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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성공한 봉쇄정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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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15일 KBS에 출연한 김대중(金大中) 前 대통령은 대북(對北) 봉쇄정책(封鎖政策)을 반대한다면서 역사적으로 봉쇄정책이 성공한 예는 없다고 하더니 쿠바(Cuba)를 예로 들었다. 미국이 쿠바를 봉쇄했는데도 끄떡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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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은 봉쇄정책에 대해 오해(誤解)하고 있거나 무지(無知)하다. 우선 지금 누가 대북(對北) 봉쇄정책을 쓰고 있나. 바로 김정일(金正日)이 북한 주민과 체제에 대해 스스로 봉쇄정책을 쓰고 있다. 그는 문을 안으로 잠가놓고 있다. 한국과 미국은 북한 체제(體制)의 문을 바깥에서 잠가놓지 않고 있는데, 오히려 안을 보고 제발 문을 열라고 간청하고 있는데, 왜 김대중은 북한에 대해선 침묵하고 미국이나 한국 보고 대북(對北) 봉쇄정책을 쓰지 말라고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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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쇄정책 중 가장 큰 것은 인간의 국경을 넘는 이동을 막는 것이다. 지금 북한 정권은 주민들이 굶어죽지 않으려고 만주(滿洲)로 넘어가려는 것조차 막는 봉쇄정책을 펴고 있다. 북한 정권은 아웅산(Aung San) 테러, 대한항공기 폭파 같은 국제 테러를 일으켰다가 미국 정부로부터 테러 지원국(支援國)으로 지정되어 미국과의 교류에 지장(支障)을 받고 있다. 이것도 북한 정권이 자초(自招)한 제약(制約)이지 미국이 먼저 봉쇄정책을 쓴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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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蘇聯)의 스탈린(Joseph Stalin)이 동구(東歐)를 공산화(共産化)하고 6.25 남침(南侵) 전쟁을 일으켰을 때 미국이 유엔군의 일원으로 한국에 와서 국제공산주의(國際共産主義)의 확산을 저지(沮止)한 뒤 한미동맹을 굳히고 북한 정권의 재남침(再南侵)을 저지한 것이 성공한 봉쇄정책의 예이다. 미국이 2차 세계대전 이후 서구(西歐)를 공산주의의 팽창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하여 마셜플랜(Marshall Plan)으로 경제재건(經濟再建)을 지원하고 나토(NATO, North Atlantic Treaty Organization, 북대서양조약기구, 北大西洋條約機構)를 만들어 집단안보체제(集團安保體制)로써 소련의 팽창을 저지한 것도 성공한 봉쇄정책의 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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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소련이 쿠바에 핵(核)미사일을 반입(搬入)하였을 때 미국의 케네디(John F. Kennedy) 행정부는 해상봉쇄(海上封鎖)를 선언했다. 소련의 흐루시초프(Nikita Sergeyevich Khrushchev)은 이에 굴복(屈服)하여 핵미사일을 철수(撤收)시켰다. 이 또한 성공한 대소(對蘇) 봉쇄 전략이었다. 김대중이 잘 모르고 있는 것이 있다. 미국이 쿠바를 붕괴시키지 못해서 그렇게 놓아둔 것이 아니란 사실을 모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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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미사일 사건을 해결할 때 미국과 소련은 밀약(密約)을 맺었다. 소련이 쿠바로부터 핵 미사일을 철거(撤去)한 대가(代價)로 미국은 터키(Turkey)로부터 미사일을 철수시키고 쿠바 정권에 대한 전복공작(顚覆工作)을 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미국은 이 체제 보장의 약속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미국이 대(對)쿠바 봉쇄를 한 것이 아니라 쿠바의 카스트로(Fidel Castro)가 자신의 국민들을 상대로 봉쇄정책을 쓴 것이다. 쿠바 난민(難民)들이 작은 배를 타고 해상탈출을 감행하고 있는 것이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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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레이건(Ronald W. Reagan) 대통령은 스타워즈(Star Wars), 즉 대륙간 탄도 미사일 방어망 건설(SDI, Strategic Defense Initiative)을 선언하여 대소(對蘇) 군사력 개발 압력을 넣었다. 전형적(典型的)인 봉쇄정책이었다. 이 압력에 견디지 못한 소련이 내부 개혁(改革)을 하다가 망한 것이다. 악(惡)의 제국인 소련 공산주의 체제를 붕괴시킨 것은 데탕트(detente)가 아니라 레이건의 봉쇄정책이었다. 이런 봉쇄정책을 자초(自招)한 것은 소련의 아프가니스탄(Afghanistan) 침공(侵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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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주의에 대한 승리는 압도적인 물리력(物理力)과 이념(理念), 즉 가치관(價値觀)을 가지고 공산 체제 안으로 이를 들이미는 공격적 봉쇄정책을 쓸 때 이뤄지는 것이지 김대중식(式) 국익(國益)과 국부(國富)의 대북(對北) 퍼주기나 뇌물 바치기로써는 이뤄지지 않는다. 김대중이 과연 대북(對北) 봉쇄정책을 비판할 자격이 있는가. 햇볕정책이란 이름의 이적(利敵)정책을 편 者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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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성공한 봉쇄정책, 실패한 봉쇄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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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이 KBS와의 인터뷰에서 『역사상 봉쇄정책이 성공한 예가 한번도 없다』고 말했다는 보도를 접했을 때,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역사에 대한 무지(無知)나 의도적(意圖的) 왜곡(歪曲)이 아니고서는 그런 얘기가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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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냉전(冷戰)에서 