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사설] 누가 10만 시민을 시청앞 광장에 불러 모았는가 에 대해서
(홍재희) ====== 친일 반민족 반민주 반통일의 냉전 수구적인 방상훈 세습족벌사주체제인 조선일보 사설은
“ 4일 서울시청앞 광장 집회에 시민 10만명 이상이 모여들었다. 현 정권 들어 최대 규모의 반정부 성격의 집회다. 이들을 거리로 뛰쳐 나오게 한 것은 국가보안법이다. 해방 전후인 양 좌우가 정가에서 학원에서 언론에서 거리에서 부딪치고 있는 것이 지금의 상황이다. ”
(홍재희) ======= 라고 주장하고 있다. 서울시청앞 광장에 수구기득권을 지켜주기위한 들러리를 서기위해 10만명이 모였다고 한다. 광장의 의미는 무엇일까? 고대로마의 민주정치를 설파했던 포럼 에서부터 21세기 초입의 월드컵 4강신화속에 서울 시청앞 광장과 광화문 그리고 전국의 광장에 모인 21세기 대한민국 사회의 시민들이 찾았던 광장이 의미하는 것은 모순과 갈등을 극복하고 미래에 대한 무한한 가능성을 추구하는 의사소통의 장이었다.
(홍재희) ===== 그러나 이번 서울시청앞 광장에 모인 수구기득권 세력들의 국가보안법 폐지반대의 주장을 살펴보면 광장이라는 의사소통의 장을 통해 갈등을 증폭 시키고 남한사회내부의 분열을 조장하며 온 인류가 하나되고 있는 문명화된 지구촌 시대에 남북사이의 관계를 야만적인 적대적 공존으로 되돌리려는 세력들이 21세기의 광장에서 20세기식의 냉전수구적인 굿판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볼수 있다.
(홍재희) ===== 그들이 거리로 뛰쳐 나올이유는 하나도 없었다. 그들이 주장하고 있는 국가보안법 폐지반대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는 수구야당이 건재하고 있고 그들의 국가보안법 폐지반대의 주장을 적극적으로 대변해주고 부추기고 있는 그들에게 있어서 호의적인 언론매체인 조 . 중 . 동이 있고 그들의 주장을 법적으로 보장해주고 있는 민주정부가 존재하고 있다.
(홍재희) ====== 어디 그뿐인가? 그들이 서울시청앞 광장에서 내세우고 있는 국가보안법 폐지반대의 주장들이 현재 국회라는 제도정치권안에서 국정감사를 통해 여과없이 활발하게 토론되고 있는 민주정치적 시스템이 빈틈없이 작동되고 있는현실 속에서 그들 수구정치집단들이 서울시청앞 21세기의 광장에서 의사소통의 전달이 원천적으로 차단됐던 시절인 20세기식의 일방적으로 자기주장을 관철 시키기 위해 대규모 버스를 동원해 사람들을 끌어모으고 있는 방식을 보여주고 있는 수구적 작태는 전형적인 20세기식의 수구적치적 굿판의 무대를 21세기의 열린 서울광장에서 펼쳐 보인 것으로 밖에 볼수 없다. 불필요한 이중과세이다. 시대착오적이다.
(홍재희) ===== 부연한다면 21세기의 모든 시민들에게 무제한 적으로 열려있어야할 서울시청앞 광장은 20세기식의 수구정치집단들만의 닫힌 겟토 지역으로 변질되고 있다. 그러한 수구정치집단들만의 닫힌 겟토 지역의 충실한 관리인은 수구정치집단인 한나라당 소속 이명박 민선서울시장이다. 지방자치제도가 수구정치집단의 수중에 넘어갔을 때에는 21세기의 열린 시민의 광장도 수구집단들 에게만 허용되는 그들 수구집단들만의 겟토로 스스로를 가두어두는 수구적 울타리로 변질될수 있다는 것을 실사구시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홍재희) ======= 서울시청앞 광장이 이렇게 파행적으로 운영되면서 나타나는 부작용으로 21세기의 모든 시민들에게 열린 광장이 돼야할 서울시청앞 광장이 20세기식의 수구정치적 굿판을 벌이는 수구집단들만의 폐쇄적이고 닫힌 20세기식의 겟토로 변질되는 현상은 시대의 대세를 거스르는 것이고 그러한 시대적 대세를 거스르는데 기여하고 있는 집단이 바로 방씨 족벌의 조선일보와 월간조선이다.
