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사설] 살인기계와 함께 섞여 사는 사회 에 대해서
(홍재희) ======== 친일 반민족 반민주 반 통일의 냉전 수구적인 방상훈 세습족벌사주체제인 조선일보 사설은
" 어제 경찰이 발표한 희대의 연쇄살인 용의자 유영철의 살인행각은 끔찍하게 혐오스럽고 참담하도록 절망적이지만 그 어떤 감정들보다 공포심이 앞선다. 이 30대 사내는 지난해 9월 이래 확인된 것만 19명을 살해했다고 하니 한 달에 두 명꼴로 사람을 죽인 셈이다. 사람을 물건으로 보지 않고서야, 살인을 무심한 일상사로 여기지 않고서야 저지를 수 없는 짓이다. "
(홍재희) ======== 라고 주장하고 있다. 연쇄살인 용의자 유모씨의 행동은 그와 같은 사회공동체로서 숨쉬고 살아온 우리들이 유모씨의 범죄혐의에 대한 인내를 시험하고 받고 있는 것은 아닌가 라는 안타까움을 지울 수 없다. 정확한 사실과 진실은 일단 수사진정상황을 지켜보고 수사결과를 지켜봐야 하겠지만 그래서 철저한 검증을 통해 이번 사건을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홍재희) ====== 범죄용의자가 아주 심각한 지병을 앓고 있는 것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에 드러나고 있는 비극적 사건 하나 하나의 부인할 수 없는 끔찍한 실상 그 자체에 분노하는 것 못지 않게 간과해서는 안 되는 점이 우선 범죄용의자의 지병에 대한 전문의의 정확한 진단과 함께 이번 범죄용의점과 상관관계는 없는지에 대해서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우리사회와 수사당국이 사건 용의점에 대한 진실에 접근하는 데에도 꼭 필요하다고 본다.
(홍재희) ===== 그러나 오늘자 조선사설은 그런 신중한 접근은 없고 선동적인 분노로 시작해서 감성적 분노로 일관하며 구제받을수 없는 개인의 범죄에 대한 책임으로만 매도하며 끝맺고 있다. 이러한 조선사설의 태도는 결코 이번과 같은 비극적인 사건을 통해서 우리사회가 얻어 내야할 교훈을 통해 다시는 이러한 비극으로부터 자유로운 사회를 만드는데 결코 바람직한 접근방법이라고 볼 수 없다고 본다. 아직 명확한 실체적 진실리 밝혀지지 않은 시점에서 조선사설의 이성적 접근이 부족하다.
(홍재희) ====== 조선사설은
" 희생자들은 외부 사람 눈에 잘 띄지 않는 호젓한 단독주택에 사는 노인들이거나 출장마사지 등에 나선 불우한 여자들이었다. 살인자와는 아무런 개인적 연고나 원한관계도 없고 광기어린 살인에 맞설 힘도 없는 애꿎고 연약한 사람들이었다. 아무나 무차별로 덮치는 이런 이상(異常)범죄와 증오범죄를 성한 사람인들 어떻게 막아내겠는가. "
(홍재희) ====== 라고 주장하고 있다.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한 범죄혐의에서 나타나고 있듯이 피해자들은 하나같이 유모씨와 같은 사회속에서 살아숨쉬던 평범한 일상 속에 삶을 영위해 나가던 이웃들 이었다. 이들 피해자들에게 가해진 증오는 어쩌면 유모씨가 우리 사회에 품고 있는 증오와 적대의 공격에 피할 수 없는 표적이 됐고 배출구 역할을 통해 희생이 됐다고 볼수 있다. 그러나 조선사설은 끔찍한 범죄의 유형을 중계방송 하듯이 묘사하며 그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홍재희) ======= 조선사설은 유영철은 범행 대상을 물색하러 주택가를 돌며 노인들이 사는 집을 살피고 다녔다 한다. 토막낸 여자들의 시신을 검은 비닐로 싸서 수십 차례 택시를 타고 다니며 서울시내 야산에 묻었다고 한다. 소름돋는 일이다. "
(홍재희) ====== 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시점에서 분노에 젖은 시선으로 유모씨의 지금까지의 행각에 대한 성토도 중요하지만 끔찍한 유모씨의 행각이 우리사회에서 발생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우리사회도 이러한 끔찍한 범죄혐의를 파생시킨 측면은 없었는지 자성의 계기로 삼을 필요도 있다고 본다. 우리사회가 왜 유모씨와 함께 하지 못하고 소외와 무관심으로 그를 방치 했었는지에 대해서 한번 곰곰히 생각해 볼 일이다.
