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사설] '대입 계층(階層)공시제'는 또 뭘 하자는 건가 에 대해서
(홍재희) ======= 친일 반민족 반민주 반 통일의 냉전 수구적인 방상훈 세습족벌사주체제인 조선일보 사설은
“ 안병영 교육부총리가 한겨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대학별로 신입생 중 농·어촌 출신이나 저소득층 출신의 비율을 공개하도록 하는 ‘계층 공시제(公示制)’를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명분은 대학들에 사회적 약자를 우대하는 입시제도를 도입하도록 압력을 가하겠다는 것이다. 가능하면 사회적 약자를 배려해주는 입시제도도 필요하다. 선진국도 ‘소수자 우대정책’을 시행하는 대학이 적지 않다. 우리 대학들도 정원 외로 뽑는 농·어촌특별전형 제도를 갖고 있다. 하지만 이것이 입시제도의 본말(本末)을 뒤집어서는 곤란하다. 입시의 본질은 각 학교가 자기 학교 교육수준을 따라갈 수 있는 수학능력을 갖춘 학생을 뽑는 데 있다.”
(홍재희) ======= 라고 주장하고 있다. 조선사설은 “ 안병영 교육부총리가 한겨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대학별로 신입생 중 농·어촌 출신이나 저소득층 출신의 비율을 공개하도록 하는 ‘계층 공시제(公示制)’를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다고 전하며 “하지만 이것이 입시제도의 본말(本末)을 뒤집어서는 곤란하다. 입시의 본질은 각 학교가 자기 학교 교육수준을 따라갈 수 있는 수학능력을 갖춘 학생을 뽑는 데 있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조선사설이 ‘계층 공시제(公示制)’를 비판하기에 앞서 그동안 각 대학들이 정원 외로 뽑는 농·어촌특별전형 제도를 갖고 있었지만 괄목할만한 효과를 나타내지 못하고 전시효과만을 노린 측면은 없었는지에 대해서 먼저 관심을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홍재희) ====== 조선사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 ‘계층 공시제(公示制)’를 시행해도 철저하게 서열화 대입제도와 현행 대학교육여건상 각 대학들이 자기 학교 교육수준을 따라갈 수 있는 수학능력을 갖추지 못한 소위 자질이 부족한 학생 들을 ‘계층 공시제(公示制)’의 부담 때문에 뽑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리고 ‘계층 공시제(公示制)’ 자체가 대학별로 신입생 선발과정에서 농·어촌 출신이나 저소득층 출신의 대학입학 비율을 공개하도록 하는 제도이지 신입생 중 농·어촌 출신이나 저소득층 출신의 학생들을 일정비율 뽑아야 한다고 강제하는 제도는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
(홍재희) ===== 그렇다면 ‘계층 공시제(公示制)’가 도시에 비해서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여건이 미비한 교육소외지역출신 학생들과 경제적인 여건상 사교육에 대한 접근이 사실상 봉쇄돼 있는 계층의 자녀들이 대학학교 교육수준을 따라갈 수 있는 수학능력을 충분히 갖췄음에도 불구하고 사교육의 힘에 의존하고 있는 수능입시의 치열한 점수경쟁에서 뒤쳐진 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대학입학에서 불이익을 당하는 현상을 상징적으로 해소 시켜줄 수 있다면 그래서 ‘계층 공시제(公示制)’를 도입한다면 의미 있다고 본다. 그러나 교육부의 이러한 제도가 대학교육의 서열화를 극복하는 것과 동시에 도입해야 그 효과를 극대화 시킬수 있다고 본다.
