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사설] '약탈 문화재' 절도는 옳지 않다 에 대해서
(홍재희) ====== 친일 반민족 반민주 반 통일의 냉전수구적인 방상훈 세습족벌사주체제인 조선일보 사설은
“ 일본 효고(兵庫)현의 한 사찰에서 한국인 문화재 절도단이 훔친 고려 불화(佛畵)를 되찾기 위해 사찰측 관계자가 한국에 왔다. 이 관계자는 “주지로부터 ‘생명을 걸고 고려 불화를 되찾아 오라’는 말을 들었다”고 밝혔다. 이 불화는 현재 대구 근처의 한 암자에 소장돼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절도범들은 시가 10억원 상당의 불화를 국내에 반입해 고미술시장에서 1억1000만원에 팔았다. 그 후 4~5차례의 거래 과정을 거쳐 마지막 소유자가 암자에 기증했다. 최종 구입자가 장물인 줄 모르고 샀다면 민법상 ‘선의 취득’으로 소유권이 인정되므로 현재로선 그림이 일본으로 되돌아갈 가능성이 적다고 한다.“
(홍재희) ======= 라고 주장하고 있다. 조선사설은 '약탈 문화재' 운운하며 법적인 문제를 거론하고 있다. 그렇다면 법적으로 한번 접근해 보자. 일본 효고(兵庫)현의 한 사찰에 있었던 고려 불화(佛畵)는 합법적으로 우리들 곁을 떠나 일본으로 건너간 것으로 볼수 없다. 우리한민족의 얼이 담긴 문화재들은 개인의 재산이라기 보다 민족공동의 정신적 문화적 자산인데 일본에 합법적으로 팔거나 정상적으로는 공적으로든 사적으로든 넘겨줄수 없는 것이다.
(홍재희) ======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문화재가 조선사설이 결론부분에서 제기했듯이 “ 우리가 배고팠던 시절 밀반출된 것도 있지만, 대부분 임진왜란과 일제 강점기 두 차례에 걸쳐 그들이 불법 강탈해 간 것들이다.” 라고 지적하고 있듯이 강탈했거나 부적절한 방법으로 일본이 취득한 것이라고 볼수 있다. 조선사설은 일본 효고(兵庫)현의 한 사찰에 있던 고려 불화(佛畵)를 한국에 가져온 것 사람들을 ‘절도범’ 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러나 조선사설이“ 절도범들은 시가 10억원 상당의 불화를 국내에 반입해 고미술시장에서 1억1000만원에 팔았다. 그 후 4~5차례의 거래 과정을 거쳐 마지막 소유자가 암자에 기증했다. 최종 구입자가 장물인 줄 모르고 샀다면 민법상 ‘선의 취득’으로 소유권이 인정되므로 현재로선 그림이 일본으로 되돌아갈 가능성이 적다고 한다.“라고 주장하며 법적인 문제를 계속제기하고 있다.
(홍재희) ====== 그런 조선사설의 법 논리대로 접근한다면 고려 불화(佛畵)가 일본 효고(兵庫)현에서 대구 근처의 한 암자로 자리를 옮겨지기 까지의 과정에 대한 수사가 명백하게 진행돼 진상이 규명된 사건이라도 조선사설의 ‘절도범’ 이라는 표현은 합당하지 않다. 물론 민족공동의 자산을 본래의 자리로 갖다 놓기위한 방법과 절차상의 문제는 국내법이나 국제법으로 문제가 될 수 있고 또 개인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서 돈을 받고 거래를 했다면 법적으로 얼마든지 시비의 대상이 될 수 있겠으나 그렇다고 해서 한민족의 문화재인 고려 불화(佛畵)를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일본으로 가져간 것을 다시 한국으로 가져온 것을 조선일보가 단순하게 절도사건으로 단정 짓는 것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는다.
