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김대중칼럼]‘양 날개’의 허상 에 대해서
(홍재희)====== 친일 반민족 반민주 반 통일의 냉전 수구적인 방상훈 세습족벌사주체제인 조선일보 김대중 이사기자는
“ 누군가 말했지만 우리 정치도 궁극적으로 ‘보수와 진보의 양 날개’로 날아갈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었다. 2년 전 대통령선거나 지난 4월 총선거에서 국민이 선택한 것이 바로 이런 ‘양 날개’의 시작이었으리라 생각했었다.”
(홍재희) ======= 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사회가 보수와 진보의 양 날개로 균형을 잡고 건강하게 날아가기 위해 권위주의군사독재체제시대에 고착화된 반민주적이고 수구적인 반민주 악법들에 대한 개혁작업에 대해서 방씨 족벌 조선일보와 한나라당이 한통속이 돼서 개혁과 수구의 구도가 아닌 우파와 좌파의 소모적인 색깔논쟁으로 변질시키고 있는 수구적 준동을 극복해 나가야 한다.
(홍재희) ======= 조중동과 한나라당의 수구연합세력들의 준동을 보면서 한국사회가 군사독재체제를 극복하고 형식과 절차에 있어서 민주주의를 정착해 나가고 있지만 한국사회의 민주화가 내용적으로는 아직도 부실하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고 본다. 부연한다면 보수와 진보의 구도로 나아가기위해서는 권위주의 시대에 적합했던 수구적 제도개혁과 동시에 개혁입법 제정 그리고 수구 세력들의 인식의 틀을 바꿔놓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래서 보수와 진보가 공존할수 있는 틀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홍재희) ===== 한국사회는 지금 보수와 진보가 양날개로 날아갈수 있는 역량을 갖추어 나가기 위해 한번은 거쳐 갈 수밖에 없는 개혁 대 수구의 피해갈수 없는 대립구도를 통해서 구체제의 모순을 털고 가야하는 전환기에 처해있다. 2002년 대통령 선거와 2004년 4 . 15 총선거를 통해서 행정부와 입법부가 변화와 개혁을 지향하는 국민들의 표심으로 새롭게 탄생했으나 변화와 개혁의 국민적 검증장치가 개입될 소지가 전혀 없는 사법부나 제4의 권부로 상징되고 있는 언론계 등에 대한 수구적 관습은 절차적으로 민주적인 틀속에 합법적인 공간을 마련하며 아직도 건재하다. 사법부에 속해 있는 헌법재판소가 행정부와 입법부가 추진하고 있는 국책사업에 대해 관습헌법을 적용해 수구적인 위헌결정을 내리며 조 . 중 . 동과 사실상 공조의 틀을 갖추고 있다.
(홍재희) ====== 조중동으로 상징되고 있는 수구족벌언론권력이 제 4의 권부라는 언론의 외피를 걸치고 변화와 개혁지향의 행정부와 입법부를 상대로 수구적 공세의 지형을 형성해 저항하고 있는 정치적 정세가 최근의 한국사회의 갈등과 모순의 한가운데 형성되고 있다. 변화와 개혁의 실체가 사법부와 언론계에 까지 깊숙이 파고들어 구체제에 찌든 관습과 수구적 인적구성요소를 극복해 나가야 만이 비소로 보편적 민주정치라는 몸통을 하고 보수와 진보의 균형잡힌 양날개로 한국사회가 날아 갈수 있다고 본다.
(홍재희) ======= 김대중 이사기자는
“ 우리는 우리가 처한 특수사정과 세계적 냉전구도 속에서 상당 기간 하나의 날개로만 날아왔다. 그래서 우리는 경제발전이라는 득(得)을 보았지만 그에 못지않게 ‘비(非)민주’ 등 많은 실(失)을 지불해야 했다. 그래서 양 날개의 균형이 더욱 절실했는지도 모른다.”
(홍재희) ======== 라고 주장하고 있다. 우리한국사회는 국제적인 냉전체제의 산물인 남북분단을 통해서 대한민국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보편적인 민주적인 정치체제의 발전을 전혀 보여주지 못했다. 이승만 정권은 분단체제하의 수구정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친미 반공의 정체성만 확인되면 친일반민족의 범죄행위를 저지른 민족반역자들과도 정치적으로 손잡고 대한민국을 건국했다. 박정희 군사쿠데타 정권은 친미반공이면 군사독재체제도 용인해주었던 미국의 한반도 분단고착화 정책에 순응하며 한국의 민주헌정질서를 유린하며 집권했다. 그런 가운데 대한민국 헌법이 지향하고 있었던 보편적인 민주주의는 한국에서 존재하지 않았다.
(홍재희) ====== 정권의 안보를 위해 국가보안법이 헌법위에 군림했고 보수와 진보의 양날개를 달고 있는 민주정치는 형식과 내용 양면모두에서 허용되지 않았다. 부연한다면 이승만 . 박정희 정권은 보수라는 날개조차 허용하지 않는 반민족 반민주의 구체제에 찌든 수구정치의 정체성의 몸통 그 자체였다. 박정희의 인위적인 도태를 통해 등장한 전두환의 신군부는 총칼의 피묻은 정의가 살기등등하게 빛나는 사회의 구현을 국정목표로 세워놓고 집권했다.
