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신문 조준상 기자 12월 3일 17시 인터넷 기고 기사
SBS 사회환원약속=법적허가조건’ 중대차질
방송위, 6일 SBS 재허가추천 의결키로
지난달 29일 <에스비에스>에 대한 재허가 추천 의결을 미루면서 무소신 행정이라거나 ‘에스비에스 길들이기’라는 등의 불필요한 입방아에 오르고 있는 방송위원회가 오는 6일에는 에스비에스에 대한 재허가 추천을 의결하기로 하고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방송위는 지난 1일 열린우리당이 추진하고자 하는 에스비에스에 대한 국회 청문회나 국정감사 일정에 재허가 추천 의결을 연동시킬 수 없다는 의견을 우리당 고위관계자에게 분명히 전달했다. 이런 입장을 전달받은 열린우리당 언론발전특별위원회는 1일 오후 2시 기자회견을 열어 “오는 6일 에스비에스에 대한 방송위의 방송사업 재허가 추천 최종심사 결과와 상관없이 청문회를 통해 (△사회환원 약속 미이행 △물 캠페인 프로그램과 태영의 상·하수도 사업의 유착관계 등) 그동안 제기된 의혹을 명백히 밝혀야 한다”는 태도를 밝힌 것으로 확인됐다.
‘해마다 법인세 차감전 순이익의 15%를 사회에 환원한다’는 윤세영 에스비에스 회장의 약속이 법적 허가조건인지를 둘러싼 논란에 대해서도 방송위는 최종 확인작업을 거친 것으로 추정된다. 이와 관련해 지난 2일 방송위는 이 사안에 대한 판정에서 결정적인 구실을 하는 한 가지 사실을 정보통신부에 확인했다. 90년 방송사업 허가를 내주면서 당시 체신부(현 정보통신부)가 에스비에스에 부과했던 부담사항(법적 용어로는 부관사항)에 포함돼 있는 “개설 허가 신청시 서약한 사항을 성실히 이행할 것”이라는 문구가 윤 회장의 세전이익 15% 사회환원 약속도 포함하는 의미를 갖고 있느냐는 게 그것이다.
이에 대해 정통부는 이 문구는 세전이익 15% 사회환원 약속을 포함하는 게 아니라고 답변했다. 이 문구는 체신부가 에스비에스에 부과한 부관사항, 곧 ‘에스비에스의 전파 송출로 인해 <케이비에스>의 계룡산 송신소, 관악산 송신소, 남산 송전타워 등 3곳이 주파수 혼잡 등의 영향을 받을 경우 이를 해결하기 위한 재정적, 기술적 부담을 에스비에스가 진다’는 것을 뜻한다는 게 정통부의 공식적인 답변이다. 이런 사항들을 성실히 이행했다고 봤기 때문에 2001년 재허가 때는 이런 부관사항을 부담시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울러, 정통부는 당시 공보처(현 문화관광부)가 체신부에 넘겨준 에스비에스에 대한 부관사항에도 ‘세전이익 15% 사회환원’은 포함돼 있지 않았다고 밝히고 있다. 공보처 부관사항은 △방송광고공사(코바코)에 공익자금(현 방송발전기금)을 성실히 납부하고 △방송시간 변경 때 허가를 얻어야 한다는 내용 두 가지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윤 회장이 최병렬 당시 공보처장관에게 건넨 ‘세전이익 15% 사회환원’ 약속이 담긴 각서는 체신부에 전달도 안 됐다는 얘기다.
게다가, 법조계에서는 정부가 수익성 있는 행정행위를 하면서(이를테면 방송사업 허가를 내주거나 광업채굴권을 허가해준다거나 하는) 금전을 부담시키는 부관을 설정할 수 없다는 의견이 상당히 강한 편이다. 방송위 산하 법률자문위원회가 윤 회장의 사회환원 약속을 법적 허가조건으로 볼 수 있는지를 판단하는 과정에서도 이 문제는 핵심 쟁점이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에 따라 방송위가 윤 회장의 ‘세전이익 15% 사회환원’을 법적 허가조건으로 보고 98년 3월 주주총회를 통해 법인세 비용처리 한도인 세전이익 5%로 낮춘 조처는 무효이며, 98년 이후 미이행한 사회환원분 690억원(에스비에스는 511억원)을 모두 내야 한다고 주장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국민과 약속하고 국회에 약속한 사항이라는 무게가 있기는 하지만, 방송사업 재허가 추천이라는 행정행위는 ‘적법성’에 강조점이 둘 수밖에 없는 것도 사실이다.
사회환원 미이행분을 얼마로 계산하느냐는 에스비에스가 내세우는 511억원도 방송위가 주장하는 690억원 모두에 일리가 있다고 설명되고 있다. 이런 차이는 에스비에스의 각종 기부금(이를테면, 불우이웃돕기 성금이나 수재의연금과 같은)을 포함하는가 아닌가에 따라 나타나는 것이다. 에스비에스는 당연히 포함시켰고, 방송위는 포함시키지 않았다.
남는 최대 쟁점은 방송위가 방송환경, 향후 투자계획 등을 감안해 사회환원 미이행분 가운데 300억원을 3년에 걸쳐 납부하고 이 자금의 용도는 방송위와 협의해 결정하며, 해마다 당기순이익의 10%를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에스비에스의 약속을 그대로 받아들일지 여부다. 윤 회장의 사회환원 약속을 법적 허가조건으로 판정하기가 어렵게 된 사정에 비춰보면, 에스비에스가 제안한 300억원보다 더 많은 금액을 제시하기보다는 당기순이익의 10%로 돼 있는 부담률을 상향조정하는 방식을 방송위가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방송계 안팎의 분석이다.
이럴 경우, 에스비에스가 어떤 선택을 할지가 주목된다. 에스비에스가 동의하지 않으면 방송위는 금전 부담을 동반하는 부관사항을 일방적으로 설정할 수 없다는 딜렘마에 빠지게 된다. 에스비에스도 ‘약속을 지키지 않았으면서도 배짱을 부린다’는 도덕적 비난을 상당기간 더 받을 수밖에 없다. 방송위는 원칙대로 하되, 에스비에스의 추가양보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조준상 기자 sang21@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