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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할 상대냐, 상담해야 할 상대냐?

◈대화할 상대냐, 상담해야 할 상대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세기1:28)



인류 최초의 사람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 지음을 받고 직책(사명)을 받은 것이 땅을 정복하고 모든 생물들을 다스리는 왕직이었습니다. 그리고 에덴 동산의 주인이 되어 거처하게 되었고 특히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과의 열매는 누구든지 따먹지 못하도록 관리하고 지키도록 명령받았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에게 최초로 찾아온 불청객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들짐승 사단이었습니다. 자, 그러면 아담과 하와는 이 불청객을 대화 상대자로 취급하는 것이 타당합니까? 아니면 자기 통치영역에 속한 생물의 이상유뮤와 자잘못을 살펴야 할 치리자로서 상담해야 할 상대자로 취급하는 것이 타당합니까?



인간 관계의 최고최대 희락은 상호간에 주고 받는 대화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대화를 나누고 즐길 수 있는 상대는 자신과 수평관계에 놓여 있어야 하고, 또 동일한 관심사에 동일한 가치관을 갖추고 그 일의 성공과 진전을 펼쳐 놓고 이야기를 주고 받게 되면? 그보다 더 즐겁고 보람찬 희락이 없습니다. 그렇게 주고 받는 이야기는 시간가는 줄 모르며 끝도 없습니다. 이것이 생명 세계의 생명들이 누릴 수 있는 최고최대의 희락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러한 동반자, 곧 영원한 대화 상대자를 양육하기 위해 천지만물을 만들고 맨 나중에 사람을 만들어 자기와 동급의 자격을 갖기 위해 왕직을 수여하였고, 그들의 거처지를 가장 아름답고 풍요롭게 단장하여 에덴 동산이라 일컫고, 그곳에 그들이 다스려야 할 모든 생물들을 주어 직접 왕권을 행사하여 자신의 일과 왕의 성품을 터득토록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왕의 왕이시기 때문에 그러한 왕과 대화상대가 되려면 사람들 자신도 새로 만든 천지만물과 생물들을 친히 통치해 왕도를 습득하여야 합니다. 그래야만 최소한의 왕의 자질을 갖추고 하나님과 대화할 수 있는 상대가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사람들을 만든 참된 목적입니다.



이러한 창조주의 목적 아래 지음을 받은 사람들은 만사 제쳐 두고 가장 먼저 터득하여야 할 지식이 통치능력입니다. 그러도록 지음을 받은 아담과 하와에게 최초로 찾아온 들짐승 사단, 이 사단을 대화 상대로 취급하여야 합니까? 치리할 대상자로 취급하여야 합니까? 어느 것이 정답입니까? 가장 지혜롭고 지각을 갖추었다는 21세기 지구촌 70억 인간들이여! 사람의 양심으로 대답해 보십시오.



하나님의 형상을 닮았다는 사람, 그 하나님의 형상 중 가장 주목해야 할 형상이 외모가 아니라 내면의 성품입니다. 만물을 지으신 존엄성과 확고부동한 말씀과 영원무궁한 생명력이야 말로 하나님의 진정한 형상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성품을 갖춘 왕의 왕 하나님과 대화상대가 되려면 무엇보다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법)을 가장 존중히 여겨야 합니다. 어떤 왕이든 자신의 입에서 나온 말을 자신이 존중히 여기느냐 가볍게 여기느냐로 그 존엄성과 위엄이 결정됩니다. 천지만물을 말씀으로만 지으신 하나님, 그가 말씀한 대로 이루어 지지 않거나 변형되지 않는 것은 자신이든 자기의 아들이든 용납하지 않고 형벌을 시행하시는 분입니다.



