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中·朝 國境 豆滿江 中國, 軍人脫北을 警戒
食糧供給조이기 背景[?]
産經新聞(산케이신문) 2004年10月9日 朝刊
[서울=久保田るり子] 中·朝 國境을 흐르는 豆滿江에서 川幅이 좁아 北朝鮮으로부터의 脫出者가 越境하는 포인트(Point)로 되어 있는 南坪(난핑)·三合(싼허)·開山屯(카이산툰)의 3개 地域周邊에 中國의 人民解放軍이 10月4日부터 約 1萬명 展開하고 있는 것이 알려졌다. 現地로부터의 情報에서는, 國境警備의 北朝鮮軍人이 組織的으로 脫北한다는 情報 때문에, 中國 人民解放軍이 警戒態勢에 들어갔다고 한다.
中·朝 國境의 脫北者는 2003年에 比해 約 2倍로 늘어나 北朝鮮側의 國境警備도 强化되었지만, 이번은 警備의 軍人들이 組織的으로 集團으로 脫北한다는 情報이므로 武器를 携帶하고 越境할 可能性도 높기 때문에, 中國側이 對應에 나선 것으로 보이고 있다.
現地로부터의 情報에서는, 南坪 등 3개 地域에 人民解放軍이 集結하기 始作한 것은 10月4日이며, 5日에는 約 1萬명으로 되어, 좁은 이들 地域은 人民解放軍으로 넘치고 있다고 한다.
北朝鮮軍人의 脫北은 1990年代 後半부터 보였지만, 모두 個人的이며 集團은 아니었다. 다만, 드물게 武器를 携帶하고 脫北해 中國側의 民家를 襲擊하는 事件이 일어나고 있었다. 現地로부터의 情報에 의하면, 中國側은 武裝한 軍人이 集團脫北해, 中國의 地方都市로 몰려드는 것 등을 警戒하고 있다고 한다.
北朝鮮人民軍에 밝은 情報關係者의 이야기로는, 中國側이 北朝鮮軍人의 集團脫北을 警戒하는 背景에는, 北朝鮮軍內部의 食糧事情이 2004年, 急速하게 惡化된 것이 크다. 最近脫北한 前 軍人에 의하면, 『1,000명의 餓死者를 낸 部隊도 있다』라고 한다.
이 食糧逼迫은, 이번 여름부터 中國側이 急速하게 對北食糧 파이프(Pipe)를 조였기 때문에 생겼다고도 여겨진다. 지금까지 中·朝 國境은 中國側으로부터 朝鮮族이 食糧을 짊어지고 北朝鮮으로 行商하러 나와서 北朝鮮 國內의 闇市場에 흘리고 있었다. 그러나, 2004年7月 以後, 中國은 國境貿易을 制限해, 中國으로부터 北朝鮮으로 들어오는 食糧이 激減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 때문에 가을의 收穫으로 쌀의 價格이 내려야 할 10月에도 北朝鮮 國內에서 쌀의 價格이 繼續해서 上昇하고 있다고 한다.
中·朝 關係는, 中國이 主導하는 北朝鮮의 核을 둘러싼 6개國協議에 北朝鮮이 硬直한 態度를 무너뜨리지 않는 것 등 때문에 惡化가 傳해지고 있다. 이번의 人民解放軍의 國境에의 兵力集中은 集團脫北에의 對應 外에, 金正日 總書記에 대한 胡錦濤(후진타오) 政權의 政治的 壓力强化의 目的도 있는 것으로 보이고 있다.
http://headlines.yahoo.co.jp/hl?a=20041009-00000011-san-int
● 북한의 쌀값 계속 오름세 보여
이원희 기자
자유아시아방송(RFA) 2004년10월7일
북한의 쌀값이 올 들어 계속 오름세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특히 평양에서는 지난 9월초에 킬로그램 당 천원 하던 가격이 10월 들어 1-2백원 올라 지난 3월부터 쉬지 않고 큰 폭으로 오르고 있다고 탈북자 지원 활동가와 구호단체가 전했습니다.
남한의 민간 대북 구호단체 좋은 벗들이 펴낸 북한소식지는 북한 각 지역의 쌀값이 3-4월에는 킬로그램 당 350원 에서 거래 되었다가 6월에 500원대로 8월에는 800원대, 그리고9월에 평균 900원으로 거래 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특히 평양은 지난 8월에 최고 750원까지 하다가 9월초에 천원으로 올랐다고 밝혔습니다.
