辛의장 부친은 日本軍 헌병 오장”
新東亞 “시게미쓰 구니오로 창씨개명”
辛의장 “사실무근에 소설… 법적대응”
김창균기자 ck-kim@chosun.com
입력 : 2004.08.16 18:09 32´ / 수정 : 2004.08.16 18:26 06´
열린우리당 신기남(辛基南) 의장의 부친 신상묵(辛相默·1916~ 1984)씨가 일본군 헌병 오장(伍長·하사)이었다고 17일 발매된 시사 월간지 신동아 9월호가 보도했다. 신동아에 따르면 신상묵씨는 1938년 3월 대구사범학교를 졸업한 뒤 전남 화순군 청풍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다 1940년 일본군에 지원, 조선총독부 국군병 지원자 훈련소에 입대했다. ‘시게미쓰 구니오(重光國雄)’로 창씨개명한 신씨는 훈련소를 수료한 직후인 같은 해 11월 8일 반도호텔에서 일본군 지원병 수료생 자격으로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의 좌담회에 참석했고, 매일신보는 이 좌담회를 같은 해 11월 30일부터 8회에 걸쳐 연재했다. 신동아는 신씨의 이름이 들어 있는 일본군 지원병 합격자 명단, 창씨개명한 기록이 담긴 일제시대 신씨의 호적자료, 신씨의 이름·출신지역·출신학교·나이가 기록된 매일신보 좌담회 기사를 공개했다. 신씨의 대구사범학교 5기 동기생인 송재천씨는 “1943년 6월 충북 옥천 죽향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할 때 일본군 오장 군복을 입은 신씨가 말을 타고 집으로 찾아와 ‘일본군 헌병으로 근무하고 있다. 일본군 징병 기피자들을 찾고 있는데 정보가 있으면 가르쳐 달라’고 해 ‘모른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대구사범 동문회지도 “신씨가 교사에서 경찰관이 되기 전까지 기간에 군인으로 활동했다”고 기록했다.
신동아 9월호 “신기남의장 부친 일제때 헌병 근무”
열린우리당 신기남(辛基南) 의장의 부친 신상묵(辛相默·1916∼1984)씨가 일본군 헌병 오장(伍長·하사)이었다고 17일 발매된 시사월간지 ‘신동아’ 9월호가 보도했다.
신동아에 따르면 신씨는 1938년 3월 대구사범학교를 졸업한 뒤 전남 화순군 청풍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다 1940년 7월 25일 일본군에 지원해 조선총독부 국군병지원자훈련소에 입대했다.
‘시게미쓰 구니오(重光國雄)’로 창씨개명한 신씨는 훈련소를 수료한 직후인 같은 해 11월 8일 반도호텔에서 일본군 지원병 수료생 자격으로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의 좌담회에 참석했다고 신동아는 밝혔다. 매일신보는 이 좌담회를 11월 30일부터 8회에 걸쳐 연재했다.
신동아는 신씨의 이름이 들어 있는 일본군 지원병 합격자 명단과 창씨 개명한 기록이 드러난 일제강점기 신씨의 호적자료 및 신씨의 이름, 출신지역, 출신학교, 나이가 기록된 매일신보 좌담회 기사를 공개했다.
당시 매일신보 보도에 따르면 신씨는 좌담회에서 “나는 반다시(반드시)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절대로 복종하야(해야) 되겟다는(되겠다는) 정신수양을 하게 되엇습니다(되었습니다)”라고 입대소감을 밝혔다.
신씨의 대구사범학교 5기 동기생인 송재천씨는 “내가 1943년 6월 충북 옥천군 죽향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할 때 일본군 헌병 오장 군복을 입은 신씨가 말을 타고 집으로 찾아와 ‘일본군 징병 기피자들을 찾고 있는데 정보가 있으면 달라’고 해 ‘모른다’고 답했다”고 밝혔다고 신동아는 전했다.
또 다른 대구사범학교 동기생인 송성욱씨는 “‘신씨는 교사 경력이 있어 일본군에 들어간 뒤 헌병이라는 좋은 보직을 받았고, 광복 직전엔 조장(상사)으로 진급해 부산에서 근무했다’는 얘기를 동창들에게서 들었다”고 말했다.
신씨는 광복 직후인 1946년 경찰에 투신해 서남지구전투사령관 등을 역임했다. 신 의장의 한 측근은 “사실관계를 확인하기 위해 신 의장과 연락을 취했으나 연락이 안됐다”면서 “그러나 신 의장 모친에게 확인한 결과 사실무근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윤영찬기자 yyc11@donga.com
내가 알기로는 동아일보는 어느 싸움에서도 진적이 없다생각드는데,,,한번 붙어 쌍코피나봐라,국가보다 더 우수한 정보력을 지닌 삼성이 손든 동아일보아닌가!!!굉장히 흐믓하다.장하다 동아일보,손기정 장기사건,박통시대의 백지광고,삼성에버랜드 비리보도,그리고 이것이 다음번 쾌거인것 같다.언론이 이정도는 되야지 동아만세
열린우리당 딩의장은 일제때 우리 애국청년들을 체포하여 강제로 전쟁으로 내모는 일제치하의 최고 악질 앞잡이 헌병 오장의 아들이고,
또 그 위 한사람은 6.25 남침전쟁중 점령지에서 구국 활동하는 우리 민주 애국시민들을 찾아 모조리 죽창으로 찔러 죽이는 짐승만도 못한 최고 악질의 사위이시고...
도대체, 이 나라를 어떻게 하실려고 이런 인물을 우리에게 보내셨는지요?
지금, 이들은 또, 뭘 하려는지... 과거 청산작업이라는 말로 늑대눈이 되어 늘춤 추듯 광분하고 있습니다. 나라, 서민살림 꼴이 아닌데...좋다고만 합니다. 이제, 우리 국민은 안중에도 없습니다. 언제쯤 이 시련에서 풀어 날수 있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