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日·朝 首腦會談(수뇌회담)을 實現(실현)시킨 胡錦濤(후진타오)의 壓力(압력)
北朝鮮(북조선) 외교의 핵심인물을 北京(베이징)에서 만나다
● 日本의 설득은 듣지 않았다
● 같은 나이에 마음이 맞는 中·朝 양국 首腦
● 龍川驛(룡천역) 「열차 사고」의 眞相(진상)
● 「토요학습의 날」에 방문케 하라
● 젠킨스(Charles Jenkins)氏의 强固(강고)한 意志(의지)
● 後繼者는 차남인 金正哲(김정철)
● 이제부터는 경제개방을 추진한다
月刊現代(게칸겐다이) 2004년7월호
[表紙(표지)]
http://kodansha.cplaza.ne.jp/mgendai/mokuji/200407/image/p01.jpg
[번역 : 淸遠, 한국시민교육사상연구소]
日·朝[北朝鮮] 首腦會談 직후 本誌(본지)는 北京(베이징)에서 金正日(김정일) 總書記(총서기)의 內政(내정)과 외교 전반에 관하여 깊게 알고 있는 어떤 인물[이 글에서는 X氏라고 함]을 독점 취재하는데 성공했다.
이 인물은 亡命者(망명자)가 아니라 외교기관의 일부의 現役(현역) 책임자이며 金正日 總書記를 여러 번 謁見(알현)했던 일도 있었다고 한다. 日·朝 首腦會談에 동행 취재했던 本誌 편집자가 平壤(평양)에서 신뢰할 수 있는 분의 소개로 이 인터뷰가 실현된 것이었다.
취재에 즈음하여 이 인물은 지위나 사회적인 지위·인물상에 관해서는 發說(발설)하지 아니하고, 사진촬영도, 녹음도 하지 아니한다는 조건을 붙이고 왔다.
이것 외에도 이번 日·朝 首腦會談의 무대 뒤에서 金正日 總書記에 대한 暗殺未遂事件(암살미수사건), 後繼者問題(후계자문제)까지 金正日 정권의 내부사정을 赤裸裸(적나라)하게 밝혀 주었다. 이하는 이 인물의 고백한 충격적인 사실들이다.
▶ 月刊現代 : 우선 이번 小泉(고이즈미) 首相(수상)이 다시 訪朝(방조)[訪北(방북)]한 최대의 이유가 되는 납치문제부터 물어야겠습니다. 金正日 總書記가 日本 首相과 두 번째 會談(회담)을 하고자 결정했던 배경에는 어떠한 사정이 있었습니까.
▶ X氏 : 이 질문에 대답하려면 1년8개월 전의 일부터 말해야 합니다. 작년 9월에 장군님[金正日 總書記]과 小泉 首相이 首腦會談을 하고 「日·朝 平壤宣言(평양선언)」을 발표하였습니다. 그 선언에서 쌍방은 『국교정상화를 早期(조기)에 實現하기 위하여 모든 노력을 경주한다』라고 선언했습니다. 공화국[北朝鮮]의 입장에서는 日本側(일본측)이 주장하는 이른바 납치문제는 해결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말하자면 北朝鮮과 日本은 과거에 敵對關係(적대관계)에 있었고 日本은 36년간에 걸쳐서 조선반도를 식민지로 지배하였으며 우리나라는 日本人을 납치했다. 그런 과거의 상호간의 敵對關係를 이제부터는 友好關係(우호관계)로 변화시키자는 것이 平壤宣言의 主旨(주지)였습니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납치했던 것을 謝罪(사죄)했고 생존하고 있는 5명을 日本에 되돌려 보냈습니다.
그럼에도 日本은 일시 귀국을 약속했던 5명을 北朝鮮으로 돌려보내지 아니하고 平壤宣言도 이행하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우리들에게는 日本이 도리에 어긋나고 유교도덕에도 어긋나는 국가로 비쳐졌습니다.