(홍재희) ====== 이러한 현상은 조선사설이 주장하고 있는 “ 해방 전후인 양 좌우가 정가에서 학원에서 언론에서 거리에서 부딪치고 있는 것이 지금의 상황이다. ”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 전혀 근거없는 낭설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모든 의사소통의 합법적인 시간과 공간이 보장돼 있는 이시대에 수구정치집단이 대통령의 해외순방 나가는 날에 그것도 평일에 의도적으로 서울시청앞에서 일방적으로 내세우는 사회분열적인 일방적 주장은 이시대의 성숙한 시민문화에 의해서 배척받을 수밖에 없다.
(홍재희) ===== 그렇게도 살기어렵다고 아우성치는 서민들의 바뿐 일손을 놓게하고 서울시청앞으로 몰고가고 있는방씨족벌 조선일보와 수구적인 목사들이 주장하고 있는 민생 경제 살리기는 허구일뿐이다. 그러한 행태는 민생경제의 목을 결과적으로 비틀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방씨 족벌조선일보와 시청앞에 모인 수구정치집단들과 쌍태아인 한나라당 조차 대다수 국민들의 이목이 두려워 당차원에서 참석하지 않고 보이콧 한 것 아니겠는가?
(홍재희) ===== 조선일보는 21세기시민들의 성숙한 의식으로부터 배척받는 수구정치의 굿판을 더 이상 벌이지마라? 이시대가 그러한 조선일보를 거부하고 있다. 그러한 방법으로 민주주의는 발전되지 않는다. 서울시청앞 광장에서 벌인 굿판의 주인공들인 수구적인 기독교 인들과 방씨족벌 조선일보가 벌이고 있는 수구적 굿판이 누리고 있는 의사소통의 자유를 오늘날 한국사회가 이만큼이나마 누리게 되기까지 가해자의 편에서 하느님을 팔고 예수를 팔아서 한국 민주주의의 목을 비틀었던 반민주적인 집단들이었다. 조선일보를 비롯한 그들은 오늘의 우리가 이만큼이나마 누리고 있는 민주적 가치의 열차에 무임승차해온 집단들이다. 이러한 현실을 조선일보가 8 . 15 전후의 건국초기상황과 비교하는 것은 넌센스이다.
(홍재희) ======= 조선사설은
“ 이 상황에서 아무 보완책도 없이 보안법이 폐지되면 나라가 위태로워질 것이라는 걱정 때문이다. 현 정권이 친북·반미·좌경 노선, 다시 말해 반(反)대한민국의 길을 걷고 있다는 의심이 이들을 집 밖으로 밀어낸 것이다. ”
(홍재희) ===== 라고 주장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세계 경제력 10위권을 오르내리고 있다. 민주적인 선거절차에 의해서 평화적으로 헌정질서를 유린한 군사독재체제와 우리사회 곳곳에 뿌리내린 군사문화를 청산하고 극복했다. 한국의 민주화와 아시아의 인권신장 그리고 세계 평화에 헌신한 대한민국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게 되는 민주적 역량은 대한민국사회의 가장 강력하고 건강한 민주적 가치이자 자산이다. 이러한 대한민국사회의 성숙도는 오늘자 조선사설이 우려하고 있는 소위 “ 친북·반미·좌경 노선,” 을 일부 극소수 집단들에게 대한민국 사회가 허용한다해도 충분히 견딜수 있는 면역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본다.