(홍재희) ====== 절도는 남에 것을 훔쳤을때 사용하는 표현이다. 그러나 고려 불화(佛畵)는 우리가 합법적으로 팔아먹은 것도 아니고 강탈당하거나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일본에 흘러들어간 우리한민족의 문화유산이다. 일본에 있다고 해서 일본의 문화유산이 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절차와 과정상에 실정법적 문제를 제기할 수는 있겠으나 우리문화재를 우리나라로 가져온 것에 대해서 장물이라고 단 정짓는 것은 바른 표현이라고 보수 없다.
((홍재희) ===== 일반 동산 부동산이나 여타의 값어치가 나가는 물품등은 얼마든지 소유주가 바뀌어서 소유주가 주인이 될 수 있으나 문화재는 비록 소유국가가 바뀌었다고 해서 그 문화재가 지니고 있는 본래의 정신적 문화적 가치까지 소유주가 누구냐에 따라서 바뀌고 상속될수 있는 것이 아니다. 조선사설 안 그런가? 부연한다면 한국의 문화재가 일본에 있다고 해서 일본이 문화적 가치를 나름대로 규정해 놓는다고 해서 일본의 문화나 일본인들의 혼이 담긴 일본의 문화재로 변질될수는 없다는 점이다.
(홍재희) ===== 그렇기 때문에 고려 불화(佛畵)를 한국에 들여온것에 대해 ‘장물’ 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고려 불화(佛畵)를 가지고 온 사람들이 일본의 고유문화재를 가지고 왔다고 한다면 그것은 명백하게 일본의 문화 자체를 훔친 도둑질이고 장물이라고 볼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조선사설의 주장대로 라면 최종 구입자인 대구 근처의 한 암자에서 장물인 줄 모르고 샀는지에 대해서도 밝혀지지 않은것을 보면 수사를 통해서 밝혀진 사실도 아닌 것으로 보이는데 조선일보가 단정적으로 ‘절도범’으로 표현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수사중인 사건의 경우에도 법적으로 진상이 명명백백하게 밝혀지기 전까지는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범인취급을 하지 않는 것이 상식인데 조선일보는 너무 경솔한 표현을 단정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듯 하다.
조선사설은
“ 절도단은 “일본이 그간 약탈해간 문화재를 되찾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다”며 ‘애국 범행’임을 내세웠다. 그러나 약탈 문화재의 반환과 사익(私益)을 취하기 위한 도둑질은 엄연히 다르다. 범인들은 일본의 과거 약탈행위에 대해 ‘절도’라는 똑같은 범죄로 대응함으로써, 일본에 있는 약탈 문화재를 반환해야 한다는 도덕적 국제법적 명분을 훼손한 것이다.“
(홍재희) ======= 라고 주장하고 있다. 고려 불화(佛畵)를 약탈해갔건 그냥 가져갔건 일본에 있는 고려 불화(佛畵)는 우리한민족의 문화유산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일본에서 우리나라로 몰래 가져왔건 공개적으로 가져왔건 그것은 도둑질로 볼수 없다. 우리민족혼이 담긴 우리의 것을 우리들 사는 속으로 가져오는 것이 어째서 도둑질인가? 도둑질은 우리것이 아닌 남에 것을 몰래 훔쳐오는 것을 도둑질이라고 하지 않은가?
(홍재희) ===== 물론 민족의 문화재는 개인의 것이 아닌 민족모두의 공동자산이기 때문에 그러한 문화재를 일본에서 한국에 들여와 사익(私益)을 취하기 위해 팔아먹었다면 그러한 절차상의 법적문제점에 대해서는 비판받고 법에 처벌을 피할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조선사설이 “ 일본의 과거 약탈행위에 대해 ‘절도’라는 똑같은 범죄로 대응함으로써, 일본에 있는 약탈 문화재를 반환해야 한다는 도덕적 국제법적 명분을 훼손한 것이다.“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일본이 우리문화재를 강제로 뺏어간 것은 약탈이다. 명백한 약탈이다. 그러나 약탈당한 우리문화재를 우리가 가져오는 것은 조선사설이 주장하고 있는 ‘절도’ 일수 없다. 약탈일수 없다. 조선사설 안 그런가?