日本에 대한 不信感(불신감)을 증폭시킨 우리나라는 작년 말에 中國의 王毅(왕이) 외무차관이 訪朝했을 때에 『6개국 협의로부터 日本을 제외했으면 좋겠다』고 請願(청원)하였습니다. 그런데도 日本은 그 후에도 태도를 강화하여 공화국으로의 送金(송금)을 규제하는 改正(개정) 外爲法(외위법)이라든가 日·朝 양국간을 運航(운항)하는 萬景峰號(만경봉호)의 入港(입항)을 규제하는 特定船舶入港禁止法(특정선박입항금지법) 등 차례차례로 우리나라를 敵對視(적대시)하는 정책을 계속해왔던 것입니다.
● 日本의 설득은 듣지 않았다
▶ 月刊現代 : 그러던 것이 一轉(일전)하여 이번의 두 번째의 日·朝 首腦會談이 이루어졌습니다. 日本에서는 北朝鮮側을 설득했던 主役(주역)으로 田中均(다나카 히토시) 외무성 심의관, 藪中三十二(야부나카 미토지) 외무성 아시아·대양주 국장, 山崎拓(야마사키 다쿠) 前 자민당 부총재, 飯島勳(이지마 이사오) 首相수석비서관 등 여러 인물들의 暗躍(암약)이 작용했다고 추측되고 있는데, 실제로는 어떤 루트(Route)가 가장 유효하게 작용한 것입니까.
▶ X氏 : 지금 말한 것처럼 日本은 공화국과의 신뢰관계를 짓밟아 버렸기 때문에, 日本으로부터 누가 와도 우리를 설득하지 못합니다. 이번의 日·朝 會談을 장군님이 결심했던 것은 오로지 우호국인 中國이 설득했기 때문이었고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3월23일에 中國의 李肇星(리자오싱) 外相(외상)이 訪朝하여 장군님을 會見(회견)하였습니다. 그 때 中國側으로부터 처음으로 『小泉 首相과 납치문제에 대하여 이제는 대화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라는 제안을 했던 것입니다. 그 때에 장군님은 제가 지금 말하였던 것처럼 공화국의 입장을 李 外相에게 설명했습니다.
4월19일부터 21일까지 장군님이 中國을 방문하였을 때에 中·朝 首腦會談 席上(석상)에서 胡錦濤(후진타오) 主席(주석)은 강하게 日本人 납치문제를 거론한 것입니다.
『납치 같은 것은 과거의 문제가 아닙니까. 그처럼 사소한 문제로 日本과의 國交正常化(국교정상화)를 질질 끄는 것은 北朝鮮으로서는 이득이 되지 않습니다.
北朝鮮側이 조금만 더 참아서 타협하면 임시적인 경제원조도 據出(거출)해 줄 것이고, 國交正常化도 早期에 실현될 것이 아닙니까. 일찌기 中國도 日本과 敵對關係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과거의 여러 가지 문제를 극복하고 1972년에 國交正常化를 달성한 후로는 日本은 정부개발원조[ODA] 등으로 中國의 경제발전에 多大(다대)한 공헌을 해주었습니다.
만일에 日本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中國은 현재의 刮目(괄목)할만한 경제발전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지금의 日本의 상황을 볼 때 납치문제만 해결되면 國交正常化는 어렵지 않습니다. 日本과 敵對(적대)하지 않으면 美國과 核(핵)과 미사일문제 교섭에 집중할 수 있고 中國도 北朝鮮을 전면적으로 밀어줄 것입니다. 그러니 한 번 더 小泉 首相과 會談해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이러한 中國 首腦(수뇌)의 강력한 推薦(추천)에 힘입어서 장군님은 귀국 후 곧바로 小泉 首相을 또다시 平壤으로 부를 준비를 갖추도록 관계기관에 지시를 한 것입니다.
