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北朝鮮(북조선), 深刻食糧難(심각식량난)…危機的(위기적)인 經濟事情(경제사정)
脫北男性證言(탈북남성증언) 路上(노상)에 餓死者(아사자), 浮浪兒(부랑아)도
「農地改革(농지개혁)」 農民(농민), 收穫物(수확물) 「納稅(납세)」에 不安(불안)
産經新聞(산케이신문) 2004年7月11日 朝刊(조간)
慢性的(만성적)인 食糧難(식량난)이 指摘(지적)되는 北朝鮮(북조선) 地方都市(지방도시)의 經濟事情(경제사정)은 2004年4月-5月의 時點(시점)에, 近年(근년) 보기 드문 危機的(위기적) 狀態(상태)에 빠져 있는 것이 7月10日, 脫北(탈북)한 北朝鮮 男性(남성·34) 의 證言(증언) 등으로 알려졌다.
男性은 NGO(Nongovernmental Organization) 「救(구)하라! 北朝鮮의 民衆(민중)/緊急行動(긴급행동) 네트워크(network)」[RENK(Rescue The North Korean People! Urgent Action Network), 代表(대표) 李英和(이영화) 關西大(간사이대) 助敎授(조교수)]에 現地(현지)의 映像(영상)을 提供(제공)함과 함께 惡化(악화)된 經濟狀態(경제상태)를 報告(보고). 路上(노상)에는 餓死者(아사자)나 길가에 쓰러진 사람, 浮浪兒(부랑아)의 모습이 다시 눈에 띄기 始作(시작)하고 있다고 한다.
RENK가 이 男性으로부터 入手(입수)한 映像 등은, 北朝鮮 北東部(북동부), 淸津市(청진시) 周邊(주변)에서 撮影(촬영)된 것. 男性은 5月末, 中國으로 脫出(탈출)했다. 男性의 證言 등에 의하면, 路上에는 길가에 쓰러진 住民(주민)의 死體(사체)가 放置(방치)된 狀態(상태)이며, 쓰레기場(장)을 찾아다니는 住民의 모습이 눈에 띈다. 映像에서도 路上의 死體 옆을 無視(무시)하며 通過(통과)하는 警察官(경찰관)의 모습이 비추어지고 있다.
市場(시장)[闇市場(암시장)]에서 팔리는 쌀의 價格(가격)은 2003年12月의 1kg=180원으로부터 2004年4月에는 1kg=400원까지 上昇(상승)했다고 한다.
李 助敎授에 의하면, 이러한 事態에 北朝鮮 當局(당국)은 2004年3月부터 「農地改革(농지개혁)」[土地改革(토지개혁)]을 施行(시행)하기 始作했다. 配給(배급)을 멈추는 代身(대신)에, 農民(농민)에게 土地(토지)를 1年間(간) 提供(제공)해, 가을에 收穫物(수확물)의 一部(일부)를 稅(세)로서 나라에 納入(납입)하게 하는 것이 目的(목적)이지만, 農民 사이에서는 『收穫物이 얼마나 搾取(착취)되는지 알 수 없다』라며 不安(불안)이 퍼지고 있다.
그리고, 北朝鮮 當局은 農民 뿐만이 아니라, 工場勞動者(공장노동자)에게도 職場單位(직장단위)로 土地를 提供해, 農業(농업)에 從事(종사)시키기로 했다. 地方都市에는 未稼動(미가동)의 工場(공장)이 많아, 「遊休勞動力(유휴노동력)」에 눈길을 준 것이지만, 荒蕪地(황무지)를 갈고, 種子(종자)나 肥料(비료), 農機具(농기구)는 스스로 調達(조달)하지 않으면 안되어, 收穫物이 얼마나 手中(수중)에 남을지 豫想(예상)할 수 없기 때문에, 農作業(농작업)[농사일]을 眞摯(진지)하게 행하는 工場勞動者는 적다.
脫北男性(탈북남성)에 의하면, 住民들은 市場에서의 장사에 熱心(열심)이며, 장사 솜씨가 있는 사람만이 어떻게든 먹고 살 수 있는 狀態이므로, 그 以外(이외)는 「죽을 훌쩍거리면서 쓰레기의 山(산)을 찾아다니는 生活(생활)」.