조선사설은
“ 현재 일본에 흩어져 있는 한국 문화재들은 파악된 것만 3만4000여점에 이른다. 우리가 배고팠던 시절 밀반출된 것도 있지만, 대부분 임진왜란과 일제 강점기 두 차례에 걸쳐 그들이 불법 강탈해 간 것들이다. 1965년 한·일협정을 맺을 때 일본으로부터 약탈문화재를 환수할 수 있는 길이 있었다. 그러나 경제개발 자금을 지원받는 데 급해 고작 1300여점만 돌려받는 데 그쳤다. 나머지는 일본인들의 자발적인 기증에 따른다고 합의했지만, 일본이 그렇게 순순히 되돌려줄 거라면 애초 약탈을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홍재희) ========라고 주장하고 있다. 조선사설은 한국문화재라고 하는데 한민족의 문화재라고 해야 옳다. 그리고 약탈된 문화재는 지속적으로 요구해서 되돌려 받아야 한다. 조선일보는 박정희 정권을 지금도 미화하고 있다. 그러나 박정희 정권은 일제강점하의 불행했던 과거사를 청산하는데 민족적 관점에서 접근한다면 대단히 미흡하게 처리했다. 당장 눈앞에 정권의 소아병적인 이해관계에 얽매여 종군위안부 문제. 사할린 동포들 문제. 약탈 문화재 문제 배상문제등등 이루 헤아릴수 없이 많은 미완의 청산과제를 남겨 놓은채 졸속으로 처리해 오늘과 같은 문제점들을 파생시키고 있다.
(홍재희) ===== 박정희 정권의 태생적 인 한계 때문이다. 박정희는 일본육군사관학교출신으로서 일본왕에게 일제 식민지 시절 충성을 맹세한 일본제국주의 장교출신이다. 물론 박정희가 일제장교시절에 방씨 족벌조선일보도 일본왕에 충성을 맹세하며 민족을 배반하고 반민족적인 범죄행위를 서슴치 않았었다. 일제가 패망했으나 한국이 이렇듯이 일본왕과 일본식민지에 충성을 다했던 정치인(박정희) 언론(방씨족벌조선일보) 등이 한국사회에서 득세하자 일본이 그들이 약탈해간 문화재 반환등에 대해서 미온적으로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한국에 민족혼이 반듯한 정치집단과 민족언론이 강력하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가운데 일본과 과거청산의 민족적인 협상을 했다면 지금쯤 미완으로 남아있는 한일간의 역사적 숙제는 물론 문화재 반환도 거의 다 원하는대로 청산되고 이뤄 졌을 것이다.
조선사설은
“ 국가가 힘없고 제 구실을 못하면 제일 먼저 망가지고 유출되는 게 문화재다. 정부가 앞장서서 약탈 문화재 반환의 목소리를 높이고 끊임없이 노력을 기울여야 할 텐데 그러질 못했기에 절도범들이 도둑질로 문화재를 되찾았다고 주장하는 우스운 세상이 돼 버렸다. ”
(홍재희) ======= 라고 주장하고 있다. 조선사설은 “ ... 절도범들이 도둑질로 문화재를 되찾았다고 주장하는 우스운 세상이 돼 버렸다. ”라고 주장하고 있다. 조선일보에게 묻겠다. 그것이 웃을 일인가? 그리고 조선사설은 “ 국가가 힘없고 제 구실을 못하면 제일 먼저 망가지고 유출되는 게 문화재다.” 라고 주장하고 있다. 문화재 뿐만이 아니다. 일제가 우리한민족을 강점하고 식민지 지배체제를 유지하고 있을때 방씨 족벌조선일보는 우리민족의 정신과 문화와 정체성 그자체 라고할수 있는 우리의 한글로 일제시대에 일본왕에 충성을 맹세하고 일제 식민지 지배체제를 정당화하는 반민족적이고 패륜적인 매국매족의 치욕적인 한글 기사를 수십년 동안 독자들에게 전했다.
