동아일보로 상징되고 있는 수구집단의 정치적 음모에 반세기 이상동안 정체돼 있는 정치권력의 교체를 통한 사이버 혁명을 통해 한국사회를 지구촌 시대에 적합한 메커니즘으로 바꿔나가는 선구적 역할을 하고 있다. 스스로에 대한 자정능력을 상실한 조중동에 대한 대안언어가 바로 인터넷 언어이다. 조중동보다 더 희망적인 것이 사이버 공간의 21세기적 가치추구이다. 조중동은 본받아야 한다. 언어의 천박성을 극복하려면 조선일보의 언어 표현부터 세탁해야 한다. 조선일보는 현 정권 등장이후부터 지금까지 대한민국 경제가 곧 망할듯한 비관적이고 염세적인 기사로 일관해 왔다. 오죽하면 해외의 경제전문가들이 조선일보를 비롯한 한국언론들이 한국경제에 대해서 필요이상으로 비관적으로 보고 있다고 지적했겠는가? 염세적 사회으름으로 몰고가면 절망속에서 언어의 천박성은 도를 더해갈 수밖에 없다.
조선사설은
“ 민노총, 전교조처럼 바깥과 담을 쌓고 자기네만의 결속을 다져왔던 단체들의 소리가 높았던 1년이기도 했다. 따져 보면 전체 국민 속의 소수에 불과하고 같은 직종 가운데서도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데도 이들의 소리는 전체를 압도했다. 그 내용 역시 국민의 바람과 무관한 것들이었다. 한 해 동안 국민은 못 볼 것을 너무 많이 봤고 못 들을 말을 너무 많이 들었다. 옛 선비처럼 눈과 귀를 씻고 싶을 지경이었지만 그럴 겨를도 없던 한 해였다.”
(홍재희) ======= 라고 주장하고 있다. 조선일보가 비판하고 있는 민주노총 소속 노동자들이 근무하고 있는 자동차회사의 수출이 올해 300억 달러를 넘어섰다. 민주노총 소속 노동자들이 근무하고 있는 한국의 조선소에서 세계 제 1위의 선박 수주율을 기록하며 2위와 3위인 일본과 대만의 선박 수주율을 합친 것 보다 더 많은 선박수주율을 올리며 그나마 한국경제가 5% 가까운 성장과 수출 2500억불 달성과 한국상품의 우수성을 세계에 각인 시켰다.
(홍재희) ==== 그런 노동자들이 모여 있는 민주노총에 비하면 조선일보는 단돈 1달러의 외화도 벌어들이지 못하면서 비싼 외화로 신문용지를 수입해 다가 발행한 무가지를 수도없이 불법으로 살포하며 외화를 낭비하고 있고 지난해에는 조중동이 1100억원에 달하는 불공정 불법 편법 경쟁을 통해 종이신문시장을 혼탁하게 만든 원인제공자 중에 하나인 조선일보가 성실하게 일하고 노력한 만큼 대접해 달라는 민주노총을 비판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민주노총은 건강한 노동을 통해 땀 흘린 만큼의 대가만을 요구하고 있지 않은가? 조선일보의 불공정 반칙경영과 경쟁에 비하면 민주노총은 조선일보에게는 깨끗한 삶의 스승과도 같다.
(홍재희) ===== 전교조도 올여름 일부 사립대학이 수시입시과정을 통해 강남과 비 강남으로 차별적 학생모집의 반교육적 관행을 대한민국사회에 대담하게 자행하고 있는 것에 대한 중요한 의제설정을 해놓고 문제의 심각성을 국민들에게 각인시켜 교육개혁에 선도적인 역할을 하면서 조선일보의 의제설정능력을 무력화 시키는 교육개혁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한국사회에 보여줬다. 뿐만 아니라 전교조 교사들이 지향하는 평준화 교육을 받은 한국의 학생들이 OECD가 실시한 국제학습능력평가대회에서 세계적으로 강력한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는 가운데 세계의 상위권에 올라있는 등 조선일보는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조선일보가 하지 못하고 있는 사회적 모순과 부조리에 대한 지적과 대안제시를 통해 사회적 건강성 지킴이 역할을 하는 것이 전교조와 민주노총이다. 조선일보는 그들을 따라 배워야 한다.
