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北朝鮮(북조선) : 金正日(김정일)은 人間白丁殺人魔(인간백정살인마)
● 金 總書記(총서기) 列車(열차)
通過(통과) 15分後에 龍川驛(룡천역) 爆發(폭발)의 可能性(가능성)
每日新聞(마이니치신문) 2004年8月11日 15:09
[워싱턴=中島哲夫] 北朝鮮(북조선) 平安北道(평안북도)의 龍川驛(룡천역)에서 4月22日, 150명 以上(이상)이 死亡(사망)한 列車爆發(열차폭발) 前, 龍川驛을 지난 金正日(김정일) 總書記(총서기)가 타고 있었을 可能性(가능성)이 있는 列車는 3개 있어, 마지막 1개가 通過(통과)한 것은 爆發(폭발)의 不過(불과) 15分前이었던 것이 8月10日, 알려졌다. 美 政府情報(정부정보)를 入手(입수)할 수 있는 立場(입장)의 消息通(소식통)이 分明(분명)히 했다.
이 爆發은 金正日을 노린 테러(Terror) 등은 아니라 過失(과실)에 의한 事故(사고)였다 라는 見解(견해)가 定着(정착)되어 있지만, 그 有力(유력)한 根據(근거)의 하나는 特別列車(특별열차)의 龍川驛 通過가 爆發의 9時間(시간)이나 前이었다고 하는 「事實(사실)」이다. 새로운 情報(정보)는 이 根據를 흔들어, 眞相(진상)에 관한 愼重(신중)한 再檢討(재검토)가 必要(필요)하게 되는 것으로 보여진다.
同(동) 消息通에 의하면, 지금까지 中國 訪問(방문)으로부터 돌아오는 金正日의 特別列車는 4月22日 午前(오전) 5時 지난 무렵 龍川驛을 通過했다고 여겨지고 있었지만, 이것은 龍川驛으로부터 약 15km의 中國 丹東(단둥)에서의 目擊情報(목격정보)에 根據하는 推測(추측).
그러나, 金正日이 타고 있었을 可能性이 있는 列車는 이 後에도 2개 달려, 4月22日 午後(오후) 2時頃(경), 마지막 列車가 龍川驛을 通過하고 약 15分後에 爆發이 일어났다고 한다.
金正日이 實際(실제)로 타고 있었던 列車는 特定(특정)할 수 없고, 이러한 經過(경과)에 관한 새로운 情報가 어떻게 收集(수집)되었는지도 分明(분명)하지 않다.
北朝鮮의 發表(발표)나 中國에서의 報道(보도) 등에 의하면, 「事故」의 原因(원인)은 爆發性(폭발성)이 있는 肥料(비료)와 石油(석유)를 실은 2種類(종류)의 貨車(화차)와 電線(전선)의 쇼트(Short)[短絡(단락)]가 얽힌 引火(인화), 爆發. 이것에 대한 疑問(의문)도 提示(제시)되어, 外國(외국)으로부터의 支援(지원)을 얻기 위한 自作自演(자작자연)[自作劇(자작극)] 등이라고 하는 見解(건해)도 있지만, 根據는 弱(약)하다.
이번 새로운 情報를 追加(추가)해도 全容解明(전용해명)에는 멀어, 「마지막 列車를 타고 있었던 金正日을 노린 테러」라고 한 斷定(단정)도 도저히 無理(무리)이지만, 적어도 作爲(작위)의 可能性을 完全排除(완전배제)하려면 더욱더 追加情報(추가정보)가 必要(필요)한 狀況(상황)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http://www.mainichi-msn.co.jp/today/news/20040811k0000e030098000c.html
▶ "룡천역폭발 특별열차 통과 15분후 발생 가능성"< 마이니치 >
연합뉴스 2004/08/11 16:53 송고
(도쿄=연합뉴스) 신지홍 특파원 = 지난 4월 룡천역 열차 폭발사건이 북한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이 탄 특별열차가 통과한지 15분후에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마이니치(每日) 신문이 미국 정보에 정통한 소식통을 인용해 11일 보도했다.
