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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괴한 친일규명 공방 [미디어 오늘펌]

기괴한 친일규명 공방

[정경희의 곧은소리]





미디어오늘 media@mediatoday.co.kr











▲ 언론인 / 정경희



2차대전 중 비시정부의 프랑스는 1940년 6월부터 1944년까지 4년 동안 나치 독일군 점령하에 있었다. 이 4년 동안 나치 독일에 협력한 부역혐의자는 32만 명을 넘었다고 한다. 1944년6월 ‘부역자 재판소‘ 설치가 공포된 뒤 체포돼 재판 받은 피의자가 11만2천명. 이중 8만3천명이 실형을 선고받았다. 사형이 선고된 부역자는 6,763명이었다.



이중 감형됐거나 궐석재판으로 사형이 선고된 자를 빼고, 770명이 처형됐다. 그래서 1946년 현재 복역중인 부역자가 2만9천179명이었다.



주목할만한 사실은 레지스땅스대원 체포나 고문·처형에 간여했던 비시정권의 군인·경찰·민병대원을 뺀다면, 부역언론인이나 문단 관련자들에 대한 형량이 무거웠다는 것이다. ‘로또’지(誌) 사장을 비롯해서 주필급 5명이 처형됐고, 또 다른 5명은 감형돼 사형을 면했다. 무기형을 선고받은 언론인도 ‘라디오파리’의 아나운서나 잡지사 사장 2명 등 4명이었다.



이들은 독일군 점령하에서 언론매체를 통해 “레지스땅스대원을 밀고하는 것은 신성한 의무”라고 부추기고, “나치독일에 대한 보다 적극적 협력을 촉구”하는 등 영향력이 큰 부역자들이었다.(이용우씨·서울대 인문학연구원).



지금 이 나라에서는 ‘친일 반민족행위 진상규명특별법’ 개정안을 둘러싸고 기괴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60년전 드골임시정부 때 프랑스의 부역자처벌과 달리 이 특별법은 다만 반민족행위의 진상을 밝히자는 것이다.



프랑스선 언론인에 엄격한 잣대



친일 부역자들이 살아있었던 55년 전 반민족행위자처벌이 이승만의 반대로 좌절됐고, 당대의 친일부역자들이 죽어 없어진 이제 그들의 죄상을 밝혀내고 기록으로 남기자는 것이다.



그것을 우리는 ‘필주(筆誅)’라고 일러왔다. 붓으로 기록함으로써 죄인을 단죄한다는 뜻이다. 원래 이 특별법안은 작년 8월에 발의된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저런 저항에 부딛혀 지난 3월 2일에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었다.



그나마 한나라당이 지배하는 국회가 이 법안을 껍질만 남기고, 알맹이는 거의 있으나 마나한 상태로 축소해 버렸었다.



조사대상에서 언론·예술·학교 등을 통한 친일행위를 제외했고, 고문·학대 등을 했더라도 판·검사가 아니면 제외했다. 특히 논란거리인 군인의 장교를 ‘중좌(中佐=중령)이상’으로 축소했다.



열린우리당이 지난 14일 민주노동당의원 전원, 그리고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일부 의원들과 함께 국회에 내놓은 개정안은 원래의 취지대로 복원·확대하자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이 개정안에 대해 잘 알려진 것처럼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고, 그 밖의 신문들은 대체로 논쟁에 소극적이다. 신문과는 달리 방송 3사는 심야토론프로그램을 대부분 이 개정안공방의 마당으로 꾸미고 있다. 하지만 대개의 경우 이 공방은 동문서답으로 시작해서 동문서답으로 끝나고 있다.



개정반대 핵심 박정희와 두 신문



그래서 지금 이 나라에서는 임진왜란에 지지 않을 만큼 치열하고도 지루한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한나라당, 그리고 한나라당과 맥을 같이 하는 개정안 반대론자들이 제기하는 쟁점은 대체로 네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이미 국회를 통과한 특별법을 시행해 보지도 않고 고치자는 것은 있을 수 없고, 둘째 개정안에는 정치적 의도가 있고, 셋째 국론분열을 우려한다는 것이고, 넷째 진상규명은 역사에 맡기자는 것이다.

그러나 첫째 잘못된 법은 고치는 게 당연한 국회의 의무이고, 둘째 한나라당이 원래의 법안을 유명무실하게 만든 ‘정치적 의도’가 있었던 것처럼 모든 입법활동에는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이다.



셋째 이 경우 ‘국론분열’은 민족정기와 친일반민족의 대립을 뜻한다. 진정한 사회적 통합은 잘못된 과거를 청산해야만 가능하다.



넷째 ‘역사’란 법에 의해 날짜가 정해지는 게 아니다. 지금 진상을 규명하는 것도 ‘역사적’작업이다.



결국 진상규명특별법개정 반대론의 핵심은 박정희와 두 과점신문의 ‘과거’를 덮어두자는 데에 있을 것이다. 조선, 동아는 그동안 ‘민족지’임을 끈질기게 주장해 왔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특별법에 의해 그 주장이 사실로 판정될 것이다. 진상규명반대는 과거의 반민족행위를 스스로 고백하는 것과 같다.



프랑스의 레지스땅스작가 까뮈는 1945년 초 말했다고 한다. “숙청실패는 쇄신 실패를 준비하는 것과 같다”고.









입력 : 2004.07.21 09:45:34 / 수정 : 2004.07.21 09:4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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