자유민주주의 진영(陣營)이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한 마디로 다양한 「봉쇄정책」의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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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 무장(武裝)집단이나 외부의 압력에 의한 종속(從屬)에 반대하여 싸우는 자유 인민들을 지원하는 것은 미국의 의무』라고 선언한 트루먼 독트린(Truman Doctrine)은 공산반란(共産反亂)으로 적화(赤化) 직전에 있던 그리스(Greece)를 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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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진 미국 등 16개국의 6.25 참전(參戰)은 한반도(韓半島)의 적화를 막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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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쿠바 봉쇄(封鎖)는 쿠바섬에 배치된 소련(蘇聯) 미사일을 철수시켰을 뿐만 아니라, 이후 쿠바나 소련으로 하여금 두 번 다시 미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유사(類似)한 불장난을 되풀이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지금 카스트로(Fidel Castro)는 정권 유지(維持)에만 급급해 하고 있을 뿐, 과거처럼 중남미(中南美)에 대한 혁명수출은 꿈도 꾸지 못하고 있다. 김대중은 쿠바에 대한 봉쇄정책이 실패했다고 말하지만, 쿠바가 미국이나 중남미 국가들에 대해 더 이상 안보 위해(危害) 요소가 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대(對)쿠바 봉쇄는 성공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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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도 냉전의 종식(終熄)을 가져온 것은 닉슨(Richard M. Nixon)의 「데탕트(dente)」가 아니라, 로널드 레이건(Ronald W. Reagan)의 「신냉전(新冷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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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건은 카리브해(Caribbean Sea)의 작은 섬나라 그레나다(Grenada)에 친소(親蘇) 세력이 쿠데타(coup detat)로 집권(執權)하자 미군을 투입해 이를 전복(顚覆)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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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워즈(Star Wars) 계획을 비롯한 군비증강계획(軍備增强計劃)을 강력히 추진, 군비경쟁 끝에 소련의 손을 들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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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을 「악(惡)의 제국(帝國)」으로 지칭한 것도 일종의 「봉쇄」였다. 레이건은 훗날 「악의 제국」 연설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 『나는 소련에게 우리가 그들의 정체(正體)를 정확히 알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다』고 술회(述懷)했다. 레이건의 의도(意圖)는 적중(的中)했다. 후일 냉전이 끝나고 나서 한 러시아 장성(將星)이 『소련이 망한 것은 그 망할 「악의 제국」 연설 때문이다. 소련은 정말 「악의 제국」이었단 말이다』라고 말한데서 볼 수 있듯, 레이건의 「악의 제국」 연설은 소련인들로 하여금 「소련 공산체제가 과연 지킬만한 가치가 있는 체제인가」에 대해 회의(懷疑)를 품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악의 제국」 연설은 일종의 「심리적(心理的) 봉쇄」였고, 멋진 성공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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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문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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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金日成)이 1976년 8월18일 「판문점 도끼 만행(蠻行) 사건」에 대해 유감(遺憾)을 표시한 것은, 동-서 해상에 美 해군 항공모함(航空母艦)을 전개(展開)시키고, 한국군 공수특전단(空輸特戰團)이 사건의 단초(端初)가 된 미루나무를 베어버리면서 무력시위(武力示威)를 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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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 대한 경제제재(經濟制裁)와 봉쇄는 (그들 자신이 자초한 것이기는 하지만) 경제를 비롯한 북한의 총체적(總體的) 국력을 파탄지경(破綻地境)으로 몰아넣었다. 만성적(慢性的)인 유류(油類) 부족으로 북한 공군이나 기갑부대(機甲部隊)는 훈련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군이 수적으로는 한국군을 압도하면서도 전면전(全面戰)이라는 불장난을 저지르지 못하는 것은 식량에서부터 석유에 이르기까지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김정일(金正日)이 무리하게 핵개발을 추진, 자살(自殺)의 길로 들어서게 된 것도 이러한 한계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런 점에서 대북(對北) 봉쇄는 성공한 것이지, 실패한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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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쇄정책의 효용(效用)은 냉전이 종식된 후에도 입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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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로세비치(Slobodan Milosevic)로 하여금 보스니아(Bosnia)에서의 인종청소(人種淸掃)를 중단하게 만든 것은 