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BC 창사특집 5부작 다큐멘터리 「중동」에 대해서
2부 「누구의 땅인가」
방송 2004년11월30일 23:05
연출 최진용·한홍석
2부도 역시 아랍것들의 눈까리로 이스라엘을 혼내 보겠다는 더러운 생각으로 역사왜곡을 서슴없이 자행한 MBC야! 이스라엘軍이 팔레스타인의 아랍것들을 무엇 때문에 믿지 않는다는 얘기를 하는지 왜 분석안했느냐! 임신부로 위장해 이스라엘軍을 가까이 오게 하여 자살폭탄테러 하는 아랍것들. 앰블런스에 무기 실어나르다가 진짜 `환자`도 이스라엘軍 검문소에 막히게 한 더러운 아랍것들, 이것에 더해서 여자들이 자살폭탄테러하는 것도 당연하다는 듯이 떠벌린[1부에서] MBC!
너희들은 자료조사할 돈도 인력도 풍부하면서 어떻게 한국외대 중동연구소 이것들이 주는 왜곡정보만 받아서 그대로 방송에 내보낸 것이냐!
1967年 6일전쟁에서 이스라엘이 획득한 `그 모든 지역`에서 철수한다는 얘기는 UN 안보리 결의안에도 안나온다. 단지 `지역`이다. 즉 `정관사 THE`와 `ALL`이 없는 것이다. 궁금하면 찾아보렴!
이말은 이스라엘의 안전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이 될 때 지역에서 물러나도 된다고 하는 것이지만, 아랍것들이 이스라엘을 언제 잡아먹을지 모르는, 즉 안전이 확보되지 않는 상황에서 그것은 가능한 얘기는 아니다.
이 결의안을 만든 영국 외교관의 머리는 `노벨상`감이다!
그리고, 2000년9월28일 템플마운트(Temple Mount)[하르하바이트(Har Ha'Bayit)]에 올라간 아리엘 샤론(Ariel Sharon)氏가, 팔레스타인의 아랍것들이 일으킨 2차 민중폭동[인티파다(Intifada)]의 `신호탄`이었다고 성우의 목소리까지 복돋워 읽게 하여[2부] 역사왜곡을 넘어 `아랍의 개`가 된 최진용 PD를 비롯한 MBC것들아!
당시의 상황을 분석한 2001년3월4일의 미첼(George J. Mitchell) 리포트는 『샤론氏의 [템플마운트] 방문이 인티파다를 일으킨 것이 아니었다』라고 결론내렸다.
또한, 팔레스타인당국(當局) 통신장관 이마드 팔루지(Imad Faluji)는, 그 폭동은 샤론氏의 「도발(挑發)」 훨씬 이전인 7월에 준비되었던 것이라고 샤론氏의 그 방문 몇개월후에 인정했다.
『그것[민중폭동]은, 아라파트 의장이 前 美 대통령을 한방 먹이고[Turn the tables on] 미국의 [협상] 조건들을 거절한 캠프데이비드(Camp David)로부터 돌아온 후 계획되었다』[Jerusalem Post 2001年3月4日].
그리고, 1948年 이스라엘 건국전에는 이 지역이 평화롭게 잘 지냈다고 헛소리를 해댄 MBC야! 1967年 템플마운트 지역을 확보한 뒤에야 유태인들은 이곳에서 기도할 수 있게 되었다. 로마 교황은 물론 어느 종교지도자도, 유태인들도 이 지역에서 기도할 권리가 있다면서 보장하라고 말한 적이 없었다. MBC것들이 말하는 `평화`란 한쪽이 완전히 죽어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로구나! 개정일 밑에서 온갖 탄압을 받으면서도 인민들이 쥐죽은 듯이 복종해야 하는 북조선(北朝鮮)이, 권리주장을 위한 데모를 하면서 시끄럽게 하는 한국 보다 평화로우며 살기 좋다고 주장할 MBC 썩은 XXX것들아!
# 아랍것들의 2차 인티파다(Intifada)
아라파트가 사전(事前)에 준비한 것!
아리엘 샤론氏 때문에 라는 것은 속임수!
2004년6월30일
지난주 이스라엘 신문 하이레츠(Ha'Aretz)는, 팔레스타인 난민들 보다 템플마운트(Temple Mount)[하르하바이트(Har Ha'Bayit)]가 팔레스타인의 최우선 요구라고 주장하는 팔레스타인문제 전문가 대니 루빈스타인(Danny Rubinstein)氏의 다음과 같은 기사를 실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독점(獨占)할 수 없게 되기 때문에 템플마운트를 양보(讓步)할 수 없다. 전세계에는 10억 이상의 이슬람교도[무슬림(Muslim)]가 있다…. 아라파트(Yasser Arafat)는 이것을 알고 있었고 결과적으로 예루샬라임(Yerushalayim)[영어로는 Jerusalem] 문제를 둘러싼 그의 협상전략을 만들었다』
그러나, 루빈스타인氏는, 유태인들이 템플마운트에 대한 주권(主權, Sovereignty)을 포기했더라면, 아라파트는 팔레스타인 난민들의 1967年 「6日전쟁」 이전 경계(境界)로 「귀환」할 권리를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라고 만족스러운 듯이 말한다.
에후드 바라크(Ehud Barak)[당시 아라파트와의 협상 파트너(Partner)] 前 수상(首相)은, 1967年부터 이스라엘이 템플마운트 모든 지역에 대한 주권을 행사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서쪽벽(The Western Wall)[하코텔하마아라비(Ha'Kotel Ha'Ma'aravi. 「통곡의 벽」이라고도 함]에 대해서만 이스라엘의 주권을 가질 준비가 되어 있었다.
