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고품격 커뮤니티  ‘스브스프리미엄’

# 개정일 제거방법은 日 核武裝!





● 金正日 打倒로 中國에의 壓力을 두려워마라



- 北核 맞서 核武裝 나설 必要 -



前 朝鮮勞動黨書記 黃長燁



月刊現代(게칸겐다이) 2004年10月號







▲ 月刊現代 2004年10月號 目次



9月 中旬에, 金正日 獨裁政權을 누구보다도 깊이 잘 알고 있는 亡命者가, 衆議院 外務委員會의 參考人招請에 응하여 日本을 방문할 예정이다. 金正日 總書記의 지난날 가정교사였고, 오랫동안 國際擔當書記를 맡은 後, 1997年의 韓國 亡命으로 全世界에 충격을 자아낸 黃長燁이다. 黃 前 書記는, 『적어도 1週日間은 日本에 滯在하려한다』면서 意慾을 보였다고 한다.



黃 前 書記는 日本 訪問에 앞서, 서울에서 テレビ朝日(테레비아사히) 國際問題 코멘테이터 (Commentator) 川村晃司(가와무라 고지)氏의 인터뷰에 답했다. 拉致問題의 全面的 解決과 國交正常化交涉이 足鎖로 되어 있는 가운데, 다음은 黃 前 書記가 日本에 대해 말한 귀중한 메시지(Message)이다.









▲ 黃長燁氏



먼저, 日本 사람들의 誤解를 풀 必要가 있습니다. 北韓이라는 나라는, 10年前에 金日成이 死亡했을 때부터가 아니라, 1974년에, 金正日이 後繼者로 指名받아, 30年에 걸친 金正日의 獨裁國家입니다.



金正日은, 1995年부터 1998年에 걸친 最惡의 食糧危機의 시대를 맞을 때까지는, 오로지 軍事力을 增强시키면서, 獨裁를 强化하는 것을 第一義로 생각해 왔습니다. 『소련이나 東歐가 崩壞된 것은, 獨裁體制가 弱化되었기 때문이다. 그 前轍을 밟지 않기 위하여, 개인숭배를 强化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金正日은 일이 있을 때마다 나에게 주장해 왔습니다.



그런데, 1995年 以後, 饑餓에 허덕이던 국민들이 生命을 걸고 國外로 탈출하려고 하니, 그대로 脫北者가 增加되면 體制에 影響이 미치는 것은 必至이기 때문에, 最小限의 經濟改革은 必要하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中國의 意向과도 合致되므로, 中國도 全面的으로 支援을 했습니다.



金正日이 생각한 「最小限의 經濟改革」이란, 먼저 제1단계로서, 農業을 國家經營에서 個人經營으로 轉換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따라 農業生産力은 縣隔하게 伸張되기 때문에, 食糧危機問題는 基本的으로 解決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제2단계는, 從業員 10명 以下의 小賣業者·手工業者들에게 활동의 자유를 認定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商人들은 金正日의 絶對主義體制를 흔들 危險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金正日이 許可한 것은 거기까지였습니다. 北韓이 改革·開放을 推進하여, 「제2의 中國」이 되는 일은 있을 수 없었습니다.



中國에서 鄧小平(덩샤오핑)이 남긴 最大의 功績은, 개인에 의한 獨裁體制를 廢止한 것입니다. 鄧小平은 뿐만 아니라, 市場經濟를 導入했습니다.



그런데, 北韓이 施行하려고 한 것은, 中國과는 「언뜻 보아 비슷하나 다른 것」입니다. 金正日은 자기의 獨裁體制가 崩壞되는 것을 念慮한 나머지, 大膽한 改革에는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그 점은, 父親인 金日成 쪽이 柔軟한 생각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農業이나 商業을 一部 改革하는 것만으로도, 北韓 國民의 생활은, 지금과 비교하여 飛躍的으로 向上되었습니다.



▶ 金正日을 팽개치지 않고 있는 中國



나는 國際擔當書記로서 中國 事情에 통하고 있었기에, 잘 알고 있었습니다만, 지난 25年間이라는 것은, 金正日이 中國을 한층 緊張된 同盟關係로 만들었으며, 中國은 中國式의 改革·開放政策으로 뛰어들기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만일 金正日이 中國의 意向을 따랐더라면, 現在와 같은 獨裁體制에서 集團指導體制로 移行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中國은 金正日에 대하여, 지금보다도 충분한 配慮를 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北韓에 있을 때, 金正日에 대하여, 中國式의 改革·開放政策을 取하여야한다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進言해 왔습니다. 그러나 金正日은, 『우리나라가 中國의 影響을 받으면 困難하다』고 말하면서, 듣지 않았습니다.