조선사설은
“ 포퓰리즘 정치도 국민의 마음을 황폐하게 했다. 황폐해진 국민의 마음은 사회 각 부문에서 다시 또 다른 포퓰리즘을 불러왔다. 지성주포퓰리즘 정치도 국민의 마음을 황폐하게 했다. 황폐해진 국민의 마음은 사회 각 부문에서 다시 또 다른 포퓰리즘을 불러왔다. 지성주의와 엘리트주의가 반드시 좋은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다수가 반(反)지성과 반(反)엘리트주의로 쏠릴 경우 그 사회 전체의 수준이 바닥으로 끌려내려갈 수밖에 없다.
(홍재희) ===== 라고 주장하고 잇다. 누구도 반(反)지성과 반(反)엘리트주의로 몰고간 사람은 없다. 문제는 지성과 엘리트주의로 포장된 수구성에 대해 사회적 흐름이 거부감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사회는 소수의 지성과 소수의 엘리트주의로 포장된 수구성에 의해 선도돼 나가기에는 민주화가 내용적으로 심회돼 가고 있고 시민들의 의식구조가 국제적인 탈냉전 이후에 세계화 돼 있기 때문에 이제 까지 조중동이나 수구적 기득권층들이 독점적으로 공유해오던 분단고착과 냉전적 사고방식에서 비롯된 수구적이고 편협한 지성과 엘리트주의로는 이시대의 대한민국 국민들을 더 이상 리드해 나갈수 있는 역량으로는 함량미달이기 때문에 조선사설의 눈높이를 통해 접근하고 있는 지성과 엘리트주의는 시대적흐름에 능동적으로 적응하고 있는 국민들의 눈높이에 맞춰 나가야 한다.
(홍재희) ====== 그,렇지 못할 경우는 조중 동류의 정체성에 머물러 있는지성과 엘리트주의는 한국사회에서 도태될수 밖에 없다. 시대가 변했다. 한국 시민사회의 수준은 이미 지구촌 시대의 열린 시각으로 수준을 상향이동 해 나가고 있는데 조중동과 같은 성향의 지성과 엘리트주의는 국가보안법이 허용하는 야만성속에 안주하는 관행으로 순치된 백성을 폐쇄적으로 계몽하려는 20세기 아날로그식의 지성과 엘리트 지성과 엘리트주의주의는더 이상 한국인들에게 강요될수 없고 먹혀들어가지도 않는다. 조선일보류의 지성과 엘리트들은 조중동이 1997년과 2002년 두 번에 걸쳐 정권획득에 실패한 원인이 어디에 있었는지 꿰뚫어 보아야 한다. 국민들의 의식은 이미 조중동 류의 지성과 엘리트주의를 넘어 세계화 돼 있다.
조선사설은
“
정권과 정치권은 이제 마음을 내려놓을 때다. 집착과 욕심, 증오와 원한을 내려놓아야 한다. 국민을 끌고 가는 것도 정치이지만 고달픈 국민의 마음을 쉬게 해주는 것도 정치다. 국민도 마음을 쉬고 싶다. “
(홍재희) ======= 라고주장하고 있다. 정권과 정치권이 국민을 끌고 가는 시대는 지나갔다. 조중동과 한나라당으로 상징되고 있는 수구정치집단들이 국민이 뽑은 대통령을 탄핵시켜 변화와 개혁을 지향하는 국민들을 끌고 가려 했지만 국민들은 조중동과 한나라당의 수구정치집단에 수동적이며 자포자기 식으로 끌려가는 것을 거부하고 4 . 15 총선을 통해 조중동과 한나라당으로 싱징되고 있는 수구정치집단이 견인해 가려는 구태정치의 밧줄을 선거혁명을 통해 냉정하게 단절시키고 무력화 시키며 오히려 국민들이 변화와 개혁의 정치적 환경을 조성해가면 후진적인 정치와 언론개혁을 위해 한국사회의 흐름을 바꿔놓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린우리당이 변화와 개혁의 진정성을 살리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조선사설의 주장대로 이 시대는 정권과 정치권이 국민을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변화와 개혁을 지향하고 있는 국민들이 정치를 능동적으로 이끌어 가는 시대이다. 조선일보는 시대적 흐름과 국민들의 의식수준을 제대로 읽어야 한다.
