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가 김팔봉은 `대한일보`에 기고한 <일제 암흑기의
문단>이란 글에서 춘원 이광수와 만나 나눈 대화를
이렇게 공개했습니다.
"잠들기 전에 내가 춘원한테 물어봤다.
"애기를 들으니까, 춘원이 경성일보에도 `조선놈의
이마빡을 찌르면 일본 피가 나올 만큼 조선인을 일본
정신을 가져야한다"고 썼기 때문에
얼마후 현상윤씨가 춘원을 보고
`여보게 조선놈의 이마빡에서
어떻게 일본놈의 피가 쏟아진단 말인가"
하니까 춘원이 아무 대꾸도 못하더라고....
그리고 그가 하는 말이 "지금 우리가 일본인이
꼭 믿도록 생활태도를 갖고서 속으로
실력만 준비하면, 조선민족은 일본민족보다
우수해서 1:1로 겨루면 일본인을 이깁니다."
새삼 언급할 필요도 없지만, 당대 최고의 지성이었던
춘원 이광수가 고작 이런 잠꼬대같은 몽상적 사고를
했다는 게 부끄러워집니다. 친일 행위에 대한 궤변이라
고 몰아부치기엔, 그의 발언에 담긴 당시 지식인의
기회주의적 속성이 너무나 분명하게 드러나보입니다.
광복절을 앞두고, 또다시 친일파 논쟁이 습관처럼
대두되고 있습니다. 국회의원들은 민족정기를 다시
세우는 모임을 만든다고 호들갑이고, 어떤 민족연구소
에선 친일파 인명사전을 제작했다는 소식도 들립니다.
해방 이후 친일파 청산을 제대로 이뤄내지 못한
업보가 50여년이 넘도록 우리 사회에 유령처럼
떠돕니다. 역사에 씻을 수 없는 잘못을 했더라도
권력만 있으면, 돈만 있으면 끄떡없이 살아남을 수
있는, 부도덕과 무원칙이 판치는 세상을 결국 만들어
냈을 뿐입니다.
아프고 힘들지만, 과감하고 깨끗하게 도려내지
못했을 때, 그 상처는 끊임없이 우리 살 속에 남아
염증을 만들어낸다는 걸 우리 현대사가 준엄하게
증명하고 있음을, 광복절을 하루 앞둔 오늘
또다시 되새겨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