(홍재희) =====전두환 노태우 정권때에도 물론 보수와 진보의 양날개는 존재하지 않았고 집권세력은 보수가 아닌 전형적인 수구정체성을 보여줬다. 보수라는 날개는 존재하지 않았다. 부연한다면 이승만 . 박정희 .전두환 . 노태우 정권에 이르기 까지의 정치권력의 정체성 속에는 보편적인 민주국가에 존재하고 있는 보수라는 날개가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홍재희) ====== 그렇기 때문에 김대중이사기자가 보수라고 칭하지도 못하고 진보라도 칭하지도 못하고 그저 어정쩡하게 정체불명의 “ 하나의 날개” 로만 날아왔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보편적 민주체제에 존재할 수 있는 날개가 아니었다. 수구적인 몸통하나만이 존재하고 있었을 뿐이다. 김대중기자는 “ 우리는 우리가 처한 특수사정과 세계적 냉전구도 속에서 상당 기간 하나의 날개로만 날아왔다. 그래서 우리는 경제발전이라는 득(得)을 보았지만 그에 못지않게 ‘비(非)민주’ 등 많은 실(失)을 지불해야 했다.” 라고 주장하고 있다. 박정희 . 전두환 노태우로 이어지는 개발독재시대의 경제발전은 필연적으로 1997년말의 IMF 경제위기라는 양적성장의 한계에 맞닿아 있었다.
(홍재희) ===== 그리고 ‘비(非)민주’적인 독재 정치체제는 건강한 보수와 진보의 양 날개가 원천적으로 돋아날 수 없는 수구적 몸통만으로 국민들의 묘혈을 짜내는 독재정치로 일관해 민주주의와 인권과 언론자유의 신장을 지향하는 국민들이 맨몸으로 민주화의 동체착륙을 시도해 수많은 민주시민들의 피와 땀과 눈물을 흘리며 독재체제를 극복해온 한국의 정치 체제속에 존재하고 있는 수구세력들의 몸통을 극복해야 비로소 한국사회가 가 보수와 진보의 양날개를 달고 날아 갈수 있다.
(홍재희l) ====수구의 정체성은 결코 고치고 개선해서 보존해 나갈수 있는 정체성일수 없다. 극복과 청산의 대상일 뿐 공존의 대상일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군사정권이 민주화 투쟁하던 인사들에 대한 정치규제와 탄압과 같은 고립과 배제를 통해 극복하는 방법은 있을수 없다. 민주정치의 근본취지인 기본권을 제약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법과 제도적 틀속에서 국민적 지지를 획득해 수구정체성에 오염된 채 방치돼 있는 법과 제도와 사회적 관행들을 극복해 나가야 한다. 이승만 독재 박정희 군사독재 전두환 노태우 신군부 독재체제와 한 몸통이었던 한나라당과 조중동은 결코 보수일수 없다. 구체제인 수구적 정치집단일 뿐이다. 그들은 민주국가의 보수적인 날개 일수 없다.
(홍재희) ======= 김대중 이사기자는
“ 노무현 정권이 출범했을 때 많은 사람, 심지어 과거의 주류세력 가운데서도 보수의 편식과 기득의 군림에 식상한 사람들까지 이제 대한민국이 세계의 여러 선진정치처럼 우(右)와 좌(左), 보수와 진보 또는 리버럴이 국민의 선택과 시대적 요구에 따라 일정 기간 서로 교체해가며 나라를 균형 있게 이끌어갈 수 있기를 기대했다. 그것이 진정한 민주화이고 개혁이라고 믿었다.”
(홍재희) ======== 라고 주장하고 있다. 배타적인 수구세력들은 결코 보수와 양립할 수 없다. 건강한 보수세력은 진보와 함께하지 않는 한 존재가 불가능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보편적 민주정치의 표본이자 정석이다. 한국의 수구정치집단들은 민족 정통성을 훼손하고 민주적 가치질서를 파괴하고 보수와 진보가 같이 날아가는 민주 정치적 기본기 자체를 부정하고 배척해온 하나의 정치이념만을 독점적이고 배타적으로 강제해온 반민주적인 집단들이기 때문이다.
(홍재희) ===== 그들 수구세력들은 지금도 배타적 수구정치로 집권하던 시절의 색깔론을 무기로 해서 수구대 개혁의 정치적 지형을 좌파와 우파의 이념적 갈등의 소모적 정쟁으로 몰고가 아직도 한국사회에 뿌리깊이 잔존하고 있는 레드콤플렉스를 악용하면서 얼마 전에 끝난 국정감사에서도 색깔론을 수구정치의 전략으로 내세워 보수와 진보의 지형으로 나아가야할 한국정치의 발목을 잡고 있다.
(홍재희) ====== 그런 색깔론이 배경에 깔린 수구정치집단인 한나라당의 정치적 공세를 조중동이 확대재생산해 냈다. 그런 한나라당과 조중동이 보수와 진보의 양 날개로 날아가는 민주정치를 받아들일 자세가 전혀 돼 있지 않은 수구집단들을 김대중 이사기자는 “ 과거의 주류세력” 으로 미화하고 있다. 김기자가 미화하고 있는 “과거의 주류세력” 들은 보수의 편식이 아니라 수구의 배타적 정체성을 밑도끝도 없이 탐닉하는 거식증에 의한 탐욕적인 포만감으로 국민들의 희생을 전제로한 기득을 획득하며 민주주의의 보편적 가치를 깔아뭉게고 군림을 했을 뿐이다.
