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신문에 재미있는 기사가 나왔음.
한국의 국가정보원이 김정일 처 고영희 사망설에 대한 정보를 입수.
직접 확인할 방법이 없으므로 한국의 월간조선 조갑제 편집장에게
이 정보를 흘려 한국 및 일본 미디어가 보도하게 함.
이 보도에 북조선 당국과 관제 미디어가 어떻게 나오는지 지켜봄.
미친듯이 반박하고 나오면 사실무근, 반대의 경우는 정보확인.
고영희 사망설이 사실무근일 경우, 언론사들은 오보를 낸 책임을
정보를 처음 알린 조갑제 편집장에게 모두 뒤집어 씌우고 빠짐.
결론 : 고영희는 지금쯤 무덤에 있어야 함.
그렇지 않으면 국가정보원의 정보조작에 한국 및 일본의 미디어가
놀아난 것이 되기 때문임.
● 北의 「宮廷情報(궁정정보)」 읽는 方法(방법)
金總書記夫人死亡說(김총서기부인사망설)은 事實(사실)[?]
東京新聞(도쿄신문) 2004年9月4日 朝刊(조간)
北朝鮮(북조선)의 最高指導者(최고지도자) 金正日(김정일) 總書記(총서기)의 夫人(부인) 高英姬(고영희·51)의 死亡說(사망설)이 韓國 미디어(Media)를 核(핵)으로 흐르고 있다. 北朝鮮側(북조선측)으로부터의 公式報道(공식보도)는 없지만, 高英姬의 死亡은 後繼者問題(후계자문제)와 直結(직결)되는 重大(중대)한 일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金王朝(김왕조)」의 「宮廷情報(궁정정보)」이므로, 그 確認(확인)은 대단히 어려운 일. 지금까지도, 誤情報(오정보)가 獨步(독보)한 例는 적지 않다. 어지럽게 날아다니는 報道에 眩惑(현혹)되지 않기 위해서, 「宮廷情報」의 確實度(확실도)를 檢證(검증)해 보면-.
高英姬의 死亡說은 8月25日[8月24日], 韓國의 月刊誌(월간지) 「月刊朝鮮(월간조선)」의 趙甲濟(조갑제) 編集長(편집장)이 自身(자신)의 홈페이지(Homepage, HP)에서 紹介(소개). 8月30日에 韓國의 通信社(통신사) 連合뉴스(연합뉴스)가 『8月13日 未明(미명)에 死亡』이라고 速報(속보)해, 각 미디어가 뒤따르기 했다. 高英姬가 重病(중병)이라고 하는 說은 2003年10月, 韓國 閣僚(각료)가 國會答辯(국회답변)으로 確認하고 있었다.
高英姬는 大阪(오사카) 出身(출신)의 在日二世(재일2세). 1960年代初에 歸國(귀국)해, 萬景臺藝術團(만경대예술단)의 舞踊家(무용가)로 되었다. 그녀의 死亡說이 注目(주목)받는 것은, 後繼者問題에 關係(관계)되기 때문이다.
金正日에게는 前妻(전처) 成惠琳(성혜림·死亡), 現在(현재)의 正妻(정처)로 여겨지는 金英淑(김영숙) 등 4명의 아내가 存在(존재)하는 것으로 傳해져 왔다. 아이들 가운데, 男子는 成惠琳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長男 金正男과, 高英姬와의 사이의 二男 金正哲(김정철), 三男 金正雲(김정운)의 3명. 北朝鮮 國內에서의 在日家系(재일가계)에 대한 嚴格(엄격)한 評價(평가)와 얽혀, 高英姬에 대한 取扱(취급)이 後繼者問題를 豫想(예상)하는 重要(중요)한 要素(요소)로 보여지고 있다.