● 같은 나이에 마음이 맞는 中·朝 양국 首腦
▶ 月刊現代 : 아무리 우호국인 中國의 勸奬(권장)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남달리 자존심이 강한 金正日 總書記가 고분고분하게 日·朝 首腦會談을 결심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 X氏 : 물론 경제문제가 그 원인이 된 것입니다. 그와 관련된 것이기 때문에 공화국의 장래에 있어서 특별히 중요한 계기가 되었던 胡錦濤 主席과의 首腦會談에 관해서 더 계속해서 말하겠습니다. 올해는 양국이 國交를 맺은지 55주년입니다만, 장군님과 胡錦濤 主席과는 같은 나이에다 서로 마음이 잘 맞는 것 같습니다. 그 會談은 예정시간을 초과하면서 이야기가 매우 무르익어 갔습니다. 그 중에서도 최대의 관심은 공화국의 경제문제였습니다.
2002년1월 장군님은 「强盛大國建設(강성대국건설)이란 슬로건(Slogan)」을 내걸었습니다. 이것은 정치·군사·경제의 세 가지 분야에서 공화국을 大國으로 만들어 가겠다는 壯大(장대)한 계획입니다. 장군님은 胡錦濤 主席에 대하여 『정치와 군사의 분야는 잘 되고 있습니다만, 경제만이 잘 안되고 있습니다』라고 정직하게 고백하였습니다. 그러자 胡錦濤 主席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이 21세기에 鎖國(쇄국)하여 오로지 군사력만을 증강하는 것은 이미 시대에 뒤떨어진 것입니다. 中國을 보십시오. 70년대 말부터 개혁·개방정책을 시작하여 외국자본을 계속 받아들인 탓에 여기까지 경제발전하였습니다.
中國이 전면적으로 후원(Back Up)할 터이니 北朝鮮도 좀 더 경제적 개방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胡錦濤 主席의 제안에 대하여 장군님은 『우리나라를 본격적으로 개방하면 이라크처럼 美國의 공격을 받게 됩니다』라고 걱정했습니다. 그랬더니 胡錦濤 主席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아랍과 東아시아와는 상황이 다릅니다. 北朝鮮이 개방하면 美國에게 공격받는다는 것은 정반대입니다. 中國은 25년 전부터 개혁정책을 내걸고 경제발전을 이룩해온 덕택으로 건국후 처음으로 어떤 나라의 군사적 위협도 해소하는 데에 성공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 이 만큼 개방하여도 中國 공산당의 지배체제는 정치적으로 조금도 흔들리고 있지 않습니다』
이렇게 말을 주고받은 끝에 장군님이 이렇게 결론내었습니다.
『잘 알았습니다. 美帝國(미제국)과 日本은 신용할 수 없고, 南朝鮮(남조선)은 동포이지만 半美帝(반미제)의 식민지이며, 러시아는 경제가 취약합니다. 꼭 中國이 중심이 되어 앞으로도 우리나라의 경제재건을 도와주십시오』
구체적으로는 中國이 전면적으로 협력하는 형태로 南浦(남포)·海州(해주)·新義州(신의주)·羅津(나진)·先峰(선봉)에 경제특구를 건설할 것과 공화국의 기업과 合倂(합병)하는 中國 기업에게는 토지와 세금의 優待措置(우대조치)를 취할 것 등을 결정했던 것입니다. 6월에는 中國 기업의 경영자들이 모여서 제1회 경제시찰단이 공화국을 방문하도록 된 것입니다.
● 龍川驛(룡천역) 「열차 사고」의 眞相(진상)
▶ 月刊現代 : 金正日 總書記의 訪中(방중)이 多大한 성과를 거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귀국 직후 4월22일에 中國 국경까지 불과 20km 떨어진 장소에 있는 龍川驛에서 대규모 폭발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北朝鮮 당국은 『열차에 積載(적재)되어 있던 硝酸(초산) 암모늄 비료에 電線(전선)이 접촉하여 일어난 사고』라고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金正日 總書記를 태운 열차가 통과한지 겨우 8시간 후 사고였다는 사실과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기구[CTBT]의 地震波(지진파) 데이터로 小型(소형) 원자폭탄에 버금가는 파괴력을 나타냈다는 사실 등 때문에, 金正日 總書記를 겨눈 테러였던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 생기고 있습니다. 이 이해할 수 없는 사고의 眞相은 무엇입니까.
