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金正日(김정일)에게 아양떠는 韓國의 親北左翼(친북좌익)
● 大韓機爆破事件(대한기폭파사건), 韓國 謀略說(모략설)이 다시한번 浮上(부상)
「親北(친북)」 與黨(여당), 眞相究明(진상구명) 要求(요구)하다
産經新聞(산케이신문) 2004年7月7日 朝刊(조간)
[서울=黑田勝弘] 韓國에서는 北朝鮮(북조선)으로부터 보내진 武裝(무장) 게릴라(guerrilla)나 스파이(spy)까지 政府機關(정부기관)이 「民主化(민주화)의 功勞者(공로자)」라고 認定(인정)하는 등, 左翼化(좌익화)와 親北朝鮮的(친북조선적)인 雰圍氣(분위기)가 퍼지고 있지만, 이번에는 1987年의 北朝鮮 工作員(공작원)에 의한 大韓航空機爆破事件(대한항공기폭파사건)도 韓國의 情報機關(정보기관)에 의한 謀略(모략)의 疑心(의심)이 있다고 하여, 政權與黨(정권여당)이 「眞相硏明(진상구명)」에 나서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事件(사건)에 대해서는 當時(당시), 北朝鮮이 責任(책임) 피하기를 위해 「韓國 政府(정부)에 의한 捏造(날조)」, 「[實行犯(실행범)이었던] 金賢姬(김현희)는 韓國 情報機關의 앞잡이」등이라고 하는 이른바 疑惑說(의혹설)을 大大的(대대적)으로 宣傳(선전)했지만, 너무나 荒唐無稽(황당무계)하기 때문에 國際的(국제적)으로 비웃음거리가 되어 相對(상대)되지 못했다고 하는 經緯(경위)가 있다.
그런데, 韓國에서는 金大中(김대중)-盧武鉉(노무현) 政權下(정권하)에서 左翼(좌익)이나 親北朝鮮勢力(친북조선세력)의 影響力(영향력)이 강해지는 가운데 「疑惑說」이 亡靈(망령)과 같이 登場(등장)해, 매스컴(masscom) 등에서 眞摯(진지)하게 다루어지게 되었다.
이것을 主導(주도)하고 있는 것은 一部(일부)의 遺族(유족)과 「過去否定(과거부정)」에 열을 올리고 있는 TV나 市民團體(시민단체) 등 이지만, 與黨(여당)인 우리黨(당)까지도 最近(최근), 事件(사건)의 犧牲者(희생자)[乘客(승객)·乘員(승원) 150명]를 「國家權力(국가권력)의 不當(부당)한 行爲(행위)에 의한 疑問死(의문사)」라며 立法措置(입법조치)에 의한 「眞相硏明」을 主張(주장)하기 始作(시작)했다.
이것에 대해 지금까지 「疑惑說·謀略說(모략설)은 小說(소설)과 같은 픽션(fiction)」이라며 相對(상대)해 오지 않았던 情報機關 「國家情報院(국가정보원)」은 「경우에 따라서는 犯人(범인) 金賢姬에게 再證言(재증언)시켜도 괜찮다」라고 積極的(적극적)으로 反論(반론)한다는 方針(방침)이라고 한다.
情報機關으로서는 『疑惑說이야말로 事件의 眞相(진상)을 隱蔽(은폐)하려고 하는 歷史歪曲(역사왜곡)이며, 北朝鮮의 國家테러(국가TERROR)에 免罪符(면죄부)를 주는 것이다. 國家와 情報機關의 名譽(명예)를 걸고 許諾(허락)할 수 없다』[國家情報院 關係者(관계자)] 라고 한다.
그러나, 「再調査(재조사)」가 되었을 경우, 事件의 眞相을 둘러싸고 다시한번 北朝鮮의 國家테러의 實態(실태)가 論議(논의)의 對象(대상)이 된다. 특히 「事件은 金正日(김정일)의 指令(지령)」이라고 하는 金賢姬의 證言(증언)[法廷(법정)에서도 確認(확인)]이 다시한번, 話題(화제)가 된다. 이것은 疑惑說을 主張하고 있는 親北朝鮮勢力이나 「北을 刺戟(자극)해선 안된다」라며 對北融和策(대북융화책)을 취하고 있는 政權(정권)·與黨에 있어서는 進退兩難(진퇴양난)이다.