소식통은 김 위원장이 탔을 가능성이 있는 열차는 모두 3종류로 그 가운데 마지막 열차가 통과한 뒤 불과 15분 후에 폭발이 일어났다고 전했다.
신문은 지금까지의 유력한 견해는 이 사건이 김 위원장을 노린 테러가 아니라 단순 사고라는 것으로 특별열차의 역 통과가 폭발 9시간 전이라는 사실이 근거로 거론됐으나 이같은 새로운 견해가 대두됨에 따라 재검토가 요구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소식통은 김 위원장이 세 열차중 어디에 탔는지, 정보를 어떤 경로로 입수했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 北에 複數(복수)의 反體制組織(반체제조직)
列車爆發(열차폭발) 「政府(정부)의 自作自演(자작자연)」
亡命(망명)한 前 社長(사장) 인터뷰(Interview)
産經新聞(산케이신문) 2004年7月26日 朝刊(조간)
[서울=久保田るり子] 1997年 北朝鮮(북조선)의 黃長燁(황장엽) 朝鮮勞動黨(조선노동당) 前 書記(서기) 亡命(망명)을 도와, 스스로도 韓國에 亡命한 朝鮮勞動黨傘下(조선노동당산하)의 貿易會社(무역회사) 前 社長(사장), 金德弘(김덕홍·65)氏가 産經新聞(산케이신문)의 取材(취재)에 應(응)해, 北朝鮮에 複數(복수)의 反金正日(반김정일)[金正日=朝鮮勞動黨總書記(조선노동당총서기)] 組織(조직)이 活動(활동)하고 있다는 것을 밝혔다.
黨中樞(당중추)에 知人(지인)이 많아, 黨政策(당정책)에 밝은 金氏는 『金正日은 信賴(신뢰)할 만한 指導者(지도자)는 아니다』라고 言明(언명)했다. 北朝鮮의 實態(실태)를 證言(증언)하기 위해 3年前부터 渡美(도미)를 강하게 希望(희망)하고 있지만, 韓國 政府(정부)는 旅券(여권)을 發行(발행)함이 없이 金氏를 事實上(사실상)의 監視下(감시하)에 두고 있다.
서울市內(시내)에서 秘密裏(비밀리)에 행해진 인터뷰(Interview)에서, 金氏는 詳細(상세)는 피하면서도 北朝鮮 反政府活動組織(반정부활동조직)과 連絡(연락)을 취하고 있다는 것을 밝혔다.
金氏는, 이 組織이 2004年4月의 北朝鮮 龍川列車爆發事故(룡천열차폭발사고)에 관해서 最近(최근), 『事故(사고)는 金正日 政權(정권)의 自作自演(자작자연)[自作劇(자작극)]이었다 라는 結論(결론)을 내렸다』라고 말했다.
金氏는 『北朝鮮에는 약 210개 郡(군)이 있지만, 全國土(전국토)에 龍川事故(룡천사고)의 詳細를 적은 삐라(Bill)를 뿌렸다는 連絡이 있었다』라고 말한 다음, 『自作自演은 暗殺勢力(암살세력)이 있다는 것을 어필(Appeal)해 綱紀肅正(강기숙정)을 노렸던 것일 것이다. 列車(열차)에 搭載(탑재)한 對시리아(Syria) 輸出用(수출용) 미사일(Missile)을 爆破(폭파)했다고 듣고 있다. 미사일의 狀態(상태)가 나빴기 때문에, 爆破로 破棄(파기)했던 것이다. 그리고, 龍川(룡천)은 新義州(신의주)에 가까워, 經濟特別區(경제특별구)로 할 計劃(계획)이지만, 日帝(일제)[日本統治(일본통치)] 時代(시대)부터 反政府的(반정부적)인 氣質(기질)이 강한 地域(지역)이다. 爆發(폭발)로 낡은 建物(건물)을 부수어 새로운 거리를 建設(건설)하고, 問題(문제)있는 住民(주민)은 다른 地域으로 移動(이동)시킨 것 같다』라고 證言했다.