▶ X氏 : 龍川의 폭발사고에 관해서 제가 듣고 있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이야기입니다. 中國 방문 중 장군님에게 中國 정부의 首腦로부터 다음과 같은 정보가 들어왔습니다.
『이번의 中國 방문 때에 당신의 暗殺(암살)을 어떤 조직이 계획한다는 사실이 判明(판명)되었습니다. 이것은 우리 정부의 기관이 확실한 관계자로부터 얻은 정보입니다. 그런 까닭으로 中國 국내의 警備(경비)를 최대한 강화하고 압록강까지는 中國 정부가 책임지고 보내 드리겠습니다. 그래도 만에 하나의 경우를 고려해서 身邊(신변)에 충분한 주의를 하십시오』
이에 놀란 장군님은 中國 정부와 더한층 대응책을 협의하였습니다. 그 결과 비밀리에 귀국시간을 대폭적으로 예정보다 앞당기게 된 것입니다.
만약에 당시의 예정과 같이 귀국하였으면, 장군님을 태운 열차는 龍川에서 숯가루가 되어 버렸을 것입니다.
저 龍川의 폭발은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장군님을 겨냥한 테러였던 것입니다. 간신히 어려움을 피한 장군님은 즉시 胡 主席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였습니다. 中國의 미디어는 『龍川에서 폭발사고가 일어났다』고 재빨리 세계에 보도하여 暗殺未遂事件을 캐머프라지(Camouflage)해버린 것입니다.
▶ 月刊現代 : 이것은 충격적인 이야기인데요. 그러면 金正日 總書記를 암살하려던 조직은 어떠한 조직입니까.
▶ X氏 : 그것은 내 입으로 말할 수 없습니다.
▶ 月刊現代 : 北朝鮮內의 조직인가요. 예컨대 朝鮮人民軍(조선인민군)의 어느 부대가 쿠데타를 시도했다던가.
▶ X氏 : 아닙니다. 틀립니다. 이것 이상은 정말로 용서하십시오.
● 「토요학습의 날」에 방문케 하라
▶ 月刊現代 : 이야기를 이번의 日·朝 首腦會談으로 돌리겠습니다. 金正日 總書記는 中國에 등을 떠밀려 결심한 것입니까. 그 후 5월22일이라고 하는 擇日(택일)은 어떻게 결정된 것입니까.
▶ X氏 : 자세한 擇日은 양국의 事務陣(사무진)들이 결정한 것입니다만, 제가 듣기로는 장군님이 『다음의 6개국 협의[6월 말에 개최 예정] 이전의 토요일에 할 수 있도록』하라고 명령했다고 합니다.
「6개국 협의 前」이라는 것은 물론 美帝(미제)와 모든 행동을 함께하는 日本을 끌어드려서 美帝를 조금이라도 고립시키려는 전략입니다.
또 「토요일로 지정되었다」고 하면 北朝鮮 사람이면 누구든지 받는 감이 있어요.
공화국에서는 장군님의 지시에 의해서 通常的(통상적)으로 일하는 것은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입니다. 금요일은 금요노동이라고 부르는 봉사활동의 날이며 토요일은 토요학습이라고 하여 장군님의 偉業(위업)을 학습하는 날입니다.
결국 이번에 小泉 首相은 토요일에 訪朝하여 『今後(금후)에는 日·朝 平壤宣言을 이행하겠습니다』라고 장군님의 앞에서[御前(어전)에서] 「학습」한 격입니다. 적어도 공화국의 국민들은 누구든지 그렇게 생각하게 됩니다.