高英姬 死亡을 傳한 韓國紙(한국지)의 어느 記者(기자)는 『우리는 北京(베이징) 特派員(특파원)이, 北京 消息通(소식통)의 이야기로서 「高英姬가 心臟痲痺(심장마비) 때문에 死亡」했다고 報道했다. 通信社도 같은 뉴스를 흘리고 있기 때문에, 北京 特派員이 몹시 서둘러 通信社 記事(기사)를 뒤쫓았을 可能性(가능성)도 있다. 아울러 韓國 政府消息通(정부소식통)의 「確認할 수 있지 않다」라는 이야기도 記事에 집어 넣어, 紙面上(지면상)은 死亡이라고는 斷定(단정)하고 있지 않다』라고 말해, 뚜렷함이 조금 不足(부족)하다.
北朝鮮 情報 가운데에서도, 指導者周邊(지도자주변)의 動靜(동정)은 秘密(비밀)의 베일(Veil)에 싸여 있다. 最高指導者의 死亡說에서조차, 過去(과거)에는 誤報(오보)가 있었다.
代表例(대표예)가 1986年11月, 韓國의 國防省(국방성)[國防部(국방부)]이 北朝鮮의 金日成(김일성) 主席(주석)[當時(당시)]이 銃擊(총격)으로 死亡했다 라고 發表(발표)한 것이다. 眞僞(진위)는 알지 못하고, 만 하루 지나 金日成이 平壤空港(평양공항)에 얼굴을 보여, 健在(건재)가 確認되었다. 日本 政府도 獨自的(독자적)으로는 情報를 確認할 수 없어, 倉成正(구라나리 다다시) 外相(외상)[當時]이 『獨自的인 情報收集能力(정보수집능력)을 갖지 않으면 안된다고 痛感(통감)했다』라고 反省(반성)의 辯을 말했다.
▶ 金正日도 빙글빙글 變化(변화)
「誤報例」는 이외에도 있다. 「金正日의 본모습」이 그것이다. 金正日의 肉聲(육성)은 2000年6月의 南北 首腦會談(수뇌회담)까지는, 1992年4月의 朝鮮人民軍創建六十周年閱兵式(조선인민군창건60주년열병식)에서의 『英雄的(영웅적)인 朝鮮人民軍 將兵(장병)들에 榮光(영광)있으라』라고 하는 發言(발언)을 除外(제외)하고는 전혀 紹介되지 않아, 말수가 적은 人物(인물)이라고 推測(추측)되었다.
本紙(본지)의 山本勇二(야마모토 유지) 서울 支局長(지국장)은 『事實(사실)은 1978年에 北朝鮮에 拉致(납치)되어 1986年에 脫出(탈출)한 韓國의 映畵監督(영화감독) 申相玉(신상옥)氏가 秘密로 취한 金正日의 肉聲 테이프(Tape)가 있어, 말이 빠른 것도 事前(사전)에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解說(해설)한다. 하지만, 이 이미지(Image)는 繼續(계속)되어, 南北 首腦會談에 登場(등장)한 金正日이 多辯(다변)이었다는 것 때문에, 一轉(일전) 「위트(Wit)가 豊富(풍부)한 人物」이라고 치켜세우는 韓國 미디어도 나타났다.
金正日 패밀리(Family)에 대해서는 北朝鮮의 公式 미디어도 전혀 報道하지 않는다. 金正日과 直接(직접) 接觸(접촉)한 人物의 證言(증언)이나 記述(기술)도 限定(한정)되어 있다.
具體的(구체적)으로는, 1995年에 亡命(망명)한 前妻 成惠琳의 언니 成惠琅(성혜랑)氏나 1988年부터 13年間, 金正日의 專屬料理人(전속요리인)을 맡아, 「金正日의 料理人」[扶桑社(후소샤)] 이라고 題目(제목)을 붙인 手記(수기)를 쓴 藤本健二(후지모토 겐지)[假名(가명)]氏. 게다가, 1997年에 北朝鮮으로부터 韓國으로 亡命한 黃長燁(황장엽) 前 朝鮮勞動黨書記(조선노동당서기)나 앞에 나온 映畵監督 申相玉氏와 아내이며 女俳優(여배우)인 崔銀姬(최은희)氏의 回想錄(회상록) 등이다.
