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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대의 사기극

안녕하십니까.


저는 대구에 사는 50대 중반의 한 어리석은 여인입니다.


제가 이 날까지 3남매를 키우며 나름대로는 사회에 봉사하고 열심히 살아온 인생이라 자부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2년 전 저는 저의 인생에 중대한 실수를 하게 되었고 그 결과로 저와 저의 아이들 3남매와 저의 언니들, 여동생들까지도 도탄에 빠지게 만들었습니다.


1983년에 저의 남편이 부도를 맞게 되어 전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고, 평소에 꽃꽂이를 공부했던 터라 전 꽃집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처음 꽃집을 하던 당시 30만원이라는 금액으로 시작해서 3남매를 교육시키고, 시부모님을 봉양하며 남편의 빚도 갚고 나름대로 돈을 모아가며 열심히 장사를 했습니다.


그로부터 10년 정도 열심히 장사를 한 결과 전 집안경제를 안정시킬 수 있었고, 제가 평소에 해보고 싶었던 드레스샵을 오픈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드레스샵을 1994년 오픈을 하고 7년 정도가 지난 후 저에게도 기회가 찾아 왔습니다.


제가 평소에 다니는 수영장에서 10년 정도를 같이 운동을 했던 늘봄예식장 사장의 부인이라는 윤정희가 3년 전 부도로 빼앗겼던 늘봄예식장을 경매를 보아 다시 되찾았다고 자랑을 하고 다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윤정희는 저에게 예식장은 드레스샵이 필요하니 한번 해볼 생각이 없느냐고 제안을 해왔고, 제가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자 자신의 남편인 늘봄예식장의 사장이라는 김광수를 만나도록 유도했습니다.


김광수는 저를 만나고 나서 꼭 같이 일해보고 싶다고 저에게 파격적인 조건으로 드레스샵과 꽃집을 늘봄예식장내에서 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2001년 9월 26일 김광수에게 드레스샵과 꽃집의 보증금 1억 5천만원중 1억원을 김광수가 늘봄예식장 등기설정비용으로 급하게 필요하다고 해서 먼저 주었고, 1억원에 대한 전세권설정은 은행다음 순위인 2순위로 해준다는 약속을 받고 일단은 영수증을 먼저 받았습니다.


그리고, 당일 날 전세권설정을 하기 위해 송해익 변호사법률 사무소로 김광수와 갔으나 늘봄예식장의 등기상의 주인이 윤영수, 이완규인 것을 보고 김광수에게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를 물었더니 김광수는 자신이 3년 전 부도로 자신의 이름으로는 등기를 올리는 것이 불가능해서 자신의 처남인 윤영수와 아는 선배인 이완규라는 사람을 등기상으로만 등재를 시켜 놓았고, 그 사람들은 한달 뒤에 서류상으로도 완전히 정리가 되므로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법에 어두운 저는 일단 돈1억 원까지 건네준 상태이므로 김광수의 말을 믿고, 전세권 설정부터 하기 위해 설정비용을 각자 25만원씩을 내고 서류를 만들고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3주일정도가 지난 어느 날 법률사무소에서 전화가 와서 전세권 설정을 할 것인지를 저에게 물어 왔습니다.


전 이미 설정 비용까지 다 지불한 터라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물었더니 법무사에서 하는 말이 전세권 설정을 하고 간 뒤 2시간이 지나 김광수가 다시 찾아와 이상분과는 계약을 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며 설정을 보류해 달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놀란 저는 김광수에게 찾아가 따져 물었더니 김광수는 제 2금융권에서 대출을 더 받기 위해 저의 설정을 보류시켰다며 대출이 더 나오면 김광수도 자금을 좀 쓰고 저도 돈을 좀 쓸 수 있으니 잠시만 기다려 달라며 설득했습니다.


그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던 저는 어쩔 수 없이 김광수 앞에서 물러 나와야 했고, 그런 저에게 주위 사람들이 김광수를 조심하라는 말과 늘봄예식장은 식당이 없다는 말을 했고, 상식적으로 예식장에 식당은 당연히 있는 것이므로 저는 그 말에 놀라서 김광수에게 따져 물었습니다.