(홍재희) ======= 조선사설은
“ 이 원칙과 본질이 ‘약자 우대’라는 사회정책적 배려에 밀려나게 되면 입시의 본질인 경쟁 원리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이런 정책은 사회정책이지 교육정책은 아니다. 교육부는 수능을 등급화해서 변별력을 떨어뜨렸다. 내신의 비중은 높이면서도 고교 간 학력격차는 인정하지 않겠다고 하고 있다. 이것 역시 입시에서 실력을 보조적(補助的) 판단자료로만 삼겠다는 의도다. 집이 잘 사는 덕분에 과외를 해서 얻은 실력이니 진짜 실력이라 볼 수 없다는 발상이다. 이것처럼 앞뒤가 뒤집힌 일도 없다. 수험생들이 왜 사교육에 의존하는가. 학원강사와 과외선생이 학교교사보다 잘 가르치기 때문이다. 90점짜리와 40점짜리가 뒤섞여 배우는 학교는 공부할 분위기가 못 된다. 교사는 열의가 없고, 학생들은 학교를 밀린 잠 보충하는 곳으로나 여길 뿐이다. ”
(홍재희) ======== 라고 주장하고 있다. 조선사설은 “ 이 원칙과 본질이 ‘약자 우대’라는 사회정책적 배려에 밀려나게 되면 입시의 본질인 경쟁 원리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이런 정책은 사회정책이지 교육정책은 아니다. ” 라고 주장하고 있다. 조선사설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엄밀한 의미에서 접근해 본다면 ‘계층 공시제(公示制)’는 ‘약자 우대’라고 볼수 없다. 똑같은 공교육을 받고 대학에 입학할수 있는 학습능력을 겸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적인 이유와 지역적인 한계 때문에 사교육의 혜택으로부터 소외돼 사교육 위주의 불공정 경쟁이 서열화 된 수능점수 위주의 대학입시에 불이익을 받고 있는 학생들에게 대학입학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약자 우대’가 아닌 정상적인 교육의 사다리를 통해 대학에 진학할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볼수 있다. 그것도 극히 제한적인 경우에 해당된다고 볼수 있다. 이러한 제도는 미국 대학의 소수자 우대정책인 어퍼머티브 액션과는 또 다른 의미로 접근해야 한다고 본다.
(홍재희) ===== 이러한 정책적 유도는 조선사설의 주장과 같이 사회정책적 배려가 아니라 수능점수위주의 무한경쟁체제가 파생시킨 대학입시의 모순을 극복해 나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과도기적인 보완책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리고 조선사설은 “ 입시의 본질인 경쟁 원리” 운운하고 있는데 입시의 본질은 아무리 의미를 좁혀 접근해도 경쟁이 아닌 대학에 입학해서 대학교육을 받을 학습능력을 지녔는가에 대한 평가라고 본다. 입시는 하나의 교육수단에 불과하고 교육의 본질은 경쟁이 아닌 교육받을 대상자들이 지니고 있는 잠재력과 가능성을 창조적으로 개발해 내는데 있다고 본다.
(홍재희) ===== 조선사설은 “ 교육부는 수능을 등급화해서 변별력을 떨어뜨렸다. 내신의 비중은 높이면서도 고교 간 학력격차는 인정하지 않겠다고 하고 있다. 이것 역시 입시에서 실력을 보조적(補助的) 판단자료로만 삼겠다는 의도다. ”라고 주장하고 있다. 조선사설의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 지금까지 수능 점수를 높이는 실력 위주의 교육적 폐해는 실로 대단했다. 동시에 그런 수능점수 위주의 입시 사다리를 통해 명문대인 서울대 . 연 . 고대의 서열화된 대학에 입학한 학생들이 받은 교육 서비스는 어떠했는가?
(홍재희) ==== 서울대와 연 . 고대 는 조선일보가 접근하고 있는 이른바 교육의 국제 경쟁력면에서 세계 150 위권 밖으로 밀려나는 둔재교육비스를 학생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어디 그뿐인가? 국내최고를 자랑하는 서울대와 연 . 고대를 나온 졸업생들이 세계 일류기업도 아닌 국내기업에 취업해도 수습과정을 거치지 않고 바로 실무에 적응할수 있는 사회적응능력조차 제대로 교육시키지 못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수능 점수위주의 대입시와 서열화된 대학교육의 문제에서 비롯된 교육적 구태이다. 조선사설은 이러한 구조적인 문제점에 대해서는 항상 침묵하고 있다.
(홍재희) ===== 이러한 현실은 공교육 외에 사교육을 통한 수능점수 부풀리기를 통해 나타난 성적으로 대학에 진학하고 그들 학생들을 받아들인 서열화된 대학이 제공하는 교육서비스 또한 같은 교육적 맥락으로 제공해 조선일보가 강조하는 이른바 국제경쟁력 면에서 수능점수가 우수한 서울대 . 연 . 고대 수준의 국내수재들을 국제적인 둔재로 만들고 있는 오늘의 수능실력 향상 교육시스템은 부존자원이 일천한 한국의 유일한 자원인 양질의 인력양성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그런 모순을 극복해 나가는 명제하에 고교교육의 정상화를 위해 수능점수 위주보다 실질적이고 정상적인 공교육의 내실있는 학습효과를 통해 대학에 진학할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실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홍재희) ====== 조선사설은 “ 집이 잘 사는 덕분에 과외를 해서 얻은 실력이니 진짜 실력이라 볼 수 없다는 발상이다. 이것처럼 앞뒤가 뒤집힌 일도 없다. 수험생들이 왜 사교육에 의존하는가. 학원강사와 과외선생이 학교교사보다 잘 가르치기 때문이다. 90점짜리와 40점짜리가 뒤섞여 배우는 학교는 공부할 분위기가 못 된다. 교사는 열의가 없고, 학생들은 학교를 밀린 잠 보충하는 곳으로나 여길 뿐이다. ”라고 주장하고 있다. 사교육에 의존하는 것은 수능점수위주의 대학입시제도와 그런 제도를 통해 학생들을 모집하고 있는 대학의 서열화때문이라고 본다.