(홍재희) ===== 그러한 대한민국의 민주적 기본질서에 대한 역량에 대한 대한민국의 체제 건강성의 역동적인 민주적 힘을 믿고 노무현 대통령도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했다고 본다. 그리고 북한체제가 평화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으로 민족공동체의 대의를 위해 남한사회와 민족 공존공영의 길로 나아가기위해 나선다면 우리는 그런 북한에 대한 친북의 태도로 답해야한다. 그런 북한에 대해서 반북의 총칼로 무찌를수 는 없지 않은가
(홍재희) ===== 그것은 조선사설의 주장대로 “ 반(反)대한민국의 길” 이아닌 북한체제와의 질적 양적 물질적 정신적 체제경쟁에서 상대적으로 월등한 우위를 확보하고 있는 21세기의 문명사회를 지향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건강성에 대한 확신에서 비롯된 체제의 건강성이라는 길위를 자신감있게 보무도 당당히 나아가는 것으로 볼수 있다. 조선일보는 무엇이 두려운가? 수구의 바레브선이 무너지는 것이 그렇게도 두려운가? 그렇다면 21세기의 열린 지구촌시대를 지향하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방씨 족벌의 조선일보가 무너져야 한다.
(홍재희) ======= 조선사설은
“ 집회 참가자들은 대부분 중·장년층 이상이다. 대한민국이 이나마 나라의 면모를 갖추는 데 몸으로, 마음으로 힘을 보탰던 세대다. 최전방 참호에서 몸으로 침략전쟁을 막아냈던 이들도 이 세대였고, 주(週) 60~70시간의 살인적 근무를 견디며 경제 발전을 일궜던 이들도 이 세대다. ”
(홍재희) ====== 라고 주장하고 있다. 집회 참가자들만 대한민국이 이나마 나라의 면모를 갖추는 데 몸으로, 마음으로 힘을 보탰던 세대들이 아니다. 집회 참가자들만 최전방 참호에서 몸으로 침략전쟁을 막아냈고 주(週) 60~70시간의 살인적 근무를 견디며 경제 발전을 일궜던 사람들이 아니다. 집회에 참가하지 않은 4790만명의 한국인들도 대한민국이 이나마 나라의 면모를 갖추는 데 몸으로, 마음으로 힘을 보탰던 세대이고 최전방 참호에서 몸으로 침략전쟁을 막아냈던 이들이었고, 주(週) 60~70시간의 살인적 근무를 견디며 경제 발전을 일궜던 이들이다.
(홍재희) ===== “ 조선일보의 소유와 경영과 편집권에 대한 독점적이고 배타적이며 제왕적인 지배권력을 행사하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보다 신체조건이 건장하고 양호한 것으로 보이는 방상훈 현 조선일보사장이 병역면제를 받고 군대에 갔다 오지 않은것과는 대조적으로 방씨 족벌조선일보가 좌파라고 매도하고 있고 반(反)대한민국의 길을 걷고 있다고 의심하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은 최전방 참호에서 온 몸으로 조선일보가 그토록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 국토방위의 의무를 다했었다. 방씨 족벌의 조선일보가 지금누구를 비판하고 있는가?
(홍재희) ==== 우리국민들은 조선사설의 주장과 같이 대한민국이 이나마 나라의 면모를 갖추는 데 몸으로, 마음으로 힘을 보태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최전방 참호에서 몸으로 침략전쟁을 막아냈던것에 만족하지 않고 주(週) 60~70시간의 살인적 근무를 견디며 경제 발전을 일궜던 물질적 성장에만 만족하지 않고 대한민국의 정체성인 민주주의와 언론자유 그리고 인권신장을 통해 동서화합과 남북의 화해협력을 통해 대한민국이 통합과 상생의 민주적 기본질서를 찾아 가는데 방향키 역할을 한 것이 범 민주 평화개혁세력들이다. 수구정치집단인 조선일보가 감히 누구를 비판하고 있는가?