이와 함께 남한에서 북·중 접경지역을 오가며 중국의 탈북자들을 돕고 있는 이수철 씨는 자신이 지난 2000년 탈북할 때 보다 쌀값이 엄청나게 오르고 있다고 지적하고 9월에 이어 쌀값이 10월에 또 올라 앞으로 얼마나 더 오를지 알 수 없다고 7일 자유아시아 방송에 밝혔습니다.
『쌀 나는 고장은 1000원정도 하고 나머지 지역은 1100-1200원으로 오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는 북한 노동자의 평균 월급으로는 며칠분의 식량 밖에는 구할 수가 없어 나머지는 주민들이 알아서 대체를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지금 북한에서 급여를 한 2천원-3천원 정도 올려놓았죠. 나머지는 주민들이 알아서 해야 하는데 지금은 전체 주민이 장사에 의존하고 있고 야산에 나무를 베어내고 뿌리를 뽑아내고 자기 밭을 일구고 있습니다』
좋은 벗들 이 낸 북한 소식지는 특히 온성군의 삼봉지역 시장에는 아예 쌀을 파는 상인이 없다고 하는데 쌀 옥수수 등의 식량이 장마당에 오기 전에 다 팔리고 1시간 이상을 돌아 다녀도 쌀을 구할 수가 없고 일반농가에 들어가면 간혹 구할 수 있다고 전했습니다. 따라서 일반 주민들이 장사를 하던지 부업을 해야 생계를 유지하지 한 달 임금만으로는 살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수철 씨는 이렇게 북한의 쌀값이 오르고 있는 것은 우선 외부로부터 지원되는 식량이 줄고 또 장마로 인해 올해 농사가 안되어 북한 식량사정이 나아질 것 같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원인은 핵문제 인권문제 때문에 대북지원이 주춤 한데다 중국 쪽에서 나가는 식량과 쌀이 줄었고 또 올 북한 생산량이 많이 내려가 앞으로 미국에서 인권법안이 통과되면서 북한이 계속 핵 카드를 꺼내놓고 있는 상태에서는 외국의 대북식량지원이 계속 위축되고 북한의 상황은 계속 좋지 않을 것입니다』
좋은 벗들의 소식지는 근래 인민화폐 1위안이 북한 돈으로 최소 160원에서 최고 278원까지 하루가 다르게 무서운 속도로 인상되면서 자연 북한 화폐가 하락하고 있는 것도 쌀값이 오르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한편 북한이 근래 내부적으로 복잡해지면서 북한주민들이 식량부족과 함께 당국의 더 심한 통제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고 이씨는 전했습니다.
『내부적으로 기류가 심상치 않아 예전과 달리 후계자 문제도 있고 또 북한 인권법안 통과로 반발이 있고 인권법안 자체가 북한 정부 못지않게 중국정부를 압박하는 법안이니 만큼 알게 모르게 중국정부의 반발이 있을 것이고…』
이렇게 심각해지는 식량부족과 주민통제로 탈북을 원하는 주민들은 많지만 현제 북한이 북 중 국경지역에 특전단을 배치하고 국경을 검문검색하고 있는데다 인권법안에 대한 중국의 반응으로 당분가 탈북자들이 많이 위축될 것이라고 이수철 씨는 전했습니다.
http://www.rfa.org/korean/simcheongbodo/2004/10/07/seg7/
● 중국, 북한과의 경비대 확충
자유아시아방송(RFA) 2004년10월6일
미국에서 탈북자들을 돕고 있는 한 민간 인권단체를 이끌고 있는 신중필 씨(가명)는 최근 한달 동안 중국의 북한 접경지역을 방문하고 돌아왔습니다. 신변안전을 위해 가명을 사용하고 있는 신 씨는 접경지역에 있는 중국군인들의 경계가 크게 강화됐으며 이는 탈북자들의 중국 불법입국을 막기 위한 조치의 하나라고 자유아시아방송에 전했습니다. 이현기 기자가 신 씨와 나눈 이야기를 3회에 걸쳐 전해드리겠습니다. 첫회 분은 국경지역의 상황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 단속 심해졌지만 탈북자 수는 줄지 않아
기자: 그동안 탈북자들이 이용하던 두만강변의 단속이 심해 최근에는 다른 지역을 통해 탈북한다는 소식이 있는데 어떻습니까?