그리고, 金正日 自身(자신)이 2002年 小泉(고이즈미)[小泉純一郞(고이즈미 준이치로)] 首相(수상)과의 會談(회담)때 日本人拉致事件(일본인납치사건)과 關連(관련)해, 金賢姬에게 北朝鮮에서 日本語(일본어) 등을 가르친 「李恩惠(이은혜)」라는 田口八重子(다구치 야에코)氏의 存在(존재)를 認定하는 發言(발언)을 하고 있다. 이 때문에 『實際(실제)로 公的(공적)인 再調査를 할지 어떨지는 不透明(불투명)』[政界(정계) 消息通(소식통)] 이라는 見解(견해)도 있다.
事件은 日本 旅券(여권)을 가진 日本人으로 僞裝(위장)한 大規模(대규모) 테러였다. 拉致事件(납치사건)과도 間接的(간접적)으로 關係(관계)되어 있다. 事件의 眞相을 無理(무리)하게 뒤집으려고 하는 韓國內(한국내)에서의 「때 아닌 疑惑(의혹)·謀略說」은 日本으로서도 神經(신경)이 쓰이는 것이다. (07/07)
http://ww.sankei.co.jp/databox/n_korea/index.html
● 「87년 KAL폭파」 국내서 조작의혹 제기 논란
北도 「이은혜 존재」 시인했는데…
조선일보 2004년7월6일 18:26
지난 87년 KAL(대한항공)기 폭파 사건으로 북한은 미국의 테러지원국 리스트에 올랐다.
북한은 그후 테러지원국 리스트에서 빠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난 5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요도호 납치범을 송환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힌 것도 그 일환이다. 그러나 테러 피해국인 우리 국내에선 KAL기 폭파가 조작이라는 의혹이 제기돼 TV방송이 특집을 방영하는 등 논란이 되고 있다.
북한은 그 동안 이 사건을 부인하다가 2002년 9월 고이즈미 일본 총리가 평양을 방문했을 때, 이 사건의 책임이 자신들에게 있음을 간접적으로 시인했다. 당시 북한 당국이 KAL기 폭파범 김현희의 일본어 교사였던 이은혜(일본명 다구치 야에코·田口八重子)가 납치된 사실을 시인한 것이다. 그동안 이은혜의 존재를 증언한 사람은 김현희 한 명뿐이었으므로, 북한의 이은혜 납치 시인은 김현희가 북한의 공작원임을 입증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87년 11월 29일 115명의 승객과 승무원이 탄 KAL기가 폭파되고 김현희 등 범인이 중동국에 의해 체포되자 조지 슐츠 미 국무장관은 사건발생 50일 만인 88년 1월 20일 KAL기 테러에 대한 제재조치로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했다. 미국은 이때부터 북한의 테러지원국 명단 해제를 위한 조건으로 ▲일본인 납치사건 해결 ▲요도호 납치범 일본 송환 ▲대한항공 폭파사건 사과 ▲테러반대 공개선언 ▲모든 반(反)테러협약 가입 등을 요구해왔다.
이하원 기자
■ 小泉(고이즈미) 首相(수상)에게 아양떠는 金正日(김정일)
● 北朝鮮(북조선), 金正日(김정일)의 小泉(고이즈미) 依支(의지)
朝日新聞(아사히신문) 社說(사설) 2004年7月7日
日本과의 사이의 懸案(현안)에서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움직일 것이다. 그런 印象(인상)을 주는 北朝鮮(북조선)의 姿勢(자세)가 눈에 띄고 있다.
曾我ひとみ(소가 히토미)氏와 北朝鮮에 있는 남편 前 美國 兵士(병사) 젠킨스(Charles Robert Jenkins)氏나 딸 2명의 一家(일가) 4명이, 7月9日에 자카르타(Jakarta)에서 1年9개月만에 再會(재회)한다.