[사설]한 해를 보내는 국민의 마음(조선일보 2004년 12월31일자)
한국갤럽이 작년 이맘때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국민들은 으뜸가는 새해 소망으로 ‘건강’(29%)을 꼽았다. 2위는 ‘소득’(27%)이었다. 재작년 조사에서 ‘건강’과 ‘소득’이 35%, 22%였던 데 비해 차이가 많이 좁혀졌지만 ‘돈이 많은들 건강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냐’는 생각이 여전히 우세했었다. 얼마 전 조사된 ‘2005년의 소망’에서는 ‘소득’(38%)이 ‘건강’(26%)을 크게 앞서며 순위가 뒤집혔다. 서민들의 지난 1년은 건강마저 뒷전에 제쳐두게 할 만큼 혹독한 것이었다.
거리로 나선 음식점 주인들은 솥단지를 내동댕이치며 “못살겠다”를 외쳤다. 시장 상인은 시찰 나온 여당 지도부의 등에 대고 “소금을 뿌려 버리고 싶다”고 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들에서 ‘올해의 인기검색어’는 ‘로또’였다. 실낱보다 훨씬 가느다란 로또의 희망에라도 기대려는 고달픈 삶들이 많았다. 정치판은 새해를 코앞에 두고서도 난장판과 막말을 쏟아내고 있다. 눈과 귀를 틀어막고 싶을 따름이다.
다툴 것은 다퉈야 한다.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놓고 다퉈야 한다. 우리가 보다 나은 미래로 가는 디딤돌을 놓고 미래의 살길을 열어주는 일이라면 이해득실이 다를지라도 공통과제로 삼아 목청껏 주장하고 토론해야 한다. 우리는 미래를 향해 시간을 쏟아야 할 절박한 순간에 과거를 놓고 다퉈왔다. 거기에 대한 찬반에 따라 국민은 우리 편과 남의 편으로 갈렸다. 서울과 지방, 강남과 강북, 수도이전 예정지와 다른 지방, 일류대와 나머지 대학, 386과 반(反)386, 정규직과 비정규직…. 서민들의 속타는 마음에는 아랑곳없이 나라가 갈가리 찢겼다. 무엇이 그리도 분한지 걸핏하면 눈물을 흘리는 정치인들을 보며 국민은 오히려 섬뜩했다.
오가는 말도 거칠고 상스럽고 험해졌다. ‘친미’ ‘수구꼴통’ ‘빨갱이’ 같은 낙인을 상대편 이마에 끊임없이 찍으며 1년을 보냈다. ‘깽판’ ‘양아치’ ‘까불지 마라’ ‘물어뜯어 버리겠다’ 같은 오물투성이 말들이 상할 대로 상한 국민 마음을 더 상하게 했다. 아래에서 위쪽을 향하는 인터넷 언어는 진작에 더럽혀졌지만 나라의 상층부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언어는 더 천박했다. 이렇게 품격 없고 상스럽게 살아서는 소득 2만달러, 3만달러가 된다 해도 세계로부터 제 대접을 받을 수 없다.
민노총, 전교조처럼 바깥과 담을 쌓고 자기네만의 결속을 다져왔던 단체들의 소리가 높았던 1년이기도 했다. 따져 보면 전체 국민 속의 소수에 불과하고 같은 직종 가운데서도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데도 이들의 소리는 전체를 압도했다. 그 내용 역시 국민의 바람과 무관한 것들이었다. 한 해 동안 국민은 못 볼 것을 너무 많이 봤고 못 들을 말을 너무 많이 들었다. 옛 선비처럼 눈과 귀를 씻고 싶을 지경이었지만 그럴 겨를도 없던 한 해였다.
포퓰리즘 정치도 국민의 마음을 황폐하게 했다. 황폐해진 국민의 마음은 사회 각 부문에서 다시 또 다른 포퓰리즘을 불러왔다. 지성주의와 엘리트주의가 반드시 좋은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다수가 반(反)지성과 반(反)엘리트주의로 쏠릴 경우 그 사회 전체의 수준이 바닥으로 끌려내려갈 수밖에 없다.
정권과 정치권은 이제 마음을 내려놓을 때다. 집착과 욕심, 증오와 원한을 내려놓아야 한다. 국민을 끌고 가는 것도 정치이지만 고달픈 국민의 마음을 쉬게 해주는 것도 정치다. 국민도 마음을 쉬고 싶다. 입력 : 2004.12.30 18:14 53' / 수정 : 2004.12.30 19:53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