(홍재희) ====== 조선사설은
“ 오늘의 민주화도 이들이 다진 토대 위에서 가능했던 것이다. 나라를 지키고, 살림을 일으켜세우고, 민주화의 기틀을 만든 세대지만 시위나 집회에는 서툰 사람들이다. 시위나 집회는 타고난 전문가가 있겠거니 하고 자신들의 소관 밖으로 생각했던 사람들이다. ”
(홍재희) ======= 라고 주장하고 있다. 오늘의 민주화가 이만큼이나 꽃피게 되기까지 박정희 전두환 . 노태우로 이어지는 반민주 군사독재체제와 우리 애국시민들이 맞서 싸울때 서울시청앞 광장에 모인 수구적 기독교 목사집단들은 광주에서 수많은 국민들을 학살한 정통성없는 정치권력의 무궁무진한 발전을 하느님께 기도한 고등종교에 대한 패륜적 행위를 자행했다.
(홍재희) ==== 기독교에서의 예수가 구현하고자 한것은 지상왕인 로마 정치권력의 부당한 로마인 탄압에 맞선 사해동포주의적인 이타적 사랑 이라는 종교적 정체성을 지니고 정치권력의 탄압에 맞선 힘없는 풀뿌리들의 편에선 고등종교을 지향하는 것이었다. 그런 기독교의 예수가 지향해온 가치관을 추구하는 목사신분으로 국민들을 학살한 전두환정권의 피묻은 정치권력의 보존을 위해 기도회를 열어주고 정권의 정당성을 부여해준 행위를 한 집단들이 이번 서울시청앞 광장에 또다시 나타나 성숙돼 가고 있는 한국의 민주주의의 목의 목을 비틀고 있다.
(홍재희) ===== 그들 집단들과 함께 조선일보도 한국의 민주주의를 총칼로 유린한 반민주 군사독재체제의 폭거를 구국의 결단으로 칭송했던 조선일보도 오늘의 한국사회가 이만큼이나마 누리고 있는 민주화를 파괴한 가해자 였을 뿐 우리가 누리고 있는 민주화 의 열차에 무임승차해왔다. 조선일보와 수구적 목사들은 전두환 정권의 군사독재체제가 튼튼하게 다져지도록 수구적 토대를 굳건하게 만들어 놓으며 한국의 민주주의와 언론자유 그리고 인권신장의 목을 비튼 반민주 집단들이다.
(홍재희) ==== 그들 수구적 목사들은 세속적인 사회적 통념이나 가치추구보다도 저열하고 타락한 추태를 보였기 때문에 고등종교집단의 이름을 팔고 있는 상업주의적인 종교집단일뿐 진정한 종교의 정체성을 구현하는 것이라고 볼수 없다. 국민들의 알권리 충족보다 독재정권의 정치권력의 정당성을 국민들에게 강제하는 나팔수 역할을 했기 때문에 방씨족벌조선일보는 언론이 아니고 신문이 아니고 수구정치집단의 기관지에 불과할 뿐이다. 그들 서울시청앞 광장에 모인 수구적 목사들과 이를 부추긴 조선일보는 군사독재정권과 맞서싸운 국민들을 폭도로 매도하고 좌경용공세력으로 매도하며 한국사회 민주화의 목을 비튼 집단들이다.