(홍재희) ====== 조선사설은
" 우리 중의 여럿이 사람의 마음을 잃어버린 이 살인기계와 섞여 살면서 어느날 무심코 그를 지나쳤을지 모를 일이다. 우연히 잡힌 그가 연쇄살인을 술술 털어놓기 전까지 경찰이 했던 일, 할 수 있었던 일도 별로 없었으니 나라의 치안에 기댈 수도 없다. "
(홍재희) ======= 라고 주장하고 있다. 조선사설의 내용이 시작단계에서는 `연쇄살인 용의자`라고 무죄추정의 접근을 하면서 한편으로 유모씨의 이번 행각에 대해서 `살인기계` 라고 단정하는 것은 서로 상충된다. 조선사설이 유영철의 이번 행각을 `살인기계` 라고 단정 짓고 있는 것은 조선사설이 `범인` 이라고 단정짓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리고 유모씨라는 인간 차제를 조선일보 사설이 `살인기계` 라고 표현하는 것은 잘못됐다고 본다.
(홍재희) ===== 조선사설의 주장대로 유모씨를 `살인기계`로 매도해 버린다면 조선일보가 유모씨가 몸담고 있는 우리사회는 유모씨라는 라는 `살인기계`를 생산해 내는 제품공장? 이라는 말인가? 그건 아니지 않은가? 우리사회는 문제는 많지만 그래도 사람이 사는 사회이다. 그런 측면에서 접근해 볼 때 조선사설이 선정적이고 선동적이며 자극적으로 유영철을 비인간화 하고 비인격화해서 `살인기계` 라고 표현하는 것은 바람직 하지 않다고 본다.
(홍재희) ===== 유모씨가 현재 저주와 증오의 범죄혐의를 받고 있고 스스로 자백하고 있는데 수사결과가 사실로 밝혀진다 해도 모씨는 사람일 뿐이다. 결코 기계일수 없다. 우리가 이 시점에서 분노의 대상으로 삼아야 하는 것은 유모씨의 범죄혐의이지 유모씨 인간 그 자체를 대상으로 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조선사설이 유모씨를 `살인기계` 라고 표현하는 것은 부적절 하다고 본다. 이번 사건의 경우는 수사기법상의 기능적인 측면에서 접근해 볼 때 경찰의 수사에 수많은 허점이 발견되기도 했다. 지능적인 범죄에 응전할 수 있는 지능적인 수사가 필요한 시점이다.
(홍재희) ======= 조선사설은
" 유영철은 고교 2학년 때 절도죄로 수감된 이래 14차례 체포돼 모두 7년 동안 사회와 격리돼 살았다. 절도나 협박 행각 말고는 제대로 된 사회인으로 정상적 생활을 꾸려본 적이 거의 없다. 그는 자기 처지가 부자들 탓이라는 눈먼 적개심을 품었고, 수감 중 아내에게 이혼당한 뒤 여자를 혐오하게 돼 부유한 노인과 출장마사지 여성들을 표적으로 삼았다고 한다. "
(홍재희) ======= 라고 주장하고 있다. 유모씨라는 개인의 불우한 환경이 정상적으로 사회에 적응을 불가능하게 하는 하나의 조건일수는 있어도 충분조건일수는 없다고 본다. 그것은 곧 유모씨의 범죄혐의가 수사를 통해서 사실로 밝혀질 경우 정당화 해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본다. 그러나 유모씨라는 개인이 태어날 때부터 지니고 있었던 것으로 추론 가능한 앓고 있었던 지병이라든가 사회적 약자로서 정상적인 사회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소외될 수밖에 없었던 구조를 우리한국사회가 는 만들어 놓은 측면을 간과할 수 없기 때문에 사회적 책임 또한 피해갈 수 없다고 본다.