신: 지금 국경은 4-5년 전만해도 두만강을 건너와 탈북하기가 쉬웠는데 최근에는 중국국경지역에 단속이 심해졌습니다. 중국지역변방에는 요소요소에 건문소가 있는 것을 직접 봤습니다. 그래서 탈북자들이 최근에는 산속이나 아주 위험한 지역을 며칠씩 걸어서 중국 쪽으로 넘어오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탈북자들이 줄어드느냐, 그것은 아닙니다.
기자: 중국 쪽의 경비상황은 어떠했습니까?
신: 초소마다 군인들이 24시간 감시를 하고 있습니다. 수상한 사람들과 지나가는 차를 검문하는데 특별히 연변지역에서 심한 것 같습니다. 특별히 탈북자들은 얼굴을 보면 대강 알 수가 있거든요. 그런 경우 집중적으로 심문을 해서 탈북자들을 잡아내고 잡힌 사람들은 중국 땅에 오자마자 강제 북송이 되는 그런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 탈북자들, 『빨리 전쟁이나 났으면』
기자: 국경지역에서 탈북해 나온 탈북자들도 만나 보셨습니까? 그들은 어떤 이야기를 합니까?
신: 빨리 전쟁이 났으면 좋겠다. 이미 북한 내에서도 남한이 잘 사는 것은 잘 알고 있답니다. 그러니까 전쟁이라도 빨리 해 가지고 여기서 굶어 죽으나 전쟁이 나서 죽으나 다행히 전쟁에서 이기면 남한의 것을 뺏어 먹든지 얻어 먹든지 굶어 죽지는 않겠느냐? 그런 소문들이 돌고 또 그런 마음들이 대다수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기자: 북한 쪽의 경비상태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들었습니까?
신: 굉장히 강화됐다고 합니다. 전에 보다는 그러나 경비를 하고 있는 군인들까지도 먹고 살길이 없기 때문에 거기에서 즉 뇌물을 주면 나올 수 있는 방법은 있다고 했습니다.
▶ 제일 두려운 것은 강제 북송
기자: 탈북자들은 왜 북한을 탈출 한다고 합니까?
신: 제가 국경지역을 방문 했던 날 바로 그날 넘어온 사람을 만났는데 북한이 너무 경제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쌀값이 뭐 1킬로그램 당 300원 400원도 비싼 값인데 지금은 1000원까지 간다고 하는 그런 소리를 들었습니다. 또 북한에서는 한 달에 노동자들의 임금이 3000원에서 5000원인데 그것도 거의 못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도저히 살 길이 없다. 결국 살 수 있는 방법이라면 「중국으로 건너올 방법밖에 없기 때문에 아무리 단속을 해도 다른 경로를 통해서 넘어올 수밖에 없다」 그렇게 증언을 했습니다. 북한이 점점 더 경제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중국으로 넘어오는 숫자는 늘어나고 있는 반면에 중국에서 단속은 강화되고 있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기자: 현재 탈북자들이 가장 걱정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신: 한결같은 대답이 강제 북송에 대한 두려움이라고 답했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이 여기 나와 있으므로 해서 그것이 들통이 나면 북한의 가족들이 어려움을 당할 것이다. 그것이 두 번째가 되고 가장 크게 두려워하는 것을 강제 북송입니다. 중국공안에 잡힐까 봐서 그것을 가장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http://www.rfa.org/korean/simcheongbodo/2004/10/06/seg4/
● 탈북자들, 중국공안피해 동굴에서 거주
자유아시아방송(RFA) 2004년10월7일
미국에서 탈북자들을 돕고 있는 한 민간 인권단체를 이끌고 있는 신중필 씨(가명)는 최근 한달 동안 중국의 북한 접경지역을 방문하고 돌아왔습니다. 신변안전을 위해 가명을 사용하고 있는 신 씨는 최근에 만나본 탈북자들은 중국공안들의 눈을 피해 도시 인근 동굴 등에서 생활하고 있다고 자유아시아방송에 전했습니다. 이현기 기자가 신 씨와 나눈 이야기를 3회에 걸쳐 전해드립니다. 오늘은 2회 분으로 탈북자들이 중국에서 살고 있는 상황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 5년전 하고 많이 달라져
기자: 최근에 중국으로 넘어온 탈북자들은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신: 제가 99년도 말에 중국을 다녀왔고, 최근에 다녀왔는데 그때만 해도 역전 같은데 가면 꽃제비들이 많아 동냥을 했었고 선교사님들이나 조선족들이 아파트나 집을 임대해 가지고 10명에서 20명씩 보호하고 그들을 돕는 일들을 많이 했었습니다. 5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보니 일체 그런 경우가 없어졌습니다. 그러니까 꽃제비들을 역전이나 거리등에서 볼 수도 없고 탈북한 사람들도 아파트 등에 집단적으로 살고 있는 것을 전혀 찾아볼 수 없고 현재는 아주 변방으로 산속이나 동굴 같은 곳에서 2-3명이나 가족단위로 이렇게 모여 사는 것을 보고 그동안 중국정부가 탈북자들을 엄청나게 압박을 가했고 그들을 핍박을 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기자: 지금도 중국정부는 탈북자들을 강제송환하고 있습니까?