지난 번 首腦會談을 할 때는 金永南(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國會議長(국회의장]과 金鎰喆(김일철) 人民武力相(인미무력상)[國防大臣(국방대신)]이 順安(순안) 공항까지 出迎(출영)하였습니다.
[金永南은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으로서 國家(국가)를 대표하지만 최고인민회의 의장은 아니다. 국회의장격인 최고인민회의 의장은 崔泰福(최태복)이다. 「月刊現代」가 이 부분을 잘못 알고 있음. -淸遠 -]
그런데 이번에 出迎한 것은 몇 단계 아래로 格下(격하)시켜서 金永日(김영일) 외무차관이 나갔습니다.
또 지난 번의 會談場所(회담장소)는 國賓(국빈)을 通常的으로 모셨던 白花園(백화원)이었으나 이번은 平壤의 중심으로부터 30km나 떨어진 대동강 영빈관이었습니다. 더욱이 26만 톤의 식량원조를 日本側이 申告(신고)했다는 사실까지 포함하여 日·朝 首腦會談에 임하는 「장군님의 偉業」을 토요일에 국내 미디어에서 크게 보도하였습니다. 이러한 정치적 演出(연출)은 모두가 小泉 首相에게 「토요학습」을 시켰다는 사실을 공화국의 국민에게 弘報宣傳(홍보선전)하기 위한 것이었던 것입니다.
▶ 月刊現代 : 그렇게 말하는 것은 小泉 首相이 北朝鮮側을 위한 宣傳 재료로 이용되었다고 말하는 것이군요. 그렇게 말한다면 초청받은 小泉 首相側이 金正日 總書記를 대동강 영빈관에서 出迎했다는 珍風景(진풍경)을 보인 것이 됩니다만, 이것도 「政治演出(정치연출)」이 아니었던가요.
▶ X氏 : 首腦會談을 政治宣傳(정치선전)에 이용한 것은 彼此每一般(피차매일반)이 아닐까요. 日本에서도 가까운 시일에 국회의원 선거가 있으니 그런 것이겠지요.
▶ 月刊現代 : 그런데 6월 말에는 세 번째의 6개국 협의가 개최될 예정입니다만, 完全(완전, Complete)하고, 돌이킬 수 없으며(Irreversible) 그리고 또 檢證可能(검증가능, Verifiable)한 核廢棄(핵폐기, The dismantlement of Nuclear Weapons)를 요구하는 美國과 그 이전에 체제의 안전보장을 요구하는 北朝鮮側과의 대결은 메워지지 않았습니다. 美國은 그 때문에 화가 나 있는 모양인데, 다음번 협의에서는 구체적 성과를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 X氏 : 그것은 아직 무엇이라 말할 수가 없는 것인데, 우리들은 長期戰(장기전)이 될 것으로 각오하고 있습니다.
▶ 月刊現代 : 그러면 솔직하게 묻겠는데, 北朝鮮은 실제로 이미 核兵器(핵병기)를 보유하고 있습니까.
▶ X氏 : 자 글쎄요, 진실은 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적어도 저를 포함해서 대부분 사람들이 보유하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라크가 美帝의 공격을 받은 것은 大量破壞兵器(대량파괴병기)를 보유하고 있지 않다고 선언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화국은 절대로 『보유하고 있지 않다』고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실제로는 우리들의 背後(배후)에 中國이 있는 한 美帝는 우리나라를 공격할 수 없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이라크의 前轍(전철)을 밟지 않을 것입니다.
● 젠킨스(Charles Jenkins)氏의 强固(강고)한 意志(의지)
▶ 月刊現代 : 다음은 납치 피해자 가족에 대하여 묻겠습니다. 이번에 日本으로 귀국할 것이라고 기대되고 있던 납치 피해자 가족 8명 가운데 地村保志(지무라 야스시)·富貴惠(후키에) 夫妻(부처)의 장녀(22세), 장남(20세), 차남(16세), 蓮池薰(하스이케 가오루)ㆍ祐木子(유키코) 夫妻(부처)의 장녀(22세), 장남(19세)은 귀국하였습니다만, 曾我ひとみ(소가 히토미)氏의 남편 젠킨스氏와 장녀(20세), 차녀(18세)는 귀국하지 못했습니다.