그제서야 김광수는 "미안한데 늘봄예식장에는 식당이 없고 늘봄가든건물이 원래 늘봄예식장의 식당으로 사용해 왔으나 지금은 주인이 바뀌어서 다른 사람의 소유로 되어있다"고 실토하고 저에게 이왕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같이 늘봄가든을 사서 공동으로 운영하지 않으면 예식영업이 곤란할 것 같으니 돈을 공동으로 각각 3억원씩을 출자해서 운영할 경우 예식건당 25만원과 100명이상의 행사시 10만원을 주고, 3년약정으로 계약만기시 3억원에 1억원을 붙여서 총 4억으로 돌려주겠다는 말을 했습니다.


어차피 예식장에는 식당이 없으면 안되므로 저는 그 제의 자체도 좋은 조건이고, 식당이 생기지 않으면 저의 드레스업도 전혀 매출이 없을 것이므로 일단 싸우기보단 동업자형태로 일하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생각하고 그 계약조건에 응했습니다.


허나 전 이미 드레스샵에 입점을 한 상태로 자금사정이 여의치 않아 차라리 저의 친형부인 김상훈에게 이런 좋은 조건의 일이 있으니 한번 해 보라는 권유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저의 형부는 평생 다니던 직장을 퇴직하고 새로운 일을 찾고 있었고, 퇴직금을 받아 놓은 상태였으므로 저는 그 돈을 은행권에 썩히지 말고 차라리 이 조건으로 투자를 해보시라고 하자 저의 형부는 김광수를 만나보고 난 뒤 매우 경영에 밝은 사람이라고 칭찬하며 늘봄가든에 투자를 결정했습니다.


2001년 10월 18일 D호텔 커피샵에서 늘봄가든의 등기상주인이라는 한수미와 김광수, 저와 형부 김상훈이 만나 가든계약을 했습니다.


당시 계약금은 김광수에게 주었고 김광수는 한수미에게 가서 계약금 3000만원을 건넸습니다.


늘봄가든 계약을 하고 난 뒤 이틀 뒤부터 김광수가 예식장에 나오지 않아 좀 이상하다고 생각한 저는 삼일정도가 지난 뒤 김광수의 처인 윤정희에게 물어보자 윤정희는 새로운 사업을 위해 일본으로 출장을 갔다고 했습니다.


한동안 김광수의 부재로 윤정희가 사장을 대리하게 됐고 윤정희는 예식업에는 문외한이라 제가 조언을 하며 열심히 예식장을 정상가동하기 위해 준비를 했습니다.


김광수가 사라진지 10여 일이 지난 뒤 저의 아들이 저의 계약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고 서류를 검토해보고는 수첩에 받아둔 영수증은 아무쓸모가 없으니 근저당을 하지 않으면 문제가 커질 것이라는 말에 전 윤정희에게 근저당설정을 해달라고 요구했으나 윤정희는 김광수가 돌아오면 다 처리해 줄 것이라는 말만 반복하며 차일피일 미루기만 했습니다.


그리고, 몇 일 뒤 윤정희는 저에게 사실은 김광수가 처음 사업을 하던 당시 친척들과의 돈 문제 때문에 사기로 고소를 당해 지금 수감되어 있다고 실토하며 합의금을 마련해야한다며 저에게 돈을 요구했습니다.


저는 황당했지만 제가 돈을 준 사람이 김광수이고 등기상에 등제가 되어있지 않은 상태였으므로 윤정희의 요구를 거절할 수가 없었고, 드레스샵의 전세금1억5천만원과 늘봄가든의 계약금3천만원, 늘봄가든의 중도금9천만원, 그리고 식당기물대금5천만원, 김광수에게 개인적으로 몇 번을 차용해준 돈등을 해서 약 3억5천여만 원의 돈이 이미 건너간 상태에서 아무런 법적 조치도 없었기에 전 김광수를 구하지 않으면 제 돈을 찾을 길이 없다고 생각하고 합의금 1억원을 가지고 윤정희에게 합의금을 빌려줄테니 내가 준 돈들에 근저당 설정을 해달라고 말했습니다.


