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반대마라톤 완주기 2004.10.10 (일)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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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요일(10일)은 내고향 춘천의 명물인 의암호주변이 온통 하늘색 물결로 넘쳐 흐른날입니다.
제2회 조선일보반대 마라톤때문인데요. 전국각지에서 모여든
2000여명의 독립군들은
`조선일보 반대'라고 새겨진 하늘색 티셧츠를 입고 감동적인 `대장정'을 연출했습니다.
그곳에는 지난 며칠전 시청앞을 가득메웠던 집단적광기도, ?어질듯한 확성기 소음도 없었지만 사람과 사람을 자연스럽게 이어주는 끈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유모차를 끌고나온 부부와 아이들의 재잘거림, 대학축제를 방불케하는 자발적참여와 나눔의 문화였습니다.
마치 1936년 스페인내란당시 파시스트와 나찌의 지원을 받던 프랑코에 맞서 공화정부를 지키기 위해 세계50여개국에서 지식인,예술가들이 자발적으로 몰려들었듯이 이날도 전국에서 조선일보에서 맞서 `참언론'을 지키기 위해 참으로 많은 분들이 와주셨습니다.
오전8시. 새벽잠을 설치며 과천에서 출발, 대회시작 2시간을 앞두고 도착한 주차장에는 나를 포함해 참가차량은 5대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불과 1시간만에 그 널따란 주차장은 빈틈없이 빼곡히 들어차기 시작했습니다. 차안에서 나와 주차장 차량의 번호들을 쭉 둘러봤습니다. 서울,경기, 인천차량이 역시 제일 많았고 드문드문 울산70, 대전30, 경북, 전북32, 대구61..... 오랜만에 팔도의 독립군들이 다 모여들었고 국민의 힘에서는 아예 지역별로 대형버스를 타고 올라오는등 정말 `국민의 힘'을 보여주더군요.
제가 살고 있는 동네에서 올라온 분인듯 경기47(과천)차량도 눈에 띄워서 반가웠는데요. 알고보니 아들놈 유치원친구인 지연이네 가족들이었습니다.
채 잠에서 덜깬 아들녀석(8.초등1년)과 아내(35)도 행사장의 열기가 달아오르자 덩달아 흥분이 되는 모양입니다. 이미 출발지인 의암호빙상장앞 광장은 `안티조선'의 전시장으로 변해버렸습니다. 아내는 ` 저 분들은 안티스럽게 안생겼는데'라며 딸과 함께 조선일보의 친일행적 전시물을 유심히 지켜보는 노부부를 가리켜 보입니다. 아들놈은 이미 참언모(참언론을 위한 모임)에서 나눠준 분홍색 풍선을 들고 입이 함지박만하게 벌어져 있습니다.
`조선일보를 구독하는 것은 반민족.반민주행위'(축구동호회 언 `조 `조선일보 구독은 반민족,반민주'(언론바로세우기 축구동호회)
`국민기만,경제저주,말로만 민생 조선일보 사기치지 말라'(남양주시 공무원직장협의회)
출발행사장 주변에는 참가단체가 내건 각종 현수막으로 물결을 이뤘고 중앙무대 옆에서는 국가보안법폐지서명운동이,맞은편에서는 저소득층아이들을 위한 결식방지 운동이 펼쳐집니다.
그야먈로 사회각부문의 운동이 `안티조선'을 매개로 하나로 용해되는 현장입니다.
오전9시30분 김한성 대회조직위원장의 개회사에 이어 영화배우 명계남씨가 나와 `조선일보는 범죄집단이다'고 우렁찬 목소리로 선창을 하자 행사장은 `조선일보는 범죄집단'이라는 함성과 함께 또한번 박수와 웃음이 쏟아집니다. 10km부문 1등 특별상은 몬주익 영웅 황영조선수가 제공한 마라톤화가 제공되기도 했는데요 이 마라톤화는 황선수가 이번대회 10km부문에 참가하는 영화배우 김부선씨에게 준 것을 김씨가 다시 대회조직위에 기탁한 것이었습니다.
명계남 씨는 김부선씨를 중앙무대로 올라오게 한뒤 "김부선씨가 1등부상으로 내놓긴 했지만 사실은 자기가 1등할려고 그런거다"라고 소개하면서 좌중은 또한번 웃음바다가 되었습니다.