EU(European Union, 유럽연합)의 설득외교가 아니라, 미국이 주도한 대(對)유고(Yugoslavia) 봉쇄와 정밀폭격(精密爆擊)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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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년에 걸친 대(對)이라크 경제봉쇄는 이라크의 군사력과 군민軍民)의 항전의지(抗戰意志)를 약화시켜, 미-영 연합군이 이라크 전쟁에서 손쉽게 승리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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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실패한 봉쇄정책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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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6월부터 13개월 동안 계속된 소련의 베를린(Berlin) 봉쇄는 실패로 끝났다. 소련은 베를린으로 향하는 모든 육로(陸路)를 봉쇄하면 미국-영국-프랑스 3국은 서(西)베를린을 포기할 것으로 생각했지만, 루시어스 클레이(Lucius D. Clay) 장군(將軍)은 「공중다리」로 불리는 대대적(大大的)인 공수작전(空輸作戰)을 통해 서(西)베를린에 필요한 물자를 공급했다. 비행기가 30만회에 걸쳐 출격(出擊), 200여만 톤의 물자를 공수했다. 소련이 전투기를 출격시켜 수송기들을 위협하자 미군도 격추(擊墜) 위협으로 맞섰다. 결국 소련의 베를린 봉쇄는 실패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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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처럼 미국-영국-프랑스-소련 4대국이 분할점령(分割占領)하고 있던 오스트리아(Austria)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마크 클라크(Mark W. Clark) 장군[휴전협정(休戰協定) 당시 유엔군 사령관]이 오스트리아에 주재(駐在)하고 있을 때, 소련군은 수시로 서방측 점령지역간의 자유로운 통행을 위협했다. 소련군 장병들이 미군 열차에 올라와 행패를 부리는 일이 자주 잇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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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겨울, 소련군 장병들이 미군 열차에 올라와 권총을 휘두르며 행패를 부리자, 참다못한 미군 헌병(憲兵)이 소련군 장교(將校)를 사살(射殺)해 버렸다. 소련군 당국은 문제의 미군 헌병을 자신들이 처형(處刑)하겠다며 한달 반 동안 신병인도(身柄引渡)를 요구했지만, 클라크 장군은 완강(頑强)하게 버텼다. 결국 소련은 미군 신병인도요구를 포기했다. 뿐만 아니라, 소련군이 미군 열차에 올라와 행패를 부리는 일도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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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이 비엔나(Vienna)와 오스트리아의 미국 점령지역간을 오가는 미국 항공기의 운항(運航)을 위협했을 때[심지어는 클라크 장군이 탑승(搭乘)한 비행기까지도 소련군의 위협을 받은 일이 있었다], 클라크는 열차 사건에서 얻은 교훈을 활용(活用)했다. 그는 미국 비행기들을 무장(武裝)시키고, 소련의 도발(挑發)이 있을 경우 가차(假借) 없이 응사(應射)하라는 명령을 내리고, 이 사실을 소련측에 통보했다. 소련 비행기들은 두 번 다시 미국 비행기에 도발을 가해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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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1974년 북한은 서해 5도서島嶼) 수역(水域)에서 어선단(漁船團)과 미그(MIG) 전투기를 남하(南下)시키는 등 도발을 감행(敢行)해 왔다. 이는 바다는 美 지상군(地上軍)의 개입(介入) 없이 남북한의 실력대결로 결판(決判)을 지을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이때 한국군은 팬텀(Fantom) 전투기들을 발진(發進)시키고, 우리 수역 침범한 북한 어선 한 척을 해군 함정이 들이받아 격침(擊沈)시키는 등 강력히 대응했다. 이후 한국군은 북한의 NLL(Northern Limit Line, 북방한계선, 北方限界線) 침범에 대해서 「사수전략(死守戰略)」을 수립하였으며, 이에 따라 1999년 연평해전(延坪海戰) 때까지 「해역(海域)의 질서」가 유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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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이나 북한의 봉쇄 내지 도발이 실패한 이유는 간단하다. 자유 진영이 공산주의자(共産主義者)들의 봉쇄와 도발을 그보다 더 강한 의지와 물리력(物理力)으로 「봉쇄」했기 때문이다. 아니, 물리력을 행사하기도 전에 대개(大槪)의 경우 공산주의자들은 「의지의 벽」에 부딪쳐 물러서고 말았다. 지난 50년 동안 한반도의 평화가 유지되어 온 것은 「햇볕정책」 덕분이 아니라, 한미연합군의 무장력(武裝力)과 「반공애국정신(反共愛國精神)」으로 북한의 도발 의도를 「봉쇄」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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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제니친(Aleksandr Isaevich Solzhenitsyn)은 『공산주의자들은 벽에 부딪칠 때만 후퇴(後退)한다』, 『공산주의자들은 확고한 자세만을 존경하고 계속해서 후퇴하는 사람은 경멸(輕蔑)하고 비웃는다』, 『계속해서 복종(服從)만 하는 힘은 결코 힘이 아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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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역사는 증명하고 있다. 솔제니친의 말이 옳았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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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轉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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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잘읽었습니다
그런데 봉쇄정책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아전인수식으로 해석을
했다는 생각이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