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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기씨외 목회자들의 잘못된 가르침에 대하여...

**1. 조용기씨외 목회자들의 잘못 가르침에 대해..





"너희가 행위로 구원 받을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으로 구원 받으리로다."





이 구절을 잘못 가르칠 때에 얼마나 많은 신앙인들이 쓰러질지 상상이 갑니다. 예수님의 지상명령인 사랑의 실천조차도 '일정한 행위'로 규정하고 그것을 주장하는 신앙인들을 거짓 말씀에 잡힌 자들로 몰아갈 수 있기때문입니다.





조용기씨의 이번주 설교를 들으면서 다음과 같은 예화에 그가 얼마나 신도들을 꺼꾸러 트리고 있는지 가슴이 아팠습니다.





"천주교 신자가 한분 계셨는데 그분이 자기가 성당에 다니면서도 선한 행위를 하지 않아 구원받지도 못했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아들에게는 선한 행위를 권고합니다." 뭐 이런 비슷한 고백을 조용기씨에게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천주교 신자에게 조용기씨는 "구원은 거져 받은 것이니 자신있게 사십시오...행위로 구원 받는 게 아닙니다.오직 믿음으로 구원 받는 것입니다" 라고 충고해 주었고 그 사람은 그 자리에서 예수를 구주로 영접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전 이 설교를 들으면서 그 천주교교인의 불필요한 죄의식을 느꼈습니다. 그 천주교 신자에게 이미 당신은 구원받은 분이라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는 순간에 구원은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단지 그 분은 예수님의 실천명령인 '이웃에 대한 사랑' '고통받는 자들에 대한 사랑'을 게을리한 자신을 나무라고 있었던 겁니다. 그러한 자책이 커져서 심지어는 '나는 구원받지 못했다'라고 자신을 정죄하게 된 것입니다.





조용기씨의 교만은 여기서도 확연히 드러납니다. 그 분이 예수를 구주로 받아드린 것은 이미 오래 전이며, 예수님의 모습을 닮아가지 못하고 사랑의 실천이 부족해서 자신을 탓하고 있는 것은 잘못된게 아닙니다. 사도 바울도 '날마다 나를 죽이노라'라고 고백했는 데 이 고백이 그 천주교 신자의 고백과 같은 것이거든요. 즉 바울이 자신 속의 자아가 예수님을 증거하고 그 분의 삶을 사는데 방해가 되니 자신을 늘 나무라고 죽인다는 뜻이거든요. 단지 그 천주교 신자분처럼 자신을 지나치게 정죄하는 것은 분명 잘못이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뭔 새삼스레 그 신앙인이 조용기씨의 말을 믿고 제대로 '예수를 구주로 영접했다'고 자기 자랑을 합니까? 더구나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지 못하는 고민을 하지마라, 그런 거 없어도 마음으로만 믿으면 된다라고 가르친 것이 얼마나 성경의 가르침을 무시하는 것인지 조차도 조용기씨는 모른단 말입니까?





이러한 상태에서의 적절한 충고는 '당신은 구원받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명령에 대해 기회가 닫는대로 여유가 닿는대로 실천하시고 실천할 힘을 간구하십시오...그러나 이미 구원 받으셨으니 두려워 마십시오' 정도로 해 주었을 겁니다.





'행위'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말씀에서 '행위'는 율법적인, 즉 세상의 윤리적인 '행위'를 말하고 있는 것 입니다. 이러한 선한 행위 자체만으로 구원 받을 수 없으니 '믿음'을 가져야 한다고 말씀 하고 계시는 겁니다.





그럼 '믿음'은 무엇일까요? 예수님의 말씀을 지키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가장 중요한 믿음의 지표로 '사랑'을 강조 하셨고 또한 '행함이 없는 믿음'은 '믿음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즉 마음으로만 믿고 실천하지 않는 믿음은 믿음이 아니라고 하신겁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사랑의 실천은 당연히 율법적인 '행위'와 구별되야합니다. 이를 구별하지 않는다면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교회에 가서 조용기씨 같은 이에게 말이되든 되지않든 형식적으로 '아멘'이나 하고 오면, 삶을 아무리 개차반으로 살아도 구원받는다는 말이 되고 맙니다. 아닙니다.





믿음이 사람에게 생겨나면 누가 뭐라든 '사랑의 실천'을 자발적으로 하게 됩니다. 성령님이 우리에게 오셔서 구하는 것이 바로 '성스럽고 경건한 삶'과 '충만한 사랑'이기때문입니다. 이는 율법의 '행위'처럼 강제되는 소극적인 규범 행위와는 완연히 다릅니다. 진실한 신앙인에게는 시시각각 성령님이 신앙인의 마음을 움직여 예수님의 지상명령을 실천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율법의 '행위'와는 다르게 자발적이고 진실로 낮아져서 세상을 섬기게 되는 것 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행위로 구원 받을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으로 구원 받으리로다." 를 가르칠 때에는 형식적인 예배 참가와 마음으로만 믿으면 예수님의 말씀을 전혀 실천하지 않아도 모든 구원이 이미 이루어졌다고 잘못 가르치지 않도록 아주 조심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