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느림문화학교'가 문을 연다.
23일날 개교식을 열고, 1일부터 강의를
시작하는 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수강료
없이 순수 기부만으로 운영될 예정이란다.
재원 없이 출발하는 학교여서 얼마나
오랫동안 지속될 지 걱정스럽지만,
요즘 '느림'의 철학에 몰두하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도 적지 않은 터라 미래가
그리 불투명하게 보이진 않는다.
피에르 쌍소의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라는
책이 세간의 인기몰이를 시작한 이후, 서점
에 가면 느림에 관한 책들이 한 코너를 이룰
만큼 그 출판 열기는 식을 기미가 없다.
소로우의 '월든'같은 고전적인 책부터
헬렌 니어링의 간소주의에 관한 저작에
이르기까지 속도와 욕망에 찌든 현대인들
에게 간소와 소박, 느림과 사색의 세계를
소개하는 출판물들이, 지난 몇 년간
스피디(?)하게 우리 앞에 쏟아져 나왔다.
이 '느림'에 대한 관심은 우리보다 상대적
결핍감의 정도가 약한 서구로부터 시작되었다.
본디 지극히 동양적인 체취를 간직한 단어임에도
불구하고, 서구 지성인들의 현대적 삶에 대한
반성적 접근이 동양으로 흘러와 하나의 지적,
문화적 트렌드가 되었다는 것이 참 역설적이다.
요즘 신간으로 발매된 '슬로 푸드 운동'에 관한
책 역시 그런 조류의 한 갈래일 것이다.
'느림'과 '속도'를 따지기도 힘들 만큼
매일 밥벌이에 고민하는 대다수 사람들에게
이 느림의 철학은 어쩌면 지적 현란함일
수도 있겠다. 빠르게, 빠르게 일을 하지
않고선, 경쟁에서 이기지 않고선, 존립
조차 힘든 우리들에게 '느림'의 노래는
그저 배부른 자들의 한숨처럼 느껴질 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느림'에 관한 열기가
식지 않는 건, 속도감에 지쳐가는 사람들의
정신적 피로도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음을
반영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잠시 마음과 몸
을 하릴없이 내버려두는 자궁 속 편안함을
끊임없이 그리워하듯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