(홍재희) ======= 조선사설은
“ 이런 일을 겪은 이 나이의 사람들을 거리로 불러낸 것은 현 정권이다. 현 정권이 이끌었던 지난 1년8개월 동안의 나라 형편이 거리로 끌어낸 것이다. ”
(홍재희) ======= 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들을 현정권은 불러내지 않았다. 그들이 민주적 기본가치질서를 원한다면 국가보안법은 폐지돼야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민주적 기본가치질서를 진심으로 추종한다면 반민주 악법인 국가보안법폐지를 수용해야한다. 국가보안법과 보편적 민주주의가치는 양립할 수 없다. 그런측면에서 접근해 볼때 그들을 거리로 불러낸 것은 군사독재권위주의 체제속에서 성장해온 수구적 목사들과 방씨 족벌의 조선일보가 이제까지 누려온 수구적 기득권이 1987년 6 . 29 이후에 진전되고 있는 절차적 민주화와 함께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으로 이어지는 범민주 평화개혁세력들의 연이은 집권을 통한 내용적 민주화의 심화로 인해서 무너지려하자 수구적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그들을 서울시청앞 광장으로 불러낸 것이다.
(홍재희) ===== 이러한 수구적인 목사들과 방씨 족벌조선일보의 행태는 한국사회의 미래지향적인 발전의 발목을 잡는 댓가로 그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함이다. 그들 국민들이 불안해 한다해도 적극적으로 이해시키고 설득해서 한국사회의 민주적 가치를 신장시키는 것이 목사들의 역할이요 언론의 역할일진대 그렇게 하지는 못할망정 그들 국민들의 까닭모를 레드콤풀렉스와 불안심리를 악용하고 증폭시키며 한국사회의 내용적 민주주의 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을 용납해줘서는 안된다. 방씨족벌 조선일보에 대한 한국사회의 개혁작업의 예봉을 피해가기 위한 보호막으로 삼기위해서 방씨족벌 조선일보가 수구적인 목사들과 유착관계를 끈끈하게 형성해 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홍재희) ======= 조선사설은
“ 대한민국 정통성을 공격하고 정체성을 흔들고 남파 간첩을 민주화 운동가로 다시 태어나게 한 그 일들 말이다. 한·미 동맹은 약화되고 주한미군 철수 움직임도 본격화됐다. 이런 일들을 걱정하는 사람들은 방송에서, 학교에서, 사무실에서 ‘수구 반동’이니 ‘기득층’이니 하는 면박만 받아야 했다. ”
(홍재희) ======= 라고 주장하고 있다. 수구적인 목사들과 방씨족벌 조선일보 그리고 수구세력들이 주한미군 철수를 진심으로 걱정한다고 한다면 주한미군 철수를 반대하고 있는 노무현 정권을 비판할 것이 아니라 수구적 목사들이 신봉하고 있고 맹목적인 친미사대주의적인 방씨족벌 조선일보가 떠받들고 있는 부시미국정부의 주한미군 철수정책을 반대하고 부시미국정부를 규탄해야 하지않을까?
(홍재희) ===== 노무현 대통령이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해서 비판받아야 한다면 국가보안법 폐지를 지난 수십년 동안 일관성 있게 주장해온 미국정부도 비판받아야 한다. 그러나 수구적 목사들은 그런 미국정부에 대해 비판하기는커녕 하나님의 축복이 내려지기를 기원하고 있다. 조선일보 또한 국가보안법폐지의 입장에 있는 미국정부를 비판하지 못하고 있다. 이렇듯이 이율배반적인 수구적 목사들과 방씨 족벌조선일보의 태도를 독자들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홍재희) ====== 조선일보와 수구적인 목사들과 수구세력들은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면 광화문앞에 인공기가 휘날리고 김일성 . 김정일 초상화가 대한민국에 물결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 조선일보와 수구적 목사들이 서울시청앞 광장 집회에서 비록 퍼포먼스를 하기 위한 것이라고 해도 인공기를 펄럭이고 김정일 초상화를 백주대낮에 흔들고 다니는 모습은 실로 아이러니가 아닐수 없다.