(홍재희) ===== 서울대 . 연고대 등의 수직적으로 서열화된 대학 사이에서도 특성화된 대학의 개성을 찾아볼수 있는 교육의 형태를 우리들이 찾아볼 수 없다. 이러한 서열화는 단지 수능점수가 높은 학생들을 다수 확보하는 수단이나 도구에 불과할 뿐 대학교육의 본질적인 의미와는 거리가 멀다. 반면에 서열화된 대학에 진학하기위해 고교의 공교육이 유명무실화 되고 사교육이 기승을 부려 부모나 가족들의 경제적인 능력에 따라 사교육의 혜택을 차별적으로 받을 수밖에 없는 비교육적인 불공정 기회를 파생시키고 있는 현실을 타개해 나가야 한다.
(홍재희) ====== 조선사설은 “ 90점짜리와 40점짜리가 뒤섞여 배우는 학교는 공부할 분위기가 못 된다. 교사는 열의가 없고, 학생들은 학교를 밀린 잠 보충하는 곳으로나 여길 뿐이다. ”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조선사설에 대해서 묻겠다. 학교교육의 본질이 90점짜리와 40점짜리의 우열을 가리는 도구일 뿐이라는 말인가? 학교교육이 점수의 높고 낮음을 절대적 가치로 해서 접근해야한다면 교육의 본래적 목적인 차이와 다름과 함께 학생 각자기 지닌 가능성을 찾아내서 함양시키는 역할은 점수위주의 실력향상을 목적으로 하는 학교교실에서는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지금 우리가 지향해 나가야할 교육의 의미는 학생들의 수능점수의 우열보다 학생들이 각기 지니고 있는 다양한 가능성을 제대로 찾아내 비교하고 평가해서 개성에 맞는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교육적 사다리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본다.
(홍재희) ======= 조선사설은
“ 지금 절실한 교육정책은 붕괴된 학교교육을 일으켜 세우는 것이다. 학교수업에만 충실해도 좋은 대학을 갈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러려면 교사들의 교수(敎授)능력 향상에 자극을 줄 교사평가제를 도입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공교육을 정상화시켜야만 가난한 집 아이들도 학교에서 키운 실력으로 당당하게 대학을 갈 수 있다. 그런데도 정부가 그런 정도(正道)를 외면하고 ‘점수는 사교육의 결과이니 무시해야 한다’고 우기고 있다. 이걸 보면 이 정부가 입시제도를 교육의 측면에서 생각하는지, 자신들의 정치적 기반인 특정 계층의 호감을 사는 정치적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것인지 의심이 갈 수밖에 없다. ”
(홍재희) ======== 라고 주장하고 있다. 조선사설은 “ 지금 절실한 교육정책은 붕괴된 학교교육을 일으켜 세우는 것이다. 학교수업에만 충실해도 좋은 대학을 갈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러려면 교사들의 교수(敎授)능력 향상에 자극을 줄 교사평가제를 도입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공교육을 정상화시켜야만 가난한 집 아이들도 학교에서 키운 실력으로 당당하게 대학을 갈 수 있다. ” 라고 주장하고 있다. 조선사설의 주장은 현상적인 접근에 불과하다. 근본적인 대안이 될 수 없다. 붕괴된 학교교육의 원인은 수능점 수위주의 서열화된 대학에 진학하기위한 대학교육이 바뀌지 않은 가운데 서열화 된 고교교육을 평준화한데서 나타나는 구조적인 불일치가 오늘의 고교교육의 부실을 초래했다고 볼수 있다.
(홍재희) ===== 그 측면에서 접근해 볼때 조선사설이 전가의 보도처럼 활용하고 있는 국제경쟁력을 전혀 갖추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철저하게 서열화 돼 있는 한국의 대학교육제도부터 뜯어고쳐야한다. 조선일보 한번 생각해 보아라? 대한민국에서 수능점수 위주의 평가를 통해 수재들만 들어갈수 있는 서열화 된 대학교육의 정점에 있는 서울대와 . 연 . 고대가 조선일보가 시장경쟁논리를 통해서 국제경쟁력측면으로 접근할 때 세계 150위권 밖으로 밀려나 대한민국의 수능 점수 수재들을 국제적인 교육경쟁력 면에서 150위권으로 밀려나고 있는 국제적 둔재교육의 산실인 서열화된 서울대 . 연 . 고대 식의 교육적 관행과 제도와 개성없는 종합백화점식의 대학교육을 먼저 뜯어고치면 공교육은 정상화 될 수 있다.