5명은 귀국할 수 있어도 3명은 귀국할 수 없다는 것은 당초부터 北朝鮮側의 전략이었습니까.
▶ X氏 : 젠킨스氏와 딸들이 日本에 가고 싶지 않다는 것은 정말로 그들의 自由意志(자유의지)입니다. 나의 친구가 이전에 젠킨스氏로부터 이야기를 차분하게 들은 사실이 있었습니다. 그가 말한 바에 의하면, 원래 美軍 脫走兵(탈주병)인 젠킨스氏는 母國(모국)에 대한 공포심 때문에 美帝의 앞잡이인 日本에 가는 것 등을 절대로 거절한다고 우겨대고 있습니다.
이러한 젠킨스氏의 모습을 日·朝 首腦會談하기 前에 日本側에 자세히 전달하면 日本側은 틀림없이 우리들이 故意(고의)로 젠킨스氏 一家(일가)에게 그렇게 말하게 하며 또 잡아놓고 있다고 주장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장군님은 젠킨스氏와 2명의 딸을 小泉 首相의 面前(면전)에 불러와서 『總理(총리)가 직접 설득해 보시오』라고 小泉 首相에게 촉구하였던 것인데, 小泉 首相과 젠킨스 父女(부녀)와의 面談(면담)은 순수하게 장군님의 배려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 月刊現代 : 그 말은 만일 젠킨스氏가 小泉 首相에 설득당하면 그대로 日本으로 보낸다는 뜻입니까.
▶ X氏 : 그것은 당연합니다. 몇 번이고 말한 것처럼 납치문제 라고 하는 것은 공화국에 있어서 2002년9월의 단계에서 해결되었어야 할 문제입니다. 젠킨스氏가 공화국을 떠날 것인가 말 것인가는 공화국으로서는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 月刊現代 : 그렇다면 金正日 總書記가 首腦會談에서 제안한 것처럼 앞으로 빠른 시일 안에 제3국에서 曾我氏 一家 4명의 再會(재회)가 가능하겠습니까.
▶ X氏 : 물론 가능합니다. 다만 이것은 내 개인의 臆測(억측)입니다만, 젠킨스氏와 2명의 딸이 앞으로도 공화국에서 살고 싶다고 주장하겠지요. 그러면 曾我氏는 어떻게 할까요.
▶ 月刊代誌 : 曾我氏 一家의 일은 본인들의 意志를 최대한 존중하면서 그 뒤를 지켜 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2년 전에 北朝鮮側으로부터 사망했다는 회답을 들은 橫田めぐみ(요코다 메구미)氏 등 10명의 일은 이번 金正日 總書記가 『再調査(재조사)한다』고 明言(명언)하였습니다. 再調査는 今後 진전할 가능성이 있습니까.
▶ X氏 : 그것은 정직하게 말해서 어려울 것입니다. 납치문제라고 하는 것은 공화국의 입장에서는 이미 끝난 문제이기 때문에 再調査가 사실상 어렵다는 것은 小泉 首相 자신도 잘 알고 있는 일이 아닌가요.
▶ 月刊現代 : 再調査가 진행되지 않으면 日本의 여론이 沸騰(비등)할 것이고 여론에 눌려서 北朝鮮에 대한 經濟制裁(경제제재)도 가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 X氏 : 공화국의 부모들은 일상적으로 『주먹을 휘두르는 자에게는 주먹으로 대항하라』고 아이들을 교육합니다. 日本이 經濟制裁를 시작하면 공화국도 즉시 對抗措置(대항조치)를 취할 것입니다. 2,000만 朝鮮人民(조선인민)은 장군님 밑에서 한 마음으로 단결하여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日本에 대하여 宣戰布告(선전포고)할 것입니다.