第三國(제3국)에서의 早期再會實現(조기재회실현)을 要求(요구)한 日本의 要求에 北朝鮮이 應(응)한 것이지만, 그 協力(협력) 모습은, 細田(호소다)[細田博之(호소다 히로유키)] 官房長官(관방장관)이 『北朝鮮 政府(정부)에서 努力(노력)해 주셔서, 時期(시기)가 豫想以上(예상이상)으로 앞당겨졌다』라고 感謝(감사)했을 정도다.
한편, 北朝鮮에 사는 日航機(일항기) 「よど號(요도호)」 奪取犯(탈취범)의 나머지 4명이 歸國(귀국)할 수 있도록, 北朝鮮 政府에 도움을 要求(요구)하는 便紙(편지)를 보냈다. 그것을 傳(전)한 國營(국영) 通信社(통신사)는 「우리는 歸國에 反對(반대)하지 않는다」라고 論評(논평)했다. 4명의 引渡(인도)도, 미리 일본이 要求해 온 것이다.
모두 日本側(일본측)의 要求에 理由(이유)가 있어, 北朝鮮이 거기에 當然(당연) 應해야 한다는 것은 말할 必要도 없다. 하지만, 이 時期의 이러한 움직임에는 그 나름대로 意味(의미)가 있을 것이다.
열쇠는, 5월의 小泉(고이즈미)[小泉純一郞(고이즈미 준이치로)] 首相(수상)의 再訪北(재방북)이 틀림없다. 金正日(김정일) 總書記(총서기)와의 會談(회담)에서도 國交正常化(국교정상화)에 강한 意慾(의욕)을 나타낸 首相은, 自民黨總裁(자민당총재)로서의 任期(임기)가 다 될 때까지의 2年은 커녕, 最近(최근)에는, 正常化(정상화)를 「1年 안에 할 수 있으면」이라고, 서두르는 姿勢를 보이고 있다.
어쨌든 國交正常化를 빨리 達成(달성)해, 日本으로부터의 大規模(대규모) 經濟支援(경제지원)을 갖고 싶다. 그렇게 생각하는 金氏에게 있어, 首相의 價値(가치)는 대단히 클 것이다.
美國과의 關係를 打開(타개)하는데도, 부시(George W. Bush) 美 大統領과 緊密(긴밀)한 首相의 役割(역할)에 期待(기대)하고 있을 것임에 틀림없다.
首相은 6月의 日·美 會談에서, 北朝鮮의 核(핵)을 둘러싼 6者 協議(협의)에서 美國 自身(자신)의 解決案(해결안)을 내놓아, 北朝鮮을 試驗(시험)하는게 어떤가 라고 大統領을 說得(설득)했다고 한다. 그것이 얼마만큼 效果(효과)가 있었는지 確實(확실)치 않지만, 美 政府는 그 後의 6者 協議에서, 처음으로 包括的(포괄적)인 提案(제안)을 했다. 이것에 대해서, 北朝鮮은 一定(일정)한 評價(평가)를 했다. 美·北이 原則(원칙)을 바꾼 것은 아니지만, 協議의 雰圍氣(분위기)는 分明(분명)하게 積極的(적극적)으로 바뀌었다.
그 小泉 首相은 지금 參議院選擧(참의원선거)에 매달려 있다. 北朝鮮에 있어, 小泉 政權(정권)이 흔들리거나, 或是(혹시)라도 首相이 바뀌는 結果(결과)는 피하고 싶을 것이다. 民主黨(민주당)의 對北朝鮮姿勢(대북조선자세)는 보다 强硬(강경)하다. 그러므로, 投票日(투표일)을 겨냥해, 首相에 있어 잘 되라고 하는 사인(sign)을 보냈다고 생각하는 것도, 無理(무리) 라고는 말할 수 없다.
北朝鮮에서는, 美國의 테러支援國指定(TERROR지원국지정)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도, 拉致(납치)나 奪取犯 問題(문제)의 進展(진전)을 印象시키는 속셈이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北朝鮮이 크게 바뀌었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曾我(소가)氏의 家族再會(가족재회)도, 「よど號」의 件(건)도, 그다지 어려운 決斷(결단)은 必要(필요)하지 않다. 그러나, 安否不明(안부불명)의 拉致被害者(납치피해자) 10명에 관한 眞相(진상)의 究明(구명)이 되면, 그렇게 容易(용이)한 일일리 없다.