이처럼 만물보다 존귀한 가치를 지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사단이 들짐승의 위치에서 의의를 제기하고 그 말씀에 대한 평가를 내린다는 것, 이런 교만된 범법행위자를 대화 상대자로 보아야 합니까, 정신병원에 입원시켜 그 원인을 진단해 보고 치료(치리)해야 할 정신질환자입니까? 사단이 사람들에게 던진 그 첫마디 말에는 이미 대화 상대자로서의 자격은 추호라도 찾아볼 수 없고 오직 그런 생각을 갖게 된 원인을 임상실험을 통해 찾아보도록 격리 입원시켜야 할 중환자로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창세기3:1) 라는 의문을 사단이 제기할 때, 아담과 하와의 가장 적절한 대응은 하나님께 받은 왕권을 즉각적으로 상기시키고 통치권을 행사하여야 합니다.



아무리 자신들보다 먼저 지음을 받아 아는 것이 많고 나름대로의 지혜가 있어 하나님께 인정을 받고 있는 천사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진위(眞僞)와 능력을 평가하는 일에 그 모든 경륜과 지혜와 자질을 사용하게 되면?... 그 모든 경륜과 지혜와 자질은 없는 것보다 못하게 해악(害惡)을 끼칩니다. 즉 높은 경륜을 쌓고 지혜롭게 처신하여 훌륭한 공을 세운 신하가 자신의 능력에 도취하여 그만 왕을 모반하고 역적을 꾀하는 일에 그 모든 경륜과 지혜와 자질을 사용하였다고 합시다. 그러면 그 모든 경륜과 지혜와 자질이 자신과 이웃에게 유익하게 사용되었습니까? 오히려 해악을 끼치게 되었습니까?



하나님의 천사들이나 천지만물이나 생물들이 아무리 사람들보다 먼저 지음을 받아 삶에 대한 경륜과 지혜와 자질이 사람들보다 뛰어났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자기와 동급이 될 수 있는 성품, 곧 말씀(하나님 자신, 법)을 그들에게 주시지 않았습니다. 오직 자기의 형상을 닮은 사람들에게만 자신과 동등한 권위에 속한 말씀(법)을 주어 그 말씀으로 천사이든 만물이든 생물이든 무엇이든지 다 정복하고 다스리도록 하였습니다. 이런 귀중한 하나님의 법을 가진 아담과 하와가 이 법을 사용하여 사단을 단죄하지 않고 오히려 이 법을 땅바닥 같은 곳에다 팽개쳐 놓고 그 위에서 사단과 더불어 짓밟고 뛰놀았으니... 그 죄악으로 받아야 할 형벌이 곧 오늘날 모든 인간들이 당하는 고난과 고통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법, 곧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창세기2:17) 하신 이 법으로는 아무리 삶의 선배격이 되는 높은 경륜과 지혜와 재질을 갖춘 사단의 말, 곧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창세기3:4~5) 라고 평가하여도 얼마든지 단죄하여 처벌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피조물들이 인정하는 가치만 높게 책정하여 사단을 단죄하지 못하고 오히려 대화 상대자로 격상시켜 똑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땅바닥에다 팽개쳐 놓고 함부로 짓밟으며 즐기는 범죄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도 그 때 그 당시의 아담과 하와 같이 영생의 유일한 지식인 그리스도의 말씀과 성경책으로 왕 같은 제사장 직분을 수행하지 못하고 에덴 동산의 사단 수준에 불과한 이 세상 식자들의 모든 불신풍조에 빠져 그만 "참으로 성경책의 모든 말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느냐?"라는 질문을 사람의 이성에서 나올 수 있는 말로 취급하고 그들의 질문을 왕 같은 제사장의 권한으로 단죄하여 심판하지 않고 대화로서 그 문제를 풀어보려는 죄악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대화란, 동격의 사람들이 동일한 관심사에 동일한 가치관을 갖고 그 일에 대한 성공과 진전을 논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성경책의 모든 말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느냐?" 또는 "참으로 예수님이 무덤 속에서 부활한 것으로 믿느냐?" 등등의 정신질환 수준의 말들을 단죄하여 치료할 생각을 하지 않고, 대부분 사단의 말을 사람의 말로 격상시켜 호기심을 갖고 경청하는 아담과 하와처럼, 이 시대도 대화와 토론으로서 성경말씀의 진위와 능력을 인정하려 합니다.



http://cafe.daum.net/kblw 기독 애국 신우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