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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승 아나운서에 당부 한마디...

이혜승 아나운서가 한 말에 제가 지적하고싶은 부분이 있어서 한마디 당부합니다. 이혜승 아나운서가 이런 말을 했더군요.



"스포츠가 영화나 연극 보다 더 감동적이다."



이혜승 아나운서도 잘 아시겠지만 스포츠는 (사상과 정서 등의) 인간의 정신 세계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반면에 영화, 연극 등은 인간의정신 세계를 표현합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스포츠가 영화나 연극 보다 사람의 정서적인 필요을 더 잘 만족시켜줄 수는 없는 것입니다. 공연 예술은 그 주제 의식에서 그 시대의 사상이나 인간의 희노애락을 표현할 수 있기 때문에 그 공연 예술을 감상하는 사람들의 정신 적, 정서 적인 욕구를 충족시켜줄 수 있습니다. 반면에 스포츠는 사람에게 정서 적인 만족 감을 줄 수있는 능력이 극히 제한되어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스포츠가 영화나 연극보다 더 감동 적일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이혜승 아나운서가 왜 스포츠를 영화나 연극보다 더 감동 적으로 생각하는지에 대한 한가지 추측 가능한 이유를 들어보겠습니다. 한국은 아직까지 스포츠 국제 대회에서의 입상을 너무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올림픽 금메달에는 거의 목숨을 걸다시피합니다. 이혜승 아나운서가 그렇게 간절히 바라는 올림픽 금메달이기 때문에 한국 대표 선수의 올림픽 금메달이 공연 예술보다 더 감동 적으로 느껴지는 것입니다. 올림픽 금메달에 원래 부여된 것 이상의 가치를 부여하지않는다면 올림픽 금메달을 이혜승 아나운서가 간절히 원할리도없고, 간절하지않은데 금메달 소식이 공연 예술 보다 더 감동 적일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혜승 아나운서가 기억해야할 것이 있습니다. 쿠베르탱 남작에 의해서 근대 올림픽이 부활되기전에는 올림픽이라는 용어가 곧 고대 올림픽을 의미했습니다. 그 고대 올림픽에서 우승의 의미가 무엇이었는지를 기억해보시기 바랍니다. 근대 올림픽도 메달이 목표가 아니라는 것을 이혜승 아나운서는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언론에서 국민들을 일깨워주어야합니다. 올림픽의 목적은 스포츠를 통한 국가, 인종의 만남, 화해, 화합입니다. 메달이 그 목적이 아님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효리 양이 북한의 계순희 선수를 응원한다죠? 이효리 양이 계순희 선수가 금메달을 따라고 응원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격려 차원입니다. 계순히 선수에게 금메달을 반드시 따야한다고 강요를 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효리 양은 계순희 선수가 금메달을 따던 못따던 상관없이 계순희 선수를 응원할 것입니다.



올림픽은 참가에 그 의의를 두어야한다는 것을 이혜승 아나운서도 잘 아실 것입니다. 올림픽 중계 방송 동안에 꼭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p.s.



스포츠를 소재로한 영화 중에 작품 성이 뛰어난 작품이 몇 작품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 제가 좋아하는 작품이 미국의 대학 미식 축구를 소재로한 <Rudy>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주인공인 Rudy가 마지막 수비에서 Sack을 성공시킨 후에 경기가 종료되고, 동료 선수들이 Rudy를 무등을 태워서 운동 장 밖으로 나가는 장면이 있죠. 그 영화의 마지막 장면입니다. 그 장면은 정말 감동 적입니다. 저도 그 장면에서 눈물을 흘렸으니까요. 이혜승 아나운서는 제가 눈물을 흘린 이유를 아시겠습니까? 주인공인 Rudy가 자기의 꿈을 이룬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너무도 간절했던, 미식 축구 선수로 뛰고싶다는 꿈을 이룬 순간이었기 때문에 감동 적인 것입니다. 후보 선수로서 경기 결과가 사실 상 정해진 다음의 수비에서 공격 선수를 (아마 쿼터 백이었죠) 한번 넘어뜨린 것이 (Sack이라고 부릅니다) 뭐가 그렇게 대단한 일이겠습니다. 경기의 결과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영화 <Rudy>의 마지막 장면은 감동 적입니다. 그 이유는 사람의 정신 세계를 다루었기 때문입니다. 대학 시절에 후보 선수로라도 선수 유니폼을 입고 운동 장에 서보고싶다는 꿈을 <Rudy>의 주인공인 Rudy는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이룹니다. 주인공 Rudy는 한가지를 더 이루죠. 경기가 종료되기 직전에 미식 축구에서 수비 선수로서는 최고의 플레이인 Sack을 해냅니다. 경기의 결과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플레이였지만 Rudy로서는 꿈을 한가지 더 이룬 것입니다. 유니폼을 입고 실제로 경기에 출장하는 꿈을 이룬데서 끝나지않고, 비록 경기의 결과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지만 수비 선수로서는 최고의 플레이인 Sack을 해냅니다. 너무도 간절했던 꿈을 이루고, 또 한가지를 더 해냅니다. 감동 적일 수 밖에 없죠.



이혜승 아나운서에게 스포츠가 왜 공연 예술보다 감동 적일까요?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혜승 아나운서에게도 스포츠가 공연 예술보다 더 감동 적이지는 않습니다. 이혜승 아나운서가 한국 대표 선수들의 금메달을 간절하게 원하는 것 자체가 이미 이혜승 아나운서의 간절한 소망, 즉 정신 세계를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이혜승 아나운서가 가진 간절한 소망이 (한국 대표 선수들의 금메달 획득이) 충족되었을때 이혜승 아나운서의 간절한 정서 적인 욕구가 충족이 됩니다. 그래서 이혜승 아나운서가 스포츠를 더 감동 적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혜승 아나운서가 한국 대표 선수들의 금메달을 간절히 원하는 것 자체가 정서 적인 욕구이고, 공연 예술에서 표현하는 정신 세계에 해당합니다. 말을 조금 바꾸자면 이혜승 아나운서가 올림픽 중계 방송을 하고, 금메달 소식을 전하는 것 자체가 영화나 연극의 표현 대상이라는 말입니다. 정신 세계입니다. 간절한 금메달 소식을 가장 일선에서 접하면서 감동을 하는 것은 당연하죠. 스포츠 자체가 감동 적인 것이 아닙니다. 금메달을 염원하는 정서가 충족되었을때 감동을 느끼는 것입니다. 정신 세계입니다. 공연 예술의 표현 대상입니다. 영화와 연극의 표현 대상입니다.



문제는 올림픽의 목적은 메달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혜승 아나운서께서는 올림픽의 진정한 목적은 스포츠를 통한 만남, 화해, 화합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언론 인이 그 점을 기억하고있어야 국민들을 일깨울 수 있습니다.



이번 아테네 하계 올림픽에서 폭염으로인한 사고나 발생하지않았으면 좋겠군요. 만약 이혜승 아나운서가 취재 진의 일원으로 아테네에 가신다면 건강 조심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