나는 金正日로부터, 몇 번이고 中國을 險口하는 하는 것을 들었던 것입니다. 그럴 때에 나는, 『中國을 險口하면 틀림없이 어딘가로부터 中國의 귀에 들어가게 됩니다』라고 諫해서 말했습니다.



그런데, 金正日로부터 갖은 辱說을 뒤집어쓰더라도, 中國은 一貫되게 北韓과의 同盟關係를 維持하면서, 金正日과의 關係를 끊으려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中國은 北韓의 同盟國이더라도, 보통 때는, 北韓에 미치는 影響力은, 北韓의 政治 가운데서 0.01% 程度밖에 안됩니다. 金正日이 中國이 말하는 것을 듣지 않은 것은 中國이 正色을 하고 나서지 않았기 때문임에 다름 아닙니다.



中國이 正色을 하고 나서면, 이야기는 根本的으로 달라집니다. 中國이 팽개치는 바로 그 날로, 金正日 體制는 崩壞됩니다. 그런 意味에서는 中國의 北韓에 대한 影響力은 100%, 즉 金正日의 生殺與奪은 中國에 달렸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中國은 金正日을 팽개치지 않는 것인가. 그것은, 金正日과의 關係를 維持해 나가는 것이, 中國의 國益에 付合된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中國이라는 나라는, 自國의 國益에 付合되는 일에 관해서는, 半 발짝마저도 讓步가 없는 非情한 국가입니다.



예를 들면, 中國은 韓國戰爭 以來, 北韓과의 同盟關係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1992年에 韓國과 國交正常化의 길을 選擇했습니다. 그 때에 그처럼 自尊心이 强한 金日成이 中國에 머리를 숙이고, 어떻게 1年間만 正常化의 時期를 延期해 주었으면 한다고 懇請했습니다. 그러나, 鄧小平을 비롯하여, 當時의 中國의 指導者들은,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지금 全世界가 憂慮하고 있는 北韓의 核開發問題에 관해서도, 2003年 以來 6개國協議를 열어 줄기차게 協議했습니다만, 곧바로 收拾될 수 있는 方法이 있습니다.



中國이 한마디, 『核開發을 당장 抛棄하라. 그렇지 않으면, 同盟關係를 破棄하겠다』고 말하면 되는 것입니다. 中國이 同盟破棄를 들이대면, 金正日은 아무런 抵抗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中國은, 결코 北韓에 恐喝은 치지 않습니다. 軍事的인 壓力을 넣는 일도 없는가하면, 經濟援助를 줄이는 일도 없습니다. 이것이 意味하는 바는, 『金正日은 核武器를 그대로 繼續 갖고 있다고 해도, 그래도 關係없다』는 것입니다.



中國은, 지금의 北韓의 狀態를 默認하는 대신에, 그 以上, 金正日이 挑發的이 되는 것은 容納하지 않습니다.



현재 中國의 最大目標는, 繼續的으로 高度經濟成長을 持續하여, 經濟面에서 資本主義諸國을 凌駕(능가)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國內 및 周邊國의 平和와 安定, 거기에 日·美의 協力이 不可缺합니다.



中國은, 이러한 事案을 勘案하여, 最善의 方法으로서, 6개國協議를 主催하고 있는 것입니다. 中國으로서는 6개國協議는, 北韓을 위해서도 美國을 위해서도 아니고, 어디까지나 自國의 國益을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注意하지 않으면 안될 것은, 6개國協議는 어디까지나 外交的 모임이라고 하는 점입니다. 거기서 北韓의 代表가 무언가 發言을 했다고 해서, 그것이 꼭 金正日의 意思를 代辯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 北韓은 核武器를 保有하고 있다



6개國協議를 보고 있으면, 北韓의 外交戰略의 基本이, 金日成의 時代로부터 전혀 변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韓半島를 둘러싼 美·中·日·러 라는 4大國을 對立시켜, 漁父之利를 얻으려는 것입니다.



核問題에 관해서 말한다면, 6개國協議를 열기 前부터, 北韓은 이미 核武器를 保有하고 있었습니다. 核武器뿐인가, 化學武器도 保有하고 있습니다. 金正日은, 그러한 壓倒的인 軍事力으로 美國을 牽制하고, 日本을 牽制하고, 韓國을 牽制함에 의하여 얻을 수 있는 利益은, 아직도 크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韓國 國內에 있어서, 最近 나날이 增加되어 온 反美感情이 높아져 있습니다. 反美=親北韓=親中國이라는 圖式입니다. 反美感情을 품고 있는 韓國人으로서는, 同胞인 北韓은 友邦이며, 美國 쪽이 오히려 敵으로 되는 것입니다.