신: 지금도 여전히 강제 북송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잡히는 데로 중국정부가 강제북송을 하기 때문에 그 숫자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는 없고 그렇다고 전보다 탈북자들의 숫자가 줄어들지는 않고 있습니다. 점점 더 많아졌으면 많아졌지 줄어든 것은 아니고 또한 강제 송환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 강제북송 당하면 짐승 같은 교화소 생활
기자: 중국으로부터 강제송환이 되면 북한에서는 어떤 처벌을 받습니까?
신: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여러 가지의 상황인데 어떤 사람들은 3개월 또는 6개월 동안 교화소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가기도 하는데 교화소의 생활이라는 것은 완전히 인간이하의 삶을 사는 것이지요.
기자: 인간의 이하의 삶이란 무엇입니까?
신: 먹을 것은 거의 없고 그리고 고문을 당하고 취조를 당하는데, 중국에서 무슨 일을 했으며 누구의 도움을 받았는가 등의 자신들이 원하는 답이 나올 때까지 고문을 계속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중국에서 남한사람을 만났든지 선교사를 만났든지 그렇게 되면 정치범 수용소에 가게 되고, 일반적으로 배가 고파서 넘어 갔다가 잡혀왔다면 3개월 내지 6개월 동안 교화소에서 교화 받고 (굶주림 속에서 강제 노동을 한 뒤)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이 있구요. 그렇게 되면 다시 탈북해서 중국으로 오기도 합니다.
기자: 중국으로부터 강제송환이 됐다 다시 탈북한 사람들은 어떤 이야기를 합니까?
신: 그런 사람들은 한번 경험이 있기 때문에 중국만 가면 먹고 사는데 걱정이 없다. 중국만 가면 굶어죽지 않는다. 그러한 소문이 북한 내에 돌기 때문에 그리고 본인들이 직접 경험을 했기 때문에 굶어죽지 않기 위해서 북한에서 탈북하려한 것은 그것은 당연한 것이고, 이미 중국에서 한번 경험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중국을 꼭 나오려고 애를 쓰고 또 거의가 건강이 허락하는 한 나온다고 합니다. 나올 때는 자기들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까지도 데리고 나오는 경우가 있다고 증언해 줬습니다.
▶ 한국행 보다 중국에서 살기원하는 사람 늘어
기자: 왜 죽음을 무릅쓰고 탈북을 한다고 합니까?
신: 탈북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어차피 북한에 있어도 굶어 죽는 것이니까? 죽기 아니면 살기고 만약에 다행히 탈북에 성공을 하면은 사는 것 아니냐 그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니까 비장한 각오로 북한을 탈출을 하는 것입니다.
기자: 최근에 만나본 탈북자들도 한국행을 선호 합니까?
신: 5년 전에 우리가 조사를 할 때는 90% 이상이 한국으로 가기를 소원했습니다. 지금은 많이 바뀐 것 같습니다. 제가 최근에 만나본 탈북자들은 대체로 한국이나 미국으로 가는 것 보다는 중국 내에서 안전하기만 하다면 중국 내에 살고 싶다고 하는 거예요. 그것이 거의 50대 50정도로 바꿨습니다.
http://www.rfa.org/korean/simcheongbodo/2004/10/07/seg2/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