(홍재희) ===== 그런 수구집단들에게 있어서 우(右)와 좌(左), 보수와 진보 또는 리버럴은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지극히 사치스러운 나라의 이상향 일 뿐이었다. 그들 수구집단들에게 있어서 민주화는 좌경과 용공과 사회주의적인 좌파 정권의 붉은 집권의 도구와 수단으로 만 인식되었다. 그들 한나라당과 조중동으로 상징되고 있는 수구집단들은 민주화의 진전을 곧 수구기득권 정치권력을 사방에서 감싸버리는 거대한 적화( 赤化)의 보자기로 인식해 왔다. 그런 그들에게 우(右)와 좌(左), 보수와 진보 또는 리버럴은 민주화의 붉은 보자기에 사치스럽게 수놓아진 악세사리에 불과 했다. 그 이상의 고려대상 일수 없었다. 김대중 이사기자 안 그런가?
(홍재희) ====== 김대중 이사기자는
“ 그래서 새로운 집권세력이 청와대에서 운동권 노래를 부르며 눈물을 흘렸을 때도, 새 대통령이 시도 때도 없이 편가르기를 시도하며 낯선 단어들을 토해냈을 때도, 그들이 당장 국민들의 어려운 살림살이보다 여러 ‘개혁적 구상’들에 집착했을 때도, 그리고 과거 주류세력에 대해 정치적 보복의 인상이 짙은 일들을 감행했을 때도, 심지어 비판언론에 대해 계속 의도적·감정적 전선(戰線)을 그어 나갔을 때도 사람들은 그것이 양 날개로 가기 위한 통과의례이거나 한 번은 겪고 넘어갈 수밖에 없는 정치적 비용이거니 하고 여겨주는 경향이 없지 않았다.”
(홍재희) ====== 라고 주장하고 있다. 보수와 진보의 양 날개로 균형을 잡고 날아가는 민주정치제도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민주적인 절차와 형식을 통해 진행된 선거와 투표결과에 대한 승복이다. 그러나 김대중 이사기자는 2002년 대통령 선거가 끝난지 벌써 2년이 가까워 지고 있는 이시점에서 까지 “ 새로운 집권세력” 운운하며 집권세력과 비집권세력으로 국민들 사이를 의도적으로 편을 가르며 선거결과에 대해서 아직도 승복하지 않는 행간의 의미를 독자들에개 교묘하게 전달하고 있다.
(홍재희) ===== 한국의 방씨 족벌조선일보와 김대중 이사기자 빼고 전 세계 그 어느 국가의 언론매체도 민주적인 선거절차에 의해서 집권한 국민을 대표하는 대통령을 비롯한 국정수행의 중추세력들을 국민들과 유리시키려는 속셈으로 “ 집권세력”으로 부르고 있는 곳은 지구상에 조선일보와 김대중 이사기자 밖에 없다. 김기자는 집권세력과 비 집권세력으로 편을 갈라 놓고 그것도 모자라 "집권세력“과 ”과거주류세력“으로 대립각을 보다 구체화하고 있다.
(홍재희) ======변화와 개혁의 구도가 아닌 "집권세력”과 과거주류세력“으로 대립각을 형성해 놓고 조중동과 한나라당으로 상징되고 있는 수구집단들과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리버럴한 노무현 정권을 ”정치적 보복“을 하는 신기득권세력으로 상징조작 하면서 그런 신기득권세력에 대한 조선일보의 수구적 공세를 마치 신기득권세력의 공세에 수세적인 ‘비판언론 ’ 인양 상징조작하며 조선일보와 김대중 기자에 의해서 의도적으로 가공된 조선일보에 대한 약자 이미지를 독자들에게 각인시키며 노무현 정권이 마치 조선일보를 탄압하는 듯한 어처구니없는 상징조작을 하고 있다.
(홍재희) ====== 이러한 방씨 족벌 조선일보와 김대중 이사기자의 수구적인 상징조작은 구조적으로 어려워진 경제의 양극화 현상에 찌든 대다수 서민대중들의 정서적 공감대속을 파고 들어가고 있다. 노무현 정권에 대한 정치적 반대의 입장에 서있는 국민들의 정서를 자극하고 있다. 그래서 궁극적으로 조중동과 한나라당과 김대중 이사기자 와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리버럴한 노무현 정권의 미약한 변화와 개혁 조차도 무력화 시켜 결과적으로 수구집단이 득세하기기 위한 수구공작적 의도가 김대중 칼럼 전반에 절절하게 흐르고 있다.
(홍재희) ====== 이러한 의도는 김대중 이사기자가 겉으로 내세우고 있는 보수와 진보의 양날개로 날아가기 위한 변화와 개혁을 통한 수구척결의 구도를 무력화 시키고 권위주의 적이고 수구적인 정치로의 르네상스화를 위한 사전정지작업을 진행중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분명한 것은 수구 속에 민주없고 보편적 민주정치 속에 수구가 자리잡고 설땅은 없다. 수구가 몸통이 됐을때에는 보수와 진보의 날개 자체가 돋아날 수 없었다. 한국의 수구정치 적 과거사가 실사구시적으로 그것을 증명해 주고 있다.
