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 이준호 기자 부천 원미지국장 된 사연 [펌]
작성일 2004/07/20
작성자 이준호(juno)
제목 프롤로그-경향신문 지국개념 탈바뀌다
`馬行處 牛亦去(마행처 우역거·말이 가는 곳이면 소 역시 갈 수 있다)'
얼마전 우연히 접한 한자성어입니다. 곱씹어 볼 수록 의미심장해 몇번씩 되새겨봅니다. `마행처 우역거' `마행처 우역거'….
조·중·동이 발빠른 말(馬)이라면 아직까지 경향신문은 느릿느릿한 소(牛)와 다름 없습니다. 회사의 매출 규모나 독자 수, 영향력 등이 그렇겠지요. 하지만 경향신문은 조·중·동에 비해 강점도 많이 보유하고 있습니다. 독립언론이기 때문에 보도의 객관성, 논조의 공정성은 말할 것도 없고 무엇보다 임직원이 양질(良質)의 인력이라는 거죠. 지금은 소처럼 느리게 가지만 언젠가는 경향신문도 1등신문, 아니 국민이 가장 존경하는 `바른 1등신문'이 될 것으로 저는 확신하고 있습니다.
서론이 길어졌습니다. 8월1일이면 저는 국장(?) 반열에 올라 새로운 영역에 도전합니다. 지국장. 지국을 신설해 독자를 확대하고 경향식구들이 만든 따뜻한 신문을 새벽마다 배달할 겁니다. 제가 활동할 무대는 부천 상동 신도시 일대입니다.
몇몇 선배, 동료들께서 이를 알고 격려도 해주시고 걱정도 해주십니다. 격려와 걱정이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힘도 솟습니다. 그래도 많은 분들은 의아해하시겠죠. `기자가 자기 일이나 잘하지 무슨 신문배달까지…'
지난해 10월 신경영추진기획팀으로 발령나 회사 수익모델 찾기에 혈안이 될 때만 해도 잘 몰랐습니다. 그저 열심히 새로운 사업을 펼치고 광고·협찬이 많이 붙을 수 있는 좋은 기획거리를 만들면 금새 회사가 잘될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열매를 따기 위해서는 밭을 갈고 씨앗을 뿌리고 비료를 주고 물을 주는, 힘겨운 과정을 오래 기다려야 하더군요. 그리고 가장 좋은 씨앗은 `독자'라는 점을 새삼 깨닫게 됐습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많은 `독자' 씨앗을 삭틔우고 가꿔야 경향신문이 진정한 홀로서기에 성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현재 경향신문 독자를 확대한다는 것은 험난한 가시밭길을 걷는 일입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조·중·동 신문은 독자를 자전거로, 백화점 상품권으로 선량한 독자들을 현혹하고 있습니다. 이미 규모의 경제를 이룩한 조·중·동 지국의 경우 대부분 전단지 수입만 한달에 1천만원, 많게는 수천만원대입니다. 10만원짜리 상품권을 마구 돌릴 수 있는 비결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들에게 독자는 독자가 아닙니다. 전단 광고지를 안정적으로 배포할 수 `머릿수'에 불과한 것이죠.
앞으로 경향신문에 희망이 있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여기서 찾을 수 있습니다. 경향신문이 독자를 두려워하고 진정한 언론사의 길을 걷는 한 바른 1등이 될 것입니다. 저는 더이상 경품에 `우리의 독자'를 빼앗기지 않을 겁니다. 경품이 아닌 애정으로 독자들에게 다가설 겁니다.
제가 건설하는 경향신문 부천 원미지국은 발상의 전환을 시도하는 실험지국입니다. 한가지만 소개하자면 요즘 유행하는 테이크 아웃 커피점을 함께 운영하려고 준비중입니다. 그동안 신문사 지국은 새벽에만 활용됐지 금쪽같은 시간에는 잠들어있었습니다. 그래서 바꿔보려고 합니다. 우리 경향신문 독자들에게는 맛있는 커피 한잔이라도 무료로 대접하고 쓰디쓴 조언을 듣겠습니다. 지나가는 행인이라면 커피를 판매하면서 경향신문과 뉴스메이커, 레이디경향을 홍보할 겁니다. 전단 수입이 적은 경향신문사 지국에게는 새로운 수입원이 될 수도 있을 겁니다. 지국이 튼튼해지면 회사는 절로 튼튼해집니다.
제가 편집국을 떠나 신경영추진기획팀에서 얻은 소득이 있다면 자신감과 애사심입니다. 저는 희망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경향신문을 사랑합니다. 과거 제 스스로 신문상품을 만드는 일에 참여하면서도 신문구독을 주변에 권유하는데 주저주저했습니다. 내가, 내 동료가 만드는 상품을 판매하는 게 왜 부끄럽고 체면깎인다고 생각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현재의 경향신문 상품이 100% 마음에는 안차지만 그래도 1등이라고 자랑하는 그들의 신문보다 부끄럽지 않은데 말입니다.
저의 지국생활은 짧게는 6개월, 길게는 그 이상이 될 겁니다. 처음 목표는 경향신문 단독지국을 개설하고 독자확보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었지만 지금은 더 커졌습니다. 부천내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신문을 만드는 겁니다. 자전거, 상품권에 빼앗긴 우리 독자를 다시 찾고 당당히 편집국으로 되돌아오겠습니다. 말(馬)이 가는 곳이면 소(牛)도 갈 수 있는 사실, 저처럼 믿어보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