(홍재희) ====== 수구적 목사들과 방씨족벌 조선일보 그리고 한나라당과 수구세력들이 지지했던 박정희 가 김일성과 1972년 7. 4 남북공동성명을 통해 자주. 평화 . 민족 대단결의 명분을 내세웠을때 반대하지않았고 인공기와 김일성 초상화를 불태우지 않았다.박정희의 선택을 지지 했다는 얘기이다.수구적 목사들과 방씨족벌 조선일보 그리고 한나라당과 수구세력들이 지지했던 노태우 정권이 김일성 정권과 남북기본합의서를 통해 상호체제존중의 합의를 했을때 인공기와 김일성 초상화를 불태우지 않았다. 그것 또한 노태우 정권의 선택을 지지 해줬다는 것을 의미한다
(홍재희) =====그러나 김대중정권과 노무현 정권의 대북화해정책은 결사적으로 반대하고 있다. 그리고 이번과 같이 시청앞광장에서 인공기와 초상화를 불태우고 있다. 그렇게 하면서 대화파트너인 북한체제와 평화적인 공존이 가능한지 조선일보와 수구적 목사들 그리고 냉전 수구세력들에게 묻지않을수 없다. 이성적으로 남북관계를 접근하기 위해 극우 세력들은 한국사회에서 극복돼야한다.
(홍재희) ====== 또한 주한미군 없이는 대한민국 정통성 유지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서울시청앞에 모인 10만의 사람들과 수구적 목사들과 조선일보는 대한민국의 정통성 유지에 치명적이라고 할수 있는 주한미군철수를 강행하고 있는 친북좌파인 부시미국정부를 비판하지 못하고 주한미군 철수를 반대하는 반북친미우파의 노무현 정권을 비판하고 있는 것은 독자들이 이해할수 없을 것이다.
(홍재희) ====== 반핵반김을 외치고 부추기고 있는 서울시청앞 광장에 모인 10만 사람들과 수구적인 목사들 그리고 방씨 족벌 조선일보는 확실하게 검증도 안된 북한의 핵 의혹에 대해서 격분하면서 북한체제를 타도하라며 열을 올리고 있는 한편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많은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미국의 핵무기에 대해서는 반대하지 못하고 있는 반핵반김의 모순과 북한의 핵의혹을 규탄하고 있는 수구적 목사들이 세계 인류를 수십번 공멸시키고도 남을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미국에게 축복이 있기를 하느님께 기도하고 있는 이율배반적인 행태는 우리 세속적가치로도 도저히 이해할수 없다. 이들이 주장하고 있는 것은 민족의 영구분단을 통한 동족상잔을 지향하며 반민주적인 수구적 가치를 지향하는 구체제의 신봉 그자체이다. 우리는 이러한 역사적 퇴행에 맞서 극복해 나가야 한다. 이러한 우리사회의 냉전수구적인 극소수의 부류들은 극복의 대상일뿐 공존의 대상일수 없다.
(홍재희) ======= 조선사설은
“ 지난달 ‘자유와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시국선언’을 발표한 원로들은 이해찬 국무총리한테 “쿠데타 주도세력이 여러 분 들어가 있는데…”라는 노골적인 모욕을 당하기도 했다. 정부와 여당은 시청앞 집회에서 나온 ‘나라 걱정’ 이야기에는 귀기울일 생각이 없어 보인다. “
(홍재희) ====== 라고 주장하고 있다. 시청앞 집회에서 나온 수구적 목사나 방씨족벌 조선일보의 걱정은 나라가 아닌 자신들의 일신의 영달이 무너지고 있는 현상속에서 변화와 개혁의 물결에 자신들의 정체성이 떠내려갈 것을 걱정하고 있다고 본다. 방씨 족벌 조선일보는 변화와 개혁의 발목을 더 이상 잡지마라? 그렇지 않아도 지금 한국사회는 가야할 길이 멀다.