(홍재희) ===== 그런 다음에 새로운 대학교육에 적응할수 있는 교사들의 교수(敎授)능력 향상에 자극을 줄 교사평가제 도입을 고려해 보는 것이 순리하고 본다. 그런 변화를 추구한다면 가난한 집 아이들도 학교에서 키운 실력으로 당당하게 대학을 갈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조선사설의 주장대로 대학의 수능점수의 우열만을 가리는 데에만 활용될뿐 전혀 대학교육의 참의미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대학의 서열화는 그대로 놔둔 채 교사들의 교수(敎授)능력 향상에 자극을 줄 교사평가제를 도입하는 것은 별무효과라고 볼수 있다.
(홍재희) ===== 조선사설가 선호하고 있는 치열한 교육의 경쟁이 없었던 시간과 공간속에서 아인슈타인과 스티븐 호킹이 학문적 대업을 이룩할수 있었던 것은 교육을 시장경쟁의 논리로만 접근하고 있는 조선일보의 삐뚤어진 교육관의 문제점을 실사 구시적으로 대변해 주고 있다고 본다.. 대학교육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가 절실히 요청되는 시점이다. 조선일보가 선호하는 국제경쟁력에서 서열화의 정점에 있는 한국사회에서의 일등인 서울대가 세계 150위권 밖에 밀려나 있는 것과 발행부수 1등을 자랑하고 있는 방씨 족벌조선일보가 세계적인 신문의 측에도 전혀 끼지도 못하고 한국사회에서도 점점 도태되고있는 처지로 전락하고 있는 것은 일맥상통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
[사설] '대입 계층(階層)공시제'는 또 뭘 하자는 건가 (조선일보 2004년 10월2일자)
안병영 교육부총리가 한겨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대학별로 신입생 중 농·어촌 출신이나 저소득층 출신의 비율을 공개하도록 하는 ‘계층 공시제(公示制)’를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명분은 대학들에 사회적 약자를 우대하는 입시제도를 도입하도록 압력을 가하겠다는 것이다.
가능하면 사회적 약자를 배려해주는 입시제도도 필요하다. 선진국도 ‘소수자 우대정책’을 시행하는 대학이 적지 않다. 우리 대학들도 정원 외로 뽑는 농·어촌특별전형 제도를 갖고 있다.
하지만 이것이 입시제도의 본말(本末)을 뒤집어서는 곤란하다. 입시의 본질은 각 학교가 자기 학교 교육수준을 따라갈 수 있는 수학능력을 갖춘 학생을 뽑는 데 있다.
이 원칙과 본질이 ‘약자 우대’라는 사회정책적 배려에 밀려나게 되면 입시의 본질인 경쟁 원리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이런 정책은 사회정책이지 교육정책은 아니다.
교육부는 수능을 등급화해서 변별력을 떨어뜨렸다. 내신의 비중은 높이면서도 고교 간 학력격차는 인정하지 않겠다고 하고 있다. 이것 역시 입시에서 실력을 보조적(補助的) 판단자료로만 삼겠다는 의도다. 집이 잘 사는 덕분에 과외를 해서 얻은 실력이니 진짜 실력이라 볼 수 없다는 발상이다.
이것처럼 앞뒤가 뒤집힌 일도 없다. 수험생들이 왜 사교육에 의존하는가. 학원강사와 과외선생이 학교교사보다 잘 가르치기 때문이다. 90점짜리와 40점짜리가 뒤섞여 배우는 학교는 공부할 분위기가 못 된다. 교사는 열의가 없고, 학생들은 학교를 밀린 잠 보충하는 곳으로나 여길 뿐이다.
지금 절실한 교육정책은 붕괴된 학교교육을 일으켜 세우는 것이다. 학교수업에만 충실해도 좋은 대학을 갈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러려면 교사들의 교수(敎授)능력 향상에 자극을 줄 교사평가제를 도입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공교육을 정상화시켜야만 가난한 집 아이들도 학교에서 키운 실력으로 당당하게 대학을 갈 수 있다.
그런데도 정부가 그런 정도(正道)를 외면하고 ‘점수는 사교육의 결과이니 무시해야 한다’고 우기고 있다. 이걸 보면 이 정부가 입시제도를 교육의 측면에서 생각하는지, 자신들의 정치적 기반인 특정 계층의 호감을 사는 정치적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것인지 의심이 갈 수밖에 없다. 입력 : 2004.10.01 18:24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