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라 역사학자들의 7할 정도가 친일 사학자들의 제자들 또는 그 제자들의 제자들이라고 보면 거의 정확하게 보는 것이다. 이들이 국사교과서를 만드는데 중심적 역할을 하고 있다. 그중 많은 사람들이 친일 사학자들과 관련이 없는 것처럼 하기 위해 외국유학을 몇 년씩 다녀오면서 경력세탁을 하고, 마치 새로운 사람인양 행세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들의 경우 자세히 살펴보면 답은 한가지로 통일된다.
이들의 이론은 친일 식민사관을 그냥 그대로 답습하고 있으며 더 이상 발전된 연구를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공부를 더 이상 하지 않고 이병도나 신석호의 이론을 넘어서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더 깊이 공부하여 새로운 학설을 내 놓지도 못한다는 것이다.
일본 총독부가 만든 <조선사 편수회>의 총무나 감수관 일을 보던 사람들이 다른 시각으로 눈을 돌릴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이들이 주장하는 것의 대표적인 것이 현 북한의 평양이 한사군 때의 낙랑이라는 것이다.
중국의 모든 문헌들이 그렇게 많이 증명해 놓았는데도, 보지 못하고, 또 보지도 않고, 공부하지 않으면서 식민사관 역사인 평양(락낭)이라고 우겨대니한심한 일인 것이다. (낙랑은 현재의 하북성 일대를 말함)
이러한 일련의 사고방식과 역사 연구방식이, 고구려는 우리 민족이 아닌 다른 민족으로 만들어 교과서에서 교육을 하고 있으니 중국이 동북공정에 넣어서 고구려는 중국의 일부라고 주장하는 근거가 되는 것이다.
동이족인 우리 민족의 조상인 염제 신농씨나 구려족(뒤에 고구려가 됨)의 황제였던 치우천황도 우리는 조상으로 인정하지 않고 내버려두고 있다보니 중국은, 그렇다면 하고 황제, 치우, 염제도 우리 한족 조상이라고 하면서 연구하고 자랑하고, 관광상품으로도 활용하고 있으니 세월이 흐르게 되면 저절로 그렇게 굳어지게 되어 있다.
그동안 중국의 각 왕조마다 역사왜곡을 해 왔지만 특히 명나라 때는 그 이전의 역사를 너무 많이 왜곡 날조하다보니, 뜻있는 학자들은 명이 역사를 이야기하는 것은 개가 짖는 것과 같다고 하였었는데, 세월이 흐르다보니 지금은 명때의 기록이 어떠했는지를 도리어 참고하고 있으니, 역사란 기록이기 때문에 한번 잘못 쓰여진 역사라 하더라도 후대에 가면 중요한 기록으로 남게 되며 후세인들에게 혼란을 불러일으키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그동안 배워왔던 국사라는 것이 얼마나 엉터리이며 거짓말투성인지 우리는 모르고 지내왔다. 신라가 백제나 고구려보다 역사가 훨씬 긴 나라인 것처럼 만들었다는 것이 첫 번째 잘못이요 그것을 한번도 더욱더 깊이 연구해 보지 않고 그것을 그냥 베껴 쓰듯이 하며 몇십 년을 허송세월로 지내온 것이 두 번째 잘못이며, 민족사학자들의 심혈을 기울인 논문들을 연구 검토해 보지도 않고 휴지통에 휴지 넣듯이 버린 것이 세 번째 잘못인
것이다.
일본은 자기네들 역사를 날조하고 엉터리로 만들다보니 상고사가 흐리멍텅하게 되어있으나 자랑스러운 조상이 있었다는 것 하나와 선배들의 정신을 받들 줄 아는 장점이라도 있으니 국민들이 자부심을 얼마간 가질 수 있고 중국사람들은 모든 주변 민족의 역사와 문화까지 스펀지 마냥 빨아들여서 자기네들 것으로 만들고 있으니 그 많은 인구들이 단결이라도 잘 되고 있는 것이다. 본래 고구려의 영토는 현 중국의 동북삼성(요녕성, 길림성,
흑룡강성) 뿐 아니라 전체 몽골과 화북성 일대와 더 서쪽도 포함된다.(특히 일본 본섬의 반이상 북쪽을 고구려가 점령하고 있었다)
또한 소수부족들을 전부 아우르며 뭉치게 하였기 때문에 예,맥, 동호, 여진, 물길, 선비, 말갈, 돌궐...등의 우리 민족의 이칭 또는 사투리로 쓰여진 이름의 부족들을 모두 포용하였던 거대한 큰 나라였었다. (지금 제주도 사투리와 강원도 사투리가 서로 사투리로만 말하면 통하지 않아도 한민족이듯이)
고구려는 본래 치우 천황때부터 구려족 또는 구리족으로 문헌에 기록되어 있으며, 부여가 합쳐지면서 구려의 옛 영화를 다시 찾는 다물정신으로, 더욱더 강하고 훌륭하다고 하며 "고"자를 붙여서 고구려라 하였다.
한때 한나라의 왕망은 고구려를 하구려로 비하시킨 때도 있었을 정도로 고구려의 역사는 부여를 이어받은 오랜 역사를 가진 강력한 나라였으며 동양 전체 뿐만 아니라 전세계 최고의 강력한 나라였었다.
이러한 크고 강력한 나라였기 때문에 수나라나 당나라가 요동과 안시성만을 상대로 써웠을 뿐 고구려 전체와는 싸움이 되지 않을 정도임을 알아야한다.
결과 수나라가 살수대전 싸움을 걸어 올 때만 해도 고구려에서는 수나라에 미리 경고를 했었다.
"싸움을 걸어오면 전멸할 것이라고"
도원수 강이식 장군과 부원수 을지문덕 장군의 작전에 말려 거의 전멸하다시피 하여 열에 아홉이 죽었는데, 수나라는 이것을 표현하기를 나쁜 기후로 인하여 군사들이 죽었다고 표현하며 전쟁에 패한 사실을 숨기고 그 당시의 적장 도원수 강이식의 이름을 빼버리는 등 춘추필법을 활용했다고 할 수 있다.
이렇듯 중국사람들은 이웃을 표현할 때 야만적인 주변국으로 표기하였으며 자기네들은 항상 중심국이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중국 한족의 역사를 살펴보면 75년에서 300년 이상 오래가는 나라가 없었고, 우리 민족이 세운 나라들을 보면 통상 2000년, 1000년, 500년씩 그 역사가 오래 유지되었음을 볼 때 우리 민족이 훨씬 문화민족이었음을 알 수가 있다. 지금도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한글은 우리 민족의 독창적인 문자로써 세계사에 빛나고 있는 것과 같이 일본말의 뿌리가 전부 우리말이라는 것과 중국말인 한자(옥편에 보면 가을에 해당하는 입성 발음인 ㄱ, ㄹ, ㅁ, ㅂ 받침이 있는 한자가 약 30%정도 되는데 이것은 한족들이 발음을 할 수 없는 것이며 오직 동이족인 우리만이 발음이 가능하다)를 만든 민족이 동이족인 우리 조상이었음을 우리가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한다.
한민족문화연구원 이사장 강동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