(홍재희) =====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사회는 아직까지는 정치인들의 선거 공약과 교과서에서만 존재하고 반칙과 특권에 의해 형성된 사회적 구조 속에서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페자부할전이 허용되는 일종의 배려? 가 숨쉴 공간은 거의 찾기 힘들다. 유모씨도 그런 사회적 약자들이 숨쉴 공간과 함께 사회에 동승할 수 있는 기회를 상실 하자 그로 인한 좌절과 박탈감 그리고 절망감이 끔찍한 범죄혐의로 직결됐다고 볼수 있다.
(홍재희) ====== 조선사설은
" 이번 연쇄살인은 파탄난 한 인간이 자신의 불행을 막연하게 남의 탓, 구조 탓으로 돌리는 데서 빚어진 범죄였다는 점에서 모든 탓을 밖으로만 돌리려 하는 것 같은 요즘 사회 분위기가 걱정스럽기도 하다. "
(홍재희) ========= 라고 주장하고 있다. 유모씨가 받고 있는 끔찍한 범죄혐의는 개인적으로 자초한 측면이 다분히 있다. 그러나 조선사설의 주장과 같이 유모씨 개인의 파탄 난 한인간의 불행으로만 치부하기엔 우리사회가 껴안고 보듬어 주지 못한 책임 또한 대단히 크다고 본다. 지금까지 알려진 유모씨의 가정환경이나 주변 신상에 대한 내용을 살펴보면 특히 유모씨가 앓고 있는 지병의 심각성은 주변의 보살핌과 국가적 차원에서 사회적 차원에서 그의 아픔에 대한 인도주의적인 접근과 사회적인 이해 그리고 지속적인 관심과 함께 적절한 치료와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프로그램의 제공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조선사설은 그 점에 대해서는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고 유모씨 개인의 파탄난 불행으로 만 치부하고 있다.
(홍재희) ====== 유모씨의 끔찍한 범죄혐의에 대해서 조선사설과 같이 개인의 파탄난 불행으로 치부하면서 마치 도마뱀 꼬리 자르기식의 경솔한 접근을 하고 만 다면 우리사회에서 또 다시 그런 불행의 씨앗은 계속 싹틀 수밖에 없다. 이 문제는 조선사설의 주장과 같이 결코 유모씨 개인의 파탄난 불행만으로 치부하고 넘길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이번 사건은 조선일보가 살아숨쉬고 있는 건강하지 못한 우리사회가 파생시킨 것이지 하늘에서 떨어진 별개의 사건이 아니고 띵속 에서 솟아오른 별개의 우리사회와 전혀 무관한 사건이 아니다. 사회적인 문제로 접근해야할 필요성이 있다.
(홍재희) ====== 그리고 유모씨가 앓고 있다는 지병에 대해서 배척하고 터부시하고 쉬쉬하며 숨기고 하는 우리 사회의 이제까지의 관행과 인식이 바뀌어야 하고 동시에 따뜻한 포용이 필요 하다고 본다. 유모씨 개인의 힘으로 짊어지고 가기에는 너무 버거운 지병을 안고 평생을 살아가야만 하는 그이 어깨에 무겁게 실린 사회적 편견과 질시와 배타가 그를 비극적 삶의 질곡 속으로 몰아넣은 측면은 없었는지에 대해서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홍재희) ====== 그런측면에서 접근해 볼 때 우리사회의 이타적 관심이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우리사회의 내면적 성찰과 문명적 자성이 필요하다고 본다. 사람은 어느 누구에게나 절망적인 병에 걸릴 가능성이 있을수 있다. 문제는 아무리 절망적인 병에 걸렸다해도 그 당사자에게 가족이나 이웃 사회나 국가등이 어떤 가능성을 전해주고 보듬어 주는 노력을 기울였다면 그 절망은 결코 좌절과 증오 와 끔찍한 범죄로 직결되지 않을수도 있었을 것이다. 우리사회는 그러한 가능성에 대해서 너무 무관심 하지 않았나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하겠다.