이어 10시 드디어 하프부문 참가자들부터 출발이 시작됐습니다. 몸풀기체조는 시간에 쫓겨서 목돌리기등 후반부 동작은 생략된채 급하게 출발이 이뤄졌습니다. 그래도 누구하나 불평을 하는 사람은 없었고 오히려 그런 서투름이 1등과,2등등 순위다툼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조선일보 반대마라톤 특유의 넉넉함과 여유로움을 느끼게 해줍니다.
하지만 저는 출발전 다소 긴장이 됐던 모양입니다. 춘천에서 태어나 고등학교를 졸업할때까지 18년동안 늘 어머님 품처럼 보고 자라온 의암호였지만 이날은 각별한 의미가 있는날이었기 때문입니다. 먼저 마라톤을 시작한지 근4년만에 처음 고향인 춘천에서 공식마라톤대회에 참가하는 날이었고 두번째로 개인이 아닌 회사대표자격으로 참가한 첫 대회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풀코스6회,하프 20회이상 완주경력을 자랑하며 `경향신문의 포레스토 검프'를 자처하는 나였건만 이날은 유난히 가슴이 설레이더군요. 회사노조에서 특별히 주문제작한 티셔츠 문구를 볼때마다 왠지 무거운 책임감이 짓눌렀습니다.
티셔츠 앞면은 `언바세바'라는 타이틀 밑에 `언론을 바꾸자. 세상을 바꾸자'며 이를 설명하는 문구가, 뒤면도 역시 `언론을 바꾸자,세상을 바꾸자'는 문구와 함께 경향신문 로고가 큼지막하게 새겨졌습니다. 말하자면 저는 언론개혁과 경향신문을 홍보하는 뛰어다니는 입간판이 되야 했습니다. 그래서 첫출발은 후미그룹에서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일단 뒷에서 출발, 한명씩 앞으로 치고 나가면서 등뒤에 새겨진 홍보문구의 노출빈도수를 최대한 끌어올리자는 전략이죠.
그러나 토요일 한국은행 출입기자들과 함께 청계산등반뒤 동동주를 과음하고 밤새 잠을 뒤척인탓인지 페이스가 좀처럼 올라오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첫 1km구간이 오르막구간부터 시작해 페이스 잡기가 더 쉽지 않았죠. 그래도 출발하자 마자 `나''쁜' `조' `선' `일'`보' `끊' `자'며 한자한자 끊어서 걸개그림처럼 걸어넣은 현수막 덕분에 다소 여유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나쁜 조선일보 끊자'
얼마나 간단하면서도 선명하고 강렬합니까.
첫출발 오르막을 지나 곧바로 내리막, 이어 김유정문인비를 지나 의암댐 다리가 있는 2.5km지점까지는 유유히 흐르는 의암호 물결을 따라서 무리없이 흘러갑니다. 누군가 의암댐다리를 건너기직전 콜롯세움 모양의 터널을 통과하면서 현수막 구호(나쁜조선일보를 끊자)를 큰 목소리로 선창 합니다. 역시 그분도 저 처럼 그 구호의 단순성과 강렬한 원시성에 마음을 빼앗겼던 모양입니다.
의암댐 다리를 건너 삼악산 매표소를 지나 5km지점. 이어 덕두원다리를 지나 현암민속촌을 거친 하프반환점(10.5km)이 나옵니다. 이 구간은 바로 2주일후 조선일보 마라톤대회의 5km~10`km구간지점과도 겹치는 곳입니다.
1993년 경향신문에 입사 수습기자를 갓떼고 처음으로 내손으로 핸들을 잡고 `중고 렌트가(프라이드)'로 아내를 태우고 폼좀 잡으며 꿈같은 데이트를 즐기던 곳이기도 합니다.
` 2주후에도 저 길가에 핀 분홍색 들국화와 코스모스는 여전히 흐드러지게 피어있을까'
`10년전 수습기자시절 난 무엇이 되길 원했고 그사이 어떻게 세월은 흘러갔는지'
반환점을 지나 잠시 몽상에 잠겨 있던 사이 맞은편에서 반환점을 향하던 독립군들의 지친 모습이 하나둘씩 들어옵니다. 간혹 힘든지 아슬아슬하게 발걸음을 옮기는 분들도 보입니다. 그때마다 `화이팅'또는 `힘'을 외쳐주면서 제 스스로에게 화이팅을 외쳐봅니다.
12km지점을 지나면서 후미그룹의 대열도 거의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이제 모든 참가자들이 행렬이 지나갔다 싶었는데 그순간 한분이 배를 움켜쥐고 거의 쓰러질듯 레이스를 전개하는게 보입니다. 이어 검정색유니폼으로 맞춰입은 `전국교수노동조합'소속 교수님 3분도 보입니다. 하프코스 참가자들이 대략 200명정도니 한분한분이 다들 가족같은 느낌입니다.