윤정희는 근저당은 김광수가 출감한 뒤 바로 해 줄 것이니 먼저 돈을 달라고 요구했고, 이미 여러 차례 속은 저는 이번만큼은 근저당설정을 먼저 해주지 않으면 돈을 빌려줄 수 없다고 강경한 태도를 취했습니다.


윤정희는 마지못해 등기상의 소유주인 자신의 친오빠인 윤영수를 감포에서 불러 저에게 근저당설정을 해주면서 김광수가 그 동안 저에게 써준 영수증을 잠시 보자며 영수증을 요구했고, 전 아무생각 없이 영수증을 주었는데, 윤정희는 근저당설정을 해주었으니 영수증은 필요 없다며 영수증3장을 말릴 새도 없이 찢어 버렸습니다.


저는 드레스샵 전세금과 김광수가 차용해간 돈, 그리고 김광수의 보석금 도합 3억여 원을 근저당설정을 요구했으나, 윤정희가 2억5천만 원만 근저당설정을 하고 5천만 원은 차용증서를 써 줄 테니 김광수가 출감하면 5천만 원은 현금으로 돌려준다고 하여 전 2억5천만 원만 근저당 설정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몇 일 뒤 등기상의 주인인 이완규라는 사람이 서울에서 내려왔고 윤정희와 수 차례 말다툼을 한 뒤 돌아갔습니다.


저는 윤정희에게 이완규가 누구인지 물었고, 윤정희는 등기상의 50%의 주인인 이완규라는 자인데 김광수에게 이름만 빌려준 자로 늘봄예식장에 아무런 권리가 없으면서 김광수가 부재중인 틈을 타 주인행세를 해 볼려는 사기꾼이라고 저에게 말했습니다.


저는 윤정희에 말을 믿고 이완규라는 사람은 믿을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왠지 석연치 않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제가 이완규와 윤정희의 말다툼을 보면서 이완규가 불쌍할만큼 욕을 먹고 윤정희가 이완규의 말을 전혀 들으려 하지 않고 이완규가 참을 수 없는 상황까지 몰고가서 싸움을 의도적으로 확대하려 한다는 느낌을 받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윤정희가 자해를 해서 이완규가 자신을 폭행한 듯이 꾸며 폭행건으로 이완규를 틀에 옭아메는 것을 보면서 이 모든 과정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 후 이완규가 저에게 몇 번이나 면담을 요청했으나 저는 윤정희와의 관계를 고려해서 이완규를 피했습니다.


그러나 몇 번에 걸친 이완규의 요청에 윤정희는 저에게 이완규를 만나되 이완규가 하는 말을 녹음을 하라며 저에게 녹음기를 주었습니다.


제가 살아오는 동안 누군가의 말을 몰래 녹음을 한다던지 하는 행동은 해 본적도 없고, 그런 짓은 나쁜 것이라 믿고 살아왔기에 녹음기를 끄고 이완규를 만났습니다.


이완규의 말은 김광수, 윤정희의 말과는 너무나 달랐기에 저는 내심 놀랐고 혼란에 빠졌습니다.


김광수는 이완규가 이름만 빌려준 선배이고 한달 뒤에는 서류상으로도 완전히 정리가 된다고 말했는데, 이완규의 말에 의하면 자신은 정식으로 늘봄예식장의 지분 50%를 가지고 있는 사장이며 자신의 본업이 서울쪽이라 자신이 직접 경영하기 어려워 김광수에게 경영을 위탁한 상태라고 말하고, 현재 김광수가 수감되어 예식장경영을 하기가 어려우니 자신이 예식장경영을 정상화 하고자 하는데 윤정희는 그런 자신을 인정하지 않고 어거지를 부리는 실정이고, 또 드레스샵에 전세자를 받았다는 사실조차 몰랐고, 자신은 김광수가 돈도 받았다는 것을 이번에 처음 알았다며 저에게 드레스샵 전세는 자신은 인정할 수 없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저는 윤정희에게 이러한 사실을 알고도 왜 나에게 말하지 않았는지 따져 물었으나, 윤정희는 김광수가 나오면 다 해결이 되는데 왜 그런 사실을 자신에게 따지느냐며 화를 내고는 이완규편에 설 것인지 김광수편에 설 것인지를 분명히 밝히라고 강요했습니다.