(홍재희) ======== 김대중 이사기자는
“ 그러나 그런 기대는 어긋나고 있다. 그런 통과의례적 관점이 잘못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우선 새 주류세력이 의식 면에서는 좌파적이고 진보적일는지 모르지만 행동양식은 과거의 우파적 그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데 실망하게 된다. 대통령 한마디에 일렬로 줄 서기는 과거 권위·독재시대 뺨칠 정도다. ‘새로운 세대’다운 데가 없다. 운동권 시절의 자유분방이나 문제의식의 거침없는 개진도 찾아볼 수 없다.”
(홍재희) ======= 라고 주장하고 있다. 김대중 이사기자는 아주 교묘하게 노무현 정권을 조선일보와 김대중이사기자가 신용비어천가를 불러대며 칭송해 마지 않았던 군사독재정권들과 행동양식에서 다를바가 없다고 악의적으로 상징조작하고 있다. 김기자의 용어선택을 바로잡아야 할 것은 먼저 노무현 정권은 여러 정치 . 정책적 시행착오와 오류가 파생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중동과 한나라당 그리고 김대중 이사기자와 비교해보면 상대적으로 리벌럴한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다.
(홍재희) ====== 상대적으로 그래도 개혁 지향적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김기자는 그런 개혁성을 “ 새주류세력” 이라는 기득권의 과거지향적인 채취가 느껴지는 용어선택을 통해 정체성을 물타기 하고 있고 과거의 군사독재체제와 한나라당 그리고 방씨 족벌 조선일보와 김대중 이사기자의 수구적인 정체성을 ‘ 우파적’ 이라고 미화 하고 있다.김대중 이사기자가 얘기하고 있는 '과거의 우파'는 독재정권시대에 국민들을 학살하고 용공조작하고 반대하는 학생들을 물고문해서 죽이고 최루탄 쏘아 죽이고 성고문하고 요인 납치하고 인권유린하는 대명사였다.
(홍재희) ===== 전세계 민주정치를 하는 나라의 어느 우파가 김기자가 주장하고 있는 한국의 '과거우파'와 같은 악행을 저질렀다는 말인가? 보편적인 민주정치를 하는 나라들중에는 그런 학살과 인권유린을 하는 '우파'는 전무후무하다. 사람잡는 우파는 존재하지 않고 있다. 그런측면에서 접근해 볼때 김대중 이사기자가 상징조작하고 있는 '과거의 우파'는 엄밀하게 분석한다면 민주정치속에서 성장하고 있는 우파가 아니라 수구이다. 극복과 청산의 대상인 수구집단일 뿐이다. 그런 김대중 기자의 한국수구집단에 대한 긍정적인 상징조작과 전혀 상반되게 노무현 정권을 수구적으로 몰고 가는 공작적 글쓰기를 하고 있다.
(홍재희) ====== 김기자는 “ 대통령 한마디에 일렬로 줄 서기는 과거 권위·독재시대 뺨칠 정도다. ‘새로운 세대’다운 데가 없다. 운동권 시절의 자유분방이나 문제의식의 거침없는 개진도 찾아볼 수 없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김기자는 뭔가 중대한 착각을 하고 있다. 노무현정권은 당과 정부가 분리돼 있다. 조선일보의 방씨 족벌세습사주체제가 조선일보에 대한 소유와 경영과 편집권에 대한 독점적이고 배타적이며 폐쇄적인 제왕적 언론권력을 통해 김대중 이사기자를 비롯한 조선일보 임직원들을 사실상 원격조정하고 있는 방상훈 사장의 조선일보체제의 권위주의적이고 수직적인 상명하복식의 밤의 대통령이 ‘영도’ 하는 관행으로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 관계를 평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무리가 따른다.
(홍재희) ====== 대통령의 반문명적이고 야만적인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자는 주장에 대해서도 찬성하는 측과 개정에 관심을 두고 있는 측이 공존하고 있다. 과거 군사독재정치시대와 같았으면 그것은 일종의 항명으로서 정치적 불이익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관행이 현존하지 않고 아무렇지도 않게 일반화 되고 있다. 문제는 김기자와 다른 관점에서 나타나고 있다. 열린 우리당이 4대개혁입법을 내놓은 것을 보면 대통령이 요구하고 있는 것 보다 미온적으로 나오고 있다. 이런 모습은 김기자가 " 대통령 한마디에 일렬로 줄 서기는 과거 권위·독재시대 뺨칠 정도다. ‘새로운 세대’다운 데가 없다. 운동권 시절의 자유분방이나 문제의식의 거침없는 개진도 찾아볼 수 없다.”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 허구라는 것이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홍재희) ====== . 대통령보다 더 강력한 개혁의 드라이브를 걸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을 보면 그들도 현실정치의 기교를 부리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이 오히려 노무현 정권이 지향하고 있는 개혁의 화두에 대해서 스스로 정체성을 회석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본다. 부연한다면 반개혁적인 방향성으로 자유분방함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 문제이다. 군사독재체제때 같았으면 대통령 말을 어긴다는 것은 곧 정치적 생명을 단축하는 것이됐었는데 김대중 이사기자가 자칭하고 있는 “ 새주류세력”들은 그런 제왕적 대통령의 권위주의적이고 초법적인 압력에 굴복하지 않는 자유분방함은 아직도 남아있는 것으로 보인다.