클린턴氏가 신약성경(The New Testament)을 인용(引用)하기까지 했음에도, 아라파트는 템플마운트에 유태 성전(Temple)은 결코 서 있지 않았었다는 그의 주장을 끈덕지게 되풀이했다. 아라파트는 유태인들의 가장 신성한(Holiest) 장소들에 대한 주권을 공유(共有)하자는 이스라엘의 제안을 거절했다. 이 모든 것은 클린턴氏의 자서전(自敍傳, Autobiography)에서 명백하게 확인된다.
바라크氏와 쉴로모 벤-아미(Shlomo Ben-Ami) 외무장관[당시]이 캠프데이비드(Camp David)로부터 돌아왔을 때, 그들이 아라파트에게 템플마운트 위에 발붙일 곳을 줄 준비가 되었다는 것을, 내각(內閣)이나 국회[크네세트(Knesset)] 그 어느곳에서도, 그들은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하아레츠 기자 우지 벤지만(Uzi Benziman)은, 벤-아미氏와 바라크氏가 템플마운트를 아라파트에게 제안했으며 그들이 이스라엘에 돌아와서도 『아무도 우리를 더럽히거나 날개를 맞혀 떨어뜨리지도 않았다』라는 벤-아미氏의 말을 인용했다.
유태인들의 가장 신성한 곳을 이렇게 싸구려 취급하는 것에 대해, 샤론(Ariel Sharon)氏의 친구[우리 단(Uri Dan)]는 2000년8월 당시 야당(野黨) 리더(Leader)였던 샤론氏에게 바라크氏의 정책을 모두에게 알리도록 제안했다. 그렇게 할 유일한 장소와 방법으로서 그 친구가 말한 것은, 서쪽벽 광장에서의 기자회견 또는 템플마운트로 직접 올라가는 일이었다.
샤론氏는 바라크氏의 정책을 문제 삼을 수 있는지를 고민(苦悶)했고 뉴욕(New York)에 있는 유태 지도자들의 의견(意見)을 들은 후 9月24日이 되어서야 맨하탄(Manhattan)에 있는 그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바라크氏는 미국에 있는 유태인들을 지치게 해서 설득하는데 성공했다. 대부분의 유태 지도자들은 예루샬라임 문제를 제외하고 바라크氏가 아라파트에게 양보하는 것에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이 대화 동안에, 그 친구는, 야당 리더가 바라크氏의 정책을 문제삼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은 템플마운트 라고 다시 한번 제안했다. 『템플마운트를 방문해서 정부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깨닫도록 잠들어 있는 유태인들을 깨워라』라고 그 친구는 샤론氏에게 부탁했다.
『나는 수요일에 이스라엘로 돌아갈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날 템플마운트를 방문하겠다』라고 샤론氏는 답했다. 1시간 후 샤론氏는 이스라엘라디오 인터뷰에서 그의 의향(意向)을 발표했다. 따라서, 바라크氏와 벤-아미氏도 그 계획된 방문을 알았고 그들이 감히 하려고 했다면 그것을 막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클린턴氏는 최근 출판된 그의 자서전에서, 그가 바라크氏에게 샤론氏의 템플마운트 방문을 막도록 부탁했으나 바라크氏가 그렇게 할 수 없다고 말했다는 것을 밝혔다.
바라크氏는 샤론氏가 그의 정책을 문제삼을 수 있는 합법적인 권리가 있음을 이해하고 있었다. 그가 샤론氏의 방문을 막으려고 시도했다면, 이것은, 클린턴氏의 자서전에서도 일부 드러난 것처럼, 그가 실제로 캠프데이비드에서 템플마운트를 아라파트에게 양보했음을 바라크氏 스스로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모습으로 되었을 것이다.
칭찬할 만하게도, 바라크氏는 샤론氏의 방문이 폭동을 일으켜 그 전쟁[아랍것들이 일으킨 2차 인티파다(Intifada)]으로 이어졌다는 몇몇 이스라엘의 정치인들과 언론인들에 의에 만들어진 혐의(嫌疑)를 물리쳤다.
바라크氏는 아라파트가 사전(事前)에 그 전쟁을 준비했으며 샤론氏의 방문은 단지 핑계(Pretext)로 이용되었다고 설명했다.
최근에 가끔씩, 샤론氏는 그 친구에게, 샤론氏의 템플마운트 방문과 4개월 후인 2001年2月6日 임기(任期) 4年의 수상선거(首相選擧)[현재는 수상선거는 폐지(廢止)되었고 총선(總選)에서의 다수당이 수상을 맡음] 사이에 관계가 있었다고 생각하는지 묻곤 한다.
그 친구는 확실히 그렇다고 말했다. 그 관계는 직관적(直觀的)이 아니라 역사적·도덕적·연대기적(年代記的)이다. 『현재의 그 전쟁이 일어났을 때, 유태인들은 이미 당신을 선출(選出)한 것이다』라고 그 친구는 샤론氏에게 말했다. 『당신의 방문이 그들에게, 어느 리더가 국가의 역사의 중심을 보호할 책임을 맡을 준비가 되어 있는지를 일깨워 주었다』
샤론氏에게는 예루샬라임에서 정치(政治)를 하는 도중(途中)에 템플마운트를 방문할 특권(特權)이 주어진 것이었다. 그 누구도 템플마운트에 대한 그의 빚[아랍것들이 마구 짓밟고 있는 템플마운트 위 그곳에 유태 성전(聖殿)이 있었을 때에는 유태인들 가운데는 코헨(Kohen)[Priest. 한글성경 제사장]들만 출입할 수 있었기 때문]과 그에 대한 국가의 빚[템플마운트를 지켜준 고마움]을 없앨 수 없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