小泉 首相의 北朝鮮政策(북조선정책)에는 여러가지 批判(비판)이 있다. 하지만, 北朝鮮의 강한 關心(관심)을 끌어당겨 日·北 사이의 外交(외교)에 그만한 土臺(토대)를 만들었던 것은 評價(평가)할 수 있다. 問題는 다음에 北朝鮮을 어떻게 움직일 수 있는가 이다.
http://www.asahi.com/paper/editorial20040707.html
● 北朝鮮(북조선), よど號犯(요도호범)의 歸國容認(귀국용인)
네 容疑者(용의자)가 要請(요청)
産經新聞(산케이신문) 2004年7月6日 朝刊(조간)
[서울=久保田るり子] 北朝鮮(북조선)의 朝鮮中央放送(조선중앙방송)은 7月5日, 1970年3月의 「よど號(요도호)」 奪取事件(탈취사건)의 犯人(범인), 前 赤軍派(적군파) 멤버(member)들이 北朝鮮 政府(정부)에 「日本에 歸國(귀국)할 수 있도록 協力(협력)해 주었으면 한다」라고 要請(요청)하는 便紙(편지)를 보내 왔다고 보도(報道)해 「우리 쪽은 그들이 自身(자신)의 祖國(조국)에 돌아간다고 했던 것에 反對(반대)하지 않는다」라고 歸國을 認定(인정)한다는 方針(방침)을 傳(전)했다.
北朝鮮側(북조선측)의 曾我ひとみ(소가 히토미)氏 一家(일가)의 인도네시아에서의 面會決定(면회결정)에 이어진, 「よど號」 멤버의 「편지」 報道는, 對日關係(대일관계)의 改善(개선)을 향한 北朝鮮側의 意思表示(의사표시)로 보여진다.
歸國表明(귀국표명)한 사람은, 小西隆裕(고니시 다카히로) 容疑者(용의자)[國外移送略取容疑(국외이송약취용의) 등으로 國際手配(국제수배)]를 비롯해, 赤木志郞(아카기 시로), 若林盛亮(와카바야시 모리아키), 魚本公博(우오모토 기미히로)[舊姓(구성) 安部(아베)]의 네 容疑者.
北朝鮮의 報道에 의하면, 「よど號」 犯人 멤버는 便紙로 家族(가족)의 大部分(대부분)이 日本에 歸國해 『더 이상 남을 必要(필요)가 없어졌다』라며, 『日本 政府의 關係者(관계자)와 直接(직접) 만나 歸國問題(귀국문제)를 討議(토의)할 수 있도록 支援(지원)해 주었으면 한다』라고 要求(요구)했다고 한다.
이것에 대해, 報道는 北朝鮮 政府의 立場(입장)을 『「よど號」 問題는 어디까지나 日本 政府와 前 赤軍派 멤버들 사이에 直接協議(직접협의), 解決(해결)해야 할 日本人들의 內部問題(내부문제)』라며 歸國을 認定한다는 方針을 나타냈다.
4명은 이미 2002年7月, 警視廳(경시청)에 의한 逮捕(체포)를 覺悟(각오)하고 歸國의 希望(희망)을 關係者에게 傳하고 있다. 이번에는 「便紙」에 의한 멤버로부터의 要請이라고 하는 形態(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歸國問題는 北朝鮮側의 政治判斷(정치판단)에 달려 있었다. 5月 小泉純一郞(고이즈미 준이치로) 首相(수상)과 金正日(김정일) 總書記(총서기)의 日·北 首腦會談(수뇌회담)에서도 日本側(일본측)은 「よど號」 멤버 引渡(인도)를 要求하고 있었다.
「よど號」 멤버 歸國에의 北朝鮮 政府의 「協力」은 日·北 사이의 懸案解消(현안해소)의 一環(일환) 뿐만이 아니라, 美國의 「테러支援國家(TERROR지원국가)」 指定解除(지정해제)의 條件(조건)이기도 하기 때문에, 國際輿論(국제여론)에의 戰術(전술)도 있다고 보여진다.