(홍재희) ====== 그러한 관심에도 불구하고 그 사회적 관심의 대상인 개인이 절망에 빠졌다면 그것은 그 개인의 대상과 가족 그리고 이웃이나 사회 국가공동체의 힘으로도 어쩔수 없는 그 개인의 불행일 뿐이다. 그러나 우리사회는 현재 나타나고 있는 범죄혐의의 주인공인 유모씨 개인의 파탄난 불행으로 돌리기에는 너무도 아쉬운 우리사회의 무관심이 그를 오늘의 비극적인 사건의 중심에 자리잡게 하지 않았나 하는 문제도 지적될수 있다. 조선일보 오늘자 사설은 그러한 문제에 대해서 이해가 부족한 듯하다. 고통받고 소외된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삐뚤어지지않은 올바른 관심에 우리사회가 어느정도 가까이 다가가고 있는지 를 반문해 보며 우리사회의 올바르고 열린 시각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본다.
[사설] 살인기계와 함께 섞여 사는 사회 (조선일보 2004년 7월19일자)
어제 경찰이 발표한 희대의 연쇄살인 용의자 유영철의 살인행각은 끔찍하게 혐오스럽고 참담하도록 절망적이지만 그 어떤 감정들보다 공포심이 앞선다. 이 30대 사내는 지난해 9월 이래 확인된 것만 19명을 살해했다고 하니 한 달에 두 명꼴로 사람을 죽인 셈이다. 사람을 물건으로 보지 않고서야, 살인을 무심한 일상사로 여기지 않고서야 저지를 수 없는 짓이다.
희생자들은 외부 사람 눈에 잘 띄지 않는 호젓한 단독주택에 사는 노인들이거나 출장마사지 등에 나선 불우한 여자들이었다. 살인자와는 아무런 개인적 연고나 원한관계도 없고 광기어린 살인에 맞설 힘도 없는 애꿎고 연약한 사람들이었다. 아무나 무차별로 덮치는 이런 이상(異常)범죄와 증오범죄를 성한 사람인들 어떻게 막아내겠는가.
유영철은 범행 대상을 물색하러 주택가를 돌며 노인들이 사는 집을 살피고 다녔다 한다. 토막낸 여자들의 시신을 검은 비닐로 싸서 수십 차례 택시를 타고 다니며 서울시내 야산에 묻었다고 한다. 소름돋는 일이다.
우리 중의 여럿이 사람의 마음을 잃어버린 이 살인기계와 섞여 살면서 어느날 무심코 그를 지나쳤을지 모를 일이다. 우연히 잡힌 그가 연쇄살인을 술술 털어놓기 전까지 경찰이 했던 일, 할 수 있었던 일도 별로 없었으니 나라의 치안에 기댈 수도 없다.
유영철은 고교 2학년 때 절도죄로 수감된 이래 14차례 체포돼 모두 7년 동안 사회와 격리돼 살았다. 절도나 협박 행각 말고는 제대로 된 사회인으로 정상적 생활을 꾸려본 적이 거의 없다. 그는 자기 처지가 부자들 탓이라는 눈먼 적개심을 품었고, 수감 중 아내에게 이혼당한 뒤 여자를 혐오하게 돼 부유한 노인과 출장마사지 여성들을 표적으로 삼았다고 한다.
이번 연쇄살인은 파탄난 한 인간이 자신의 불행을 막연하게 남의 탓, 구조 탓으로 돌리는 데서 빚어진 범죄였다는 점에서 모든 탓을 밖으로만 돌리려 하는 것 같은 요즘 사회 분위기가 걱정스럽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