예식장전세자인 제가 왜 경영자들 사이에서 편을 들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도 없었고, 실질적인 등기상의 주인을 왜 어거지 식으로 몰아내려 하는지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 후 윤정희와 전 윤정희의 잦은 거짓말로 사이가 벌어지게 되었고, 윤정희는 늘봄가든의 중도금도 치르지 않으며 김광수가 출감할 때만을 기다리라는 입장을 고수하였습니다.


2001년 12월 6일, 윤정희는 늘봄가든의 잔금을 치르지 않아 계약이 파기되었고, 늘본가든의 주인이라는 한수미는 저에게 늘봄가든에서 영업을 할 수 있도록 영업권을 주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늘봄가든의 계약은 박성경이라는 묘령의 여인의 이름으로 되어 있다는 사실을 새삼 알게되었고, 제가 한수미에게 박성경에 대해 묻자 한수미는 늘봄가든의 계약서에 김상훈과 박성경이라는 여자 이름으로 계약을 했더라며 자신도 최근에 발견한 것이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법적인 절차나 계약을 해본 적도 신경을 써본 적도 없이 살아온 저에게 이런 계약서가 무슨 의미인지 전혀 알 수 없었습니다.


계약서에 이름만 올라가 있고 돈만 지불하면 계약이 당연히 성립된다고 생각하던 저에게 평생 본적도 없는 33살의 여자와 제가 무슨 동업을 하며 투자를 할 이유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하지만,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김광수가 자신의 이름으로 늘봄가든의 계약을 할 경우 나중에 자신이 걸려들어야 되는 상황이 생길 것을 미리 방지하기 박성경을 대리로 내세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 수많은 일들을 한꺼번에 겪으면서 정신을 차릴 수 없는 와중에 김광수는 2001년 12월 8일 병을 위장해 병보석으로 출감을 하게 되었고, 출감 후 바로 저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이 감방에 있는 동안 수고 많았다며 이제 자신이 감방 안에 있을 동안 자신을 불신한 사람들은 응분에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고 저에게도 섭섭한게 많으니 두고보자는 말을 하였습니다.


물론 제가 제 돈을 지키기 위해 당연히 근저당권을 받고자 보석금을 차용해 줄시 조건을 건 것은 사실이나 전 제나름대로 김광수를 돕고자 1억원이라는 거액의 돈을 선의로 저도 어렵지만 빌려주었는데, 왜 김광수로부터 감사는 받지 못할망정 협박성말을 들어야 하는지도 모른체 김광수와 이완규의 싸움이 시작되었습니다.


김광수는 이틀 뒤부터 예식장으로 출근을 했고, 병보석으로 출감한 사람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건강한 상태로 업무를 시작했습니다.


이완규는 서울에서 내려와 자신도 김광수의 처남 윤영수처럼 50%의 지분을 갖고 있으니 경영에 관여 할 것임을 밝히고, 우선 그동안 영업으로 인해 발생한 매출을 어떤 식으로 사용했는지 추궁하자 윤정희와 김광수가 대부분의 돈을 개인적으로 차용이라는 형태로 횡령한 사실을 알아내고, 이완규는 자신이 직접 경영에 참가하기 위해 자신의 직원 한명을 늘봄예식장에 취업을 시키고 직접 경영에 관여하게 되었습니다.


김광수와 윤정희는 늘봄예식장 경영에서 배제되고 김광수의 개인채무자들과 하청업자들이 김광수에게 돈을 받기 위해 늘봄예식장에 매일 나와 대기하자 김광수와 윤정희는 늘봄예식장에서 예식이나 행사가 있는 날만 나와 행사대금만을 챙기고는 사라지기를 반복하였습니다.