(홍재희) ===== 조선일보의 그런 반민족적인 매국매족행위는 일제가 패망하고 난뒤에도 그치지 않고 계속이어지다가 천안에 독립기념관이 건립되자 방씨족벌 조선일보는 일제시대에 우리민족의 언어인 한글로 일본 식민지지배체제에 충성을 다짐한 조선일보의 신문을 찍어낸 반민족적인 조선일보 윤전기를 천안 독립기념관에 전시해 놓기도 했다. 조선일보가 우리민족의 정신문화 결정체라고 할수 있는 한글로 된 신문발행을 통해 일제 식민지 지배체제를 정당화한 반민족적인 행위를 통해 우리민족의 혼이라고 할수 있는 한글의 정체성을 유린한 조선일보가 전혀 반성하거나 자숙하는 겸허한 자세를 보여주기는커녕 반민족적인 정체성을 통해 한글로 일제를 미화하는 매국매족의 신문을 찍어냈던 조선일보 윤전기를 천안 독립기년관에 당당하게 전시시켜 놓고 대한민국 사회를 향해서 방씨 족벌조선일보가 민족의 정론지라고 외치는 등 대국민 사기극을 수십년 동안 벌여 왔다.
(홍재희) ====== 그러나 최근에 안티조선활동을 하고 있는 단체인 ‘조아세’ 의 적극적인 문제제기로 조선일보의 반민족적인 일제시대의 윤전기는 독립기념관에셔 철거됐다. 이렇듯이 조선일보의 과거와 현재는 반민족 반민주 반통일 반사회적으로 점철돼 있다. 그런 조선일보가 “ 절도범들이 도둑질로 문화재를 되찾았다고 주장하는 우스운 세상이 돼 버렸다. ”라고 비판하는 것은 정말 가관이다. 그들 조선일보가 ‘절도범’ 이라고 매도하고 있는 사람들은 그래도 조선일보의 방씨 세습족벌 사주체제와 같이 민족을 팔아먹지는 않았다. 그들은 조선일보와 같이 민족을 배반하지 않았다.
독립기념관에서 쫓겨나는 <조선> 윤전기
분해해서 창고로 이전... '하와이 국민회' 윤전기로 교체 전시
기사전송 기사프린트 손병관/김영균(patrick21) 기자
▲ 독립기념관 제6전시실에 전시중인 조선일보 윤전기.
ⓒ 독립기념관 홈페이지
독립기념관에 전시돼 있는 동안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조선일보 윤전기가 금년 8.15 광복절 이전에 철거돼 전시실에서 모습을 감추게 될 전망이다.
독립기념관(www.independence.or.kr)의 한 고위관계자는 6일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지난 17년간 제6전시관 항일사회문화전시관에 전시돼온 <조선> 윤전기를 분해, 이전하는 작업이 내일부터 10일까지 실시된다"고 밝혔다.
<조선> 윤전기의 무게는 40톤 이상 나가기 때문에 독립기념관은 일단 윤전기를 조각조각 분해한 뒤 재조립해서 창고로 옮기게 된다. 독립기념관은 최근 업체 선정을 끝냈고, 이문원 독립기념관장의 교체전시 비용에 대한 결재도 마친 상황이다.
독립기념관은 <조선> 윤전기 대신 '하와이 대한인국민회' 윤전기로 교체 전시할 계획이다. 하와이 윤전기는 1910년부터 미주독립신문을 인쇄하는 등 항일독립운동에 사용되어왔기 때문에 <조선> 윤전기와 같은 정통성 시비를 피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 독립기념관의 희망사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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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윤전기 없는 독립기념관 볼 게 없다?
반면, 1936년 일본 도쿄기계제작소에서 만든 <조선> 윤전기는 39년부터 40년까지 신년호 1면에 실린 일황 부부 사진과 총독기념사를 비롯해 내선일체론, 학도병 동원 등을 선전하는 데 이용됐었다. 이 때문에 '조선일보 없는 아름다운 세상'(조아세, www.joase.org) 등 시민단체들은 "독립을 기념하는 성지에 있어서는 안될 기념물'이라며 줄곧 철거를 요구해왔다.