(홍재희) ====== 김대중 이사기자는
“ 이들에게는 법에 대한 존엄성이 없다. 헌법재판소의 수도 이전 위헌판결을 놓고 노사모들의 악쓰는 모습은 그렇다 쳐도, 일부 386의원들이 보인 무법적 언행은 새로운 주류세력의 민주적 자질을 의심케 한다. 거기다가 대통령이 시정연설에서 보인 ‘말장난’에 가까운 언급은 사람들의 귀를 의심케 한다. 법을 지킬 의무가 있는 대통령에게 승복하고 안 하고는 논의의 대상이 아니다. 그런데 승복 여부를 놓고 “효력을 부정하지 않는다”니 그 협량과 꼼수가 가히 극에 달한 느낌이다. 누가 어떤 의도로 만들었건 그것이 일단 법제화된 이상, 법을 지키려는 의지가 없다면 이 나라는 나라라고 말할 수 없다. 더욱이 대통령이 앞장서서 그런 불복의 분위기를 유도한다면 이 나라는 양 날개가 아니라 날개 자체가 없는 상태가 된다. “
(홍재희) ======= 라고 주장하고 있다. 김대중 이사기자의 주장에 동의 하지 않는다. 민주사회라면 방씨 족벌의 조선일보와 김대중 이사기자가 헌법재판소의 위헌판결에 아무말없이 동의하는 집단이 있을수도 있고 반면에 방씨족벌 조선일보와 김대중 이사기자와 다른 관점에서 헌법재판소의 위헌 판결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를 낼수도 있다. 김기자는 그것을 인정해야한다. 찬반의 목소리가 실정법안에서 가감없이 공존하는 것이 민주사회이다.
(홍재희) ======= 김대중기자는 자신과 반대되는 목소리를 지금 못마땅해 하고 있다. 그것은 국론분열이나 혼란이 아닌 민주적 가치체계를 토론을 통해 한단계 더 성숙시키는 계기가 된다. 조선일보가 제대로 된 신문매체이고 김대중 이사기자가 대기자적인 자질이 있다면 이러한 논쟁을 적극적으로 공론화 시켜서 3권분립의 민주적 정치질서의 뿌리를 깊게 내리게 하는데 사회적 공론의 장을 만들어 가는데 기여해야 함에도 불고하고 조선일보와 김대중 이사기자의 인식과 다른 입장들에 대해서 헌법에 대한 불복 운운하며 매도하고 있는 것은 조선일보가 아직도 한국사회의 다양한 여론의 상호 교감을 통해 형성되고 있는 정론을 전달할 준비가 갖추어져 있지 않다는 것을 알수 있다. 그리고 김대중 이사기자는 먼저 정확한 사실전달이라는 글쓰기의 기초에 충실해야한다. 헌법재판소가 위헌판결을 내린 것은 수도이전 아니라 신행정수도이전 특별법에 대해 위헌결정을 내린 것이다.
(홍재희) ====== 김기자는 헌법재판소가 수구적인 관습헌법으로 위헌결정을 내린것에 대해서 법적인 효력은 인정하되 판결에 대한 다양한 문제를 제기하는 것에 대해서 법에 대한 존엄성이 없다. 고 매도하고 있다. 그런 김대중 이사기자는 법에 대한 존엄성을 잘 인식하고 있어서 대한민국의 헌법을 탈법적으로 유린하고 유신악법을 만든 박정희 유신정권의 유신헌법을 조선일보와 같이 찬양하고 전두환 신군부의 군사쿠데타를 위해 악용된 국보위법에 대한 존엄성을 조선일보와 김대중 이사기자가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비판은 커녕 무비판적으로 신용비어천가를 부르며 전두환 신군부의 국가내란행위를 구국의 결단으로 칭송했다는 말인가
(홍재희) ====== 조선일보와 김대중 이사기자가 대한민국 헌법에 대한 존엄성을 눈꼽만큼 이라도 지니고 있었다면 박정희 자신의 종신영구집권을 위해 대한민국의 헌법을 누더기로 만든 박정희 유신정권의 악법 개정에 대해서 칭송이 아닌 비판을 해야했다. 그러나 방씨족벌 조선일보와 김대중 이사기자는 유신헌법을 찬양했다. 그것이 보수와 진보의 양날개로 날아가는 민주국가의 법에 대한 존엄성을 표현하는 조선일보와 김대중 이사기자의 태도였을까? 조선일보와 김대중 이사기자가 박정희 정권의 유신악법과 전두환 신군부의 국보위법에 대해서 헌정질서를 유린한 것으로 헌법수호차원에서 당당하게 비판하지 못하고 침묵하고 비굴하게 굴종한 것이야말로 ‘무법적 언행’ 이 아닐까?
(홍재희) ======= 김기자는 “ 헌법재판소의 수도 이전 위헌판결을 놓고 노사모들의 악쓰는 모습은 그렇다 쳐도, 일부 386의원들이 보인 무법적 언행은 새로운 주류세력의 민주적 자질을 의심케 한다. 거기다가 대통령이 시정연설에서 보인 ‘말장난’에 가까운 언급은 사람들의 귀를 의심케 한다. 법을 지킬 의무가 있는 대통령에게 승복하고 안 하고는 논의의 대상이 아니다. 그런데 승복 여부를 놓고 “효력을 부정하지 않는다”니 그 협량과 꼼수가 가히 극에 달한 느낌이다. “ 라고 주장하고 있다. 노사모가 반대의견을 내는 것에 대해서 악쓰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런 건강한 담론이 한국의 민주주의를 내용적으로 살찌우는 계기가 된다는 것을 김대중 이사기자는 간과하고 있다.