이에 이완규는 한백이라는 투자자를 끌어들여 다시 늘봄예식장 경영을 정상화 시키기위해 본격적인 영업활동을 시작하게 되었고, 저는 늘봄예식장의 전기와 가스대금, 수도요금등을 납입하지 못하여 끊어진 전기와 수도등을 연결시키고자 저의 개인적인 돈을 써서 이완규 사장을 도와 본격적인 영업활동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김광수는 윤정희를 보내 이완규와 한백으로부터 몸싸움을 유도하였지만, 이완규와 한백은 이에 응하지 않았고, 그에 윤정희는 예식중간에 행사를 방해하는 행동으로 이완규와 한백으로 하여금 자신을 데리고 사장실로 들어가게 만들었습니다.


이완규와 한백이 윤정희를 진정시키는 과정에서 윤정희는 녹음기에 사건을 조작하는 자작극을 벌여 이완규와 한백을 폭력으로 고소했습니다.


2002년 4월 26일 김광수일당들이 늘봄예식장에 다시 들어오기 전까지 늘봄예식장은 정상영업상태를 유지하며 정상가동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허나 김광수는 위의 날짜에 조직폭력배로 보이는 몇 명과 개인 사설경호원을 동원해서 순식간에 사무실을 장악하고 본격적인 돈 빼돌리기에 들어갔습니다.


이에 이완규와 한백은 법적 대응을 하기 위해 여러 방도를 찾았고, 저도 김광수에게 드레스샵의 결제를 받지 못하고 사무실에 조차 들어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김광수는 자신의 처남 윤영수를 사무실에 데려다 놓고 사무실을 완전히 통제해 이완규와 한백 조차 차단하기에 이르렀고, 급기야는 가장 예식이 많은 날 이완규와 한백을 윤정희를 폭행한 혐의로 긴급구속하는 방법을 써서 늘봄예식장을 공공연히 장악할려는 시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도주의 가능성도 없고, 대구지역의 유수 예식장의 사장으로 있는 사람이 확인되지 않는 폭력혐의로 긴급구속 되었다는 사실에 너무나 황당하여 그 당시 구속을 지휘했던 김재성 반장에게 항의하고 긴급구속한 일을 확대하려고 하자 김재성은 예식이 끝나고 돈을 완전히 김광수 일당이 가져간 후에 이완규와 한백을 풀어주었습니다.


이완규, 한백 그리고 저는 이런 일련에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상의를 하였지만, 결론은 정당한 법적대응 뿐이라 결론짖고 법적 대응을 위해 여러 방면으로 알아보기 시작하였고, 저희 측에서도 저들의 불법적인 행동을 고소하는 등의 방법을 섰지만, 정작 공정한 위치에 서야할 경찰공무원은 자신들이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태도로 일관했습니다.


저의 드레스샵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정희정이라는 (당시 임신2개월이었음)직원이 그들의 불법사실을 찍기 위해 무비카메라를 가지고 찍는 것을 김광수의 경호원들이 폭행하고 던져버린 일이 있었고, 그에 정희정은 병원으로 실려가 절박 유산이라는 진단을 받아 수성경찰서에 고소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폭행을 당한 정희정은 인정받지 못하고, 윤정희는 자작극이 확실한 상황인데도 폭행을 당해 정신병7주의 진단이 나왔다는 이유로 이완규를 긴급 구속하는 경찰들을 보면서 상식을 가진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그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주위사람들의 말로는 김광수는 경찰과 검찰에 손을 섰을 것이라는 말에 저는 돈을 쓰면 이렇게 상식이 뒤집힐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후 정희정의 사건은 수성경찰서 조사계의 김봉환 형사가 맡아 진행하면서 사건을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시간을 끌면서 김광수 일당을 옹호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사건 조사가 한참 진행 중이던 어느 날 정희정과 그녀의 남편은 친우들을 만나 일식당에서 저녁을 먹던 중 김봉환 형사와 김광수가 옆방에서 술을 먹는 것을 발견하고 무비카메라를 가져가 그 두 사람이 같이 있는 장면을 찍게 되었고, 그 사실을 경찰과 검찰에 밝혔으나 그러한 부정의 흔적이 분명한 사건도 이해가 안 갈 정도로 묻혀버렸습니다.