特(특)히 藤本健二氏의 回想錄은, 高英姬와 아들의 일을 詳述(상술)한 唯一(유일)한 記錄(기록)이며, 成惠琅氏의 手記에는 金正日의 長男인 金正男의 어렸을 때 이야기가 나오지만, 情報는 限定된다.
增加(증가)하고 있는 亡命者에 의한 北朝鮮 情報도, 그 確實度가 되면 不安(불안)이 있다.
『朝鮮勞動黨의 指導部(지도부)인 中央委員會(중앙위원회) 멤버(Member)는 140명-150명 있다고 推定(추정)되지만, 지금까지 亡命者는 黃長燁氏 밖에 없다. 軍部를 봐도, 少將(소장) 以上(이상)의 약 1,200명 중에서 公表(공표)된 亡命者는 제로(Zero). 核開發情報(핵개발정보)도 亡命者消息通(망명자소식통)으로부터 흐르고 있지만, 亡命者로 政策決定過程(정책결정과정)을 알 수 있는 진짜 權力層(권력층)의 人間은 거의 없는 것이 現實(현실)이다』[山本(야마모토) 支局長]
그러한 狀況(상황) 아래, 在日 저널리스트(Journalist) 金賢(김현)氏는, 이번 高英姬 死亡報道의 信憑性(신빙성)에도 疑問(의문)을 던진다.
▶ 病院關係者(병원관계자)의 코멘트(Comment) 없음
『먼저 情報의 出處(출처)가 매우 限定되어 있다. 그녀는 이번 봄, 乳房癌治療(유방암치료) 때문에, 프랑스(France)의 病院(병원)에 入院(입원)하고 있었다고 傳해지지만, 病院關係者의 코멘트도 없다』
金賢氏는 앞에 나온 趙 編集長에게 直接 電話(전화)를 걸어 情報源(정보원)을 물었지만, 趙氏는 『確實한 것은 모르지만, 國家情報院(국가정보원)의 當局者(당국자)가 그렇게 말했다. 나는 들은 것을 HP에 썼을 뿐이다』라고 對答(대답)했다고 한다.
金氏는 『高英姬의 死亡說은 所聞(소문)[Rumor]으로서는 以前부터 있어, 韓國의 報道關係者 사이에는 근질근질 한 것이 심해지고 있었다. 趙氏가 最初(최초)로 썼으므로, 거기에 一齊(일제)히 올라탔다. 뒷받침[確實한 證據(증거)] 없이 特オチ(도쿠오치)[自社(자사)만 싣지 않은 記事. 自社만 報道한 特種記事(특종기사)는 特ダネ(도쿠다네)]를 싫어해서 뒷따르고 있는 것이 實態(실태)다. 結果的(결과적)으로 誤報라도, 責任(책임)은 趙氏에게 떠맡길 수가 있다』라고 말한다.
▶ 眞僞確認(진위확인) 때문에 情報操作(정보조작)도
朝鮮半島問題(조선반도문제)[朝鮮半島=韓半島(한반도)]에 밝은 日本의 消息通도, 이번 死亡說이 確定情報(확정정보)는 아니고 『韓國의 國家情報院이, 잡은 不確定한 情報를 確認하기 위해, 미디어를 使用해 故意(고의)로 情報操作을 했을 可能性이 있다』라고 指摘(지적)한다.
結局(결국), 薄氷(박빙)을 건너는 報道가 繼續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지만, 이 消息通은 『뒷받침에는 北과 關係 깊은 나라로부터 나오는 情報나 北朝鮮의 官製(관제) 미디어의 變化를 읽어내는 것이 必要(필요). 9월9일, 北朝鮮은 建國五十六周年(건국56주년)을 맞이하므로 記念行事(기념행사)의 規模(규모)로부터, 死亡說의 眞僞를 推測(추측)할 수가 있다』라고 指摘한다.