(홍재희) ===== 김대중 이사기자는 조선일보가 민주주의 선진국이라고 칭송하고 있는 미국의 4년전 대통령선거에서 개표시비가 일어 미국의 민주당과 공화당 지지자들이 백주대낮에 서로 격렬하게 논쟁과 함께 다투는 장면을 목격하고 무슨생각을 했을까? 김기자는 뭔가 중대한 착각을 하고 있다. 대통령이나 여야를 막론하고 어느누구도 현재 헌법재판소의 위헌 판결에 대해서 법적효력을 부정하지 않고 있다. 이것이 바로 법에 대한 존엄의 실천적 의미 그 자체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3권 분립체제는 상호추종과 종속의 일방적인 순치관계가 아닌 상호비판과 견제의 건강한 긴장관계가 유지돼야 한다고 본다.
(홍재희) ===== 그러나 이제까지 대한민국에서 절차적 민주제도인 3권 분립체제하의 입법 . 행정 . 사법부의 관계는 군사독재체제의 폭력적 통치를 통해 입법부와 사법부가 정치권력에 종속된 권력의 시녀노릇을 했던 관행에 익숙해졌었다. 그러나 지난 16대 국회에서는 입법부의 다수당이었던 한나라당의 주도하에 대통령을 탄핵하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과거같으면 상상 할수도 없는 일이다. 그리고 이번에 헌법재판소의 대통령이 추진하고 있는 국책사업에 대한 위헌결정은 과거와 같으면 상상조차 할수 없는 판결이었다. 그러나 입법부와 사법부의 탄핵과 위헌결정이 독자적으로 작동돼 돌아가고 있다는 것은 노무현 정권 들어서서 3권 분립의 권력에 대한 상호견제 시스템이 상식적으로 잘 작동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홍재희) ====== 이런 현상은 어느 정치집단의 현실정치적 이해득실을 떠나 노무현 정권들어 한국의 민주주의가 한 단계더 질적으로 업그레이드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본다. 김대중 이사기자는 그런 측면을 읽지못하고 있다. 김기자의 민주적인 역량이 떨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김기자가 한가지 간과하고 있는 것은 노무현 대통령이 법이 허용하고 있는 범위내에서 행정부의 대표로서 사법부인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는 점은 권력상호간의 비판과 견제의 3권 분립구조의 내실있는 발전에 대단히 긍정적인 기여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홍재희) ====== 특히 21세기의 한국사회 마래를 열어 나가야할 정부의 국책사업을 14세기적인 봉건왕조의 관습헌법을 적용해 성문법 체계를 도입한 국가의 정책에 대한 판결을 내린 문제는 현재 헌법재판소내부에서도 논란이 되고 있을 정도로 법적용상의 문제점이 집중 제기되고 있고 사회적으로 뜨거운 토론이 전개되고 있는 현실 속에서 이 문제를 대통령이 일단 위헌결정의 법적효력을 인정하고 합법적인 공간을 통해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김기자가 ‘불복의 분위기’ 운운하는 것은 전혀 설득력이 없다.
(홍재희) ===== 김기자의 주장대로라면 법적으로 정치적으로 아무런 하자가 없는 국책사업을 14세기적인 봉건왕조의 관습법을 무리하게 적용해서 위헌결정을 내린 사법부의 수구적인 관행을 통해 입법부와 행정부의 역할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사법부의 독선을 방조하자는 얘기인데 그런 식으로 사법부가 독선적 행태를 지속한다면 그래서 행정부와 입법부의 기능이 무력화 된다면 3권 분립이라는 민주정치질서의 기본적인 권력분점의 틀 자체가 무력화 되는 기현상이 파생돼 한국의 민주정치가 보수와 진보의 양날 개로 날지 못하는 결과가 나타날수 있다.
(홍재희) ===== 과거 군사독재 체제때에는 배타적인 군사정치권력이 입법부와 사법부를 정권의 하수인으로 전락시켜 3권분립의 민주정치가 파행적으,로 진행되었으나 이번 헌법재판소의 수구적인 인적구성원들이 14세기식의 관습헌법으로 행정부와 입법부의 역할을 무력화 시킨 것은 사법부 우위로 인해서 3권 분립,의 권력상호간의 균점을 통한 견제장치의 정상적인 작동을 불가능하게 할수 있기 때문에 권력상호간의 균형이 무너지게 될수도 있다.
(홍재희) ======= 이번기회에 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헌법재판소의 제도문제 법적인 문제 그리고 인적구성원에 대한 문제를 적극적으로 풀어나가야 하겠다. 방씨족벌 조선일보와 김대중이사기자가 맹목적으로 숭배하고 있는 미국의 경우도 시대와 법적으로 상충되고 있는 문제가 있는 것은 시대와 사회적 변화에 맞게 ‘수정헌법’ 을 통해 보완해 나오고 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이번기회에 헌법재판소의 인적구성원들이 21세기의 한국사회에 대한 역동적 변화에 대해서 제대로 인식하고 헌법재판소의 중책을 맡고 있는지에 대한 인적구성원의 충원구조에 문제는 없었는지에 대해서도 심각하게 짚어 볼 필요가 있다.