김광수는 이완규와 한백을 구속하기 위해 자신을 한백이 떠밀어서 다리뼈가 부러져 7주의 진단을 받았다고 또 고소하였습니다.


김광수가 한백에게 떠밀렸다고 주장하는 사건당일도 김광수는 10여명이나 되는 자신의 경호원과 깡패들로 에워 쌓여 있었고, 김광수가 허락한 사람 이외에는 아무도 김광수 근처에도 갈 수 없었던 상황이었습니다.


더군다나 김광수는 멀쩡하게 늘봄예식장 내를 돌아다니다가 3일 뒤에야 한백에게 폭행 당했다며 고소를 하였습니다.


정황이나 증인들이 많아 거짓말이 분명하므로 당시 고소가 불가능한 사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김봉환 형사가 수사를 맡자 한백이 김광수를 폭행 한 것으로 인정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현재 재판이 진행중이며 2003년 7월 3일 결심공판을 하게 되어있습니다.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가는 사건들이 인정이 되고 폭행당한 사실이 분명한 사건들은 묻혀서 시간만 가버리니 저희는 도무지 어떤 일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김광수는 2달에 걸친 늘봄예식장 사무실 장악을 끝내고 결혼식이 없는 초여름장마철을 기다려 폭우가 쏟아지자 늘봄예식장에 고의로 물을 채우고 나가버렸습니다.


저희는 늘봄예식장의 대출금 이자를 내지 못하게 되어 포기를 해야하는 상황이었고, 김광수는 자신이 모든 예식대금을 가져간 것도 모자라 늘봄예식장에 고의로 물을 채워 지하기계설비실을 가동할수 없도록 만들었습니다.


김광수가 6억원 이상의 예식대금을 가져가 버려서 은행이자를 줄 수 없는 상황이었고, 이완규는 서울에서 자신의 일이 힘들어지는 것과 장기화되는 김광수와의 법적투쟁으로 더 이상 늘봄예식장을 운영할 수 없는 처지였으므로, 전 저의 자식들과 함께 예식장의 물을 퍼내고 청소를 해서 다시 예식장을 가동하기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허나 늘봄예식장의 밀린 세금과 2억원이 넘는 설비비를 감당할 수 없어 발전기를 대여해 쓰고 출장부페를 불러서 예약이 되어있던 예식을 치르게 되었습니다.


예식장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결혼을 예약한 사람들의 예식을 치러주지 않으면 결혼당사자들은 엄청난 피해를 겪게 되므로 수년을 예식업을 해왔던 저로서는 도의적으로라도 그들의 예식을 이익이 남지 않아도 진행해야했고, 늘봄예식장이 경매로 넘어가게 되더라도 높은 가격으로 낙찰되기를 바랬기 때문에 1년 이상을 손해를 보면서도 늘봄예식장을 유지해야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늘봄예식장을 매각을 통해서라도 제가 투자한 금액과 많은 채권자들의 돈을 구하고자 했으나, 김광수는 자신이 계획한대로 자신이 직접 늘봄예식장을 경매로 차지하기 위해 어떤 호조건에도 매각에 응하지 않았고, 늘봄예식장을 차지하기 위해 예고등기라는 방법으로 경매에서 사람들로 하여금 늘봄예식장을 경매에 응하기 꺼림직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결국 늘봄예식장은 3차 경매를 통해 김광수의 대리인인 박성경에게 77억원에 낙찰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김광수가 처음부터 의도한 대로 된 것입니다.


김광수는 처음부터 제 돈을 이용해서 늘봄예식장의 등기를 하고자 했으며, 전세권 설정은 할 마음이 없었고, 또한 50%의 지분을 가진 이완규에게는 제가 전세자라는 얘기도 하지 않았으므로 설정도 해 줄 수가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리고, 김광수는 처음부터 늘봄가든을 이용해 저와 저의 형부의 돈을 갈취하기 위해 한수미와 짜고 늘봄가든을 계약하는 척하면서 저와 저의 형부의 돈을 갈취하고 영업을 재계하게 만들어 예식수익금도 갈취할 목적이었던 것입니다.