13km지점을 지나니 맨 후미에서 경찰사이카의 호위를 받으며 유유자적 꼴찌의 여유를 즐기는 30대부부의 모습이 보입니다. 꼴지도 1등도 이날 만큼은 한 마음으로 뭉친 동지들일뿐입니다.
순위에 집착하지 않고 자신들만의 고독한 레이스를 전개하는 분들 표정 하나하나 `묵언의 수행'을 보여줍니다. 온길을 되짚어 의암댐 다리를 건너 17.5km 지점에서 시계를 보니 1시간38분이 가까워 옵니다. 이 페이스라면 평소 기록대인 1시간40분대는 커녕 2시간안에도 들어오기 어려울 것 같아 페이스를 올려보지만 이미 몸은 지친 `당나귀'처럼 말을 듣지 않습니다.
그순간 5km걷기 부문에 참가해 산책하듯 의암호주변을 유영하는 가족들이 하나둘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교통통제문제로 시내를 관통하는 쪽보다는 한적한 시외곽으로만 코스를 넣었기 때문에 이 분들이야 말로 제가 레이스를 시작한후 처음으로 만나는 `갤러리'들입니다.
그분들의 눈길이 티셔츠 등뒤에 새겨진 `언론을 바꾸자'`세상을 바꾸자'에 와닿는 것을 느끼며 마지막 스퍼트를 다시 내봅니다. 드디어 골인. 골인지점에서는 명계남 선생님이 완주를 끝내고 스스로 승부에서 이긴 참가자 한사람 한사람과 승리의 하이파이브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나도 명선생님과 땀으로 얼룩진 손바닥을 마추지며 1시간51분에 걸친 레이스를 마감했습니다.
골인지점 양쪽으로 들어선 분들로부터 격려의 박수를 받으면서 행사장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이미 5km를 완주한 아들과 아내가 환한 표정으로 나를 기다리고 있더군요.
`바위처럼 살아가보자 모진 비바람이 몰아친대도 어떤 유혹에 손길에도 흔들림없는 바위처럼 살자꾸나 `
행사장에는 이미 완주를 끝낸 이날의 영웅들이 어깨를 걸고 꽃다지 1집앨범 '금지의 벽을 넘어 완전한 자유를 노래하리라'에 수록된 `바위처럼'을 힘차게 따라부르고 있었습니다.
`바람에 흔들리는건 뿌리가 얕은 갈대일뿐
대지에 깊이 박힌 저 바위는 굳세게도 서 있으니
우리 모두 절망에 굴하지 않고 시련속에 자신을 깨우쳐 가며
마침내 올 해방 세상 주춧돌이 될 바위처럼 살자꾸나'
이날의 완주는 지금까지 어느 마라톤대회에서도 맛보지 못한 가장 가슴벅찬 순간이었습니다.
1936년 스페인공화군을 지키기 위해 세계각지에서 자발적으로 몰려든 의용군들은 본국에 돌아가 `메카시즘'에 시달리기도 했지만 마침내 36년후 이들이 뿌린 씨앗이 말알이 되어 스페인은 자유를 되찾았습니다. 내년이면 수십년동안 춘천 시내를 가로막고 있던 주한미군기지기가 한미토지양도계획에 따라 시민의 품으로 돌아갑니다. 팀스프리트 훈련이열릴때마다 학교운동장에서 미군들을 위해 총검술 시범을 보이던 어처구니 없던 고등학교시절 기억이 생각납니다.
2주일후 보수언론이 주최하고 1만여명이 넘게 참가하는 마라톤대회가 열리면 마음이 여린 춘천시민들은 또 연도에 나가서 참가자들을 위해 찬물이며 태극기를 들고 나가 환영을 하겠죠.
하지만 지난해 1천명, 올해2천명,내년에 3천명식으로 전국에서 몰려든 안티조선 마라톤대회가 성장하면서 춘천시민들은 점차 새로운 대회에 관심을 갖게 되겠죠.
`바스티유는 무너졌지만 앙시앙레짐은 살아있다'
김정란시인이 DJ에 의해 정권교체가 된후 안티조선을 선언 하면서 남긴 말입니다.
조선일보 반대운동은 단순히 특정언론에 대한 반대가 아니라 `우리의식속의 파시즘'을 청산하는 작업이기도 하죠. 내년 3회 대회가 다시 기다려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