이에 독립기념관 이사회(이사장 윤경빈 전 광복회장)는 지난 3월17일 서울 여의도관광호텔에서 열린 정기이사회에서 <조선> 윤전기 철거를 결정했다. 15명의 이사들 중 참석한 11명이 만장일치로 내린 결정이어서 '윤전기 철거'에 법적인 하자는 없었다.
앞서 <조선>은 이사회 결정 다음날 '6번 뜯긴 비운의 조선일보 윤전기' 등 5건의 비판기사와 사설로 이사회 결정을 맹비난했지만, 정작 윤전기가 친일언론 활동에 이용됐다는 대목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었다. <조선>에서는 "전시하지 않을 바에는 차라리 돌려달라"고 요청했지만, 독립기념관은 "한번 기증 받은 전시물을 돌려주면 유사한 요구들이 빗발칠 수 있어 반환할 수 없다"고 난색을 표했다고.
▲ <조선>은 3월18일자 신문에서 1개면을 털어 윤전기 철거운동을 펼친 안티조선 단체들을 비난하고, 윤전기의 '기구한 사연'을 소개했다.
그동안 사태전개 과정에서 한 가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이문원 기념관장의 애매모호한 태도였다. 평소 '<조선> 윤전기 철거'에 부정적이었던 이 관장은 이사회 결정이 내려진 후에도 <조선>과 한나라당의 반발 때문인지 철거를 주저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 관장은 지난달 5일에는 서울 시내의 한 레스토랑에서 전시자문위원회를 소집해 주위를 어리둥절하게 했다. 통상적으로 기념관내 전시물 선정에 관한 결정은 전시자문위에서 논의됐기 때문에 이 관장이 전시자문위를 지렛대 삼아 이사회 결정을 번복하려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까지 낳았다.
당시 박걸순 독립기념관 학예실장은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부인했는데,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나서야 이사회 결정이 관철된 셈이다. 조아세는 "8.15까지 <조선> 윤전기를 철거하지 않으면 이 관장에 대해 '직무정지 가처분신청'을 내겠다"고 으름장을 놓기까지 했다. <오마이뉴스>는 이같은 정황에 대한 해명을 듣고자 이 관장과 접촉을 시도했으나 전화통화를 하지 못했다.
윤전기 철거가 계속 미뤄진 배경에는 철거날짜가 알려질 경우 조아세 등 안티조선 단체들이 기념관으로 몰려와 '윤전기 철거 축하의식'을 펼칠 것에 대한 우려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임현구 조아세 대표는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그런 일은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임 대표는 "만시지탄(晩時之歎)이지만, 이제야 역사가 올바로 세워졌다. 1차 숙원사업이 일단락됐으니 앞으로는 <조선>을 '민족지'로 왜곡서술하고 있는 교과서를 바로잡는 운동에 매진하겠다"고 논평했다.
임 대표는 "친일시비, 군사정권과의 결탁으로 얼룩진 <조선>과 소속기자들이 감히 정권에 대해 이래라 저래라 말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기염을 토하기도.
독립기념관 이사회에서 <조선> 윤전기의 철거를 주창했던 김삼웅 성균관대 겸임교수(전 대한매일 주필)도 "늦게나마 이사회의 요구가 관철돼 다행이다. 조아세 등 시민단체들의 힘에 의해서 결국 친일신문을 찍었던 <조선> 윤전기가 독립운동을 기념하는 '역사의 현장'에서 사라지게 됐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조선> 경영기획실의 관계자는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독립기념관 이사회에서 철거를 결정했을 때 <조선>은 공식 입장을 발표했다. 그때와 달라진 것이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조아세의 교과서 개정운동에 대해서는 "아직 내부에서 공식 논의된 바가 없다"고 답했다.
2003/08/06 오후 4:56
ⓒ 2003 OhmyNews
조아세 성명서
지난 1년 간 우리는 거짓으로 도배되어 있는 우리나라의 친일역사 중, 단 한가지라도 진실을 밝히고자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그 노력은 첫번째 결실을 거두게 되었다.