그 결과로 김광수와 한수미에게 저와 저의 형부는 1억2천만원이라는 매매중도금과 5천만원의 기물대금을 건네주었습니다.


그러나, 한수미는 김광수가 갑작스럽게 자신의 이모부로부터 고소당해 수감되자 저에게 자신이 받은 돈을 정당화 시키고져 늘봄가든의 영업권위임장을 주었던 것입니다.


또한 한수미는 저를 이용해 계약을 공식적으로 파기하고자 김광수는 출감하면 반드시 저의 등에 비수를 꽂을 것이라는 말을 하며 김광수의 출감을 막았으나, 저로서는 김광수가 나오지 않으면 저의 돈을 건질 수 없는 상황이었으므로 윤정희에게 김광수의 합의금을 빌려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합의금 1억원을 빌려줄 당시 윤정희는 제 돈을 2억5천만원만 설정을 해주면서 나머지 5천만원은 김광수가 나오면 현금을 주겠다며 차용증을 써주었지만, 나중에야 왜 돈을 2억5천만원만 설정을 했는지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김광수, 윤정희가 받은 스튜디오의 보증금이 1억이었고, 저의 보증금이 1억5천만 원이었으므로 J스튜디오의 전수현(당시 늘봄예식장에 사진부분으로 전세를 들어와 있었던)과 김광수, 윤정희는 모의하여 저의 설정을 2억5천만원만 해주면서 그중 1억원은 스튜디오의 보증금이라고 우기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합의금 1억원을 빌려준 사실이 분명한데도 불구하고 설정당시에 윤정희의 농간으로 지불각서에 사진이라는 말을 넣으면서 전수현의 돈이 제 근저당 설정에 당연히 들어가 있는 듯 꾸몄습니다.


그 후 전수현은 저에게 김광수와 사전에 모의한 대로 이리저리 거짓말을 해대며 자신이 김광수에게 준 1억원에 대한 권리를 제가 해 놓은 근저당 속에서 찾고자 했습니다.


이런 악조건에서 늘봄예식장을 운영하는 와중에도 김광수와의 법적싸움은 계속되었고, 늘봄가든의 주인이었던 한수미는 김광수와 결탁해 저를 횡령으로 고소하였으나, 무고로 한 수미 자신이 3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았습니다.


김광수는 이완규와 한백을 폭력으로 걸어놓고, 저와 싸움을 하면서 저도 형사건에 걸리도록 만들기 위해 한수미와 다시 결탁하여 저를 횡령으로 고소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김광수는 2003년 5월 28일 늘봄예식장의 3차 경매에서 다시 77억1천만원이라는 금액으로 대리인 박성경을 내세워 다시 경락을 받았고 이러한 자금들이 전세자들과 하청업자들의 돈을 갈취한 예식대금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너무나 명백하지만, 그것을 밝힐 능력이 없기에 할 수 없이 당하고만 있는 실정입니다.


김광수는 변호사를 3명이나 선임하는 등 화려한 경력에 어울리는 법적 대응을 펼치고 있으나, 변호사 선임비조차 변변하게 없는 저로서는 외로이 투쟁할 수밖에 없는 입장입니다.


이제 김광수는 재판을 하면서 법정에서조차 공공연히 자신이 다시 늘봄예식장을 경영할 것임을 밝히며 다니고 있습니다.


정치인이 뒤를 봐준다는 소문과 공무원들을 돈으로 매수했다는 많은 소문들이 사람들 사이에 공공연히 나돌고 있지만 그런 소문들만으로는 김광수의 교묘한 수법에 재동을 걸 수 없었습니다.


김광수 일당이 걸려 있는 수많은 재판들이 담당검사님과 판사님이 바뀌면서 김광수는 결국 실형을 구형 받게 되었습니다.


아직 결심이 남았지만, '죄 값은 사망이라 했던가요'.


언젠가는 정의가 승리하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김광수의 야비한 사기에 걸려들어 전 재산을 잃은 수많은 피해자들과 갖가지 전과까지 뒤집어 쓰게된 억울한 희생자들이 언젠가는 억울함을 벗고 광명의 세상으로 나올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