北朝鮮은 1990年代 後半(후반)에 大飢饉(대기근)이 있어, 大量(대량)의 餓死者가 나오는 등 經濟狀態가 極端的(극단적)으로 惡化(악화)되었지만, 2004年은 이것을 견디기 어렵다. 中國으로부터 公式貿易(공식무역)으로 들어오고 있던 쌀도 3月 下旬(하순)부터 「凶作(흉작)」을 理由(이유)로 멈춰, 平壤(평양)에서도 4月1日, 一部에서 配給이 停止(정지)되었다고 한다.
이 後(후), 金正日(김정일) 總書記(총서기)의 움직임이 奔走(분주)하게 되었다. 4月19日에 中國을 電擊訪問(전격방문)해, 20萬 톤의 食糧支援(식량지원)을 얻어냈고, 5月22日에는 小泉純一郞(고이즈미 준이치로) 首相(수상)과의 日·北 首腦會談(수뇌회담)에도 應(응)해, 食糧(식량) 25萬 톤 등 人道支援(인도지원)의 約束(약속)을 얻어냈다.
李 助敎授는 『北朝鮮의 各地(각지)에서는 食糧難 때문에 一般住民(일반주민) 뿐만이 아니라, 金正日 政權(정권)을 떠받치는 秘密警察(비밀경찰) 등의 不滿(불만)도 늘어나고 있어, 時急(시급)하게 各國(각국)이나 國際機關(국제기관)으로부터 食糧支援을 받지 않으면, 體制(체제)의 崩壞(붕괴)로 이어질 可能性(가능성)도 있다』라고 指摘하고 있다.
http://www.sankei.co.jp/databox/n_korea/index.html
● 北朝鮮(북조선), 人民保安相(인민보안상)을 解任(해임)
産經新聞(산케이신문) 2004年7月11日 朝刊(조간)
[서울=久保田るり子] 7月10日의 朝鮮中央放送(조선중앙방송)에 의하면, 北朝鮮(북조선)의 警察省(경찰성)에 相當(상당)하는 人民保安省(인민보안성)의 崔龍洙(최룡수) 人民保安相(인민보안상)이 解任(해임)되어, 後任(후임)에 朱相成(주상성)[朱祥誠]이 任命(임명)되었다. 最高人民會議常任委員會(최고인민회의상임위원회)의 政令(정령)으로 發表(발표)되었다.
解任된 崔龍洙는 2003年7月1日字(자)로 人民保安相에 任命되었으며, 2003年8月의 第11期(제11기) 最高人民會議代議員選擧(최고인민회의대의원선거)[國會議員(국회의원)에 相當]에서 當選(당선). 2003年9月의 最高人民會議(최고인민회의)에서 朴奉珠(박봉주)를 首相(수상)으로 하는 內閣(내각)의 人民保安相에 再選(재선), 國防委員(국방위원), 最高人民會議法制委員長(최고인민회의법제위원장)에 選出(선출)되어 있었다.
解任의 理由(이유)는 分明(분명)하지 않지만, 人民保安省이 治安(치안)·警察部門(경찰부문)에서 交通(교통)도 管轄(관할)에 넣고 있기 때문에, 2004年4月의 平安北道(평안북도) 龍川驛(룡천역) 列車爆發事故(열차폭발사고)와의 關連(관련) 可能性(가능성)을 指摘(지적)하는 分析(분석)이나, 人民保安省이 國內(국내) 安否不明者(안부불명자)의 搜索(수색)을 擔當(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日本人 安否不明者와 關連되어 있는 것이라는 觀測(관측)도 나와 있다.
한편, 서울의 北朝鮮에 밝은 情報通(정보통)은 『引責(인책)에 의한 更迭(경질)이나 政治的(정치적) 理由에 의한 解任의 경우는 公式報道(공식보도)는 행해지지 않는다』라고 指摘, 健康上(건강상)의 理由 등에 의한 人事(인사)가 아닌가 라고 말하고 있다.
新任(신임) 朱相成은, 1998年에 最高人民會議代議員選擧에서 當選. 2003年 同(동) 代議員選擧(대의원선거)에서는 候補者(후보자)로 選擇(선택)되지 않았다.
北朝鮮은 列車事故(열차사고)는 頻發(빈발)하고 있었다고 여겨지지만, 지금까지는 事故(사고) 그 自體(자체)가 公表(공표)되어 오지 않았기 때문에, 事故의 引責人事(인책인사)도 確認(확인)되어 있지 않다.
http://www.sankei.co.jp/databox/n_korea/index.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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