이러한 反體制組織(반체제조직)은 複數있다 라고 하는 한편, 쿠데타(Coup Detat)의 可能性(가능성)에 대해서는 『困難(곤란)할 것이다』라고 豫測(예측), 『다른 나라와는 달리 半世紀(반세기) 以上(이상) 繼續(계속)된 獨裁體制(독재체제)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金氏는 3年前, 美 共和黨(공화당) 下院政策委員會(하원정책위원회)의 招待(초대)를 받은 以來(이래), 韓國 政府에 旅券發行(여권발행)을 要求(요구)해 왔다. 金大中(김대중) 前 政權은 黃長燁氏와 더불어 渡美를 許可(허가)하지 않았다.
盧武鉉(노무현) 政權으로 되어 黃氏는 2003年 가을, 渡美했지만, 金氏의 渡美는 實現(실현)되지 않았다. 政府는 金氏의 發言(발언)이 北朝鮮을 刺戟(자극)할 것을 憂慮(우려)해 態度(태도)를 留保(유보)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金氏는 『부시(George W. Bush) 美 政權은 金正日 體制(체제)의 本質(본질)을 알고 있다. 나는 체니(Richard B. Cheney) 副統領(부통령)이나 럼스펠드(Donald H. Rumsfeld) 國防長官(국방장관) 등의 强硬政策(강경정책)을 全面的(전면적)으로 支持(지지)한다. 美國民(미국민)에게도 强硬派(강경파)의 政策(정책)을 支持하도록 呼訴(호소)해, 「北朝鮮을 解放(해방)해 주세요」라고 呼訴(호소)하고 싶은 것이다. 6개國 協議(협의)에 意味(의미)가 있는 것인가. 金正日은 核抛棄(핵포기)한다고 생각하는가. 있을 수 없다. 歷史(역사)에 類例(유례)없는 金正日 絶對主義體制(절대주의체제)를 解放할 수 있는 것은 美國뿐이다』라고 渡美하는 意義(의의)를 强調(강조)했다.
게다가, 『1995年부터 1997年에 300萬명이 死亡(사망)했다. 最近(최근) 10年 동안에 자란 아이들은 文字(문자)도 읽을 수 없다. 北에서는 身長(신장) 150cm로 軍隊(군대)에 들어갈 수 있지만, 지금은 140cm에도 이르지 않는다』라며, 『國際社會(국제사회)는 왜, 人權蹂躪(인권유린)을 繼續해 온 金正日 獨裁體制를 오래 살게 하는 支援(지원)을 행하는 것인가』라고 疑問(의문)을 나타냈다.
日·北 國交正常化(국교정상화)에 意慾的(의욕적)인 小泉純一郞(고이즈미 준이치로) 首相(수상)에 대해서는, 『獨裁體制와 왜 國交正常化交涉(국교정상화교섭)을 행하는 것인가. [核(핵)·미사일·拉致問題解決後(납치문제해결후)에 正常化(정상화)한다 라는 日本 政府의 方針(방침)은 알고 있지만] 反金正日運動(반김정일운동)을 행하고 있는 나와 같은 立場(입장)에서 보면, [日本의 動向(동향)은] 매우 不安(불안)하다』라고 呼訴했다.
▶ 金德弘(김덕홍)氏 = 1938年 北朝鮮 平安北道(평안북도) 出生(출생), 朝鮮人民軍(조선인민군)으로부터 金日成綜合大學(김일성종합대회)에 進學(진학). 朝鮮勞動黨主體思想硏究所(조선노동당주체사상연구소) 등을 거쳐 貿易會社 社長. 北京(베이징)에서 韓國 情報機關(정보기관)과 接觸(접촉), 黃 前 書記의 亡命을 支援. 亡命後(망명후)에도 獨裁體制의 指導理念(지도이념)·主體思想(주체사상)의 正當性(정당성)을 主張(주장)하는 黃氏와는 絶緣(절연).
http://www.sankei.co.jp/news/040726/morning/26iti002.htm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