어두웠던 과거의 역사를 숨기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영웅적 항일독립투쟁사로 날조해 사기극을 펼쳐온 무소불위의 언론권력에 대항해 진실을 알려나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조선일보는 자신들의 힘을 이용해 우리에게 온갖 탄압을 가했으며 끝까지 반성하기는커녕 궁색한 논리로 자신들의 과거사를 덮고 철거결정을 뒤엎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독립기념관 이사회에서 윤전기 철거 결정이 내려진 이후에도 우리는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이제 실제로 친일에 사용되었던 조선일보 윤전기가 분해 철거되고 진짜 항일운동에 사용되었던 윤전기가 전시된다는 소식을 접하니 기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을 것이다.
아직도 우리나라 역사교과서는 조선일보를 항일민족지로 표기하고 있다. 조선일보 윤전기의 철거와 교체는 왜곡된 과거사를 바로잡는 시작에 불과하다. 조선일보가 스스로 자신들의 어두웠던 역사를 밝히고 참회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한, 우리는 국민들에게 그들의 실체를 알려나가는 일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진실이 진실이 되는 사회는 쉽게 오지 않는다. 그것은 진실이 알려지는 것을 원치 않는 자들에 의해 역사가 쓰여졌고 유지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젠가 그것은 누군가에 의해 반드시 밝혀진다.
2003. 8. 6 조선일보 없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시민모임
[사설] '약탈 문화재' 절도는 옳지 않다(조선일보 2004년 11월10일자)
일본 효고(兵庫)현의 한 사찰에서 한국인 문화재 절도단이 훔친 고려 불화(佛畵)를 되찾기 위해 사찰측 관계자가 한국에 왔다. 이 관계자는 “주지로부터 ‘생명을 걸고 고려 불화를 되찾아 오라’는 말을 들었다”고 밝혔다. 이 불화는 현재 대구 근처의 한 암자에 소장돼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절도범들은 시가 10억원 상당의 불화를 국내에 반입해 고미술시장에서 1억1000만원에 팔았다. 그 후 4~5차례의 거래 과정을 거쳐 마지막 소유자가 암자에 기증했다. 최종 구입자가 장물인 줄 모르고 샀다면 민법상 ‘선의 취득’으로 소유권이 인정되므로 현재로선 그림이 일본으로 되돌아갈 가능성이 적다고 한다.
절도단은 “일본이 그간 약탈해간 문화재를 되찾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다”며 ‘애국 범행’임을 내세웠다. 그러나 약탈 문화재의 반환과 사익(私益)을 취하기 위한 도둑질은 엄연히 다르다. 범인들은 일본의 과거 약탈행위에 대해 ‘절도’라는 똑같은 범죄로 대응함으로써, 일본에 있는 약탈 문화재를 반환해야 한다는 도덕적 국제법적 명분을 훼손한 것이다.
현재 일본에 흩어져 있는 한국 문화재들은 파악된 것만 3만4000여점에 이른다. 우리가 배고팠던 시절 밀반출된 것도 있지만, 대부분 임진왜란과 일제 강점기 두 차례에 걸쳐 그들이 불법 강탈해 간 것들이다. 1965년 한·일협정을 맺을 때 일본으로부터 약탈문화재를 환수할 수 있는 길이 있었다. 그러나 경제개발 자금을 지원받는 데 급해 고작 1300여점만 돌려받는 데 그쳤다. 나머지는 일본인들의 자발적인 기증에 따른다고 합의했지만, 일본이 그렇게 순순히 되돌려줄 거라면 애초 약탈을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국가가 힘없고 제 구실을 못하면 제일 먼저 망가지고 유출되는 게 문화재다. 정부가 앞장서서 약탈 문화재 반환의 목소리를 높이고 끊임없이 노력을 기울여야 할 텐데 그러질 못했기에 절도범들이 도둑질로 문화재를 되찾았다고 주장하는 우스운 세상이 돼 버렸다.
입력 : 2004.11.09 18:28 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