● 後繼者는 차남인 金正哲(김정철)
▶ 月刊現代 : 日·朝 首腦會談의 이야기는 일단 제쳐 두고 金正日 總書記에 대하여 묻겠습니다. 선생은 金正日 總書記를 직접 만나본 일이 있습니까.
▶ X氏 : 예. 직장의 上司(상사)들과 함께 여러 번 謁見했습니다.
▶ 月刊現代 : 金正日 總書記를 가까이서 보면서 어떤 인상을 받았습니까.
▶ X氏 : 너무 긴장하여 상세한 것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첫째 인상은 TV로 날마다 보던 낯익은 모습보다 늙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TV에 나올 때는 배우도 화장을 하기 때문에 젊게 보이는 것이 당연하겠지요. 그렇게 늙었다고 해도 살이 붙어있어서 건강해 보였으며, 지시를 하는 동안에도 방 안을 機敏(기민)하게 돌며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또 장군님은 매우 두뇌가 明晳(명석)한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떠한 문제에 대해서도 갈피를 못 잡는 일이 없이 速射砲(속사포)처럼 지시를 주고 있습니다. 국제 정세에도 매우 정통하고 계십니다.
▶ 月刊現代 : 당신은 처음부터 「장군님」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만, 金正日 總書記를 마음속 깊이 존경하고 있는 것입니까.
▶ X氏 : 그것은 곤란한 질문입니다. 우리들은 철들 무렵부터 수령님[金日成(김일성) 主席]이나 장군님의 위대함을 집중적으로 교육받았기 때문에, 畏敬(외경)의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만 한 가지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공화국은 장군님 같은 重鎭(중진)이 안 계시면 틀림없이 지금의 이라크처럼 무질서 상태에 빠져버린다는 것입니다.
▶ 月刊現代 : 金正日 總書記 부인 高英姬(고영희)는 유방암을 앓고 있다는 것은 사실입니까.
▶ X氏 : 장군님 一家의 사실을 發說하는 것은 죽음에 이를 만한 것이기 때문에, 평상시에 話題(화제)의 대상에 오르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체적인 것은 알 수 없지만, 病(병)이라는 소문은 들은 사실이 있습니다.
▶ 月刊現代 : 그의 前 부인인 成惠琳(성혜림)의 아들인 장남 金正男(김정남)에 대해서는 무엇인가 들은 바가 있습니까.
▶ X氏 : 2001년 봄에 敵國(적국)인 日本에서 체포되었다는 말은 平壤에서도 소문이 났습니다. 그 후에도 朝鮮勞動黨(조선노동당)이나 朝鮮人民軍의 要職(요직)에 근무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은 바가 없습니다.
▶ 月刊現代 : 高英姬와의 아들이고 차남인 金正哲에 대해서는 어떻습니까.
▶ X氏 : 金正哲 동지는 張成澤(장성택) 동지 밑에서 帝王學(제왕학)을 배우고 있다고 듣고 있습니다. 張 동지가 朝鮮勞動黨 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 第1副部長(제1부부장)으로 있고 金正哲 동지가 副部長입니다. 部長은 장군님이 兼任(겸임)하고 계십니다.
▶ 月刊現代 : 金正日 總書記의 妹弟(매제)인 張成澤이 최근 失脚(실각)했다는 보도가 日本에서 있었는데 그것이 사실입니까.
▶ X氏 : 아닙니다.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妹弟로서 後繼者의 지도를 맡은 사람[指南役(지남역)]을 교체한다는 것은 장군님의 성격으로는 있을 수가 없습니다.
▶ 月刊現代 : 三男인 金正雲(김정운)은 현재 어떠한 職位(직위)에 있습니까.