(홍재희) ===== 조선사설은
“ 반미(反美)와 대통령 탄핵반대 촛불 시위는 국민의 뜻이라며 그토록 존중하던 현 정권이다. 이들이 시청앞을 향해서는 “더 이상 국민을 불안케 말라”고 경고하고 있다. 이런 정권의 이중적 태도가 ‘나라 걱정’ 세대를 계속 거리로 내몰게 될지 모른다“
(홍재희) ======== 라고 주장하고 있다.대통령 탄핵반대 촛불 시위와 수구집단들의 겟토인 서울시청앞의 광장에서 벌어진 수구적 굿판을 동일시해서 수평적으로 단순 비교해서는 안된다. 조선사설이 대통령 탄핵반대 촛불 시위에 모인 자발적인 고사리손들과 수를 헤아릴수도 없이 많은 관광버스에 실려 동원된 서울시청앞 광장의 수구집회동언인파들를 동일시 해서 평가 하는 것은 한마디로 얘기해서 넌센스이다. 그렇듯이 조선일보식으로 접근한다면 아우토반(고속도로)을 처음으로 건설한 나치 독일의 히틀러도 독일인들이 독일경제부흥의 기수로 떠받들어야 하지 않을까? . 조선사설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
[사설] 누가 10만 시민을 시청앞 광장에 불러 모았는가 (조선일보 2004년 10월6일자)
4일 서울시청앞 광장 집회에 시민 10만명 이상이 모여들었다. 현 정권 들어 최대 규모의 반정부 성격의 집회다. 이들을 거리로 뛰쳐 나오게 한 것은 국가보안법이다. 해방 전후인 양 좌우가 정가에서 학원에서 언론에서 거리에서 부딪치고 있는 것이 지금의 상황이다.
이 상황에서 아무 보완책도 없이 보안법이 폐지되면 나라가 위태로워질 것이라는 걱정 때문이다. 현 정권이 친북·반미·좌경 노선, 다시 말해 반(反)대한민국의 길을 걷고 있다는 의심이 이들을 집 밖으로 밀어낸 것이다.
집회 참가자들은 대부분 중·장년층 이상이다. 대한민국이 이나마 나라의 면모를 갖추는 데 몸으로, 마음으로 힘을 보탰던 세대다. 최전방 참호에서 몸으로 침략전쟁을 막아냈던 이들도 이 세대였고, 주(週) 60~70시간의 살인적 근무를 견디며 경제 발전을 일궜던 이들도 이 세대다.
오늘의 민주화도 이들이 다진 토대 위에서 가능했던 것이다. 나라를 지키고, 살림을 일으켜세우고, 민주화의 기틀을 만든 세대지만 시위나 집회에는 서툰 사람들이다. 시위나 집회는 타고난 전문가가 있겠거니 하고 자신들의 소관 밖으로 생각했던 사람들이다.
이런 일을 겪은 이 나이의 사람들을 거리로 불러낸 것은 현 정권이다. 현 정권이 이끌었던 지난 1년8개월 동안의 나라 형편이 거리로 끌어낸 것이다.
대한민국 정통성을 공격하고 정체성을 흔들고 남파 간첩을 민주화 운동가로 다시 태어나게 한 그 일들 말이다. 한·미 동맹은 약화되고 주한미군 철수 움직임도 본격화됐다. 이런 일들을 걱정하는 사람들은 방송에서, 학교에서, 사무실에서 ‘수구 반동’이니 ‘기득층’이니 하는 면박만 받아야 했다.
지난달 ‘자유와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시국선언’을 발표한 원로들은 이해찬 국무총리한테 “쿠데타 주도세력이 여러 분 들어가 있는데…”라는 노골적인 모욕을 당하기도 했다. 정부와 여당은 시청앞 집회에서 나온 ‘나라 걱정’ 이야기에는 귀기울일 생각이 없어 보인다.
반미(反美)와 대통령 탄핵반대 촛불 시위는 국민의 뜻이라며 그토록 존중하던 현 정권이다. 이들이 시청앞을 향해서는 “더 이상 국민을 불안케 말라”고 경고하고 있다. 이런 정권의 이중적 태도가 ‘나라 걱정’ 세대를 계속 거리로 내몰게 될지 모른다. 입력 : 2004.10.05 18:39 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