(홍재희) ====== 김대중 이사기자는
“ 사람들은 새 집권세력이 세대적으로 젊어진 만큼 비록 의식과 정책에서는 견해를 달리할 망정 ‘젊음’에서 오는 진취성, 신선감, 솔직담백성은 과거와 다를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이들은 솔직하지도, 담백하지도, 진취적이지도 않은 것 같다. 다른 사람에게는 걸핏하면 사과를 요구하면서 자기들은 사과할 줄 모른다. ‘내 생각과 달랐다’고 말하면 될 것을, 야당 앞에서 ‘내가 좀 과했다’고 한마디 하면 끝날 것을, 끝내 뻣뻣하게 버텼다. 집권세력은 사사건건 뒤틀고 시비적이고 말끝마다 ‘그러나’의 연발이며, “너희들은 과거 어땠는데…”라고 외쳐댄다. 원로들이 좋게 충고하면 “잘 알겠다”고 하면 될 것을 ‘약자·강자론’을 들고 나와 끝까지 해보겠다는 투다. 속내를 털어놓을 때 이들이 쓰는 말들은 천박하기까지 하다. 그래도 다른 한쪽의 날개에는 뭔가 다른 것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이제 산산조각이 나고 있다. “
(홍재희) ====== 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 김기자의 주장대로 “ 야당 앞에서 ‘내가 좀 과했다’고 한마디 하면 끝날 것을, 끝내 뻣뻣하게 버텼다. 집권세력은 사사건건 뒤틀고 시비적이고 말끝마다 ‘그러나’의 연발이며, “너희들은 과거 어땠는데…”라고 외쳐댄다. 원로들이 좋게 충고하면 “잘 알겠다”고 하면 될 것을 ‘약자·강자론’을 들고 나와 끝까지 해보겠다는 투다. 속내를 털어놓을 때 이들이 쓰는 말들은 천박하기까지 하다. “ 라는 측면이 있을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정권이 조중동이나 한나라당으로 상징되고 있는 수구정치집단에 대해서 “너희들은 과거 어땠는데…”라고 외쳐대고 있는 것은 상당한 설득력이 있다고 본다.
(홍재희) ====== 조중동이나 한나라당으로 상징되고 있는 수구정치집단들은 정치적 반대를 전혀 허용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수구집단들이 배타적 정치권력을 유지하고 있었던 시절에는 대통령에 대한 탄핵 자체가 허용되지 않았다. 조중동이나 한나라당으로 상징되고 있는 수구정치집단들이 집권하고 있던 시절에는 박정희. 전두환 . 이 추진하는 국가정책에 대해서 헌법소원을 할수 있는 법적 제도적 장치조차 허용하지 않았었다. 아니 입법부와 사법부를 수구정치권력의 시녀로 전락시켜 3권 분립의 민주정치를 수구적인 도리깨질로 난타했었다.
(홍재희) ===== 그러나 노무현 정권하에서는 헌법재판소의 기능을 통해 행정부와 입법부의 활동을 견제하는 공간이 마련된 가운데 3권 분립의 민주적인 정치질서를 통해 보수와 진보의 양날개를 통해 날아갈수 있도록 수구적인 관행과 법과 제도의 개혁을 추구하기위해 현재 조중동이나 한나라당으로 상징되고 있는 수구정치집단과 개혁 대 수구의 대립각을 세우면서 법이 허용하고 있는 범위 내에서 3권의 분립이라는 균형을 유지하며 변화와 개혁을 지향하고 있다. 무엇이 잘못 됐다는 말인가?
(홍재희) ===== 김기자는 “ 원로들이 좋게 충고하면 “잘 알겠다”고 하면 될 것을 ‘약자·강자론’을 들고 나와 끝까지 해보겠다는 투다. 속내를 털어놓을 때 이들이 쓰는 말들은 천박하기까지 하다. 그래도 다른 한쪽의 날개에는 뭔가 다른 것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이제 산산조각이 나고 있다. “라고 주장하고 있다. 김기자가 말하는 원로들 대부분은 보수와 진보의 양날개 자체를 원천적으로 봉쇄했던 수구의 몸통이었던 사람들이다. 김기자가 인용하고 있는 원로들 대부분은 3권 분립의 민주정치질서를 유린하는 가운데 배타적 권력을 행사하며 국민들 위에 군림하던 집단들이다. 그들의 주장을 옹호하고 있는 조선일보와 김대중 이사기자도 3권 분립의 민주정치 질서를 총칼로 유린하고 보수와 진보의 양날개를 원천적으로 성장할수 없게한 정통 성없는 수구 정치적 몸통과 권언유착을 통해 대한민국의 3권 분립이라는 민주정치질서를 유린한 가해자이다.