▶ X氏 : 그분에 관한 것은 잘 알 수 없습니다. 장군님에게 실제로 자녀들이 몇 명 있는가 하는 것은 우리들이 알아볼 수가 없는 일입니다.
▶ 月刊現代 : 日本에서는 金正日 總書記가 머지않아 後繼者를 정식으로 발표할 것이 아니냐는 臆測이 나돌고 있습니다. 그 근거는 올해 1월1일 3개 紙(지)[勞動新聞(노동신문), 朝鮮人民軍, 靑年前衛(청년전위)] 공동사설에 『金日成思想(김일성사상)을 代를 이어서 繼承(계승)시켜 나가자』라고 쓰여있는 것과 또한 金正日 總書記의 誕生日(탄생일)[2월16일] 전후의 「勞動新聞」에 『혁명사업의 위대한 繼承』가 提議(제의)되었다는 사실 등이 거론되고 있습니다. 탑(Top)의 後繼問題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X氏 :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추측에 지나지 않겠지만, 적어도 앞으로 5년 정도는 그러한 발표가 없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장군님이 수령님으로부터 사실상의 後繼指名(후계지명)을 받은 것은 정확히 1974년 당중앙위원회 제5기 제8차 당원전당대회였다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는 수령님의 장남인 32세의 金正日 동지가 後繼者가 된다고 하는 분위기라고 할까 氣運(기운)이 돌았습니다. 장래에는 金正哲 동지가 後繼指名을 받을 것이 틀림없으나 지금 平壤에는 30년 전과 같은 여론 浮上(부상)이 없습니다.
● 이제부터는 경제개방을 추진한다
▶ 月刊現代 : 그것은 경제상태가 변함없이 좋지 않은 것과 관계가 없습니까.
▶ X氏 : 後繼者問題와 경제문제는 관계가 없습니다. 경제문제는 적어도 首都(수도) 平壤에 관한 한 中國의 지원 덕택으로 서서히 좋아져 가고 있습니다. 統一路(통일로)에는 대규모적인 자유시장도 만들어졌으며, 소규모적인 자유시장도 시내의 여기저기에 설치되었습니다.
▶ 月刊現代 : 그래도 物價(물가)의 상승이 심한 것은 아닙니까.
▶ X씨 : 物價의 상승은 확실히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러나 苦難(고난)의 行軍(행군) 시기[1995년-1998년]에는 먹을 것 마저 없었기 때문에, 그 당시와 비교하면 지금은 굶는다는 걱정이 없다는 것만으로도 좋습니다.
▶ 月刊現代 : 배급은 아직도 있습니까.
▶ X氏 : 서서히 적어지고 있습니다만, 아직 있습니다.
▶ 月刊現代 : 당신 클래스(Class)라면 平壤에서 어느 정도 배급을 받습니까.
▶ X氏 : 一家에 穀物(곡물) 80kg 정도입니다. 닭 10마리, 달걀 40개 정도 배급됩니다.
▶ 月刊現代 : 배급이 遲延(지연)되는 일은 없습니까.
▶ X氏 : 때로는 있습니다.
▶ 月刊現代 : 당신의 給料(급료)는.
▶ X氏 : 한달에 약 1만3,000원입니다.
▶ 月刊現代 : 平壤에서 집세[家賃(야친)]는.
▶ X氏 : 약 50원입니다.
▶ 月刊現代 : 생활은 고통스럽지 않습니까.
▶ X氏 : 위를 보면 끝이 없겠지요.
▶ 月刊現代 : 마지막으로 묻겠습니다. 앞으로 北朝鮮은 어떻게 변해 갈 것 같습니까.
▶ X氏 : 장군님은 中國의 도움을 받으면서 한발 한발씩 경제개방을 추진해 나갈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나라가 발전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國交正常化가 이루어지면 日本 기업의 진출도 환영합니다.
[자료출처 : 韓昇助 敎授 홈페이지 & 해성연구소]
http://www.wisemid.org/frame.htm
http://www.hs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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