이 圖式은 日本으로서도, 결코 다른 사람의 일이 아닙니다. 韓國에 비하여 日本의 經濟力이 顯著하게 크기 때문에, 中國의 影響을 받는 程度가 相對的으로 적고, 日本人이 아직 신경을 쓰지 않기 때문입니다.



今後, 中國의 政治力 및 經濟力이 增强되는 그 날에는, 日本도 「第2의 韓國」이 될 것입니다. 즉, 國民의 反美感情이 强해지고, 同時에 親中感情이 强하여져, 日本 政府는 同盟國인 美國의 눈을 신경 쓰더라도, 中國과 連携를 强化해 갈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中國으로서는, 日本은 同盟國이 아니며, 어디까지나 美國에 다음 가는 「제2의 라이벌(Rival)」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美國을 牽制하고 日本을 牽制하기 위해서도, 金正日體制의 存續은, 「必要惡」인 것입니다.



▶ 金正日과의 直接交涉은 無意味



日本은 現在, 北韓과 國交正常化交涉을 再開하기 위하여, 實務者協議를 열기도 하는 등 하고 있지만, 確實히 말해서 金正日 政權과 直接交涉해도 意味가 없다고 나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보다는, 中國을 어떻게 하든지 北韓과 正色을 하고 對峙하게 만드는 戰略을 생각해야 합니다. 北韓問題解決은, 하나도 둘도 中國의 나오는 態度에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日本은 中國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中國에 대하여「사탕과 회초리」로서 壓力을 가해야 합니다.



사탕이란, 北韓의 포스트(Post)金正日 體制에 관해서, 中國의 意向을 尊重하겠다는 保證이라는 것 말고는 없습니다.



앞에서 言及한 바와 같이, 中國은 一貫되게 北韓이 中國式의 改革·開放政策을 取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金正日 다음의 北韓에 관해서, 中國이 더욱 同盟關係를 緊密하게 하여, 改革·開放政策을 支援해 나가겠다는 것을, 日·美가 容認해 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北韓의 次期政權이, 이라크(Iraq)와 같은 親美政權이 아니더라도, 中國式의 改革·開放을 全面展開한다면 關係없다고, 中國에 讓步하는 것임에 다름 아닙니다. 中國이 金正日 體制의 崩壞에 관해서 가장 憂慮하고 있는 것은, 美國의 傀儡政權이 樹立되어, 韓半島全體가 美國의 影響下에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第2次世界大戰終了後, 소련의 支配下에서 現在의 北韓이 建國되었습니다. 當時, 美國을 爲始한 戰勝國들은, 北韓에 관해, 소련에 讓步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金正日 體制 崩壞後의 北韓建國을 中國의 支配下에서 推進해 나간다고 하는 것을 먼저 日·美가 承諾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讓步를 하면, 韓半島는 事實上, 統一된 것이나 다름없는 것입니다. 南北이 分裂된 채로 있을 必要性이, 서로 없어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北韓은 中國의 傀儡國家가 되게 되면, 그것은 바로, 「소련의 衛星國」이 半世紀前에 된 前轍이 아닌가 라는 憂慮는 할 必要가 없습니다. 當時의 소련과 現在의 中國은, 根本的으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當時의 소련은, 階級鬪爭史觀에 依據하여 資本主義諸國의 打倒, 특히 그 首魁인 美國 打倒의 旗幟를 들고 있었습니다. 그 目的遂行을 위하여, 온 세상을 勞動者階級의 獨裁國家를 세운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하여 中國은, 資本主義諸國에 대하여, 軍事的이 아니라 經濟的으로 勝利하는 것을 國家目標로 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積極的으로 資本主義를 導入했는데, 즉 中國은, 100年後의 覇權보다도 10年後의 經濟的 繁榮에 主眼을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中國을 共産黨의 獨裁國家 라고 말하며 괜히 싫어하는 사람이 있으나, 共産主義=獨裁는 결코 아닙니다. 中國 共産黨의 內部에도, 여러 가지의 意見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어, 지금의 中國은, 오히려 集團指導體制 라고 말하는 편이 옳습니다.



때문에, 日·美가 協力하여 中國에 대한 說得을 試圖하는 것입니다. 지금 이대로의 金正日 獨裁政權과의 同盟關係와, 中國의 影響下에 있으면서 改革·開放을 推進하는 新政權과의 同盟關係와는, 어느 쪽이 中國의 國益에 合致되는가를. 中國이 만일 後者를 選擇한다면, 日·美도 全面的으로 支援하겠다고. 그렇게 하여 中國이 後者를 選擇한다면, 美國이 憂慮하는 核問題도, 日本이 憂慮하고 있는 拉致問題도, 한꺼번에 解決되지 않을까요.