* よど號事件(요도호사건) = 1970年3月31日, 武裝(무장)한 赤軍派 멤버 9명이, 羽田發(하네다발) 福岡行(후쿠오카행)의 日航機(일항기) 「よど號」를 奪取(탈취)해, 乘客承員(승객승원) 合計 129명을 人質(인질)로 해서 北朝鮮으로 넘어간 日本 最初(최초)의 하이잭(hijack) 事件. 9명은 國外移送目的略取容疑(국외이송목적약취용의) 등으로 國際手配되었지만, 田宮高○(다미야 다카마로) 幹部(간부) 등 3명은 死亡(사망), 2명은 貴國해서 逮捕되어 有罪判決(유죄판결)을 받았다. 現在(현재), 北朝鮮에 남아 있는 사람은 4명.
○=床+木+呂, まろ(마로) [日本國字(일본국자)]
http://www.sankei.co.jp/news/040706/morning/06iti003.htm
● よど號(요도호범) 歸國容認(귀국용인) 事實上(사실상)의 强制退去(강제퇴거)인가
公安當局分析(공안당국분석), 北 「일본에 빌려주기」 노려
産經新聞(산케이신문) 2004年7月6日 朝刊(조간)
「よど號(요도호)」 奪取(탈취) 멤버(member)가 日本에의 歸國(귀국)을 향한 協力(협력)을 北朝鮮(북조선) 政府(정부)에 要請(요청)했던 것에 대해, 日本의 公安當局者(공안당국자)는 『形式的(형식적)으로는 멤버側(측)의 意向(의향)이라고 하지만, 北朝鮮의 國家意思(국가의사)에 의한 事實上(사실상)의 强制退去(강제퇴거)가 아닌가』라고 分析(분석)하고 있다.
よど號 멤버는 지금까지도 日本 政府 關係者(관계자)이나 支援者(지원자)들에게 歸國의 意思(의사)를 나타내 왔지만, 일본에 있는 支援者에 의하면, 北朝鮮 政府에의 公式的(공식적)인 要請은 처음. 이번 要請은 北朝鮮의 官製(관제) 미디어(media)를 통해서 發表(발표)되어, 멤버와 連絡(연락)을 주고받아 온 日本의 家族(가족)이나 支援者들에게는 事前(사전)에 알리지 않아, 關係者들도 놀랐다고 한다.
支援者는 『歸國하는 것은 自由意思(자유의사)이지만, 國外(국외)에의 强制退去나 日本에의 身柄引渡(신병인도)는, 金日成(김일성) 主席(주석)이 맞이한 손님을 내쫓게 되어, 北朝鮮(북조선)의 體面(체면)을 걸고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보고 있었다.
公安當局者는 「事實上의 强制退去」라고 分析하는 理由(이유)로서 (1) 테러리스트인 よど號 멤버에의 保護(보호)를 그만두어 美國에 의한 테러支援國家指定(TERROR지원국가지정)의 根據(근거)를 줄인다 (2) 5月의 小泉純一郞(고이즈미 준이치로) 首相(수상)의 訪北時(방북시), 首相으로부터 直接要請(직접요청)된 멤버의 引渡에 應(응)함으로써 日本側(일본측)에 「빌려주기」를 만든다 라는 2개의 속셈이 있다고 보고 있다.
한편, 魚本公博(우오모토 기미히로)[舊姓(구성) 安部(아베)] 容疑者(용의자)가 有本惠子(아리모토 게이코)[當時(당시) 23세]氏 拉致事件(납치사건)에 關與(관여)했다 라며, 結婚目的誘拐容疑(결혼목적유괴용의)로 國際手配(국제수배)되는 등, よど號 멤버에게는 拉致事件에의 關與容疑(관여용의)도 강해지고 있다. 搜査當局(수사당국)은 그룹(group)이 歸國하는 대로, 各各(각각)의 용의로 迅速(신속)하게 逮捕(체포)한다는 方針(방침)이다.