일찌기 北朝鮮 情報를 取扱하고 있었던 日本의 搜査當局(수사당국) 前 幹部(간부)도 『韓國의 情報機關(정보기관)의 情報에서조차, 友好國(우호국)이라고 해도, 이쪽이 情報操作당하는 危險(위험)은 버릴 수가 없어, 完全(완전)하게는 信用(신용)하지 않았다』라고 되돌아 본다.
『그렇다고 해서 [北朝鮮의] 體制中樞(체제중추)에 直接的인 情報源이 있는 것도 아니다. 北朝鮮과 友好的인 社會主義國(사회주의국) 등 第三國經由(제3국경유)의 情報를 모으거나 하면서, 各種(각종)의 情報를 調整(조정)시키고 있었다』
가장 가깝고도, 가장 먼 나라인 北朝鮮. 그 權力을 잡고 있는 「王朝」의 움직임을 探索(탐색)할 方法은 없는가. 다른 消息通은 이렇게 結論(결론)짓는다.
『情報收集을 겹쳐 쌓아, 情報의 根據(근거)나 意圖(의도)를 愼重(신중)하게 꿰뚫어 보는 꾸준한 作業(작업)에 盡力(진력)한다. 特異(특이)한 이야기에는 安易(안이)하게 달려들지 않는다. 亡命者의 이야기도 本人의 體驗(체험)보다 傳聞(전문)이 많은 것은 피해야 한다』
http://www.tokyo-np.co.jp/00/tokuho/20040904/mng_____tokuho__000.shtml
● "고영희 죽었다고 판단"
月刊朝鮮 趙甲濟 編集長 2004년8월24일
한국과 미국의 일본의 對北정보부서는 북한 독재자 金正日의 現妻 고영희가 신병으로 사망한 것이 확실하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이들 부서에서는 고영희가 사망한 것이 金正日의 신변과 권력구조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한다. 고영희의 사망은 김정일에게 적지 않은 심리적 타격을 줄 것이란 이야기도 있다. 김정일은 심장이 나쁜데도 술을 많이 마시는데 그나마 고영희의 견제로 해서 술을 자제해왔다고 한다.
북한정권은 작년 초부터 군 부대를 중심으로 이름을 밝히지 않고서 고영희 우상화 작업을 벌여왔다. 이는 고영희의 두 아들(김정철, 김정운) 중 하나를 후계자로 올리기 위한 준비가 아닌가 보여졌다. 고영희의 죽음은 이런 후계자 옹립에도 영향을 끼칠 것이다. 김정일과 성혜림(사망) 사이에 난 金正男이 후계자 수업을 받고 있다는 미확인 정보도 있는 터라 고영희의 사망은 김정철, 김정운의 위상에 타격을 줄 수 있다.
북한정권의 사실상 제2인자였던 張成澤 노동당 제1부부장이 몇달째 가택연금 및 교화과정에 있는 것도 고영희의 사망설과 맞물려 주목할 점이다. 장성택은 김정일의 여동생 김경희의 남편인데 부부 사이가 좋지 않다고 한다. 장성택의 큰형 장성우는 북한노동당 민방위 부장이고 둘째 형 장성길은 820 전차군단 정치위원이다. 김정일이 장성택을 권력남용 부패 혐의 등으로 숙청한 것은 후계자 옹립에 걸림돌이 될 만한 요소를 정리한 것으로 추정된다.