▶ 日本도 核開發을 宣言하라



이것은 東아시아 政勢를 左右할 수 있는 重大한 外交交涉이기 때문에, 사탕만이 아니라 회초리도 同時竝行的으로 使用해야 합니다. 日本은 中國이라는 外交大國을 속일 수는 없습니다. 5000年間 外交로 살아 온 나라에 잔재주는 通用되지 않습니다.



거기서, 中國에 대하여 가장 有效한 회초리를 내미는 것입니다. 그것은, 日本 사람들은 약간 놀랄지도 모르겠지만, 日本과 臺灣의 核武裝입니다. 中國이 이대로 金正日을 제멋대로 하도록 내버려두고, 北韓을 放任해 둔다면, 日本과 臺灣의 核武裝을 推進하겠다고, 美國에 宣言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로써 中國은, 正色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입니다.



나는 2003年 가을에 美國을 訪問하였을 때, 이러한 持論을 폈습니다. 그러나, 美國人 多數는 北韓을 宥和的으로 보면서, 부시(George W. Bush) 大統領의 許可를 얻게 된다면 자신이 平壤으로 가서 金正日을 說得하겠다는 등으로 말을 꺼내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놀랍게도 많은 日本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지금의 北韓에 대하여, 性善說에 서 있는 것이 아닐까요.



日本 사람들은 拉致問題의 解決만이라는 좁은 생각을 하는 傾向이 있습니다만, 정말 拉致問題의 全面的 解決을 원하고 있다면, 金正日 體制를 바꾸는 方法 밖에 없는 것입니다.



나는 一介 亡命學者에 지나지 않아, 日本 같은 大國의 總理를 險談할 資格은 없습니다. 그러나, 한마디만 말한다면, 지금의 日本을 보고 있으면, 小泉(고이즈미)[小泉純一郞(고이즈미 준이치로)] 政權은 選擧에서의 표를 모으기 위하여 手段과 方法을 가리지 않고, 拉致問題도 選擧對策을 위하여 이용하고 있습니다. 5月22日에 小泉 首相이 北韓을 訪問한 것도, 選擧를 앞두고, 國內에서의 政治的 基盤을 鞏固(공고)히 하는 것이 目的이었겠지요,



그러나,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지금 北韓과 國交正常化를 하여, 金正日 獨裁政權에 多額의 戰爭賠償金을 支拂하는 것이, 어떻게 日本의 國益이 되겠습니까. 또, 獨裁體制의 가장 큰 犧牲者인 北韓 國民에게, 그야말로 民主主義國家를 標榜하고 있는 日本의 이름을 떨어뜨리는 것입니다.



그것만이 아니고, 中國에 대하여 正正堂堂하게, 北韓의 核開發이 中止되지 않기 때문에, 日本도 할 수 없이 核武裝을 始作하겠다고 宣言하면 됩니다.



▶ 國交正常化를 서둘 必要는 없다



小泉 政權이 核開發着手를 宣言한다면, 日本國 憲法과의 整合性의 問題라든가, 過去의 戰爭責任이라든가, 日本 國內에서는 意見이 百出하게 되겠지요. 그러나, 日本이 拉致問題를 眞摯하게 解決하기를 바란다면, 이것이 가장 급한 길입니다. 왜냐하면, 日本이 正色을 하고 있다는 것을 中國이 理解를 하게 되면, 中國 또한, 北韓에 대하여 正色을 하고, 金正日을 除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現在는, 이와 反對되는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日本과 金正日 政權이 國交正常化交涉을 하고, 中國이 兩國의 國交正常化를 支持하고 있습니다. 國交正常化가 이루어지면, 日本으로부터 莫大한 戰爭賠償金이 건너가, 金正日 獨裁政權은 延命하게 됩니다. 그것은 바꾸어 말하자면, 北韓이 現在와 같이 美國이나 日本을 牽制하게 되는 것으로 連結되어, 自國의 國益에 合致된다고, 中國은 判斷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日本은 中國의 잘못된 思考를 矯正해 주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中國의 眞正한 國益은, 北韓에 改革·開放을 가져올 新政權의 樹立에만 있다고 說得할 必要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위한 手段으로서, 美國과 二人三脚으로 核武裝의 準備를 推進하는 것입니다.



거듭 말합니다만, 北韓에 지금 必要한 것은, 一刻이라도 빨리 金正日을 除去하고, 中國型의 改革·開放을 推進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核問題를 爲始한 懸案의 諸問題가 모두 解決되고, 韓半島에 겨우 平和가 찾아옵니다.



그런 意味에서 日本은 지금, 北韓과의 國交正常化를 서둘 必要는 전혀 없습니다. 北韓과의 國交는, 改革·開放을 實施할 次期政府와 맺어야 합니다.





[자료출처 : 해성연구소]



http://www.hses.com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