よど號 그룹에 의한 拉致實行(납치실행)은 北朝鮮 機關(기관)과의 連携(연휴)[提携(제휴)]·指揮(지휘)로 행해졌다고 보여지고 있다. 公安當局者는 『그룹의 日本 歸國은 北朝鮮에 있어 「拉致事件은 北朝鮮의 國家犯罪(국가범죄)」라고 하는 事實(사실)을 證明(증명)할 수도 있는 賭博(도박). 그 그룹을 굳이 歸國시키는 것은, 그럼에도 北朝鮮의 對美·對日交涉(대일교섭)에 있어 よど號 멤버를 잘라 버리지 않을 수 없다고 하는 北朝鮮側(북조선측)의 事情(사정)때문은 아닌가』라는 見解(견해)를 나타냈다.
http://www.sankei.co.jp/databox/n_korea/index.html
● 歸國(귀국)하면 逮捕(체포), 細田(호소다) 官房長官(관방장관)
産經新聞(산케이신문) 2004年7月6日 朝刊(조간)
細田博之(호소다 히로유키) 官房長官(관방장관)은 7月5日 午後(오후)의 記者會見(기자회견)에서, よど號(요도호) 하이잭(hijack) 事件(사건)의 멤버(member)들이 日本에의 歸國(귀국)에 協力(협력)을 要求(요구)하는 便紙(편지)를 北朝鮮(북조선) 政府(정부)에 보냈다고 여겨지는 것에 대하여 『[北朝鮮側(북조선측)으로부터] 事實關係(사실관계) 등은 어떤 連絡(연락)을 받지 않았다』라고 한 다음, 『從來(종래)부터 北朝鮮側에 [멤버의] 身柄
引渡(신병인도)를 要求해 온 經緯(경위)가 있어, 그 점은 변함없다. 歸國하면, 먼저 警察(경찰)이 逮捕(체포)하게 된다』라는 見解(견해)를 나타냈다.
http://www.sankei.co.jp/databox/n_korea/index.html
● 「よど號(요도호)」 멤버(member) 歸國希望(귀국희망)
北朝鮮(북조선) 「反對(반대)하지 않는다」
東京新聞(도쿄신문) 2004年7月5日 夕刊(석간)
[서울=篠ケ瀨祐司] 朝鮮中央通信(조선중앙통신)은 7月5日, 北朝鮮(북조선)에 亡命(망명)한 よど號(요도호) 하이잭(hijack) 事件(사건)의 前 赤軍派(적군파) 멤버(member)가, 日本에의 歸國支援(귀국지원)을 要請(요청)하는 書簡(서간)을 北朝鮮(북조선) 政府(정부)에 보냈다고 傳(전)했다. 北朝鮮 當局은 멤버의 歸國(귀국)에 대해 「反對(반대)하지 않는다」라는 立場(입장)을 表明(표명)했다.
『남을 必要(필요)없게 되었다』
北朝鮮 當局이 前 赤軍派 멤버의 歸國을 容認(용인)한 것은, 日·北 關係(관계)의 圓滑化(원활화)와 美國에 의한 테러支援國指定(TERROR지원국지정)의 解除(해제)를 目標(목표)로 한 것으로 보여진다.
書簡으로 前 赤軍派 멤버는, 「이미 家族(가족)들의 大部分(대부분)이 日本에 歸國하고 있어, 自身(자신)들도 共和國(공화국)[北朝鮮]에 더이상 남을 必要가 없어졌다」라며, 歸國의 意思(의사)를 分明(분명)히 했다. 日本 政府 關係者(관계자)와 直接(직접) 만나, 歸國問題(귀국문제)를 論議(논의)할 수 있도록 北朝鮮 政府에 支援(지원)을 要求(요구)하고 있다.
同(동) 通信(통신)에 의하면, 北朝鮮 當局(당국)은, よど號 問題(문제)에 대해 『日本人 스스로의 內部問題(내부문제)』이며, 멤버의 歸國에 『反對하지 않는다』라고 한 다음, 『日本側(일본측)과 멤버가 直接 만나, 必要한 實務協議(실무협의)의 手續(수속)을 거쳐 그들을 모두 데리고 돌아간다면, よど號 問題는 完全(완전)하게 解決(해결)될 것이다』라고 하고 있다.