고영희의 여동생 고영숙 부부는 1998년 스위스로부터 미국으로 망명하여 CIA의 보호하에 살고 있다. 고영희는 10년 전에 프랑스에서 암수술을 받은 적이 있다. 김정일의 요리사 후지모도 겐지에 따르면 이때 김정일은 우울증에 빠져 이상한 파티를 열어 외로움을 해소하더라고 한다. 후지모도 겐지는 "김정일은 고영희를 무척 사랑했는데, 내 생각엔 그의 마지막 여자가 고영희일 것이다"라고 했다. 이런 고영희의 존재감이 사라질 때 인간 김정일의 내면에 어떤 변화가 올 것인가, 이것이 對南, 對外정책에 어떤 변화로 이어질 것인가를 對北정보기관들은 분석하고 있다.
보통 북한사람들은 김정일의 집안 사정에 대해서 전혀 모른다. 김정일이 고영희와 같이 살고 있다는 것도 아들이 김정철 김정운이란 것도 모른다. 그야말로 국가비밀인 셈이다. 따라서 고영희가 죽었더라도 공식적인 발표나 장례식은 있을 수 없다.
● < 北 고영희씨 김정일 가족묘 만경대에 안장된 듯 >
연합뉴스 2004년9월2일 11:08 송고
(서울=연합뉴스) 최선영 기자 = 석달전 프랑스 파리에서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부인 고영희씨는 북한 어디에 안장됐을까.
고씨의 시신은 고려항공 특별기편으로 평양으로 운구돼 김 위원장을 비롯한 가족과 핵심 측근들만이 참석한 가운데 극비리에 치러진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의 한 소식통은 2일 "고씨가 김 위원장 일가의 가족묘가 조성돼 있는 평양 만경대에 안치됐다"고 주장했다.
사실여부는 확인되지 않고 있지만 고씨가 사실상 북한의 퍼스트 레이디 역할을 해온 만큼 만경대에 안치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일부 對北 전문가들도 추측하고 있다.
만경대는 김 위원장의 부친인 김일성 주석의 고향으로 이곳에는 김 위원장의 증조부모인 김보현과 리보익, 조부모인 김형직과 강반석 등 친인척의 묘가 자리하고 있다.
김 위원장의 일가 중에서 김일성 주석의 삼촌인 김형권, 김 주석의 동생인 김철주, 김 주석의 사촌동생인 김원주 등 항일투쟁에 참가했던 일부 가족의 묘도 당초 만경대에 있었으나 대성산혁명열사릉(평양 대성구역)이 건립되면서 옮겨졌다.
대성산혁명열사릉에는 김 위원장의 생모인 김정숙을 비롯해 김 주석의 항일투쟁 동료들과 유명 독립인사들이 안장돼 있어 항일투쟁 경력이 없는 고씨가 안장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평양 형제산구역의 신미리애국열사릉은 두번째로 유명한 국립묘지로 주로 광복 이후 북한 정권 수립에 기여한 인사들이 안치돼 있지만 김 위원장의 부인인 고씨를 안장하기에는 격이 낮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아직까지는 북한이 김 위원장의 가족 사항을 철저히 비밀에 부치고 있는만큼 북한 주민과 외부인사들에게 개방돼 있는 이들 열사릉에 안치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對北 전문가들은 또 고씨가 만경대에 안장된 것이 사실일 경우 향후 후계구도와 연계지어 주목하고 있다.
한 전문가는 "고씨가 김 위원장의 일가족 묘소가 있는 만경대에 안장됐다면 김 위원장의 여러 여자들 중에서 명실공히 김 위원장의 공식 부인으로 인정받은 것인 동시에 고씨의 소생인 정철(23)과 정운(20)이 적자임이 공식화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전문가는 "김 위원장의 후계자가 누가 될지는 지켜봐야 하겠지만 만약 세습으로 갈 경우 적자임이 공식화된 고씨의 아들 중 하나가 후계자로 선정될 것"이라고 추측했다.
한 때 김 위원장과 동거했던 성혜림씨는 2002년 5월 모스크바 현지에서 사망한 뒤 모스크바의 한 묘지에 묻힌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성씨의 소생인 정남(33)이 비록 김 위원장의 장남이지만 적자가 아닌만큼 후계자가 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이 전문가는 말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