(홍재희) ====== 이들 수구적 집단들은 국민들이 만들어놓은 3권분립의 정상적인 민주정치권력의 합법적인 공간속에서 3권 분립의 정치질서를 위협하는 표독스러운 반민주적 행태를 보여주고 있다. 이들 수구집단들이야말로 보수와 진보의 양날개로 날아갈수 있는 한국의 민주정치질서의 정착을 태생적으로 반대하고 3권 분립의 민주정치체제라는 합법적인 공간속에서 지금 수구정치의 도래를 꿈꾸며 저항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절차적 민주화 속에 들어온 수구집단들에 의해 내용적인 민주화가 오염되고 훼손되고 있는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과거청산과 악법폐지와 새로운 시대를 열아나가기 위한 인적청산이 전제돼애 한다. 절차적 민주화 못지않게 그에 상응하는 내용적 민주화에 개혁의 힘을 정력적으로 쏟아 부어야 한다.
[김대중칼럼]‘양 날개’의 허상 (조선일보 2004년 10월27일자)
누군가 말했지만 우리 정치도 궁극적으로 ‘보수와 진보의 양 날개’로 날아갈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었다. 2년 전 대통령선거나 지난 4월 총선거에서 국민이 선택한 것이 바로 이런 ‘양 날개’의 시작이었으리라 생각했었다.
우리는 우리가 처한 특수사정과 세계적 냉전구도 속에서 상당 기간 하나의 날개로만 날아왔다. 그래서 우리는 경제발전이라는 득(得)을 보았지만 그에 못지않게 ‘비(非)민주’ 등 많은 실(失)을 지불해야 했다. 그래서 양 날개의 균형이 더욱 절실했는지도 모른다.
노무현 정권이 출범했을 때 많은 사람, 심지어 과거의 주류세력 가운데서도 보수의 편식과 기득의 군림에 식상한 사람들까지 이제 대한민국이 세계의 여러 선진정치처럼 우(右)와 좌(左), 보수와 진보 또는 리버럴이 국민의 선택과 시대적 요구에 따라 일정 기간 서로 교체해가며 나라를 균형 있게 이끌어갈 수 있기를 기대했다. 그것이 진정한 민주화이고 개혁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새로운 집권세력이 청와대에서 운동권 노래를 부르며 눈물을 흘렸을 때도, 새 대통령이 시도 때도 없이 편가르기를 시도하며 낯선 단어들을 토해냈을 때도, 그들이 당장 국민들의 어려운 살림살이보다 여러 ‘개혁적 구상’들에 집착했을 때도, 그리고 과거 주류세력에 대해 정치적 보복의 인상이 짙은 일들을 감행했을 때도, 심지어 비판언론에 대해 계속 의도적·감정적 전선(戰線)을 그어 나갔을 때도 사람들은 그것이 양 날개로 가기 위한 통과의례이거나 한 번은 겪고 넘어갈 수밖에 없는 정치적 비용이거니 하고 여겨주는 경향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 기대는 어긋나고 있다. 그런 통과의례적 관점이 잘못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우선 새 주류세력이 의식 면에서는 좌파적이고 진보적일는지 모르지만 행동양식은 과거의 우파적 그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데 실망하게 된다. 대통령 한마디에 일렬로 줄 서기는 과거 권위·독재시대 뺨칠 정도다. ‘새로운 세대’다운 데가 없다. 운동권 시절의 자유분방이나 문제의식의 거침없는 개진도 찾아볼 수 없다.
이들에게는 법에 대한 존엄성이 없다. 헌법재판소의 수도 이전 위헌판결을 놓고 노사모들의 악쓰는 모습은 그렇다 쳐도, 일부 386의원들이 보인 무법적 언행은 새로운 주류세력의 민주적 자질을 의심케 한다. 거기다가 대통령이 시정연설에서 보인 ‘말장난’에 가까운 언급은 사람들의 귀를 의심케 한다. 법을 지킬 의무가 있는 대통령에게 승복하고 안 하고는 논의의 대상이 아니다. 그런데 승복 여부를 놓고 “효력을 부정하지 않는다”니 그 협량과 꼼수가 가히 극에 달한 느낌이다. 누가 어떤 의도로 만들었건 그것이 일단 법제화된 이상, 법을 지키려는 의지가 없다면 이 나라는 나라라고 말할 수 없다. 더욱이 대통령이 앞장서서 그런 불복의 분위기를 유도한다면 이 나라는 양 날개가 아니라 날개 자체가 없는 상태가 된다.
사람들은 새 집권세력이 세대적으로 젊어진 만큼 비록 의식과 정책에서는 견해를 달리할 망정 ‘젊음’에서 오는 진취성, 신선감, 솔직담백성은 과거와 다를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이들은 솔직하지도, 담백하지도, 진취적이지도 않은 것 같다. 다른 사람에게는 걸핏하면 사과를 요구하면서 자기들은 사과할 줄 모른다. ‘내 생각과 달랐다’고 말하면 될 것을, 야당 앞에서 ‘내가 좀 과했다’고 한마디 하면 끝날 것을, 끝내 뻣뻣하게 버텼다. 집권세력은 사사건건 뒤틀고 시비적이고 말끝마다 ‘그러나’의 연발이며, “너희들은 과거 어땠는데…”라고 외쳐댄다. 원로들이 좋게 충고하면 “잘 알겠다”고 하면 될 것을 ‘약자·강자론’을 들고 나와 끝까지 해보겠다는 투다. 속내를 털어놓을 때 이들이 쓰는 말들은 천박하기까지 하다. 그래도 다른 한쪽의 날개에는 뭔가 다른 것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이제 산산조각이 나고 있다.
(김대중 이사기자 ) 입력 : 2004.10.26 19:14 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