よど號 하이잭 事件으로 北朝鮮에 남아 있는 사람은 實行犯(실행범) 4명과 그 家族들 合計(합계) 14명. 安部公博(아베 기미히로)[本名(본명) 魚本公博(우오모토 기미히로)] 容疑者(용의자)는, 神戶(고베) 出身(출신)의 有本惠子(아리모토 케이코)氏 拉致事件(납치사건)으로 國際手配(국제수배)되고 있어, 日本側은 2004年5月 日·北 首腦會談(수뇌회담)에서 同 容疑者(용의자)들의 身柄引渡(신병인도)를 要求하고 있다.
http://www.tokyo-np.co.jp/00/kok/20040705/eve_____kok_____003.shtml
● 「よど號(요도호)」 4명, 유럽의 拉致(납치) 등 열쇠 쥐어
當局(당국)도 關心(관심)
朝日新聞(아사히신문) 2004年7月6日 01:41
前 赤軍派(적군파)로서 北朝鮮(북조선) 居住(거주)의 「よど號(요도호)」 하이잭(hijack) 事件(사건)의 實行(실행) 멤버(member)가, 北朝鮮 政府(정부)에 日本에의 歸國支援(귀국지원)을 要請(요청)하는 便紙(편지)를 보냈다고 朝鮮中央通信(조선중앙통신)이 報道(보도)한 것에서, 事件으로부터 30年 以上(이상)을 거쳐, 멤버 4명의 歸國(귀국)이 現實性(현실성)을 띠어 왔다.
유럽에서의, 有本惠子(아리모토 게이코)氏 拉致事件(납치사건)에 關與(관여)한 容疑(용의)가 있다고 보여지고 있는 安部公博(아베 기미히로·56)[現姓(현성) 魚本(우오모토)] 容疑者(용의자)도 있다. 警視廳(경시청)은 4명이 歸國하는 대로 逮捕(체포)해, 事件의 全容解明(전용해명)을 目標(목표)로 한다.
安部(아베) 容疑者 외에, 小西隆裕(고니시 다카히로·59), 若林盛亮(와카바야시 모리아키·57), 赤木志郞(아카기 시로·56)의 各(각) 容疑者가 北朝鮮에 남아 있다. 4명은, 모두 國外移送略取容疑(국외이송약취용의) 등으로 國際手配(국제수배)되어 있다.
調査(조사)에서는, 4명은 다른 前 赤軍派 5명과 함께 1970年, 羽田發(하네다발) 福岡行(후쿠오카행) 日航機(일항기) 「よど號(요도호)」를 奪取(탈취)해, 北朝鮮으로 넘어갔다. 國內最初(국내최초)의 하이잭 事件이었다. 9명 가운데 田宮高○(다미야 다카마로) 幹部(간부) 등 3명은 死亡(사망)[이 가운데 1명은 未確認(미확인)], 2명은 歸國해서 同(동) 容疑 등으로 逮捕, 有罪判決(유죄판결)을 받았다.
멤버와 結婚(결혼)한 女性(여성) 8명 가운데 4명은 歸國해서 旅券法違反容疑(여권법위반용의) 등으로 逮捕. 北朝鮮에는 4명이 남아 있지만, 1명은 死亡했다는 情報(정보)도 있다. 멤버의 아이는 18명. 後에 合流(합류)한 赤木(아카기) 容疑者의 여동생과 日本人 男性(남성)과의 사이의 2명을 더하면 合計(합계) 20명이며, 이 가운데 14명이 歸國했다.
멤버는 2002年7月에 歸國方針(귀국방침)을 表明(표명)했지만, 直後(직후)에 있었던 日·北 首腦會談(수뇌회담)에서, 金正日(김정일) 總書記(총서기)가 日本人拉致(일본인납치)를 認定(인정)하고 謝罪(사죄). 그룹(group)의 關與가 指摘(지적)된 有本(아리모토)氏 등 3명이나 包含(포함)되어 있어 歸國問題(귀국문제)는 白紙狀態(백지상태)가 되어 있었다.
警察當局幹部(경찰당국간부)는 朝鮮中央通信의 報道에 대해 『4명의 歸國이 꽤 具體的(구체적)으로 되었다는 印象(인상)을 받았다. 테러支援國(TERROR지원국)의 指定理由(지정이유)가 되어 있는 4명의 存在(존재)를, 北朝鮮이 거치적거리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고 보고 있다.
○=床+木+呂, まろ(마로) [日本國字(일본국자)]
http://www.asahi.com/national/update/0706/002.html
● 「よど號(요도호)」 멤버(member)가 歸國(귀국)을 希望(희망)
北朝鮮(북조선)은 「反對(반대) 안해」
朝日新聞(아사히신문) 2004年7月5日 13:39
北朝鮮(북조선)의 國營(국영) 朝鮮中央通信(조선중앙통신)은 7月5日, 北朝鮮 居住(거주)의 日航機(일항기) 「よど號(요도호)」 하이잭(hijack) 멤버(member)가 北朝鮮 政府(정부)에 「日本에의 歸國(귀국)에 協力(협력)해 주었으면 한다」라는 便紙(편지)를 正式(정식)으로 보내왔다고 傳(전)했다.
더욱이 同(동) 通信(통신)은 「우리는 歸國에 反對(반대)하지 않는다」라고 明言(명언)해, 日本側(일본측)이 멤버와 面會(면회)해 手續(수속)에 따라 歸國시키면, 「よど號 問題(문제)는 完全(완전)하게 解決(해결)된다」라는 見解(견해)를 나타냈다. 日本이 身柄引渡(신병인도)를 要求(요구)하고 있어, 北朝鮮이 一定(일정)한 協力의 準備(준비)를 나타냈다고 보여진다.
北朝鮮에는 現在(현재), 小西隆裕(고니시 다카히로·59), 若林盛亮(와카바야시 모리아키·57), 赤木志郞(아카기 시로·56), 安部公博(아베 기미히로·56)[現姓(현성) 魚本(우오모토)]의 各(각) 容疑者(용의자)가 있다. 歸國하면, 强盜傷害(강도상해), 國外移送略取(국외이송약취) 등의 容疑(용의)로 逮捕(체포)될 展望(전망). 拉致事件(납치사건)에의 關與도 疑心(의심)받고 있어, 小泉(고이즈미)[小泉純一郞(고이즈미 준이치로)] 首相(수상)은 5月에 再訪北(재방북)했을 때도, 金正日(김정일)에게 引渡(인도)를 要求했다.
朝鮮中央通信에 의하면, 멤버는 『家族의 大部分(대부분)이 日本에 歸國한 狀況(상황)이므로, 우리도 더이상 남아 있을 必要(필요)가 없어졌다』라며, 日本 政府의 關係者(관계자)와 만나, 協議(협의)할 수 있도록 協力해 주었으면 한다고 要請해 왔다고 한다.
同(동) 通信(통신)은 『よど號 問題는 어디까지나 日本 政府와 멤버가 直接協議(직접협의)해, 解決해야 할 日本人 自身(자신)의 內部問題(내부문제)다』라고 指摘(지적). 『日本側이 그들과 만나 必要한 實務協議(실무협의)의 手順(수순)을 밟아 全員(전원) 데려 돌아간다면, 完全解決(완전해결)될 것이다』라는 展望을 나타냈다.
歸國問題(귀국문제)를 둘러싸고 멤버들은 1980年代 以後(이후), 「日本 政府와 無罪(무죄)를 合意(합의)한 後의 歸國」을 主張(주장)해 왔다. 4명이 最初(최초)로 歸國의 方針(방침)을 表明(표명)한 것은 2002年7月. 逮捕를 覺悟(각오)하고, 歸國을 위해서 必要한 渡航申請書(도항신청서)에 署名(서명)해 , 代理人(대리인) 山中幸男(야마나카 유키오) 救援連絡센터(구원연락CENTER) 事務局長(사무국장)에게 直接(직접) 건넸지만, 그 後에는 움직임은 멈추어 있었다.
멤버들의 아이 20명 가운데, 벌써 14명이 歸國이 끝난 狀態(상태)로, 2004年9月 初旬(초순)에는, 더욱이 3명이 歸國한다는 方針. 美國은 北朝鮮을 테러支援國家(TERROR지원국가)의 하나로 指定(지정)하고 있으며, 그 理由(이유)로서 拉致問題(납치문제)와 더불어, 요도호(よど號)의 容疑者 그룹(group)을 숨겨두고 있는 것 등을 들고 있다.
http://www.asahi.com/international/update/0705/01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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